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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 Lounge] 조운호 웅진식품 사장 | ||
[이코노믹리뷰 2004-11-11 09:36] | ||
“칭기즈칸은 말과 활로 세계 정복 웅진은 쌀·보리로 코카콜라 넘겠다” 13세기 유목민족인 몽골족을 대통합, 유럽의 문명국들을 차례로 멸망시키며 150년간 다스린 몽골제국의 창시자 칭기즈칸의 리더십이 요즘 화제이다. 말과 활만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한 칭기즈칸은 원대하면서도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여 조직원들과 공유했으며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통해 동기부여를 이끌어 냈다. 조운호(42) 웅진식품 사장의 성장과정과 그의 야망을 들어본 이라면 칭기즈칸이야말로 조 사장이 목표로 하는 이라고 생각할 만하다. 가난 속에서도 치열한 도전 정신으로 상고를 나와 은행에 입사한 그는 야간대학을 나와 웅진그룹에 들어가서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다. 불모지의 웅진식품을 떠맡아 능력이 만개(滿開)돼, 매출 50억원의 만성적자 회사를 5년 만에 3,000억원의 흑자회사로 바꾸어 놨다. 국내 시장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은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다국적 거대기업들이 군웅할거(群雄割據)하고 있는 세계 음료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동양적 가치의 곡물이라는 내용물과 웅진의 기술·인적자원 뿐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아직도 시장과 업계로부터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 사장에게 이는 중앙아시아 사막지대 한 도적떼의 우두머리였던 칭기즈칸이 대제국을 일굴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던 13세기 유럽인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조운호 사장은 최근 경기도 용인 한화콘도에서 열린 ‘이코노믹 리뷰 편집국과의 대화’에 참석, 3시간에 걸쳐 여전히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의 꿈과 비전을 솔직하게 털어 놨다. 조 사장은 “이제는 곡물음료가 서양의 오렌지 커피 탄산음료를 대체하는 대세상승장의 시기에 다다랐다”면서 연 매출 20조원의 코카콜라를 경쟁상대로 꼽았다. ‘코카콜라’와의 경쟁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조운호 사장은 오렌지 커피 사이다가 아닌 우리네 논과 들, 밭에서 자라나는 쌀과 보리가 그의 말이고 활이라고 말한다. - 누구나 망하는 회사로 발령 나면 고민한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 하면 바로 잘리는 것이었는데. 그룹에서 음료사업을 하자고 사업을 인수, 95년까지 웅진인삼에서 인삼음료를 팔았다. 공장의 생산 캐퍼는 1,000억원 규모였는데 연 매출은 50억~60억원에 불과했다. 공장은 껍데기만 있는 상황에서 설비는 뭘 할지 전혀 결정이 안 돼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기획조정실에서 팀장(과장)을 하다, 윤석금 회장으로부터 “저 공장을 살릴 만한 제품을 만들어 봐라”라는 특명을 받았다. 당시에는 지금 내가 매일 주장하는 음료의 세계화는 말하지도 못할 수준이었다. 그냥 그 공장을 돌릴 만한 제품을 찾는 게 당면 과제였다. - 음료산업은 생산은 쉽지만 기획과 유통에 의해 좌우된다. 공장만 달랑 있던 회사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시장이 아무리 성숙하고 크다고 해도 들어갈 틈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사실 음료산업은 쉬운 산업이 아니었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치열한 경쟁에다 빅 3~4가 80/100을 먹는 성숙시장이었다. 인력 자금 조직 브랜드 등 모든 점에서 일류 대기업들이 무수히 진입을 시도했지만 몇몇은 참패하고 물러갈 정도로 어려운 분야이다. 그런데 출판사가 음료를 만든다고 하니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아침햇살’이 99년 출시 10개월 만에 1억병을 팔았으니 대박을 터뜨렸다. 나는 이 것을 인터널라이제이션(內面化, Internalization)이라고 부른다. 세상에 많은 것이 있지만 내 것 우리 것으로 만들지 못 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 이 때 용기론(容器論)을 생각한 것으로 안다. 처녀작인 ‘가을대추’가 성공한 계기가 됐는데. 당시의 생각은 음료였다. 음료는 용기가 표준화되어 있어서 캔 병 등 안에 내용물을 넣기만 하면 됐다. 과자 등은 제품의 형태를 바꾸려면 라인을 다 뜯어 고쳐야 해 투자비가 더 들었다. 음료는 신제품을 내서 실패해도 내용물을 바꾸고 포장을 바꾸면 됐다. 다행스럽게 첫 작품이 나온 게 95년 10월 1일 이었다. 가을대추가 나와 60억 하던 회사가 360억원을 하게 됐는데 음료업계 10위권 안에 드는 정도였다. - 을대추가 성공한 이후 본사로 갔다 다시 컴백했다. 경영진과 코드가 맞지 않았다. 가을대추가 성공한 이후 임원들은 오렌지주스 콜라 등 시장이 큰 곳에서 같이 경쟁해야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쫓겨난 셈이었다. 