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본토와 키프로스 섬 중간에 위치한 로도스섬
그리스 남동쪽에 있는 작은(?) 섬으로,
도데카니사 제도(Δωδεκάνησα)의 중심지이다.
인구는 약 11만 5천 명으로(2011 추계),
북동쪽 끝에 있는 로도스 시에 인구의 절반 가까이 거주한다.
그리스 본토와는 363km 떨어져 있으며, 오히려 터키 본토와는 1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금문도? 그리스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보이기 쉬운데,
그리스 국토의 최동단은 더 동쪽으로 떨어진
카스텔로리조(Καστελλόριζο) 섬(면적 12km)이다.
14세기에 로도스 기사단이 세웠던 성벽으로 둘러싸인 옛 도시는 무역항을 에워싸고 있다.
1912년 이탈리아인이 건설한 신도시는 옛 도시 북쪽으로 섬 끝에까지 뻗어 있고
서쪽으로 폐허가 된 아크로폴리스 밑까지 이른다.
수정민주주의와 효율적인 집행부 아래에서 고대도시는 선정을 누렸다.
도시의 화폐주조 기준이 널리 수용되었고, 가장 일찍 성문화된 것으로 알려진 해상법이
지중해에서 널리 인용되어 오다가 로마 제국의 법으로 채택되었다.
BC 292~280년경 높이 30m가 넘는 '로도스의 거상'을 세워
태양신 헬리오스에게 바쳤는데,
이 청동상은 BC 225년경 섬의 대부분을 파괴한 지진으로 쓰러졌다.
284~305년에는 로마 군도주의 주도였고,
1912~43년 이탈리아 통치 당시 도데카네스 제도의 행정중심지였다.

로도스 항으로 입항하며 바라본 구 시가

구 시가지 와 성채

두께 12 m 의 두터운 성벽이 구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고
구 시가지는 로도스 시의 절반을 차지한다.
1988년 12월 9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십자군 및 비잔틴 시대의 프랑스 및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중세 건축의 예로 꼽히고 있다. 구시가지의 프랑크와 오토만 건물의 앙상불은
십자군시대(1309-1522)에 동 지중해 지방에 영향을 끼쳤다..
십자군 성채의 성문(Amboise Gate)

성채에는 성내로 출입이 가능한 여러개의 성문이 건설되어 있다.
기사단장 궁전(Palace of the Grand Master)

기사단장의 궁전은 구시가지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건설되어 있으며
정방형(80 X 75 m)의 작은 내성으로서 성채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7세기 말, 초기 비잔틴 "요새"로 건설되어 비잔틴 시대와 성 요한 기사단 시대(1309-1522)까지
요새의 역할을 하였다. 14세기 초반부터 기사단은 요새를 보수하고 기사단장의 관저와 행정건물로
개조하였다. 적에게 도시가 함락되었을 때에는 주민의 최후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성문 위의 여장(방호용 담장)과 총안

성문 상단을 올려다 보면 총안에서 끓는 기름과 돌, 화살 등이 쏟아져 내릴듯 하다.
중앙 궁정(宮庭)

궁정(50 x 40 m) 주변은 회랑으로 둘러져 있으며
서쪽은 아취형 벽감에 실물 크기의 인물상 8개가 안치되어 있다.
대리석 인물상


궁전 내부

궁전 내부는 그 자체로도 유물이지만 대부분 고대 유물 전시실로 이용되고 있다.
19세기 중반에 2층이 대부분 무너져 있었으나 1차 대전 후 로도스 섬을 지배했던
이탈리아인들이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았다.
모자이크 바닥의 실 내

유색의 돌을 손톱 만한 크기로 잘라 갈고 다듬어,
마치 양탄자 짜듯 정성과 시간을 들여 만든 거대한 마루 바닥을 바라보면 숨이 멎는 듯하다.
물 걸레 질을 한다면 화려한 색갈이 발현될 것이다.
이 방은 애초부터 전시 작품의 대리석 좌대가 건설 당시부터 붙박이로 설치되어 있다.
라오콘(Laocoon)군상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이 그리스군이 남기고 간 목마를 성안에 들이면
재앙이 올 것이라고 고집하자 신들이 라오콘의 두 아들들을 뱀으로 하여금 공격하게 한다.
아들들을 구하려는 라오콘도 역시 뱀에 물리는 고통을 당한다.
고대 미술품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 이 작품이 바티칸의 벨베데레 궁정에
전시되어 있다는데 지중해의 한 낙도의 허름한 전시실에 놓여있다는 것이 생경하기도 하다.
(205,74 X 162.56 X 111.76 cm )
다른 자료 사진의 라오콘

