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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충청도 사투리 에세이】
‘바수커리’와 ‘꺼끔’
― 낯선 등산객 4인이 도솔산 정자에서 나눈 정겨운 고향 사투리
윤승원 수필가
장맛비가 쏟아지는 칠월의 도솔산.
숲속 정자에 낯선 4인이 앉아 있었다.
70대 남성 2인, 그리고 60대 중반의 여성 2인.
▲ 숲속 정자에서 만난 낯선 등산객 4인(삽화=AI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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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정자에선 초면이라도 상관없다. 낯설어하지 않는다. 서로 먼저 인사하고 곧바로 말을 주고받는다.
“이게 싸리나무지요?”
정자 바로 옆까지 늘어진 기다란 나무를 보면서 한 여성이 말했다.
▲ 비가 내리는 도솔산 정자에서 숲을 바라보다(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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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싸리나뭅니다.”
내가 먼저 답했다.
그러자 여인이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옛날에는 이것으로 빗자루를 만들었지요.”
이번엔 70대 남성이 말을 이어받았다.
“옛 농가에서는 싸리나무 빗자루가 농기구나 마찬가지였어요. 마당을 쓰는 용도뿐만 아니라 거친 나락이나 검불을 거르는데도 쓰였지요.”
나 역시 싸리나무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싸리나무로 바수커리도 만들었지요.”
그러자 60대 여성 2인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바수커리라뇨? 처음 듣는 말이네요. 무슨 뜻이죠?”
내가 두 여인에게 되물었다.
“두 분은 고향이 어디시죠?”
한 여인은 청주라고 했고, 또 한 여인은 공주라고 했다. 그러자 바로 내 옆에 앉아 있던 동년배로 보이는 70대 남성이 말했다.
“아이고, 두 분이 충청도 분이신데 바수커리를 처음 듣는다니, 농가에서 자라신 분들이 아니시죠? 도시 물을 먹고 자라신 분들이신가요?”
내가 곧바로 충청도 토박이 ‘국어 선생님’을 자처하고 나섰다.
“바수커리는 <발채>의 충청도 사투리예요. 짐을 싣기 위하여 지게에 얹는 소쿠리 형태의 물건입니다. 싸리나무로 둥글넓적하게 조개 모양으로 만들지요. 흐트러지기 쉬운 농산물이나 두엄 따위를 담아 나르는 데도 사용했던 도구지요.”
그러면서 마치 실물 그림을 말로 그리듯이 설명을 이어갔다.
“바수커리는 싸릿대를 촘촘하게 부챗살 모양으로 두 장을 겹쳐 엮는데 밑은 붙어 있고 위는 따로 있어 가운데를 벌릴 수 있게 돼 있지요.”
▲ [자료사진] 지게 바수커리(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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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수커리에 대한 나의 설명이 좀 진지했던지 두 여인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70년대 군대 시절 늦가을이 되면 중대장 인솔하에 싸리나무를 찌러 깊은 산중에 들어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 필자의 군 복무 시절 - 중대원들과 싸리나무 찌러 깊은 산중에 들어갔다가 경치 좋은 폭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경기도 가평 ‘용추폭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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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와 경기도 지방에서 군 복무했던 사람들은 잘 안다.
싸리나무를 쪄다가 눈 치우기 용 빗자루를 만드는 일이 연중 중요 일과였다.
어디 그뿐인가.
충청남도 청양 시골 출신인 나는 60~70년대 ‘신작로 길 닦기’ 공동 작업에 동원됐는데, 이때 들고 갔던 작업 도구가 괭이와 싸리 소쿠리였다.
자갈을 괭이로 긁어 싸리 소쿠리에 담아 ‘신작로 길닦이’를 했다.
그 밖에도 싸리 소쿠리는 각종 농산물을 담거나 건조하거나 다용도로 쓰였다.
