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사회와 교육에 대한 배움의 갈증
2017년 4월 7일과 8일에 ‘한국-덴마크 교육 국제 세미나: 덴마크 대안교육을 만나다’가 개최되었다. 이 세미나는 ‘삶을 위한 교사대학’이 2016년 하반기부터 반년 동안 공을 들인 사업이다.
2016년 하반기부터 준비하여 2017년 초부터는 서울특별시 교육청과 인천광역시 교육청이 함께 세미나를 준비하였다. 애초에 준비팀은 500여 명 정도가 세미나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온라인 사전 신청이 1천 명을 넘기 시작했다. 무료 세미나의 온라인 사전 신청은 실제 참여율이 많이 차이가 나는데 본 행사는 80%가 넘는 참여율을 보였다.
온라인 신청 시 사전에 받은 질문을 보면 덴마크 사회와 교육에 대한 배움의 갈증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덴마크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덴마크는 사회 자체가 성숙된 사회라 그러한 교육이 가능한 것 아니겠느냐”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덴마크 교육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지금의 민주 시민 사회를 이끌어 온 힘이 바로 교육임을 알 수 있다.
덴마크의 교육은 삶을 위한 교육
공교육과 자유교육 간의 긴장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덴마크의 학교들은 세계교육 지형도에서 거의 유일하다고 할 정도의 독특한 체제와 구조를 통해서 교육의 진정한 뜻, 즉 ‘삶을 위한 교육’이라는 뜻을 구현하고 있다. 그 특징은 개방성, 유연성, 다양성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그 두드러진 사례로는 특히 ‘삶을 위한 교육’을 지향하는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자유중등학교)를 들 수 있다.
에프터스콜레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1년 동안 인격 형성이라는 목표 하에 개성의 세계를 탐색, 심화하고 덴마크인으로서의 역사의식과 민주시민의 일원이 되기 위한 핵심 내용을 가르치는 학교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공교육 체제 하에서의 혁신 작업이 대안학교(혹은 자유학교)와의 유기적 연계 체제 속에서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탐색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대학입시와 지식습득을 위한 경쟁 교육을 주안점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 공교육 체제의 경직된 구조의 한계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조명해 주는 사례로 덴마크 교육을 제시하고자 한다.
학제의 기본 구조와 교육의 지향점, 방법상의 개방성과 유연성, 다양성
덴마크 학제에서 첫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덴마크 「교육법」이라는 하나의 우산 하에 공교육과 자유교육이 일정한 긴장관계를 가지며 병립하는가 하면 또한 상호 협력적 관계를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교육’이란 국가 공교육 체제가 제시하는 틀로부터 나와서, 즉 국가적 틀에 매이지 않고 독립적 틀에 따라 이루어지는 교육을 말하며 다양한 형태의 자유학교 들을 주축으로 하여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병립 구조는 기초 교육단계에서 중등교육단계를 거쳐 고등교육단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3)
처음 단계에 위치해 있는 폴케스콜레(Folkeskole)부터 살펴보자면, ‘폴케스콜레’란 초등교육과 중등교육 1단계를 합한 형태의 9학년제로 운영되는 공립기초학교를 일컫는 말이다. 아주 이른 시기인 1814년에 프로이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설립되었으며, 설립 당시에는 7학년제였다.
이 단계는 물론 무상 의무교육기에 해당한다. 이 단계 바로 전에 유치원 과정이 통합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1년을 더 다니겠다고 하면 10학년 과정을 선택할 수도 있다.
특이하게도 이 폴케스콜레와 같은 수준에서 국가의 교육법 테두리 안에 사립학교들이 나란히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립학교와는 달리 덴마크의 경우 대체로 학부모가 설립과 운영의 주체가 되어 있으며 아동과 청소년을 존중하는 교육 형태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들 학교에서 주축을 이루는 학교 형태는 프리스콜레(Friskole, 자유기초학교)로 1852년에 처음 설립되었으며 보통 작은 규모로 운영된다. 학교 현장이라는 차원에서 폴케스콜레와 프리스콜레 사이에는 일정한 긴장 관계가 있기는 하나, 양자는 적대적 관계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상호 교류 및 협력 관계에 서 있다.
이 단계를 마치면 이어서 중등교육 2단계에 해당하는 김나지움 및 그에 상응하는 예가 시작된다.
그리고 동시에 같은 연령대에서 운영되는 직업교육을 위한 학교들도 있다.
