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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정리
▶갈래 : 희극, 서사극, 사회 풍자극
▶성격 : 풍자적, 반어적, 실험적
▶배경 : 1960년대 서울의 어느 아파트 및 회사 사무실
▶제재 : 출세주의에 사로잡힌 어느 청년의 삶
▶주제 : 현대인의 속물적인 욕망 비판
▶특징 : ① 인물의 심리를 밀도 있게 묘사함. ② 다양한 실험적 방식 활용(관객에게 말을 거는 행위, 제4의 벽의 허물었음, 서사극적 형태)
● 줄거리
주인공 김상범은 평범한 사회인으로 정직하게 살아오는 동안 늘 실패와 손해만 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사장의 눈에 들게 되자, 출세의 지름길이 있음을 깨닫고 과감하게 행동을 개시한다. 상사인 경리과장이 공금을 유용한다고 모함하여 그 자리를 차지하고, 사장의 며느리이며 비서인 미망인 성아미와 전무와의 스캔들을 이용, 임신 중인 그녀와 결혼하고, 암흑가의 건달을 포섭하여 그에게 강도질을 시킨 후 뒤에서 총을 쏘아 그를 죽임으로써 자신에게 큰 공이 있는 것처럼 조작한다. 드디어 그는 상무가 되고, 사장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는 실상 불행하다. 대학교수를 버리고 초등학교 교사가 된 형과, 불철주야 노력하여 입사시험에 합격한 동생은 오히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작자는 김상범의 어처구니 없는 생활태도 속에서 현대인의 비애를 보여주고 있다.
1) 1960년대 당시의 분위기
①산업의 부흥 , 즉 , 경제적 성장만 강조
②성공주의․출세주의와 배금주의의 만연
③목적보다 수단이 우선시 되던 시절
④가치관의 혼란과 전도 현상이 일어남
⑤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
☆상범 - 이거~결혼상대자를..
①상식적인생활,(이사회에서는 저의상식)
②새상식(물에 빠진 놈에게 돌을안겨주자 !)기본상식을 거부
③《①→②》입체적 인물
정직은 항상 손해만 입었다 → 출세주의 수단화 잘못된 상식
모든생활을 제가아는 상식의테두리 → 그여자는 고맙다는 말대신에 저의뺨을 갈겼습니다.
2) 삶의 방식을 바꾼 이유 : 상식적인 생활태도가 늘 손해만 가져온다고 생각함
3) 주제 : 산업사회로 인한 황금만능 주의와 출세주의의 풍조를 비판
새 상식이 아닌 바른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구현
4) 인물 :
김상범 - ①소심하고 어리숙한 젊은이
②늘 실패와 손해로 일관된 생활
③일반적인 상식으로 생활
↓
①출세의 방법에 눈을 뜨게됨
②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
③냉혈한으로 변함
④새로운 상식이 지배
●구성
▶발단 : 선량하고 평범한 젊은이 김상법이 우연한 기회에 사장에게 신임을 얻어 임시 사원에서 정규사원이 된다.
▶전개 : 상범은 박용자와 결혼을 결심했으나, 형과 박용자가 결혼하게 된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이후, 출세의 방법에 눈을 뜬 상범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변한다.
▶절정 : 상범은 ‘탱크’가 회사의 월급날 경리과를 털기로 한 것을 알고 뒤쫓아가 사냥용 총으로 그를 살해한다. 이 일로 사장으로부터 포상금을 받고 서울 시민의 영웅이 되며 상무로 특진하게 된다.
▶하강 : 상범은 사장의 며느리이자 과부인 성아미가 박전무와 간통하고 회사 공금을 유용한 사실을 알고, 이를 미끼로 그녀와 결혼한다.
▶대단원 : 상범은 성아미가 박 전무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고도 개의치 않는다.
●등장인물
▶김상범 : 처음에는 이해심 많고 선량했으나 출세에 눈을 뜬 후부터는 비열하고 냉혹한 인간으로 변한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 지향주의자이자 황금만능주이다.
▶김상학 : 동생이 결혼할 여자를 가로채고, 아버지의 환갑 잔치가 자신의 결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이다.
▶성아미 : 겉으로는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 실제로는 다른 남자를 만나 불륜을 저지르는 이중 인격자이다.
▶사장 : 김상법에게 회사의 직원들을 감시하는 스파이 임무를 맡김으로써 그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인물이다. 교회에 다님.