그런데 웅진식품이 내가 없는 사이 1997~98년까지 매출은 정체됐고 누적적자는 450억원에 달했다. 다시 1998년 8월 복귀했다. 그런데 기막힌 것은 매달 10억원의 적자가 나는 수익구조였다. 금융비용이 전체 매출의 30%정도였고 영업적자까지 났다. 회장이 말하길 “기존 부채야 회사가 책임지지만 영업적자만 흑자로 돌려달라”고 말했다. 이듬 해 99년 1월 ‘아침햇살’이 나와 10개월 만에 1억병이 팔리는 엄청난 대박을 터뜨렸다. 99년 3월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계속 흑자가 나기 시작, 그해 7월부터 월별로 10억원 흑자가 났다. 아침햇살을 출시하면서 700억원의 매출이 그 이듬 해 ‘초록매실’을 계기로 무려 2,6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 윤석금 회장의 용병술이 낳은 대표적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나를 호출한 자리에서 윤 회장께서 “네가 내려가야겠다”고 했을 때 그 자리에서 내가 한 말이 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1년 안에 공장의 히트상품을 들고 사진 찍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그런데 나는 여기서 조건을 달았다. 하나는 우리 회사(웅진식품)는 돈이 없으니 신규사업을 뭘 하더라도 투자를 해주십시오. 둘째 식음료나 유사업종을 해야 되는데 관련 지식이나 용어가 부족하니 부서의 주임 하나를 데려가겠다고. 윤 회장께서는 투자는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해 주겠다고 하셨고 주임은 과장으로 2계급 특진시켜 데려가도록 허락했다. 이런 점이 CEO로서 전문경영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 아침햇살은 쌀로 만든 음료라는 독창적 원료에 차별화 상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 제품이 과연 어떻게 해야 소비자에게 필요한 제품이 될 수 있나를 고민했다. 오렌지 콜라 사이다 커피 등 다 비슷비슷한 음료가 있다면 과연 어떻게 차별화해야 하고 그 차별화가 가능한지를 고민했다. 우리가 택한 전략은 틈새시장을 파고 들자는 것이었다. 사실 오렌지 커피 콜라 사이다 등 음료의 메이저들은 원료가 어느 하나 국내에서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것으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계란으로 바위 깨기’라지만 우리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가진 차별화 제품이 뭔가를 고민했다. - 가을대추나 아침햇살 출시가 10월에 이뤄졌고 1월은 비수기인데 위험부담이 많지 않았나. 독창적 변화와 차별화 전략이 필요한 때였다. 가을대추를 10월 1일 출시했는데 성수기의 시작인 3월이나 피크인 7월도 아니라며 다들 나 보고 회사 말아먹는 짓이라고 했다. 사실 비수기와 성수기의 최고(하)매출 차이는 적게는 1.5배에서 많게는 2.5배에 달했으니 이해가 간다. 그래서 나는 그랬다. “그 이유 때문에 한다.” 영업조직 하나 없는 회사에서 후발로 들어왔을 때 성수기에 영업을 하면 누가 우리 제품을 팔려고 오겠는가. 기존 업체들의 생산력이나 영업력이 절반으로 주는 비수기에 신제품을 내면 관심도 받고 적은 광고비로 효과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음료사업에서 유통은 핵심이다. 웅진에게 기획 생산 능력은 있어도 유통은 부족했을 텐데. 만약 힘의 논리로만 본다면 지금 우리보다 조직이 몇 배나 큰 업체들은 내놓는 것마다 히트치고 소비자가 좋아해야 한다. 웅진이 가을대추 아침햇살 초록매실 등을 내놓은 이후 대기업 등 30~50개 업체들이 따라 왔지만 우리의 히트상품을 따라잡진 못 했다. 결국 답은 무엇인가. 좋은 제품, 즉 소비자들이 찾는 제품은 길 바닥에 놔도 팔린다는 것이다. 제품이 좋으면 영업은 자연히 따라온다. 물론 제품력이 비슷비슷할 때에는 영업력이 필요하지만 제품력이 특출할 때는 아무리 영업력이 뛰어난 회사도 못 따라오게 마련이다. - 아쉬울 게 없는 상황에서 목표를 코카콜라로 잡았다. 100년 역사에 20조원의 매출을 10년 안에 따라 잡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용기의 역사는 음료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 동안 살아남은 음료는 오렌지 커피 탄산음료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 서양의 식습관, 생활환경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제품들이다. 만약 우리에게 용기가 만들어졌다면 숭늉 보리차를 먹었을 것이다. 코카콜라가 한국에 들어온 지가 37년인데 콜라 매출이 3,000억원 정도이다. 콜라는 건강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국내 매출이 정체상태로, 매출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웅진식품의 아침햇살 초록매실은 4년 만에 비슷한 매출을 달성했다. 그래서 코카콜라가 40년 동안 이룩한 것을 우리가 4년 만에 했다. 전 세계적으로 100년 걸린 것을 10년 안에 못할 이유가 없다. - 곡물음료가 세계 음료를 휩쓸 것이라는 확신은 여전히 유효한가. 음료 시장의 추이가 서양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새로운 카테고리가 바로 곡물음료란 개념이다. 쌀 보리 등으로 만든 음료가 세계적인 음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전 세계 인류가 곡물을 먹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런데 주식인 쌀과 밀을 갖고 공통적으로 만들어 먹는 게 술이었다. 