중등교육 1단계와 2단계 사이에 아주 특이하고 흥미로운 학교 형태가 하나 있는데 에프터 스콜레(Efterskole, 자유중등학교)가 바로 그것이다.
에프터스콜레란 덴마크의 폴케스콜레와 프리스콜레의 교육단계인 1학년부터 9학년을 마친 학생들 혹은 선택한 10학년을 마치기 전 8학년부터나 졸업 후(연령대로 보면 14세부터 18세 청소년들) 보통 1년이나 경우에 따라 2, 3년 동안 ‘인격 형성’을 위한 최적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학교로, 모두 기숙학교이다. 학생 수는 적게는 30명, 많게는 500명 정도이며 2015년 현재 평균 115명 가량 된다.
인상적인 것은 공립학교와 자유학교가 협력 구조 안에서 상호 연계되어 있는 체제로, 덴마크 정부가 교육법에 따라 에프터스콜레 재학 기간을 공립학교 재학 기간과 법적으로 동일하게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조건 하에서 학생들은 1, 2년 정도 에프터스콜레에서 공부한 후 다시 다니던 학교로 돌아갈 때 수학 과정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학교에 다니다 휴학을 하게 되면 그 기간을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의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졸업시험을 통과하면 공립학교와 동일한 자격을 부여받아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등교육 2단계를 마치면 고등교육단계를 맞는다.고등교육 기관으로는 국립대학들이 주종을 이루나, 동시에 사립 평민대학인 폴케호이스콜레(Folkehøjskole)가 병존한다.
시민의 양성을 위해 설립된 성인교육기관으로 덴마크 국민이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고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입학을 위한 특별한 조건이나 시험은 없다.
평민대학은 1844년과 1851년 세워진 초창기 학교들을 기원으로 하고 있으며, 모든 자유교육 기관들의 모태로서 특히 덴마크 서민과 농민층의 계몽(개인적, 공동체적 삶의 계몽)과 민주시민교육을 구현함으로써 오늘날 덴마크를 세계에서 가장 안정되고 민주화되도록 추동해낸 원천이라는 역사적 위치를 갖는다. 이 주제는 별도로 다루어야 할 커다란 주제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만 언급하고 초등과 중등교육 기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기로 한다.
폴케스콜레와 프리스콜레의 기원과 공통적 특징
덴마크에서 일찍이 자유교육이라는 독특한 형태가 출현했으며, 또 이것이 공교육 체제와 일정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협력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은 어찌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럴만한 원인과 이유가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그 원인과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를 각각 나누어 살펴보면 이러하다.4)
첫째, 덴마크에서 1814년 처음 공교육이 도입되었을 때, 이는 분명 근대적 국가 형성과 국민교육을 위한 새로운 전기였음에는 틀림없지만, 한계도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목적과 방법에 있어서 그러했는데 목적 면에서는 철저하게 객관적 가치, 즉 하나는 ‘기독교적 교훈에 따라 선하고 올곧은 인격’을 갖추어 자라나도록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한 국가의 쓸모 있는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이 공립학교의 목적은 사회와 학교현장에서 있었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1937년까지 그 기본 틀을 유지했다.
또 방법 면의 한계라면 국가가 정해준 것을 교사가 주도해서 주입식으로 끌고 가는 식이 바로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처음 문제를 제기한 것은 그룬트비(Nikolaj F. S. Grundtvig, 1783~1872)5)로, 그는 교육의 목적으로 단지 국가와 교회에 충성하는 신민 내지 신앙인의 양성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삶의 ‘계몽(Enlightenment)’과 다가오는 근대 사회를 위한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가치를 염두에 두었으며, 학생들을 수동적으로 교육하는 교수법 대신 상호관계와 이야기 나눔 및 일상생활의 경험과 실천을 통한 교습법을 주창함으로써 당시 지배적인 학풍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이 문제 의식은 거의 동일한 맥락에서 관심사를 공유했던 교사 크리스튼 콜(Christen Kold, 1816~1870)6)에 의해 현장에서 구현되었다. 콜의 프리스콜레가 세워진 해가 1852년이었으니까 공립학교가 처음 설립되었던 1814년으로부터 40여 년 후의 일이다.
