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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출판계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등 신화 읽기 붐이 일었다. 이런 추세는 상당 기간 계속될
전망인데, 이는 우리 주변에 이미 속속 자리잡기 시작한 유럽 문화에 대한 호기심의 표출이라 생각된다. 판타지 문학이나 유명 인터넷 게임을 봐도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영웅담이나
북유럽 신화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이 상당수. 이 또한 우리의 시각이 점차 유럽을 향하고
있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다. 영화계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반지의 제왕> 등 유럽의 신화 같은 내용을 담은 영화가 할리우드식 액션에 싫증난 젊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사진계는 또 어떠한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사진계를 좌지우지 못하고 유럽권 사진작가들이 압도적으로 강력한 위력을 떨치는 상태. 그 한 예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경우다. 그는 유럽 감성을 표현하는 젊은
독일 사진가로서 작품 가격이 2만∼3만 달러에서 60만 달러로 뛰어올랐는데, 이런
요인들이 시너지 작용을 해 전세계적으로 유럽 문화에 대한 관심과 열광을 부추기고
있다.
눈을 돌려 홍대 앞 클럽을 들여다보자. 클럽 문화 또한 유럽에서 시작된 것이며, 클럽을 달구고 있는 테크노라는 장르 역시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유럽의 언더
음악이다. 파티 문화의 경우는 또 어떤가. 부어라, 마셔라 식의 단순한 술 소비문화에
질린 대학생들은 폰듀(fondue) 파티, 포트락 파티 등 술은 강요하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유럽식 파티 문화를 새로운 대안으로 찾아내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 유러피안 감성이 스며들어 그것을 동경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잡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유러피안 감성은 패션계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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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과거를 돌이켜보자면 IMF 시기를 전후해 아메리칸 스타일의 트레디셔널함을
기본으로 한 베이식, 이지 캐주얼 브랜드가 급팽창하며 캐주얼 시장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실용주의에서 심플함을 가미한 이지 캐주얼군과 백인 문화의 트레디셔널함을 표방한 브랜드 일색이 되자, ‘너무 베이식하고 획일화된 것이 아니냐’는 외부 공격 및 내부적인 자성이 있었다.
그 후 다변화된 취향을 가진 소비자를 타깃으로 컨셉트별로 세분화된 마니아의 공략이 기본 지침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발맞춰 지난 2∼3년간 미국의 힙합 문화를 바탕으로 한 타미힐피거, MF 등의 브랜드가
부상한 데 이어 써스데이아일랜드, 후아유 등과 같이 타 생활권의 라이프 스타일을
컨셉트로 한 브랜드도 패션업체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또한 올 초에는 세계를
강타한 강력한 스포티즘의 영향으로 스포티브 감성의 캐릭터 스포츠 캐주얼, 캐포츠
등을 표방한 A6, EXR 등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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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새로운 컨셉트가 나올까? 이런 의문이
들 만한 상황에서 F/W 시즌 동안 특정 국가나
지역에서 새로운 컨셉트를 차용해 차별화된 감성으로 아이덴티티를 갖추기 위한 끝없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 결과 이번 F/W 시즌에서 강력하게 등장한 뉴 감성 코드는 유러피안 스타일.
유러피안 감성의 쌤, 캐너비, 콕스, 에너지 등의 뉴페이스가 속속 등장해 강한 임펙트를 주면서 감성 캐주얼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 브랜드는 유러피안 감성에 초점을 맞추고 펑키 스타일, 믹스 & 매치, 빈티지, 스트리트 등 다양한 코디네이션을, 독특한 프린트와 나염, 손으로 찢거나 스티치를 넣은 디테일을 제안한다. 또한 무미건조하고 기계적이며 실용주의의 모던함을 벗어난
내추럴함과 리버럴한 마인드, 유럽의 쿠튀르적인 감성을 선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들은 영국의 캔튼이나 소호지구에서 파생된 홍대 언더스트리트 문화 등 새로운 레트로를 제현하며 국내 시장에 새로운 유럽 문화를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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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각각의 브랜드로 깊숙이 들어가보자. 퍼포먼스식의 패션쇼와 언더밴드 크라잉넛의 무대로 밤늦게까지 이어진 스탠딩 파티로 런칭을 알린 ‘캐너비’. 이 브랜드는 패션 몰이 집결해 있고 트렌디하고
젊은 패션 리더가 많이 모이는 런던의 캐너비 스트리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코듀로이, 인조가죽, 모직류의 재킷과 스커트, 패치워크와 스티치 등을 모티프로 사용하며‘캐너비’만의 유머러스와 유니크한
룩을 표현한다.
‘쌤’은 유럽과 홍대 앞 클럽 문화와 언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언더 문화를 오버 문화화하는 것이 메인 컨셉트. The club eye를 키워드로 제시해 리버럴한 스트리트룩을 제안하고, 클럽 문화를 일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패션을 문화 코드로 보고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고려하는 능력이 탁월한 쌈지는‘쌤’을 런칭하고, 한국 클럽
문화와 언더 문화의 상징인 홍대 스트리트에 직영매장을 오픈시켰다.
‘에너지’는 이탈리아 수입 브랜드로,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를 복합적으로 수용하면서 70년대의 히피 스타일과 에스닉하고 빈티지한 라인 등 영국 이미지를 모티프로
개성 있는 캐주얼을 선보인다.
‘콕스’는 어번 스타일의 스포츠를 강조하면서 내추럴하고 편안한 유러피안의 감성과 함께 보헤미안 에스닉 등의 트렌디한 요소를 한껏 살렸다. 이처럼 이번 하반기에
런칭했던 브랜드들은 우리를 유럽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내년 S/S
시즌 런칭을 준비하는 패션업체는 국내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북유럽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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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신원이 네덜란드풍의 캐주얼 브랜드 ‘쿨하스’를 런칭하겠다고 선전포고한 상태. 지난
시즌 런칭한 감성 캐주얼 브랜드들이 유러피안
영국 문화에 편중되었다는 점을 간파한 신원은
새로운 감성 코드를 찾던 중 네덜란드 동부의
대학 밀집지역인 니메겐(nijmegen)을 모티프로 설정하고 브랜드명도 네덜란드어를 차용했다. ‘쿨하스’란 Cool+Has의 줄임말로 쿨한
마인드를 가진다는 뜻.
라디오가든을 전개하는 리얼컴퍼니에서는 리얼리더스라는 별도법인을 설립하고 유니섹스
캐주얼 시장을 겨냥해 ‘애스크’를 런칭하는데, 내추럴함과 시크함을 모던하게 제안하는 컨템포러리 럭셔리 캐주얼을 지향한다.
‘애스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어로 ask, 묻다, 요청하다의 뜻 외에도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을 의미한다. ‘애스크’는 급변하는 소비자 니즈의
변화에 맞춘 유니섹스 캐주얼로, artistic sensitive k(c)asual을 이니셜로 따 아방가르드한 예술적인 감성이 가미된 뉴 감성 캐주얼을 제안할 예정. 결국 감성 캐주얼은 유럽 스타일을 지향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패션 코드를 어디에 맞췄냐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어쨌든 캐주얼 시장의 탈미 현상에서 비롯된 유럽풍 바람이 국내 패션계에 보다 풍성하고 개성적인 컬러를 안겨준 것은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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