● 평론
주인공(김상범)의 세속적인 출세기를 통해서 오늘의 사회적 세태와 구조적 모순을 익살스럽고도 풍자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품의 제목인 <국물 있사옵니다>는 1950~60년대에 유행하던 비어로써 ‘국물도 없다’라는 말의 상대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다. 다시 말해 ‘국물’은 약간의 이득을 뜻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망의 충족을 위해 달리면 무언가 이익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소심하고 어리숙하기까지 한 주인공이 비정상적인 출세의 방법–그가 새 상식이라고 말하는–에 눈을 뜨자 어떤 경우에도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취해야 한다는 것, 양심적인 갈등은 백해무익하다는 것 등을 생활신조로 삼는다. 작품은 주인공이 출세와 성공의 극치를 보이는 가운데 그를 둘러싼 주위의 등장인물들도 당대의 모순된 행동양식을 하나하나 비유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작품의 주제를 보완해 주고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갖는 묘미는 당대의 출세주의와 배금주의 풍조를 아이러니칼하게 시사해 준다는데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1950년대까지의 우리 연극계는 무대장치에서부터 배우들의 행위에 이르기까지 실제적인 것을 묘사하는 방법에 치중하고 있었다. 작가 이근삼은 이러한 상투적이고 고정된 시간 공간 개념을 깨뜨리고 새롭게 하는데 남다른 노력을 보여왔다. <국물 있사옵니다>에서 그러한 작가의 노력은 일상적인 말의 감각이나 말투를 되도록이면 살려내면서 생생한 체험의 언어, 현실적인 감각이 충만한 언어, 그러면서도 극적인 행동이나 분위기가 넘치는 절제된 언어를 구사하기에 힘을 경주하였다.
●이해와 감상
1960년대 산업 사회의 대두와 더불어 고조되기 시작한 출세주의와 배금주의 풍조를 아이러니컬하게 투사한 본격적인 서사극이다. ‘국물도 없다.’는 말을 반어적으로 활용한 제목의 이 작품은, 애초에는 소심하지만 성실하던 주인공 김상범이 출세의 방법에 눈을 뜨게 되자 무모한 정도로 과격해져 남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는 냉혈한으로 변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주변의 등장 인물들의 행위에서도 이른바 ‘국물 처세술’이 다각도로 펼쳐지게 된다. 이 작품은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산업 사회의 산물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욕망 충족을 위해 전력 투구를 하는 비정하고 동물적인 인간상을 제시하였다.
1966년에 양광남(梁廣南) 연출로 민중극장에서 공연되었다. 현실적 가치질서를 왜곡, 전도시켜 현대 한국사회가 지니고 있는 허점을 풍자한 소극(笑劇)이다. 작자는 이 극에서 독특한 화술과 간략한 무대장치로 빠른 템포를 유지, 세태풍자극이 빠지기 쉬운 매너리즘을 극복하였다. 주인공 김상범은 평범한 사회인으로 정직하게 살아오는 동안 늘 실패와 손해만 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사장의 눈에 들게 되자, 출세의 지름길이 있음을 깨닫고 과감히 행동을 개시한다.
상사인 경리과장이 공금을 유용한다고 모함하여 그 자리를 차지하고, 사장의 며느리이며 비서인 미망인 성아미와 전무와의 스캔들을 이용, 임신 중인 그녀와 결혼하고, 암흑가의 건달을 포섭하여 그에게 강도질을 시켜 뒤에서 총을 쏘아 그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큰 공을 조작한다. 드디어 그는 상무가 되고, 사장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는 실상 불행하다. 대학교수를 버리고 초등학교 교사가 된 형과, 불철주야 노력하여 입사시험에 합격한 동생은 오히려 행복하고 만족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 작자는 김상범의 어처구니 없는 생활태도 속에서 현대인의 비애를 보여주고 있다.