서양에서 수 백년 동안 술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음료가 된다. 과연 시장성이 있는가? 그 것도 한국에서 새로운 시장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뭐냐? 의심을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제품을 만들면 만들수록 확신하고 있다. 수요는 있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unmet needs), 상품화하지 못한 것이 바로 곡물 음료이다. 전 세계 음료시장이 500조라면 절반인 250조는 아시아의 시장이 될 것이다. 일본의 차 시장이 전체의 25%이며 동서양 음료시장의 균형을 맞추는 시기를 향후 20년 정도로 본다면 곡물시장은 최소한 50조의 엄청난 시장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 조 사장의 성공을 본받으려는 기업인들이 많다.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여러 벤처기업인들이 많은 질문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은 특허도 나고 아주 좋은 제품인데 자금이나 조직이 없어서 사업을 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사장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제품이 좋을 순 있다. 그런데 그 제품을 쓰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필요하고 돈을 내서 구입을 하겠는가. 상품성과 제품성을 생각해 보자’고 말한다. 이 세상에 많은 기업이 있는데 잘되는 기업이 있고 잘 안되는 기업이 있다. 모두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많은 기업들이 살아 있는데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어디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에서 만들어 준 상품이나 서비스가 별로 필요가 없다거나 정말로 내 욕구까지 잠재되어 있는 욕구, 즉 미충족수요(unmet needs)를 찾아내고 그 것을 가진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다. 1962년 전남 해남 출생/ 81년 부산상고 졸/ 81년 제일은행 입사/ 88년 부산산업대 회계학과 졸/ 90년 웅진그룹 입사/ 95년 웅진식품 기획실장/ 96년 웅진그룹 기획조정실장/ 98년 웅진식품 영업부장/ 99년~현재 웅진식품 대표이사 사장
이경호 기자(stanlee@ermedia.net) he is / 문학예술에 관심 많은 생각하는 불도저 경영자 조운호 사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기 이전까지 부산상고 출신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혹자는 가장 성공한) CEO로 불렸다. 1962년 전남 해남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부족한 것 없이 법관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반장을 지낼 정도로 똑똑하고 미술 문학에도 관심 낳았던 학생이었으나 중 2때 부친의 타계로 가사가 기울면서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진다. 장남으로서 가정의 생계를 위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부산상고에 진학, 졸업 후 당시 최고의 직장이던 제일은행에 입사한다. 야간대학(부산산업대 현 경성대 회계학과)을 다니면서도 은행업무에서 높은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은행업무가 그의 그릇을 채우기에 작다고 판단한 주위에서 기업체 입사를 권유했고 29세에 웅진그룹에 입사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타고난 추진력과 업무수행력을 인정받아 승진에 승진을 거듭, 5년 만에 주임에서 과장을 지나 37세인 99년 웅진식품 대표이사에 오르게 된다. 가을대추 아침햇살 초록매실 등 메가 히트 상품을 줄줄이 내놓으면서 50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을 3,000억원까지 끌어 올리게 된다. 사내에서 그의 별명은 생각하는 불도저. 그만큼 충분한 검토를 끝낸 이후에는 뚝심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밀어붙이는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아침햇살의 문화적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무턱대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집을 찾아간 일은 유명한 일화. 술을 좋아하지만 장소와 때를 잘 가려 문학 문화 예술 관련 지인들과는 술잔을 자주 기울인다.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부인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고 프러포즈했고 시 창작교실을 운영했을 정도. 현재 웅진식품의 성공과정과 비전을 담은 경영에세이를 집필 중이며 히트제조기라는 자신의 명성을 잇기 위해 베스트셀러(50만부)의 확신이 서는 시기에 출간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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