좌 : 위의 사진과 판연히 다른 부분이 있다.
우 : 바티칸 소장의 석고상 .
기사단 거리(이뽀톤, Ippoton)

기사단장 궁전 정문을 나와 남쪽으로 이어진 모자이크식 자갈 포장 도로가
이뽀톤(Ippoton)으로 불리는 기사단 거리이다.
길 양편으로 늘어선 중후한 석조 건물은 500년 전 기사들이 살던 저택이다.
석조 저택 문 위에는 기사들의 문장이 붙어있다.
성 요한 기사단은 기사, 사제, 기사 시종 3 계급으로 조직되어 있고 기사는
다시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서 7어족으로 분류되는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오베르뉴어, 프로방스어 이다.회의 때는 통역관이 통역을 하였다고 한다.
고고학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은 1440-1489년에 걸쳐 지어진 것으로 당시는 병원이었다.
성 요한 기사단은 원래 의료계에 종사하던 사람들로 그 이념도 병자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푼다는데 있었다.전시실 뿐만 아니라 건물 여기저기에 거대한 돌 포환이 쌓여있다.
구 시가지에는 거리의 경계석이나 주차금지 구역에도 사용되고 있다.
모자이크 전시품


좌(바닥 모자이크) : 사냥에서 돌아온 켄타우로스(Centaur), 배경은 검은색이고
흰색과 회색 자갈 사용.우(바닥 모자이크) :
포세이돈의 아들이며 코린트의 영웅 벨러로ㅍ혼(Bellerophon)이 페가수스 를 타고
전설속의 동물 키메라(Chimaira, 사자의 몸, 염소의 다리, 뱀의 꼬리를 가진 짐승)을
공격하고 있다.검은색 배경에 백색 자갈 사용.
목욕하는 로도스의 아프로디테(Rhodes Aphrodite)

BC 3rd C.
청동 포신의 대포

투박하고 무거운 무쇠 포신에서 기동성있는 가벼운 소구경 포신이나 신축성있는 청동포신으로,
박격포 수준의 짧고 이동이 용이한 포신의 등장 등 야포의 발전 단계를 보는것 같다.
신 항만을 마주한 성채와 성문

성문 앞에는 커다란 포환이 놓여 있는데 자동차가 주차하지 못하도록 한 장애물인것 같다.
성벽에 박힌 포환

포환이나 성벽이 깨지지도 않고 온전히 박혀있는 것에 일말의 의구심이 들기도 했으나
성벽이 다공성의 부드러운 돌이고 건축된지 오래되어 성돌이 부드러워졌다면
성벽에 박힐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 시가지

광장 가운데에는 분수가 있고 그 주변으로는 식당, 기념품점 등의 상가가 늘어서 있다.
목마른 비둘기

토산품 도자기

이태리의 카미유를 보는 듯한 정밀세공의 도자기 이다.
전쟁 기념탑

옛 항구 부둣가에 세워져 있는 전쟁 기념탑이다.
1943-1945년에 북부와 남부 에게海 섬들의 자유를 위해 전사한 그리스 신성연대,
영국의 해군 공군, 프랑스 해군 그리고 도데카시나 제도 주민들을 기념하여 세운 탑이다.
로도스 시가지 부분 지도

고대의 7대 불가사의에 하나라는 "로도스의 헬레오스 거상"이 서 있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참고로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는 다음과 같다.
1.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2. 이집트의 피라밋
3.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4. 로도스의 헬리오스 거상
5.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6.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영묘
7. 바빌론의 공중정원
만드라키 항(구 항만) 방파제 사이 선박 출입구 전경

항만 방어용 요새가 방파제 위에 건설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등대가 있다.
항구 입구 양쪽 방파제 위에 세워진 사슴 동상

