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이지만 깊히 생각해볼 글입니다.))
한강을 보면 전두환 대통령을 그리워하라
*서울 시민들은 물론이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조차 한강의 경관에 찬탄을
금치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말 정비 잘했다.
*아름다운 한강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게 누구의 작품인지?” 하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밝힌다. 이 사업은 “전두환의 작품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공사 현장에 드러누워 훼방 놓고도 완공되고 나자
맘껏 질주했던 김대중 김영삼 등 다 열거하기도 힘들다
무지 몽매한 자들 참 웃기는 족속들이다.
*1981년 2월 2일 전두환은 레이건과 정상회담을 했다
"레이건 대통령 각하, 저는 두 가지 목적으로 각하를 만나러 왔습니다.
하나는 각하의 당선을 축하하는 것이고 둘째는 각하를 도와 드리려는 것입니다."
*한국 대통령이 손을 벌리지 않고 도와주겠다? 동행한 각료들까지도 의아해 했다.
"각하, 캘리포니아 연간 GNP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아는 사람이 없었다.
"800억 달러입니다. 한국의 GNP는 600억 달러입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국가가 이렇게 작아? 모두가 놀랐다.
*한국은 그 6%를 덜어내 국방비로 쓰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경제가 어렵습니다.
한국이 무너지면 자유진영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일본의 GNP는 1조1,600억, 한국의 20배입니다.
그런데도 국방비는 GNP의 0.09%만 쓰고 있습니다. 안보의 무임승차입니다.
미국의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돈을 주십시오.
그러면 그 돈으로 미국에서 전투기와 탱크를 사겠습니다."
*안보차관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그는 40억 달러를 얻어냈다.
그 중 10억 달러(1.3조)를 털어 냄새 진동하는 시궁창 물을 정화시켜
오늘의 아름다운 한강 앙상블을 이룩했다.
한강을 보면 전두환을 그리워하라.
*그는 42%의 물가를 2.3%로 낮췄다. 천재적 발상과 종교적 신념이었다.
개미허리 중산층을 맹꽁이 배처럼 불렸다.
*중소기업 육성은 그의 종교였다. 기술자들을 합숙시켜 가면서
한국은 불가능하다는 전자식 교환기를 개발하여 통신 일등국을 만들었다.
레이건보다 10년 앞서 IT, 반도체, 컴퓨터 산업을 진두지휘했다.
*1980년에 88올림픽 유치권을 따냈다. 그의 참모들에게도 너무나 무모해 보였다.
올림픽 사상 처음, 동서가 다 참가하는 완전한 올림픽을 치렀다.
*기업을 국제시장으로 내몰아 체질을 강화시켰다.
TV 시장, 핸드폰 시장, 반도체 시장을 우리가 장악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야간통행금지도 없앴다. 교복과 두발도 자유화,
심지어는 자유를 억압한다며 연좌제도 없앴다.
누구도 찬성하지 않은 저돌적 혁명, 창의를 꽃피게 하는 자유의 토양을 열었다.
*원전 연료를 국산화하고 한국형 원자로를 개발한 것은 무용담의 대상이다.
*주부들을 위해서는 코끼리 밥솥을 능가하는 밥솥을 만들었고,
그가 개발시킨 손톱깎이는 당시 세계 시장의 50%를 점령했다.
예술의전당, 국립미술관, 국립중앙도서관 등 현존하는 문화 공간 모두가 그의 작품이다.
*박정희는 문명국을 만들었고, 전두환은 문화국을 만들었다.
그가 없었으면 박정희도 없었고, 박정희가 없었으면 전두환도 없었다.
*전두환은 엘리트들과 토의를 하면서 토의가 뽑아낸 지혜로 국가를 지휘했다.
미국 육사 교과서로 공부한 최초의 엘리트인 그는 독서와 학습과 사색의 화신이었다.
이 세 가지가 있었기에 그는 특출했다.
*전두환이 최대한으로 넓혀놨던 그 넓은 자유공간 그 후부터는 축소 봉쇄돼 왔다.
*그는 자유화의 아버지, 민주화의 아버지였다.
전두환 시대 이상의 자유공간은 이 나라에 없었다..
*그러나 몽매한 사람들.
서거 후 대한민국 어디에도 분향소 하나 없었고, 국립묘지 안장은 커녕
유골함이 이순자 여사님이 집에 모시고 있다네요.
가져온 글 https://cafe.daum.net/dusktrain/9zK3/9657?svc=cafea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