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계절이 기운 다음에야 송백(松柏)의 푸름을 알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는 그가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할 당시의 작품이다. 부러진 잣나무와 그 아래에 의탁한 초막에 추사 자신의 심정을 담고 있다. 고도의 절제와 간결한 상징으로 표현된 담채의 이 작품은 그의 고아한 성품을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그린 이의 고통은 뒷전에 감춘 채, 다만 눈과 잣나무와 초막의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만약 추사가 여기에서 자신의 마음을 직접화법으로 표출하였다면, 작품은 격이 떨어지고 만다.
우리 문화의 가장 중요한 주체였던 선비들은 환로에 진출하여, 현실의 정치에 자신의 이상을 반영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환로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공식적인 과거제도를 통하거나 음직(蔭職)으로나 겨우 벼슬자리에 나아갈 수 있었다. 또한 벼슬에 오르더라도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조정에는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신하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이들은 상대방에 비해 정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정견으로 대립하거나, 아니면 상대를 꺼꾸러뜨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사림파(士林派)와 훈구파(勳舊派)의 대립이 그러했고,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이 서로 대립하여 정쟁을 일으켰다. 이러한 정쟁이 반드시 당리당략적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소모적이고 이기적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쟁에서 밀려난 세력은 유배를 떠나거나, 관계를 떠나 초야에 묻혀 지내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의 옛 선비들은 언제든 초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 학문의 세계에 몰입하면서 우리 철학과 사상의 기초를 세웠다. 퇴계 이황은 당초 벼슬에 뜻이 없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선조의 부름에 할 수 없이 중앙에 진출하였다가는 다시 향리로 돌아가기를 반복하였다. 그는 향리 토계에 은거하면서 주자학에 관한 철학이론(哲理)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송(宋) 나라 주자학파의 이론을 발전시켜 이(理)와 기(氣)는 서로 병존(竝存)하며 불리(不離)의 관계에 놓여 있으며, 이와 기의 조화를 인간에서 찾았다. 퇴계의 철학은 데카르트(Descartes)의 이론과도 맥이 닿아 있으며, 일본의 철학자 야마사키(山崎闇齋)의 평가에 의하면 주자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뛰어넘는 학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을 이념으로 하는 실학자 무리들도 대부분 정권에서 소외된 남인 학자들이었다. <반계수록>을 지은 유형원, <성호새설>의 이익, <여유당전서>의 정약용, <열하일기>의 박지원, 이밖에 홍대용, 신경준, 안정복, 이덕무 같은 이들은 사회개량주의, 민권주의 등을 주창하였는데, 이 역시 루소의 <사회계약주의>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은둔이나 은일이란 세상일을 피하여 숨는 것을 뜻한다. 중국의 허부와 소유가 그러했고, 백이와 숙제가 역시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의 깨달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권력과 명예 그리고 부라고 하는 존재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하는 깨달음이었다. 노자가 “가장 좋은 것은 물처럼 사는 것[上善若水]” 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을 등진 선비들은 나름대로의 생활 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물을 가까이 하고, 산과 하늘의 구름 등과 같은 자연을 가까이 하며, 그 사이를 오가는 작은 짐승을 사랑하는 삶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연의 이치에서 인간의 존재를 꿰뚫어 볼 줄 아는 혜안을 찾았던 것이다.
모든 예술 장르는 술을 표현한다. 오드, 발라드, 소네트뿐만 아니라 소설, 영화 등에서 언제나 술은 등장하기 마련이다. 왕년의 명배우 험프리 보카트가 주연한 영화 <카사블랑카>는 술과 사랑과 우정이 한데 어우러진 명화로 손꼽힌다. 1940년대 전반의 카사블랑카는 나치의 독재를 피해 미국으로 가기 위해 유럽 사람들이 모여드는 모로코의 한 도시이다. 미국 출신의 릭은 카페 아메리카를 경영한다. 이곳에 레지스탕스 라즐로와 일자 부부가 찾아오고 나치는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일자는 릭의 옛날 애인이었지만 마르세이유에서 두 사람은 이별을 했었다. 릭은 현실과 과거 사이에서 고뇌에 빠진다. 릭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주 술을 마신다. 그러나 죽은 줄 알았던 남편 라즐로가 탈옥을 하여 자기를 찾아옴으로써 어쩔 수 없이 릭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었다는 일자의 이야기를 들은 후 릭은 라즐로 부부에게 미국 비자를 주어 카사블랑카로부터 이들을 탈출시킨다. 이 영화의 주 무대는 카페 아메리카이다. 그 안에는 술이 있고, 음악(As Time Gose By)이 있다. 즉 사랑과 술과 음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우리가 시선(詩仙)이라고 일컫는 당(唐) 나라의 이백은 언제나 술에 취해 살았다. 우리가 그를 시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지은 시들의 대부분이 그가 술을 마신 자리에서 즉흥시처럼 불렸다는 사실이다. 그의 작품 <장진주(將進酒)>는 권주가이다. 작품 <월하독작(月下獨酌)>은 달 아래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달과 그림자를 벗하여 사람들의 인정 없음을 읊은 것이다. 시절은 마침 봄인 터라 꽃이 만발하였는데, 나무 사이에 술 한 단지를 꺼내 놓고 대작할 친구도 없이 혼자 술을 마신다. 그러나 이윽고 달이 솟아오르게 되어 달과 나와 내 그림자 셋이서 술을 마실 따름이다. 이처럼 자연과 교유하면서 아득히 먼 은하를 사이에 두고 달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또 소동파(蘇東坡)는 <적벽부(赤壁賦)>에서 “술을 들어 손님에게 권하여 명월의 시를 읊거나 (시경의)요조지장을 노래하니 얼마 있지 않아 달이 동산 위에 올라 북두칠성 사이를 배회하네.”라고 표현하였다. 이 모두 술을 인생 그 자체로서 보았던 것이다.