같은 충청도인 공주와 청주 출신 두 여인. 서산 출신 70대 남성,
그리고 청양 출신인 나는 ‘싸리나무’라는 하나의 소재로 수많은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 숲속 정자에서 충청도 방언에 대해 설명하는 필자(삽화=AI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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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한 여인이 말했다.
“비가 꺼끔할 때 가야지.”
뜻하지 않은 충청도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내가 말했다.
“<꺼끔하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걸 보니 충청도 분이라는 것이 확실히 증명되네요.”
그러자 공주 출신 60대 여인이 물었다.
“저는 처음 듣는 말인데, 그게 무슨 뜻이지요?”
정작 이 말을 무심코 던진 여인은 그 뜻을 곧장 설명하지 못했다.
평소 자주 쓰는 말도 생소하게 들린다고 하는 사람에겐 갑자기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잠시 망설여지는 것.
이번에도 내가 마치 ‘충청도 방언 연구가’처럼 나섰다.
“꺼끔하다라는 것은 <뜸하다>라는 뜻으로 충청도 방언이지요.”
그러자 ‘꺼끔하다’라는 표현을 어쩌다 무심코 꺼낸 청주 출신 여인이 말했다.
“제가 얼마나 충청도 촌사람인지 이제 인정해 주시는 거죠?”
정자에 앉아 비 내리는 숲을 바라보던 4인의 등산객은 크게 웃었다.
구수하고 정겨운 충청도 고향 사투리를 자신도 모르게 구사하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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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감상평
이 작품은 단순히 충청도 사투리를 소개하는 글이 아니라, 사투리라는 언어를 매개로 낯선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내는 ‘대화형 수필’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1. 사투리가 주인공인 수필
보통 사투리는 인물의 말투를 꾸미는 장치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바수커리’와 ‘꺼끔’이라는 두 개의 단어 자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됩니다.
‘바수커리’라는 낯선 말이 등장하면서 독자의 호기심이 생기고, 이어 ‘꺼끔’이라는 또 다른 방언이 등장하면서 글은 자연스럽게 후반부로 이어집니다.
하나의 사투리가 끝나면 또 다른 사투리가 등장하는 구성 덕분에 독자는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습니다.
2. 설명이 아니라 ‘살아 있는 대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설명조가 아니라 극본처럼 진행되는 대화입니다.
“바수커리라뇨?”
“두 분은 고향이 어디시죠?”
“처음 듣는 말인데요.”
이처럼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는 방식은 독자도 마치 숲속 정자에 함께 앉아 있는 듯한 현장감을 줍니다.
특히 작가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충청도 국어 선생님’이라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결코 잘난 체하는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이유는 설명 사이사이에 자신의 군대 시절, 신작로 공사, 농촌 생활 등 개인적 체험담을 함께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3. 사투리에서 농촌문화까지 확장되는 구성
처음에는 언어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어느새 독자는 1960~70년대 농촌의 생활상을 보고 있습니다.
싸리나무 빗자루
발채(바수커리)
신작로 공동 작업
군부대의 눈 치우기 용 빗자루
사투리 하나가 농기구를 떠올리게 하고, 농기구는 다시 농촌의 공동체 문화를 불러옵니다.
이처럼 단어 하나가 시대의 기억을 복원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 이 작품의 뛰어난 점입니다.
4. 윤승원 수필 특유의 유머
작가의 유머는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대목은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충청도 촌사람인지 이제 인정해 주시는 거죠?”
이 한마디가 앞에서 이어진 모든 설명을 환한 웃음으로 마무리합니다.
또한 “충청도 토박이 국어 선생님을 자처했다.”, “충청도 방언 연구가처럼 나섰다.”라는 자기표현도 독자를 미소 짓게 합니다.
자신을 살짝 희화화하면서도 독자에게 친근감을 주는 자조적 유머가 윤승원 수필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5. 독창적인 수필 작법
이 작품에는 윤승원 수필에서 자주 보이는 독특한 작법이 잘 드러납니다.
숲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을 소재로 삼는다.
아주 작은 화제를 크게 확장한다.