사슴 동상이 서 있는 자리가 헬리오스(Helios) 거상이 서 있던 자리이다
사슴은 로도스 시의 상징이다.
서적에 실린 헬리오스 거상의 그림

현대의 기술적 마인드로 당시의 건축공학 및 금속공학적 견지에서 보면 공상의 구조물로 보인다.
마케도니아의 왕 데미트리오스는 로도스를 점령하기 위해 포위 공격하지만 실패하고 돌아간다.
그의 군대가 남기고 간 무기를 팔아 BC 294-282 년까지 12년에 걸쳐 로도스의 수호신인
헬리오스 신상을 만든다. 흙을 쌓아가며 33 m 의 청동 주조물을 제작 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큰
청동상이 탄생하였으나 BC 226년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헬리오스 상의 다리 밑으로 선박이 지나가려면 최소한 120 m 의 크기여야 한다는
현대 학자들의 계산이고 보면 청동상의 위치는 항구가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헬리오스 거상을 그린 로도스 구시가지 그림

위의 그림에 나타난 헬리오스 거상이 현대의 과학적인 사고로는 합리적이다.
헬리오스 거상 재건 프로젝트

그리스는 33 m 높이의 고대 거상보다
약 4배 가량 더 높은 135 m 의 구조물을 세울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보다 40 m 이상 높고 다리 아래로 선박이 지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
(2015.12.26 chosun.com에서 발췌)
쏘크라테스 거리의 기념품 점

밤의 쏘크라테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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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리소스(Ialysos) 유적
고대 로도스섬의 3대 도시의 하나로 로도스 시에서 서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5 km,
이알리소스 해변가에 위치한다. 현재는 아테네와 제우스 신전터와 고대경기장이 남아있다.
이알리소스 해변

해변가 동쪽 언덕(카메라 위치) 경사면에 고대도시의 유적이 있다.
제우스 신전

원형 극장

신전 동쪽 옹벽 아래에 있는 소극장은 말끔하게 복원되어 있고 극장 전면은 올림픽 경기장이다.
올림픽 경기장

관중석 맨 앞에는 심판과 선수석으로 사용하는 기다란 석조 벤치가 있다.
나비계곡 입구에 전시된 나비 표본

나비계곡(Valley of Butterflies)은 이알리소스에서 14 km,
해안도로를 따라내려 오다가 내륙으로 접어 들어가면 만나게 된다.
디아고라스(Diagoras) 공항에서는 10 km의 거리이다.
이 일대는계곡 주변 사방 1 km 에 온통 춤추는 나비들로 뒤덮이는데 6~9월 사이에만 볼 수 있다
계곡 답사코스

311 m 높이의 계곡 끝에는 성모의 칼로페트라(St. Mary's Monastery of Kalopetra)라는
작은 수도원과 교회가 있다.
계곡 풍경

깨끗한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바위 틈에는 민물에 사는 게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 계곡에는 각종 식물이 분포하고
맑은 물이 있어 여러종류의 나비가 서식할 수있는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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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로스(Kamiros) 유적
로도스 시에서 34 km 서해안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만나게 된다.
고대의 3대 도시 중에 하나이며 헬레니즘 시대의 도시가 이알리소스(Ialysos) 처럼
유적만 남아 있다. BC. 226년 파괴되었다가 재건된 것이다.
카미로스 고대도시 유적

도시 유적에는 로마식 목욕탕, 헬레니즘식 주거지역 등 다양한 시대의 유적이 있다.
아폴로 신탁 신전(Temple of Pytian Apollo)

도리아식 신전(BC.3세기 초~ BC. 2 세기) 앞에는 정화용 목욕탕이 있다.
아테네 신전 유구

고대 도시의 가장 높은 지대의 정상에 자리잡은 아테네 신전(BC. 3 세기초 ~ BC. 2세기)은
아주 부드러운 사암 기단으로 현재는 거의 풍화되어 신전 터라고 믿기 어려운 상태로 남아있다.
신전 밑에는 암반을 파내어 만든 거대한 물받이 수조(BC 6~5 세기)가 있다.
초기 기독교 침례교회(Early Christian Baptistery)