<추가>
<국물 있사옵니다>는 매우 신선한 체험을 안겨 주었으며 우리 창작극에 대한 한가닥 서광을 던져준 것처럼 느꼈다. 그 후 연극을 전공하게 되고 우리 演劇史에 대하여도 약간의 지식이 축적된 후에 난 이 작품이 우리 劇文學史에 있어서 매우 각별한 意義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될 수 밖에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기에 이르렀다. 이제 그 의의가 무엇인지를 하나씩 꼽아보기로 하겠다. 첫째,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희귀한 喜劇作品의 본격적인 탄생을 가져다 준 작품이다. 과거 新劇史를 돌아볼 때 喜劇작품은 눈씻고 찾아보기 힘들 만큼 드물다. 우리 민족이 해학과 익살에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희곡문학에 있어서 희극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유치진의 희곡에 간간히 희극적 대사들이 눈에 띄긴 하나 全他의 작가들에게 있어서 휴먼센스는 완전히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희곡뿐 아니라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거의 유일하게 해학적 소설가로 알려진 채만식도 희곡에 손을 대면 당장 암울해진다. 60年代 이전의 新劇史에서 희극작가를 꼽을 수 있다면 유일하게 吳泳鎭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맹진사댁 경사>를 포함하여 두 편 정도가 고작이 아닌가 싶지만. 비교적 多作이랄 수 있는 이근삼 선생의 경우는 初期作<욕망>과 史劇 <게사니>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喜劇의 범주에 드는 작품만을 썼다. 그 본격적 출발이 바로 <국물 있사옵니다>인 것이다. 그런데 이근삼선생 이후에도 지금 이 시간까지 우리나라에 희극 작가는 태어나지 않고 있다. 유일하게 박조열이 있기는 하나 불행히도 작품이 <토끼와 포수> 한 편 밖에 없다. 자, 이만하면 이근삼선생이 얼마나 國寶的인 존재인지 충분히 입증되었을 줄 믿는다.
그런데 <국물 있사옵니다>, 이 작품이 가지는 두 번째 의의는 한층 더 심대하다. 이 부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하다. 흔히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 연극을 '한국 現代 연극'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現代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의 現代연극이 과연 언제 시작되었는지, 아니, 우리에게 현대연극이란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사람도 거의 없다. 막연히 습관적으로 20세기의 연극을 현대연극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가 가까운 지금도 지구상 어느 곳에는 결코 현대연극이라고 부를 수 없는 연극들이 무수히 공연되고 이싿. 자, 이 논의를 이 지면에서 더 이상 길게 끌 수는 없다. 나의 잠정적 결론은 이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현대연극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시발점은 바로 <국물 있사옵니다>가 될 공산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현대의 의미를 절대적 가치 질서의 상실로부터 파악한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 희곡에서 그같은 인식의 기미를 거의 최초로 드러내 보인 것이 바로 <국물 있사옵니다>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유치진류의 한국 리얼리즘 계열의 희곡들은 한결같이 unhappy ending으로 끝난다. 이것이 마치 현대의 회의주의와 맞닿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다. 비록 각박한 현실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결말은 unhappy하게 끝나지만 작가의 마음속에는 도덕적 낙관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비록 주인공은 불운을 당해도 天上의 神은 존재하며 善과 正義는 살아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국물 있사옵니다>는 喜劇답게 happy ending으로 끝난다. 주인공은 모든 것을 거머쥐고 勝者로 군림하지만, 과연 그가 진정한 승리자일까 의문부호가 찍힌다.
이근삼선생의 작품은 항상 이같은 불투명하고 불유쾌한 happy ending, 곧 회의로 끝난다. 다만 그의 회의 또는 씨니씨즘이 어느만큼 형이상학적 인식에 토대를 둔 것이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없지 않지만, 이제 <국물 있사옵니다>의 마지막 意義를 말할 차례이다. 이 작품은 우리 희곡사에서 종전의 리얼리즘의 틀을 깨고 극의 양식면에서 劇場主義라는 새로운 수법을 최초로 무대에 도입한 작품으로 꼽힌다. 물론 이것이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이근삼선생의 외국 유학의 덕택일 것이며, 특히 <민중극단>의 창단 공연인 프랑스 희극 <달걀>의 模作이 아닌가 하는 심증이 상당 부분 있기는 하나 새로운 수법을 자기 것으로 완전히 소화해 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다만 이 작품의 극장주의는 도덕적 상대주의 철학에서 샘솟은 피란델로풍의 극장주의라기 보다는 세련된 연극적 재치의 産物인 프랑스풍의 극장주의에 머물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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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도 없다의 반어적 표현←물질 만등주의)
국물 :이익, 명예, 돈, 출세를 위한 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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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엽총’의 상징성
엽총은 상당히 암시적인 소품으로 등장하는데 나는 이 엽총이 출세와 성공에의 욕구와 집착을 상징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엽총을 꼼꼼히 손질하는 상범의 모습은 욕망을 표출할 기회를 노리는 모습으로, 사장이나 아미를 겨누는 장면은 표출할 대상을 포착하는 장면으로 내 머릿속에서 이어졌다. 그 엽총으로 탱크를 쏴죽이는부분은 그러한 암시를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분은 상범의 둘째형이 엽총의 오발로 인해 죽었다는점이다. 맹목적이고 무분별한 욕망에의 집착은 둘째형을 죽인 오발탄처럼 상범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리라. 아니, 원하는 것을 모두 얻고도 불행한 자신을 깨닫는 그 순간, 이미 탄환은 상범을 향해 쏘아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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