“한 잔 먹새 그려. 또 한 잔 먹새 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새 그려.”는 선조 때의 명재상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이다. 그는 당쟁의 회오리에 휩쓸려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우리 문학사에 있어 잊지 못할 시가들을 남긴 인물이다. 송강은 워낙 술을 좋아해 율곡 이이로부터 “술을 삼가고 말을 삼가라.” 하는 충고를 수도 없이 들었지만 죽을 때까지 술을 끊지 못했던 사람이다. 업무 중에도 술을 마셨으며, 인금이 은으로 된 술잔을 하사하면서 “이것으로 한 잔씩만 마셔라.”라고 하자 그 술잔을 망치로 두들겨 크게 만든 다음 한 잔씩 마셨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밖에도 송강에게는 술과 관련된 시편들이 허다하다. 그에게 있어 술은 곧 창작의 모티브였던 셈이다.
<금오신화>의 필자 매월당 김시습 역시 대단한 술꾼이었다. 5살 때 이미 천재로 소문난 그는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것을 보고 평생토록 방랑과 기행으로 한 세상을 지냈다. 그는 술을 마시며 이 세상을 조롱하고, 풍자하였다.
고종 때의 화가 오원 장승업과 술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어려서 고아가 된 오원은 화원인 이응헌의 집에서 심부름을 하며, 곁눈질로 그림을 배웠는데, 언제나 술에 취해 살았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을 인정한 고종이 그를 대궐로 불러 병풍을 그리라는 어명을 내린다. 오원은 자주 대궐 담을 넘어 술을 마시러 다니는 바람에 결국 그 병풍을 완성하지 못했다.
근대 문학기에 있어서도 많은 시인들이 술을 가까이 했다. 김동인, 현진건, 변영로, 오상순, 양주동, 박인환 등 시인 작가들은 모두 호주가였다. 술과 관련된 일화가 작품보다도 훨씬 많다.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 등 동양의 선비들은 이 세상의 권력이나 명예를 돌보지 않았다. 학문의 근본 목적이 자신들의 이상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현실은 이상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실력보다는 가문이 우선시되었고, 기회주의자가 판을 치는 세상이었다. 따라서 자연히 선비들은 자연으로 돌아가 은둔의 생활을 즐겼다. 자연과 호흡하면서, 자연과 대화하면서, 자연과 서로 술잔을 나누면서 자연과 서로 교감을 나누었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자연사상과 신선사상(神仙思想)으로 나타나는 도교(道敎)의 영향이기도 하다. 그것이 한편 어찌 보면 패배주의(敗北主義) 같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거기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세상의 새로운 이치를 깨닫고, 철학의 논리를 세울 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후대 우리들의 또 다른 학문적 지표가 되기에 충분했다. *
첫댓글 우천님 안녕하세요? 좋은 글을 수필방에 올려 주신 님의 배려에 감사드리며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안동이 고향이라지요? 이문열 소설가 고향도 가까운 곳 영양이니 문인 고장이지요. 수필방에서 새 글 많이 만날 기회 주세요..^*^
참 좋은 작품입니다. 제 카페로 모셔갑니다.
高士들의 은일사상 즉 獨立不懼遯世無悶 [홀로 남겨 지더라도 두려워 하지않고 세상과 단절 되드라도 걱정하지 않는다]이지요 또한, 세상이 다 술취해 있는데 나만 어찌 깨어 있으리오. 올곧은 우리 옛선비들을 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