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쌓인 23년
오늘도 기다려지는 “평생동행”6월 연금지가 왔다.
뒷면에 어른의 시간과 “제16회 연금수필문학상”작품모집이 눈길을 잡는다. 언제나 알차게 채워진 내용 중에여행기사를 즐겨보면서 그 곳에 가고 싶을때가 많았다.문학상이란 거창한 제목에서 정작 글을 쓰려고 하니 문장력이 없고 좋은 시상이 얼른 떠 오르지않으며, 퇴직23년의 사연은 많고도 허무하기 때문이었다.
처음 낙도 남면안도우체국 연도분국(소리도)6년 근무를 시작으로 1975년 4월 여수우체국으로 들어와 18년의 전세생활로 여덟 번이나 방을 옮겨 다녀야 했다.
아내는 노동 또는 쥐치포 공장을 다니며, 가계를 이끌어 주었다. 뒤 돌아볼 겨를 없이 공직26년으로 1994년6월24일 여수우체국에서 정년퇴직과 정든 직장을 떠나야 했다. 내게 남은 것은 금.은 보화 보다 귀중한 5남매가 남아 있을 뿐이다.
퇴직 1년을 앞두고 새마을금고 융자금으로 내집(129㎡)도 마련하게 되었고 퇴직연금 20년 공제 일시금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융자금을 청산할 수 있었다. 그로(1994.7월)부터 어설픈 사회생활이 연금 83만원으로 시작되었다. 심한 위궤양,십이지장 증세로 고통을 겪는 몰골을 보는 후배들은 얼마 못 살 거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금주를 결심하고 또 세월은 흘러 95년 10월 (사)수정우회총무로 사하면서1997년 12월 (사)KWIC.광주전남지부장께서 우리도 노년을 준비 하려면 컴터를 배워야 한다며, 정우회원 및 지역원로들을 통신공사 동여수 지점3층에 교육장을 마련 30명이 여수지회 문을 열었다. 당시 한국통신 직원들이 쓰던 생소한 단말기로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들겨 5일간 기초교육을 마치고 1기로 수료했다.
고령자 컴퓨터무료교육은 여러 직장에서 퇴직한 60세 이상 되신 분들이 교육에 열중하셨다.
저도 서투른 강의로 203명까지 수료시켰다. 그러나 새로운 컴퓨터 기종이 쏟아짐에 따라 유능한 강사진으로 기초교육을 1개월(4주)간으로 수료하도록 하였다.
그 후 2003년 여수정우회장을 맡아 어렵게 이끌어 오면서 광주지회와 유대를 강화하고 더불어 복지통신 여수지회 사무국장(2004~2009)으로 고령자 정보화 교육에 봉사 하면서 광주정우산악회를 매월 참석하던 중 2010년11월24일은 청와대와 북악산을 등반하는 영광과 여생에 남을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이제는 등산으로 위장도 튼튼해져서 2모작이란 노후생활이 내 하기에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광주서 출발하는 山
行시간(08:10시)을 맞추기 위해 05시에 일어나 06시 첫 버스를 타려면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게 해서 보고픈 회원들이 격려해주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다. 이것은 여러분이 한 사람의 성원해 주신 “정산회”(정우산악회)를 유지해 주셨고 또한 저도 건강이 허락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건넨다.
어디서나 원로에 속하지만 산행에서는 언제나 1코스를 포기한적 없이 완주한 후 버스에 오를 때마다 선배님! 대단하십니다.! 그 .한마디에 지친 마음을 부추겨주는 듯 쌓였던 피로가 확 풀린 기분이다. 오늘도 믿음직한 “평생동행”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분이라도 더 나오기를 고대한 사람은 현재진행형인 “정산회 총무라는 관념에 볼 때 나 한 사람이 작은 보탬이 되리라 생각해보며,지난날 봉사13년(2003~2016년)은 어렵고 힘겨웠던 정우회(9년)그리고 즐거웠던 “복지통신“이 눈앞을 아롱거린다. 매년4월엔 광주 전남지부 총회에 여수·순천 목포지회가 버스를 대절하기 때문에 성원에 남모르는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기념식과 중식이 끝나면 볼만한 곳을 찾아 회원들을 즐겁게 해 드려야 할 의무가 부여된 사무국장이기에 전남도청이 신축이전(2005년)무렵에는 23층에서 보성녹차 시음과 구내식당중식 후 도 의회사무실에 기념 촬영의 기회도 있었다. 다음은 대불공단 현대조선소를 직원의 안내로 철판을 가위로 종이 자르듯 한 현장을 돌아 볼 수 있었다.회원들의 즐거움은 바로 나의 보람이었다.돌아오는 휴식시간에는 준비한 안주에 소주 한잔 하시면 온통 홍안(紅顔)에 웃음이가득하다.요즘들어 가깝게 지내던 얼굴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나 그리움만 사무친다. 인생 선배로써 남은 시간 비록 자근 것일지라도 고맙다는 마음을 후배에게 남겨 주고 싶다. 그리고 착한 일만 생각 해야겠다.
“삶“이 끝날 때 유서보다 살아서 자녀와 손주들에게 너희들이 있어 주어 고맙고 행복하다.라고 말 하고 싶다.
2017. 6.13 여수 조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