둘째, 오늘날 공교육과 자유교육이 긴장 관계에 있으면서도 협력 관계를 갖는다는 이 모순된 상황을 살펴보자면 사정은 다음과 같다. 물론 양자는 처음에는 비판적 관계에서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황전개 과정에서 자유학교들은 수적으로 빠르게 확장해 나가면서 현장에서 실제적 힘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차츰 교육법적 지위와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확보하게 된 바, 그것은 한편으로 집요한 문제의식에 뿌리박은 실천적 투쟁과 협의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근대 국가 형성기에서 덜 중앙집권적이었던 국가권력의 대응방식의 결과로도 볼 수 있다. 20세기 이후의 전개 상황에서 특이할 만한 것은 공교육 쪽에서 자유교육이 좀 더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교육 효과를 낸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그 장점을 도입하기 시작 했다는 점을 먼저 들 수 있다. 또한 근래에 들어서는 공립학교들이 자유학교를 포함하여 외부에서 오는 도전과 자극 앞에서 자기 혁신에 매진한 결과 좋은 성과들을 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 공립학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자유학교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자극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시점에서 보면 공립학교와 자유학교는 경쟁관계이면서도 협력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긴장과 협력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그룬트비의 영향력’ 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개명된 시대를 위해 사회와 교육의 방향과 구조를 새로이 정초하려 했으며, 이를 통해 근대 덴마크의 학문과 교육 및 사회적 구조를 위한 포괄적 기반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는 비록 자유교육을 주창했지만 그것은 교육 본래의 뜻을 설파하기 위함이었으며, 특정 파(당)을 조성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덴마크 사회와 교육체제(공교육과 자유교육을 막론하고) 및 교육법은 그 큰 틀에서 볼 때 그의 정신이 지시하는 가치에 지향되어 있는 것으로 회자된다.
이 점은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입장 설정과 상호 협력적 관계 방식에서도 잘 나타나 있는데 이를테면 양정당 간에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양자 간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덴마크 사회가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역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잘 설명해 준다.
즉 덴마크에서 학교에 관련된 모든 중요한 법은 정치적 합의에 기초하고 있으며, 학교개혁 관련법은 국회에서 반대당의 동의 없이는 통과하기 어렵다는 것이나, 혹은 자기는 보수정당 국회의원이면서 자식은 자유학교에 기꺼이 보내는 것이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이어서 덴마크의 학교교육이 지닌 기본 성격을 종합학교단계에서 일별해 보자. 이 특징들은 공교육이나 자유교육 모두에 해당하는 것으로 찬찬히 음미해 보면 덴마크 교육이 기본적으로 아동과 청소년의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얼마나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다양한’ 성격을 갖추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개방성이라 함은 전통과 기존 규범에 고착되지 않고 아동과 청소년을 위하는 구조로 가능한 모든 것을 민주적인 형태로 소화해 내려는 성격을 말한다.
또 유연성이라 함은 체제와 방법을 준수하도록 하면서 예외 혹은 다른 가능한 차원이나 경로를 차단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문제 접근 방식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다양성은 학생들이 성향과 능력에 따라 자신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학제와 교수학습방법이 고착화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 세 가지 성격은 이하 각각의 특징들에서 때로는 개별적 으로 때로는 중첩적으로 나타난다.7)
- 학령기 전 아동을 위한 학급을 학교의 일부로 운영한다. 모든 학교에는 유치원이 부속되어 있다.
- 입학은 6세가 아니라 7세이다.
- 1-9학년을 통합한 구조로 보통 학업성취도 따라 차등을 두지 않는다.
- 유급은 없다.
- 학생이 원할 경우 한 학년을 더 다닐 수 있다. 이 경우 수업 연한은 10년이 된다.
- 모든 학교에서 교육과정은 추천적 성격(국가가 강제로 부여하는 식이 아니라)을 가질 뿐이다.
- 성적은 공립학교에서 7학년부터 부여한다. 사립학교는 학생을 평가할 때 자체 기준에 의거한다.
- 교과서는 허가제가 아니다.
- 모든 학교의 학생들은 9학년 말에(혹은 원할 경우 10학년 말) 단일한 평가 기준에 의거 졸업을 위한 국가고시를 치러야 한다.
- 과목은 국어, 수학, 영어를 필수로 하고 학교에 따라 제공하는 선택과목 몇 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험체제는 지필교사와 구술고사 두 분야에 걸쳐 매우 엄격하게 운영된다. 철학은 19세기 중엽 이후 160여 년간 기초과목으로서 동일하게 이수하고 평가를 받도록 되어 있다.