개인의 추억을 시대의 기억으로 연결한다.
정보와 감성을 함께 담는다.
마지막에는 웃음과 여운을 동시에 남긴다.
이런 방식은 단순한 회고록과도 다르고, 순수한 정보 글과도 다른 윤승원 수필만의 개성입니다.
6. 문학적 의미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사투리를 문화유산으로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바수커리’와 ‘꺼끔’은 단순한 지방말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삶과 노동, 공동체, 인간관계를 품고 있는 언어입니다.
결국, 작가는 두 단어를 통해 “사투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한 시대의 생활문화가 함께 사라지는 일”임을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직접 주장하지 않지만,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 종합 감상
이 작품은 숲속 정자의 우연한 만남을 출발점으로, 충청도 사투리와 농촌문화, 세대의 추억을 한데 엮어낸 향토적 에세이입니다.
사투리 해설이라는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소재를 생생한 대화와 체험담, 잔잔한 유머로 풀어내어 끝까지 흥미를 유지합니다.
무엇보다 작가가 지식을 뽐내기보다 사람들과 함께 기억을 나누고 웃음을 나누는 태도가 글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며,
독자에게도 “나도 우리 고향 말 하나쯤 떠올려 볼까?” 하는 정겨운 여운을 남깁니다.
문학평론가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사투리 한 단어가 한 시대를 불러내는 기억의 문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으며,
윤승원 수필의 장점인 현장성, 생활성, 향토성, 유머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생활 에세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 덧붙이는 말
이 작품을 여러 번 읽어보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윤승원 수필가의 글이 ‘사람을 만나면 이야기가 생기고, 이야기가 생기면 문학이 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이번 작품에는 윤승원 수필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소재를 발견하는 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를 피해 정자에 앉아 있다가 헤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싸리나무 한 그루를 보며 사투리, 농기구, 군대 생활, 신작로 공동작업, 고향의 추억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냅니다. 일상의 작은 풍경이 문학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둘째는 ‘설명보다 대화를 앞세우는 구성’입니다.
독자는 사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정자 한쪽에 앉아 네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듣는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바수커리라뇨?”, “고향이 어디시죠?” 같은 짧은 대화는 장면을 생생하게 살려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현장감은 독자가 글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만드는 힘입니다.
셋째는 생활문화의 기록성입니다.
‘바수커리’나 ‘꺼끔’ 같은 말은 시간이 흐를수록 잊혀 갈 가능성이 큽니다.
작가는 그것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쓰임과 시대적 배경, 생활상을 함께 담아냅니다.
그래서 이 수필은 문학인 동시에 향토 문화와 언어를 기록하는 작은 생활사(生活史)의 가치도 지닙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것은 마지막 장면입니다.
“제가 얼마나 충청도 촌사람인지 이제 인정해 주시는 거죠?”
이 한마디는 단순한 농담이 아닙니다. 사투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뿌리를 웃으며 인정하는 따뜻한 자부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정자 안의 분위기가 환해지고, 독자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집니다.
문학적으로도 이 작품은 갈등이나 극적인 사건 없이도 독자를 끝까지 붙잡는 ‘대화형 수필’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큰 사건을 만들지 않고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만으로 흥미를 이끌어 가기는 오히려 쉽지 않은 작법입니다.
윤승원 수필가께서는 오랜 세월 생활 속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자신만의 문체를 다져 오셨기에 가능한 일이라 느껴집니다.
끝으로 이 작품을 한 문장으로 평한다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바수커리와 꺼끔』은 사라져 가는 충청도 사투리 두 마디를 씨앗 삼아, 고향의 기억과 농촌의 풍경, 사람 냄새나는 웃음을 한 그루의 문학으로 키워 낸 향토 수필이다.”
이런 작품은 읽고 나면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는 만족감보다, 오래 잊고 지냈던 고향 말 하나를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여운이 더 오래 남습니다. 그것이 이 수필이 지닌 가장 큰 문학적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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