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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책
하성자(시인 , 수필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개정판>
저자 : 고미숙
출판사 : 그린비(2009) 하성자(시인, 수필가)
저자소개
고미숙
1960년 강원도 정선군 조동리 출생, 고려대학교에서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지식인 공동체 운영. 저서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나비와 전사][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상. 하][이 영화를 보라][사랑과 연예의 달인, 호모 에로스][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티의 향연]등
1.
서점에 들러 새로 나온 책이 없나 하고 있는데 눈에 들어온 낯익은 이름이 있었다. 고미숙의 이 저서는 2004년판을 읽었었는데 내가 새로 구입한 같은 제목의 이 책은 2009년 개정판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가 걸음마를 시작하던 그 때 김해까지 내려와 자신의 저서와 ‘수유+너머’에 대해 설명해 주었던 고미숙 작가를 텔레비전 화면에서 본 지 두 달 쯤 지났다. 고미숙 씨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 마련된 강의실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통신대학 특강이었다. 책이 나오던 당시 걸음마 단계라던 ‘수유+너머’라는 공간이 육, 칠년 흐른 지금 유명한 곳이 되어있는 것이었다. 한 곳에 집중된 에너지가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는가를 실감하면서 같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가 라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고전문학의 새로운 접근, 해석을 했다는 의미에서 저자 고미숙이란 이름이 대단한 것이다. 좀 말라보일 정도로 약해 보이는 저자 고미숙의 어디에서 그런 ‘깡’ 이라 할 지, 두둑한 배포가 나오는지 참 궁금하였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히려 저자가 좀 느긋해 보이며 여유로운 이미지를 풍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서점에서 내가 이 책을 잡게 된 것도 특별한 지식인 ‘고미숙’ 의 작품이라는 이유 때문이라 할 것이다.
저자 고미숙은 여행을 정말 싫어하지만 박지원이 열하일기에 기록한 경로대로 꼭 중국 여행을 제대로 하고 싶다고 그 당시 피력했었는데 그런 여행사진이 실려 있다. 조선 팔도가 동강나 버린 지금은 북한 땅을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똑 같은 여행은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2.
‘열하일기’는 조선후기의 유명한 연암 박지원의 수필이다. 저자는 열하일기를 우리나라 수필문학의 백미라고 말하였다.
[‘마이너 리그’-방경각외전]에서 저자는 석학이었던 연암 박지원이 현자나 성인들의 지혜를 찾아다닌 것이 아니라 시정에 떠도는 ‘개그’를 통해 마음을 수양한 시대를 앞서간 발상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 당시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 지배적 코드를 벗어난 다른 종류의 삶을 추구하는 마이너(minor)들의 보고서가 ‘방경각외전’이었다. 저자가 박지원을 주목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허생전]도 [방경각외전]과 같은 텍스트 구성벅과 패턴을 밟고 있다고 본 저자는 연암의 글쓰기가 향하는 잠재적 폭발력을 예고하고 있다고 보았다.
연암의 산문에 대하여 ‘연암그룹’의 일원인 박제가(朴齊家)는 우담바라 꽃과 같고 포청천의 웃음과 같다고 하였으며 연암의 친구 이덕무(李德懋)는 연암의 산문은 천하에 오묘하며 연암은 다만 시 짓기를 꺼려하였다고 하였다. 연암은 왜 시 짓기를 꺼려했을까?
고전문학에서 ‘열하일기’로는 자타가 인정하는 전문가라고 할 고미숙 저자는 연암 박지원을 뛰어난 시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저자는 연암이 시 짓기를 꺼려한 이유로 “그 형식적 구속 때문에 가슴속의 말을 자유롭게 쏟아낼 수 없음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동아시아 엘리트 집단의 공통 문법이자 문화적 징표인 한시의 형식도 견디지 못했던 연암, 그에게는 ’탈코드화된‘ 기질적 속성이 자리하였다고 보았다.
저자가 말하는 ‘연암그룹’의 멤버는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정철조 등이며 이들은 연암에 앞서서 혹은 연암과 함께 중국 여행을 한 인물들이다. 조선후기 문화와 사상을 변혁시킨 주역들, 그 중에 연암이 리더라고 보았다. 백동수 라는 인물은 정조의 명으로 무예서(武藝書) 편찬을 하게 된다. 정조는 책의 이름도 미리 지어놓았는데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이다. 연암그룹이 관계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그 당시 연구그룹으로 실험과 실사를 중시한 연암그룹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다.