AD 5th~6th 세기 침례교회와 수도원이다.
일부 무너진 건물이 있으나 보존된 교회와 수도원에는 모자이크로 된 이콘(성화)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무너진 유적 가운데에는 암반을 파 내어 만든 + 자 형태의 커다란
세례용 욕조가 남아있다 교회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지대로. 남쪽으로 두개의 활주로가
멀리 보이는 나즈막한 고지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건설되어 있다.
해변에 가까운 곳은 민항기가 착륙하고 있어 공항(Diagoras Airport)이고
내륙의 것에는 군용 헬기가 계류되어 있는것이 200 mm 카메라 렌즈로만 보인다.
수도원 뒷편에 있는 산책로

교회 맞은편 해안 쪽으로 뻗은 200여 m 의 곧은 산책로는 십자가의 길(The road to Calvary)로
조성되어 있어 부조로 만들어 놓은 14처(處)를 따라 기도하며 순례할 수 있다.
길 끝에는 50 여 m 의 거대한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아주 작은 교회가 있다.
수도원 뒷편에는 비잔틴 요새(Vyzantine Fortress)라는 방어 시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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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도스(Lindos)
3 대 고대 도시 가운데 지금까지
그 자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은 린도스 마을 뿐이다.
로도스 시에서 동해안을 따라 약 55 km 해안가에 하얀색의 집들에 둘러싸인
나즈막한 언덕 위에는 견고하게 보이는 성채가 있다. 아크로폴리스이다.
마을 어귀에는 관광버스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고 마을 입구까지는
소형 차량만 통행이 가능하다. 마을전체가 정부로부터
고고학 유적지로 지정되어서 마을 안으로의 차량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아크로 폴리스(Acropolis)와 린도스 마을(General View)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길은 마을 오른편에서 계단을 걸어 올라가거나
마을 왼편 거친 돌포장 길을 나귀를 타고 올라가는 두가지 길이 있다.
북쪽에서 촬영한 아크로폴리스 항공사진(안내판)

린도스에 인류가 거주한것은 석기시대(BC. 4000년)였으며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던 호머(Homer)에 따르면
BC.1,000년 까지는 이알리소스, 카미로스와 더불어 3대 중요 도시 국가 중에 하나였다.
아크로폴리스 복원 모형(Model of the Acropolis)

고대의 린도스 주거지역은 천연의 항구를 가지고 있는 현재의 마을과 같다.
나귀를 타고 올라가며 보는 아크로 폴리스

기사단 본부(The Knights Headquaters)

성문 입구는 두터운 옹성으로 가려져 있다.
성문과 성벽에 붙어있는 건물은 기사단 본부이다.
옹성 맞은편 절벽에는 그리스 전함의 선미 부분이 조각되어 있다.
성문

성문은 가파른 계단을 약 200 m 정도 가쁘게 올라가야 한다.
아크로 폴리스 동편

유적 감시인이 보이지 않는 사이 신전 벽 위에 기어 올라가 내려다 본 장면이다.
아테나 린디아 신전(The Temple of Athena Lindia)

아테나 린디아 성소의 중추인 신전은 아크로 폴리스의 가장 높은곳에 지어졌다.
BC. 4세기 후반에 건설된 신전은 BC. 392년의 화재로 파괴되었다.
도리아식의 신전은 22 x 8 m의 규모이다.1936 - 1940년에 복원되었으나 2000-2005 년에
새로운 석재로 복원이 잘못된 것들과 교체하였고.
부서진 원래의 석재들도 제자리에 원상복구 하였다.
대 계단과 신전입구(Propylaia) 열주

대 계단과 신전 입구는 BC.3세기 전반에 건설되었다.
이태리 점령시기인 1936 - 1940년에 복원작업이 이루어졌다.
복원된 스토아(Stoa)의동편 일부

기념품 상점 골목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오면 마을 어귀 골목은 각종 기념품이 가득한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여행객의 눈길을 끄는것은 다양한 기념품보다 밤톨 만한 흰색 자갈을 모자이크 식으로 박아
정성들여 포장하여 밟기 조차 죄송한 생각이 들게 하는 골목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