국가가 고려하는 기준은 핵심교과의 기초지식과 기초능력의 완성도이다. 이때 어떤 방법으로 할 건지, 어떤 수업도구와 책을 사용할 건지 어떤 교육과정을 운영할 건지는 학교 재량에 맡겨져 있다. 단 사립학교 학생이 공립학교 학생 평균 수준에 미달할 경우 제재를 받게 되는데 이를테면 국가는 보조금을 중단할 수 있다. 사립학교의 경우 학비를 내야 한다. 따라서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의 의식수준과 참여활동은 평균 수준을 상회한다고 할 수 있다.
- 9학년 말 졸업 시험에 통과하면 3년 간의 김나지움이나 다른 단계의 상급과정에 진학할 수 있다.
이상 폴케스콜레와 프리스콜레의 공통적 특징을 배경으로 다음에는 그룬트비와 콜 사상에 기초한 프리스콜레에 초점을 맞추어 그 이념상 특징에 대해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프리스콜레의 교육이념 주요 특징
여기 소개하는 프리스콜레의 교육 이념상 특징들은 최근 올레 피더슨(Ole Pedersen, 자유교원대학 학장)이 그룬트비와 콜이 19세기 학교제도를 둘러싸고 공적 영역에서 논쟁을 벌였을 때 기본으로 삼았던 생각을 오늘날 소통 가능한 방식으로 아홉 가지 명제로 정리·제시한 것을 간추린 것이다.8)
학교는 학생이 사는 가정의 연장이다
학교를 ‘또 하나의 가정’으로 보자는 것으로, 급격한 문화화를 반대하고 가정과의 연속성을 확보하여 마치 부모가 돌보는 온기가 살아 있는 자리가 되도록 하자는 뜻이다. 이는 교육의 처음은 지식인이 아니라 인간이어야 한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학교는 학생들을 위해 존재한다
기존 학교가 사회의 적응이나 국가를 위한 국민 양성을 목표로 함으로써 아동의 존재를 배제한 것에 대한 반 명제로, 학교는 아동의 존재를 중심에 놓고 개개인의 다양한 욕구와 능력 발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은 마음의 자궁이다
작업을 하는 손이 정신과 마음의 활동을 위한 조건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신체활동은 뇌가 잘 발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또 이 조건은 평생 지속되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배우는 법을 배운다
삶과 학습을 학생들의 인격의 일부로 파악하자는 것이다. 이미 도출된 지식의 수동적 수용이나 습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인식하는 법을 스스로 또한 능동적으로 터득하고, 일상사에서 마주치는 또 다른 방식에 대한 개방적 관점을 익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살아 있는 말, 즉 ‘구술언어(the spoken word)’를 중시한다
책이나 교과서가 우선이 아니라 일상사를 토대로 한 이야기 나눔을 통한 배움이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이야기하기(storytelling)’를 통한 수업방식이나 ‘매일 아침모임’(morning assembly)의 형태로 구현된다.
종교와 기독교적 가치를 근간으로 한다
그룬트비와 콜 식의 자유학교에서 종교와 기독교 신앙은 학교 설립 초기부터 기초 혹은 배경으로 작용했으며 그 성장 과정에서 그리고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친교와 자유
학교에 관련된 사람들은 누구나 서로 자유롭게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 하고, 개인의 다양성 역시 이 친교의 힘을 바탕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이는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 자기 자신이나 다른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함을 뜻한다.
교육과 자유
교육에서 자유를 핵심 가치로 삼자는 뜻이다. 각자 자기 스스로 내부에서 솟아나는 힘에 의해 움직이고, 또 이를 통해 역시 다른 사람과의 협동도 함께 이루어낼 수 있어야 한다.
프리스콜레는 그 자체 오래된 민주주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학교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각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이때 늘 핵심으로 강조되는 것은 경청하는 태도와 소수자를 포용하는 태도(단순한 다수결이 아니라)이다.
한편 초창기 자유학교의 초미의 관심사가 자유와 민주시민사회 형성이었다면 현재와 미래라는 맥락에서는 지식기반사회에서 강조되는 ‘경쟁’ 관계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가, 현 문명이 직면한 ‘생태학적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세계화된 삶의 방식에서 어떻게 ‘세계 시민’으로 성장할 것인가 하는 등의 물음을 새로운 관심사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상의 특징에 따라 현대적 자유학교인 프리스콜레의 일상을 일견하면 진보주의적 성격이 확연함을 알 수 있다. 프리스콜레에서는 보통 연령층을 섞어 학습 집단을 구성한다. 학습은 프로젝트법을 통해 학문 영역 간 상호 연관 구조를 통해 이루어진다. 수업구조는 학급별로 운영하며 하루에 하나의 수업 단위로 운영한다. 청소, 장보기, 계획 세우기 등 모든 아이들이 책임을 분담한다.