연암은 태생적으로 비정치적 인물이었고 남을 비판하는 것을 즐겨하지도 않았지만 대체 권세가들이 그를 꺼려하고 두려워하였는데 그 이유는 연암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파급력이 상당하였기 때문이었다.
3.
연암의 나이 마흔 넷, 생의 한 고비를 넘어가는 길목에서 연암은 중원 천하에 발을 디딜 기회를 갖게 되었다. 연행을 가게 된 것이었다. 그가 쓴 열하일기는 김창업의 ‘연행일기’, 홍대용의 ‘연기(燕記),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와는 다른 ‘변종’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연암의 중원 연행은 여행이라기보다 하나의 ‘사건’ 이었다고 본 것이다. 처음 목적지는 수도인 연경이었으나 황제가 열하에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연암도 열하로 간 것이었다. 연행을 마치고 돌아와 3년여에 걸쳐 [열하일기]를 퇴고하는 박지원, 그 이전에 이미 초고가 나돌아 문인들 사이에 큰 파문을 일으킨 연암효과의 주인공, 바로 연암체의 파급력이었다.
오랑캐의 연호를 썼으며 패관기서로 고문을 망쳐버렸다는 등등 연암의 [열하일기]는 퇴고도 하기 전에 이미 초고가 나돌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연암은 묘비명의 대가였다. 정작 자신의 묘비명은 없다. 아니 발견되지 않았다.
[제정석치문]이란 묘비명은 석치 정철조에 대한 제문으로 판에 박힌 묘비명이 아닌 다채로운 수사법을 동원한 그만의 명문이다.
“ 살아 있는 석치라면, 만나서 곡을 할 수도 있고, 만나서 조문을 할 수도 있고, 만나서 꾸짖을 수도 있고, 만나서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고, 여러 섬의 술을 들이킬 수도 있어서, 벌거벗은 서로의 몸을 치고박고 하면서 꼭지가 돌도록 크게 취하여 너니 내니 하는 것도 잊어버리다가, 마구 토하고 머리가 짜개지며 속이 뒤집어지고 어지러워, 거의 다 죽게 되어서 그만둘 터인데, 지금 석치는 정말로 죽었구나! …… 석치 자네는 정말 죽었는가? 귓바퀴는 이미 썩어 문드러지고, 눈알도 이미 썩었는가?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단 말인가? 술을 쳐서 제주(祭酒)로 드려도 정말 마시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는구나.”
석치 정철조에 대한 제문이다. (p 91 )
유머 혹은 넌센스를 통해서 그의 깊은 슬픔이 전해온다.
정조는 천주교의 중심에 선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이벽 등 남인의 일을 덮어주는 대신 중국 서적 수입 금지령을 내린다. 당시 첨단 신지식의 매개체였던 중국 서적의 수입 금지는 지식인들의 갈증에 불을 당겼다.
저자는 ‘연암체’라는 소제목으로 연암의 글에 대한 해석을 해 놓았다. 연암은 소품에 능했고, 촌철살인, 포복절도의 짧은 아포리즘을 즐겨 구사했다.
어떤 이는 그의 글을 두고 가슴을 툭 트이게 한다고 하였고, 어떤 이는 ‘궤변으로 세상을 농락한다’며 분노하였다. 연암의 글은 언제나 회오리를 몰고 다녔다. 저자는 ‘연암체’의 특징으로 외부와 내부를 넘나들면서 끊임없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변이의 능력이라고 보았다.
정조가 연암의 ‘열하일기’를 ‘문풍을 타락시킨 원흉’으로 지목하였다. 이미 10여전 전부터 세간에 오르내리던 연암체가 공식적인 여론의 중심에 올라선 사건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사건을 두고 연암체가 세간으로부터 인정받는 한 과정이었다고 보았다.
