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감독 이창동
주연 윤정희(양미자), 손자 종욱(이다윗) 강 노인 (김희라), 김용탁 (김용택시인)
지난 “밀양”이후 오랜만에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보았다. 시(poetry), 칸느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시(詩)’는
윤정희의 열연과 이창동감독이 직접 쓴 각본이 칸느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남한강의 검은 강물이 흐르고 그 속에 여자 중학생의 시체가 떠내려 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6명의 아이들은 강가에서 장난치며 놀고 있고... 곧이어 시체가 발견되고 여중생의 자살사건이 마을에 소문이 나는데...
윤정희의 손자를 비롯한 6명은 늘 함께 하는 중학생 친구들로서 어느날 이들이 같은 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여학생(박희진아네스)는 강물에 투신자살한 사건이다.
6명의 학부모와 교장선생님등은 사건을 무마하려고 노력하고 6명의 부모가 각기 5백만원씩 30백만원으로 사건을 합의 하고자 하나 결국 사건은 경찰의 개입을 불러온다. 주인공 윤정희(양미자)는 66세로 알츠하미머의 초기 증상을 가지고 있고 몸에 여러 가지 아픈 증상이 있으나 이혼한 딸이 맡겨 놓은 손자와 살고 있는 할머니이다.
가난하지만 자신의 외모를 가꾸며 사는 멋쟁이 할머니, 그는 초등학교 시절 동시를 써서 선생님으로부터 시인이 될 것 같다는 칭찬을 받은 기억을 생각하고 현재 삶의 팍팍함을 이겨내고자 어느날 문화관에 문학강좌를 신청한다. 시를 쓰며 현실을 이기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간병인으로 삶을 겨우 영위하는 할머니는 계속 되는 가해자 부모들로부터 합의금 5백만원의 압박에 시달리는데....그럴수록 그는 시를 쓰고자 더욱 시에 몰입한다.
시(詩)!
시는 무엇인가?
김용택시인은 시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숨어 있으니 그것을 찾아 밖으로 내어 놓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시는 바라봄이라고도 한다.
“여러분은 사과를 몇 번이나 봤지요? 백 번, 만 번, 백만 번, 모두 틀렸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사과를 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 처음 사과를 보는 것입니다. 시를 쓰는 것의 시작은 사물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사과를 한번 자세히 들여다 보세요.”
바라봄에서 시가 나온다면 생각하지 않고서는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사과 한 개를 바라보면서 색깔을 보고 그 속에서 태양을 느껴보고 이리저리 보다가 직접 맛을 보는 등 철저하게 온 마음으로 바라 볼 때 사과를 본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때 사과에 대해서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문학강의에서 ‘나의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발표하는 수강자들의 표정에서 시는 조금씩 가슴에서 움직인다. 시는 '가장 선하고 행복한 마음이/가장 선하고 행복한 순간에/ 이 세상에 남기는 기록이다'고 하지 않는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어느때였는가? 삶에 지쳐서 행복도 슬픔도 잊어버리고 산 것은 아닐까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모두 망각해 버린 것인가 ...나는 삶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 온 것은 아닐까?
똑같이 늙어가면서 똑같이 가난해도 그 현실속에서 시를 쓰고자, 아름다움을 찾고자 노력하는 양미자할머니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한 마음이 꽃을 보면서, 떨어진 과일을 맛보면서,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힘이 아닐까? 시는 삶을 지탱해 주는 마음의 힘이다. 시를 통하여 사물의 이면을 깊이 바라볼 수 있는 나는 현재를 긍정하며 나아가 이웃에게 연민과 사랑의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양미자 할머니는 그동안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손자의 성폭행사건을 통하여 죽은 아네스를 생각하고 직접 성폭행 당한 학교를 찾아가고, 아네스의 장례미사에도 참석하면서 아네스의 고통을 점점 깊게 알고자 한다. 그를 통하여 손자의 성폭행사건과 자신의 삶의 현실속에서 그토록 쓰고 싶어한 시 한편을 낳을 수 있게 된다. 시를 각기 한 편씩 발표하기로 한 날 문학관에는 양미자 할머니의 꽃다발과 시한편이 전달되는데....
그 날 밤 할머니는 손자에게 내일 엄마를 만나려니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며 목욕을 시키고 손톱발톱을 깎아준다. 몸이 깨끗해야 마음도 깨끗해 진다면서....그리고 나서 할머니와 손자는 베드민턴을 친다. 아무말없이....그리고 나서 손자는 경찰과 차를 타고 조용히 경찰서로 간다.
익일 딸이 집에 찾아왔으나 할머니는 남한강물결이 무상하게 흐르듯 떠나갔다. 자신이 그렇게 쓰고 싶었던 시 한편을 남기고....흐르는 물결앞에서 갑자기 죽은 아네스는 관객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리고 시 "아네스의 노래"가 흐른다.
아네스의 노래
이창동
그 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한가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 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 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 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 낮의 그 오랜 기다림
어버지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 맡에 선 당신을 볼 수 있기를
양미자 할머니가 남긴 한 편의 시, "아네스의 노래"가 흐르는 동안, 나의 빰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강물처럼 흐르는 무상한 슬픔인가, 연민의 눈물인가....
힘든 세상, 마음 여린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힘든 현실속에서 이창동감독은 그의 따뜻한 가슴으로 우리들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해 준다. 살아가라고,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가라고.....시를 읽듯이 삶을 천천히 느끼면서 살아가라고....나무와 풀, 꽃, 그리고 사람들, 흘러가는 강물처럼 오고 가는 우리네 삶을 그렇게 살라고 한다. 맑고 행복하게...
첫댓글 시 한번 봐야 곘습니다.
감사합니다.
보고싶어는데용
봐야징 감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