음악과 창조적 학습 시간을 인지적 교과와 균등하게 배정한다. 수업 중 상당 부분을 학교 밖에서 진행한다. 실험과 관찰을 강조한다. 어린이와 학부모는 학교 안에 머물러 활동할 수 있다. 놀이는 학교뿐 아니라 자연 안에서, 이를테면 모험 놀이, 동물 놀이, 정원 작업 등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학교의 모든 아이들과 모든 교사를 알고 지낸다.9)
기초교육과 중등교육 1단계가 종료되기 전 마지막 2∼3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즉 우리나라의 중학교 2학년 정도 수준에서 또 하나의 자유교육 과정이 이어지는데 에프터스콜레가 바로 그것이다. 덴마크 자유학교 전통에서 유래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특유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이 학교에서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개방성, 유연성, 다양성이라는 성격을 매우 흥미롭게 확인할 수 있다.
에프터스콜레라는 학교 형태가 말해 주는 것
에프터스콜레에서는 교육의 목적 설정에 있어 ‘인격 형성’이라는 개념을 철학적 기초로 삼고 있다. 이 말은 덴마크 어로 형성을 뜻하는 ‘Dannelse’의 번역어로 원어로는 보편교육적, 비직업적 의미에서 학생을 전인적으로 형성하기 위한 과정을 뜻하며, 외국어로 정확히 번역해 내기는 어려우나, 영어의 Education이나 Character Formation 혹은 독일어의 Bildung이 그 근사치에 해당하는 것으로 종종 언급된다.
이 개념을 이 학교에서 시행하는 교육의 주된 내용에 따라 풀어보면, 직업교육이 아니라 보편교육적 의미에서 주체적 자아를 중심축으로 하여 개성적 세계를 발현시키는 동시에, 도덕적 의지에 의거 학습자로 하여금 그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책임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도록 형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이념 하에서 에프터스콜레가 추구하는 목표는 보통 다음 세 가지, 즉 삶의 계몽, 보편교육, 민주시민교육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덴마크 교육법에 따른 것이다(Bekendtgoerelse af lov omefterskoler, 2015).10)이 세 가지 목표는 학교 현장에서 다음과 같이 구현되고 있다.
첫째, 청소년들의 관심사와 개성에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이 때문에 에프터스콜레는 일종의 ‘중점학교’라 할 수 있다.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음악, 미술·디자인, 연극, 영화, 스포츠, 항해, 여행, 국제 교류, 종교, 프로젝트와 현장연구, 난독증 등 학습장애, 혹은 학생의 특수한 요구를 위한 학교 등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따라서 교육과정은 공립학교와는 물론 아주 다르며 에프터스콜레마다 다르다. 과목 선택과 교수법은 학교가 정하기 나름이다.
둘째, 에프터스콜레를 중점학교라 했지만, 특정한 분야만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역점을 둔 분야가 있되 이를 보편교육적 의미에서의 일반 학문 분야와 엮어서 가르치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스포츠를 중점으로 하니까 다른 교과를 소홀히 해도 무방하다는 뜻이 아니라 공교육에서 제공하는 일반 교육과정과 병행하여 학생들의 개성을 특색 있게 반영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에프터스콜레가 개성의 발달도 중시하지만, 한 국가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일반적 자질도 중시한다는 입장을 보여준다.
셋째는 ‘민주시민교육’이다. 이는 시민 각자가 지배 계층의 통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그와 동시에 타자와 더불어 통일성을 이루어 살아가도록 돕기 위한 교육을 뜻한다. 한 사람의 개인이 된다는 것은 늘 정당한 의미에서의 사회공동체적 삶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다. 이 맥락에서 삶의 각 단위에서 연대 의식과 공동체성, 단결심을 중시한다. 이 가치는 공립학교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에프터스콜레는 기숙학교로 운영된다. 그런 밀도 있는 공동체 생활 속에서 학생들은 앞에서 말한 세가지 가치들을 매일같이 실천적으로 배우고 연마한다. 이 경험을 통해서 학생들은 정말 밀도 있게 자기 삶과, 세계와 역사, 그리고 사회공동체를 탐사하고 몰두해 보는 것이다. 하나의 진정한 인간으로 성숙하도록 돕는 이 과정을 위해서 덴마크 사회와 학부모, 국가와 지자체는 한 마음으로 헌신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보기 어려운 사례라 하겠다.