‘열하일기’는 수많은 ‘고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형식상으로는 압록강을 건너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마테오 리치의 무덤에서 끝나지만 사실 시작도 끝도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중도에 있으며, 따라서 어디서 읽어도 무관하게 각각은 서로 독립되어 있다. 또 연행을 마치고 돌아와 연암협에서 다시 메모지를 들고 재구성한 것이기 때문에 연암 자신의 윤색도 적지 않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리하다가 만 경우도 있다. ( p 143)
연암은 한양에서 압록강까지 한 달여의 과정을 일체 생략해 버렸다. 도강록(渡江錄)부터 열하일기가 시작된다. 연암은 중국 사절단의 비공식 수행원이다. 그는 집단과 함께 밟아가면서도 끊임없이 옆으로 샌다. 역관들의 눈을 피해 잠행을 시도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의 시선 혹은 필력은 불가사의할 정도다. 길에서 만난 여인네들의 장신구, 패션, 머리 모양에서부터 곰이나 범, 온갖 동물들의 모양새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다. 한번은 객관 밖에서 재주부리는 앵무새의 털빛을 자세히 보려고 등불을 달아오는 동안에 주인이 가버리는 일도 있었다. ( P 154)
대상을 투시하는 예리한 시각, 끈적하게 들러붙는 촉감적 능력은 잠행자만의 특이성이다. 대열을 이탈하여 솔로로 움직이고, 대열이 잠들 때 깨어 움직이는, 말하자면 지루하게 반복되는 리듬 속의 ‘엇박’같은 존재, 그는 새벽을 도와 먼저 떠나거나 아예 뒤떨어져 떠난다.(P164)
열하에서 북경으로 돌아와 여러 역관들이 연암의 방에 모여들었다. 연암의 봇짐을 홀겨보고 속속들이 헤쳐 보게 했으나, 다만 붓과 벼루가 있을 뿐이었다. 두툼하게 보인 것은 ‘메모 노트’였던 것. "'패이드 아웃(faid out)! 무협영화 뺨치는 ‘대장정’은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4.
저자는 ‘열하일기’ 의 은유에 대하여 해석하고 있다. 거대한 스케일과 무시로 변화하는 중원의 대자연을 포착하기 위해 연암은 화려한 수사학을 구사한다. 연암의 ‘연금술적‘능력이 고도로 발휘된 대목은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이다. 최초로 ’열하일기‘를 출간한 구한말의 문장가 ’김택영‘은 이 글을 [삼국사기]의 ’온달전‘과 더불어 조선 5천년래 최고의 문장으로 꼽았다 한다.
“때마침 달이 상현(上弦)이라 고개에 걸려 떨어지려 하는데, 그 빛이 싸늘하기가 갈아 세운 칼날 같았다. 달이 고개 너머로 기울어지자 오히려 뾰족한 두 끝을 드러내어 졸지에 불빛처럼 붉게 변하면서 횃불 두 개가 산 위에 나오는 것 같았다. 북두칠성은 반 남아 관 안에 꽂혔는데, 벌레 소리는 사방에서 일어나고 긴 바람은 숙연한데, 숲과 골짜기가 함께 운다. …… 하늘 밖에 학이 우는 소리가 대여섯 번 들리는데, 맑고 긴 것이 피리소리 같은데, 혹은 거위소리라고도 했다”
연암은 달을 칼날에서 횃불로 묘사하였다. 니체가 ‘인간은 은유적 동물’이라고 한 의도는 인간의 말은 원초적으로 대상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질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자 함이었다. 연암은 변화무쌍한 중원의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은유적 동물’로서의 능력을 맘껏 발휘했던 것이다.
“유머 없는 ‘열하일기’는 상상할 수조차 없으니,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열하일기’는 유머로 시작하여 유머로 끝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도처에서 유머를 구사한다. (본문 중)
빛나는 엑스트라들, 연암과 함께 연행길에 오른 창대와 장복에 대한 연암의 세밀한 묘사는 이들의 출현 장면마다 강렬한 악센트를 부여한다. 귀 밑의 사마귀까지 케치하는 연암의 관찰력, 연암의 시선은 모든 주변의 것들을 나포한다.
5.
