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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방 스크랩 산골마을 백전리 물레방아
낭산 추천 0 조회 177 08.08.15 23:20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산골마을 백전리 물레방아

 

                                                                                       2008. 8. 8.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사시장철 물살만 안고

             빙글빙글 도는데

             우리 님은 날 안고

             돌 줄을 모르네.

 

정선 아리랑 500여 편의 가사 중에 물레방아가 없이는 그 곡조와 여운이 무미해져 버린다.

쉼도 없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둥근 바퀴는 변전하는 인생의 실상이며 진리다.

원은 시작도 끝도 없다. 아니 시작이 되고 끝이 된다.

끝이 시발로 회귀함은 원뿐이 아니고 4각 5각의 형상도 같은 이치다.

각을 이루고 원점으로 회귀함은 절(折)이 되나,

꺾이지 않고 각이 없이 시(始)와 종(終)이 만남은 원이 된다.

원형은 무방무애하여 그침이 없는 영속이 되는 것이다.

물레방앗간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주인공 허생원이 성씨 처녀와

봉평의 흥정천에서 일생의 단 한 번뿐인 로맨스의 추억을 남긴 곳이요,

작가 나도향의 '물레방아'에서 지주(地主) 신치규가 소작인의 아내를

은밀히 유혹하며 빼앗아 버린 밀애의 장소이기도 하다.

 

예전 우리 조상들이 곡식을 찧거나 빻을 때 여러 가지 형태의 방아를 사용하였다.

물레방아, 퉁방아, 연자방아, 디딜방아 등이 있어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네 정서와 향토적 정감이 아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마을의 위치나 지형적 특성에 따라 알맞은 형태의 방아를 만들었다.

큰 냇물을 끼고 있는 곳에서는 물레방아가 흔히 사용되었고

산간 지역에서는 퉁방아가, 일반 개인 가정에서는 디딜방아가 주로 쓰였다.,

동구 밖이나 마을 가운데 위치하여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기 쉬운 것은 연자방아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이나 산촌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들이었으나

기계방아의 위력에 밀려 하나 둘씩 문명의 뒤안길로 물러서게 되면서

지금은 삼척 신리와 대이리에 퉁방아가, 정선 백전리에 물레방아가 남아 있을 정도다.

이것들은 얼마 전까지도 마을 사람들이 가끔씩 사용하던 것들인데

오히려 민속자료로 지정해 놓는 바람에 방아소리가 멈추어 버린 경우도 있다.

 

 

 

 

 강원도 민속자료 제6호인 물레방아의 위치는 정선군 동면 백전리.

백두대간의 금대봉(1,418m)에서 산줄기가 북쪽  분주령 대덕산으로 이어지면서

그 동쪽은 태백시 창죽동으로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가 있는 곳이요,

서쪽 계곡은 골짜기 한복판을 흘러내리는 냇물을 두고 행정구역이 다시

삼척시 하장면 한소리와 정선군 동면 백전리로 경계가 나뉘어진다.

골짜기 입구에서 들어오다 보면 개울을 몇 차례 가로지르면서

한소리와 백전리를 넘나들게 되는 까닭에 한소리 물레방아로 부르는 이도 있다.

그러나 물레방아의 위치는 개울의 서편이니 한소리가 아닌 백전리.

한소리도 백전리도 모두가 첩첩한 산간 오지 마을로 화암팔경을 빚어놓은

어천 물줄기의 근원이 되는 곳이다.

백전리를 찾아가는 길은 정선에서 동면의 화암8경을 거칠 수도 있지만

잘 다듬어진 38번 국도를 이용해 영월을 거쳐 사북에 이르러서 

직접  백전리로 들어가는 방법이 쉽고 편리하다.

백전리 마을회관에서 오른쪽 갈림길로 개울을 끼고 5km 남짓 오르다 보면

금년 초 문을 닫아버린 용소분교가 있는 마을이 곧 용소마을.

마을은 해발 800m의 첩첩한 산간 오지, 깊고 깊은 두메산골이다.

좁은 골짜기 여기저기에 한두 채씩 외딴집이 흩어져 있고

보이느니 온통 고랭지 채소밭으로 여름 배추가 지금 한창  산자락에 가득하다.

이 골짜기에 처음 사람이 찾아든 것이 150여 년 전이라 마을 사람이 전한다. 

무슨 한과 사연이 그 얼마나 깊었길래 산 높고 골 깊은 정선 땅에서도

맨 남쪽 끝 궁벽한  이곳까지 찾아들었을까?

밝은 세상을 등지고 찾아든 화전민들이 잣나무숲을 베어내고

불밭을 일구었다 해서 지명도 백전(栢田)리.

나무를 베어낸 산비탈에 불을 지르고 따비로 밭을 일구어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정선아리랑 애절한 가락에 실어 수(愁心)편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리라.

 

 

                                       땅 속 굴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용소

 

 

용소 물레방아는 모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가끔씩 이를 이용해 곡식을 찧고 있는,

우리네 생활 속에 그대로 살아서 존재하는 문화유산이다.

백전리와 한소리에 주민이 한창 많았을 때는 물레방아가 6개나 있어

방아계(契)까지 만들어졌다 하나, 지금은 백 년 세월을 지켜온

용소 물레방아 하나만이 명맥을 전해올 따름이다.

용소마을엔 굴과 구멍이 많다. 물이 나오는 굴만도 대여섯 곳이나 된다.

소의 콧구멍처럼 생겼다 해서 쇠콧구녕굴, 장수가 나왔다는 장수굴 등,

석회암 구멍과 동굴이 유난히도 많은 동네이다.

직경 30cm의 땅속 굴에서 물이 펑펑 솟아나 검푸른 소(沼)를 이루고

그 용소의 물을 보(洑)로 삼아 수로로 끌어들여 물레방아를 돌리는 것이다.

 

 

 

대개의 물레방아가 외공이인 것이 일반인데 이 곳 용소의 물레방아는

방아공이와 돌확이 두 개라는 점이 다른 곳에서는 없는 특이한 형태를 지녔다.

물레의 축인 굴대의 양쪽에 모두 방아채를 연결하여 두 개의 공이가 번갈아

방아를 찧도록 설계한 것에서 우리 선인들의 지혜가 새롭게 돋보인다.

지붕은 이 지방의 특산물인 대마삼의 속대궁으로 덮어 향토적 정감을 더해주고 있다. 

 

 

폐교된 용소분교. 1970년 개교하여 2008년 폐교되기까지 38년 동안

220명이 졸업했으니 한 해 평균 6명이 채 못되는 학생이 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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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8.17 22:59

    첫댓글 방아방아 물방아야~~... 낭산님의 글을 읽다보니 민요 한 구절이 떠 오릅니다. 방아의 종류도 무척 다양 하네요. 저는 사람이 서서 찧는 방아밖에 알지 못했는데, 퉁방아는 또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 합니다. 정선군 백전리와 삼척시 한소리는 개울하나 건너 이웃한 곳이로군요. 이제 알겠네요, 한소리와 백전리 물레방아는 같은 것이란것을. 낭산님께서는 지리와 역사에도 해박하셔서 언제나 우리에게 유익한 정보를 안겨 주십니다. 감사드려요~~^^

  • 08.08.18 13:41

    물레방아와 폑교된 분교들...우리 곁을 떠나 사라지는 애닯은 것들이.... 어찌 그리 닮아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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