우리 현장에서 생각해 보기
덴마크 자유교육의 역사적 의의는 국가 공교육이 지시하는 바에 선행하여 교육의 본뜻, 즉 삶을 위한 교육을 촉구한 것이며, 이 명제와 결합하여 평민의 계몽, 개성적 세계의 발현, 공동체 의식 함양, 민주주의 문화의 건설과 촉진 등을 주된 목표로 설정한 것이라 하겠다. 이는 세계교육사적 맥락에서 볼 때 대안교육의 선구적 형태로서 이후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진 대안교육적 시도들을 위해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있음은 물론, 그와 같은 방향에서 공교육의 내적 혁신을 자극할 수 있는 시도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프리스콜레는 1890년 이래 전개되기 시작한 서구의 개혁교육운동(신교육 운동 혹은 진보주의 운동)보다 40년 정도 앞서 이루어진 것으로, 비슷한 시기에 이와 견줄 수 있는 사례는 러시아의 세계적 문호 톨스토이(Leo Tolstoj)가 시도한 ‘야스나야 팔랴나’(Jasnaja Poljana) 학교 (1849-1875)라 할 수 있다.
교육학적 자유라는 점에서 덴마크의 자유학교들은 지금까지 풍부한 자유를 누려 왔다. 이는 공립학교의 경우에도 일정 부분 해당된다. 하지만 최근 세계화 과정에서 자유학교들은 덴마크도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강력한 목소리에 부딪혀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있다.
이를테면 지난 몇 년 간 현 단계에서 의무교육제를 10학년으로 늘릴지에 대한 문제가 교육 전문가와 정치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논의되었으며, 몇 년 전 교육부는 10학년 의무제 법안을 상정했다. 하지만 프리스콜레에 가거나 홈스쿨링이 불가능한 청소년들만이 10년 동안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의견이 이에 팽팽히 맞서서, 결국 모든 청소년들이 10학년을 다니도록 한 법안은 부결되었다.
이처럼 최근 덴마크에서는 학교 공부를 이전보다 일찍 마치도록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자유학교들이 덴마크 사회와 교육 전반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여전히 강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추세를 놓고 생각해 볼 때, 즉 그간 비교적 많은 자유를 구가하던 덴마크 학교들이 세계화 과정에서 학력의 중요성과 학습의 긴장도를 강조하는 추세를 보인다고 해서 우리 역시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강도 높은 학습에 주력해 왔으며, 따라서 우리 교육에 오히려 절실한 것은 학습자의 자유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에프터스콜레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는데, 이는 주로 입시와 경쟁, 출세를 위한 객관주의적 지식습득 교육체제를 벗어나 청소년들이 살아가게 될 인생경로에 초점을 맞춘 교육으로의 대폭적 전환을 꾀하려는 움직임 덕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진로지도 문제로만 특화시켜 수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러한데, 하나는 흥미와 관심사에 따른 인생경로 찾기라는 차원도 중요하겠지만 이를 청소년의 인격과 삶의 형성이라는 좀 더 포괄적 범주에서 다루지 않으면 피상적으로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에프터스콜레가 그러한 개개인의 삶의 문제를 늘 더불어 평등하게 사는 민주적 사회공동체라는 문제와 연계시켜 다루고 있는데 비해, 소위 진로지도 과정에서 이 점은 쉽게 간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프터스콜레는 대안학교의 일종이지만 세계의 여타 대안학교들이 공교육 구조와 대립적 입장을 취하는 것과는 달리, 협력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공립학교는 이런 협력관계를 통해서 기존 구조만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자체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기회를 의미하며, 또 대안교육 쪽에서 보았을 때도 기존 체제를 거부하기만 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교육과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제3의 기회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또한 하나의 기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의 경우 공립학교 쪽에서는 현재 ‘자유학기제’를 통해 부분적으로 시도하고 있기는 하나 현재 구조로서는 여전히 상당한 난점을 가진 진로탐색 교육이나 학교부적응아 문제에서 또 하나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며, 한편 대안교육 쪽에서는 기존의 3년제나 5년제, 6년제 학교 유형들에 더해 새로운 유연성을 확보하거나, 나아가 공교육과의 협력구조 속에서 사회 전반의 교육적 상황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청 단위에서 모색할 수 있는 해법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대안학교 위탁교육의 확대와 다양화, 공립학교 체제 내에서의 에프터스콜레 설립, 대안학교 교사와 공립학교 교사들이 공동으로 설립· 운영하는 학교설립이나 교육과정 운영 등).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14년 가을부터 준비하여 2105년에 들어 자유학년제라는 틀에서 ‘오디세이학교’를 설립했는데 그 골자는 바로 에프터스콜레의 핵심가치에 상응한다. 아직은 초기 단계로 현재 몇몇 학교를 선정하여 운영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향후 그 확장세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2016년 들어 강화(경기도)에 설립된 최초의 기숙학교 형태인 ‘꿈틀리 인생학교’는 유의미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한편 꼭 에프터스콜레가 아니더라도, 축약된 형태로나마 이 뜻을 구현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를 일반 학교 방학을 이용하여 1∼2주일이나 한 달여 정도 운영하거나, 그런 프로그램을 지역의 마을 공동체나 지자체와 협력하여 실행해 보는 방안이 있겠다. 예컨대 경기도교육청의 ‘꿈의 학교’ 프로젝트가 바로 여기에 해당할 수 있겠다. 이러한 시도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을 위한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이 경직된 학교체제 전반과 일상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작업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교현장에서 교육적 과제를 개방적이고, 유연하고, 다양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부여된 자유에 대해서, 즉 목적과 목표는 국가가 정하지만 도달하는 경로와 방법, 도구와 수단은 학교 재량에 맡겨 놓았으며 특히 교과서를 지정하지 않았다는 점은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 본 원고는 송순재2)(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현) 삶을 위한 교사대학 이사장)의 글을 바탕으로 저자의 생각을 작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2) 송순재 -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교육철학을 가르쳤고, ‘한국기독교교육학회’ 회장과 ‘서울시교육연수원장’을 역임했다. 처음 강단에 발을 내 디면서 “학자로서 이 시대를 산다는 게 무언가?” 하는 고민이 깊어져 소위 정로(正路)와는 다른 길을 찾아다녔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안교육운동과 혁신학교운동에 참여, ‘교육사랑방’을 공동 설립 · 운영하면서 십여 년 동안 교육동인지 《처음처럼》을 펴냈다. 2013년에는 동인들과 함께 대안교육과 공교육 교사양성을 위한삶 ’ 을 위한 교사 대학‘(협동조합)을 시작했다.
3) Eckhard Bodenstein, “Lä nderstudie Dä nemark”, in: Reformpä dagogik und Schulreform in Europa, Bd. II., hg. von M. Seyfarth-Stubenrauch (Hohengehren 1996), 437-442.
4) 칼 크리스티안 에기디우스 (Karl K. Ægidius), “덴마크의 학교풍속도”, 송순재 역, 『처음처럼』 35 (2003.1/2): 82~83.
5) 그룬트비(Nikolaj F. S. Grundtvig, 1783~1872, 신학자, 시인, 신화와 민속연구가, 교육자, 정치가로 오늘날 덴마크의 국부로 일컬어짐)
6) Jindra Kulich, “Christen Kold, Grü nder der Dä nischen Volkshochschule. Mythen und Realitä t”, in: Die Ö sterreichische Volkshochschule (186/Dezember 1997):7-15; Peter Berker, Christen Kolds Volkshochschule. Eine Studie zur Erwachsenenbildung im Dä nemark des 19.Jahrhunderts (Mü nster, 1984).
7) Eckhard Bodenstein, “Lä nderstudie Dä nemark”, 437.
8) 올레 피더슨 (Ole Pedersen), Education in Denmark, 「공교육 안팎을 아우르는 배움의 권리 – 덴마크 자유교육의 역사를 통해서 배운다」 (2010년 국제심포지엄 자료집). 대안교육연대, 11-23.
참고문헌
에기디우스, 칼 크리스티안 (Ægidius. Karl Kristian). 「덴마크의 학교풍속도」.『처음처럼』 35 (2003.1/2): 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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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슨, 야콤 (Jacob C. Jensen). “Introduction to the Danisch Efterskole”.「대안교육의 국제적 동향과 발전과제」 (2015년 대안교육국제포럼 자료집).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편, 9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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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육개발)
출처: 희망교육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