연암은 코끼리를 두 번 본다. 세계는 넓고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티벳의 불교나 도교 등 종교에 대한 논쟁도 있다. 연암은 중원의 선비들과 만나 이미 중국에서 일반적인 상식이 되어 있던 지구가 둥글다는 설에 더하여 서양에서도 밝히지 못한 논변, 지동설에 대하여 한판 논변을 붙일 거라 궁리한다. 홍대용과 정철조에게서 귀동냥한 지식이었다.
“혹정필담”에서 드디어 실전이 벌어지자 연암은 ‘만물의 근원은 먼지’라고 보는 ‘만물진성설(萬物塵性說)적 논법과 유사한 이론으로 지동설을 주장하였다.
저자는 연암 박지원을 인간과 사회를 넘어서는 ‘에콜로지컬(ecological: 생태주의적) 한 비전’을 확보한 인물로 보았다.
“무릇 생물들의 성질이란 사람이나 다름없이 고달프면 쉬고 싶고, 답답할 때 시원한 데를 찾고 싶으며, 구부르든 놈은 펴고 싶고, 가려우면 긁고 싶을뿐더러 그놈들은 비록 사람이 먹을 것을 주면 먹는다 하더라도 때로는 제 마음대로 편한 것을 찾고 싶은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 예로 연암은 조선의 말 먹이는 법에 대해 편안하게 해주기는커녕 일할 때나 쉴 때나 말을 힘들게 한다고 하였다. 말의 본성을 자상하게 배려하여 인간과 말 사이가 서로 소통하게 되면, 그 속에서 말의 종자는 저절로 ‘업그레이드’ 된다는 것이다. 그의 ‘이용후생‘에는 언제나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평면에서 파악하는 ’생태주의‘가 자리하고 있다.(P365)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저자는 ‘열하일기‘가 발산하는 강렬도는 바로 ’이름‘의 중력에서 벗어나 무상한 흐름에 몸을 맡기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생성할 수 있는 ’노마드‘적 여정의 산물이며 대체 연암은 누구인가? 물론 저자도 아직 그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6.
저자 고미숙은 보론으로 [연암과 다산 -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라는 소제목으로 두 인물을 비교하여 놓았다. 연암 박지원(1737~1805)과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사에 있어 그 누구와도 견주기 어려운 빛과 에너지를 발산한 인물이었지만 두 사람이 천재요 거장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유사성을 거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질적이라고 하였다.
에필로그에 [2003년 봄, 열하일기의 길을 가다]라는 제목으로 고미숙의 열하일기가 펼쳐진다. 심양에서 시작하여 열하를 거쳐 연암의 족적을 찾아다닌 저자의 연암 열병이 조금 치유되지 않았을까. 부록으로 열하일기의 원목차, 연암의 열하 여정도, 주요용어 등을 친절하게 배치한 고미숙의 학자적 기질을 존중한다.
7.
2004년에 구입하였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누군가에게 선물해 버렸는지 책이 없었다. 개정판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궁금하였지만 아마 첨부된 저자의 열하일기 답방 사진들과 보론, 지도 등이 보완된 것이 않았을까 추정하였다.
이 책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중심으로 연암이란 인물을 주로 다루었고, 연암의 천재성과 유며, 친서민적이며 탈 시대적 마인드, 역설적 논법, 연암체 등으로 열하일기를 해부해 놓았다. 고전문학의 재해석, 저자 고미숙의 유머와 유쾌하고 통쾌한 해석이 더 돋보이는 책이다. 고전문학에서 연암의 글이 독보적인 이유를 저자는 여러 시각에서 분석해 놓았다.
정말 그렇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듯 표현한 제문이 얼마나 심연을 숙연하게 하는지 연암의 괴짜기질과 촌철살인의 은유가 담긴 연암체의 효력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가 ‘열하일기’ 원서는 아니라도 ‘한글 완역서’를 읽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나는 고미숙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질’ 등 찔끔찔끔 읽었던 ‘열하일기’의 부분에서 웃다가 생각하다가 또 눈에 띄면 같은 글을 또 읽고 다시 새롭게 웃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텔레비전 모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본방을 보고 또 다시 보고 열 번도 더 보면서 볼 때마다 웃는 내 아들처럼, 나도 열하일기의 사이에서 어느 부분마다 새로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고전문학의 재해석, 고미숙이란 특별한 대가의 이 책을 읽고 나면 내가 무슨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었을 때처럼 자아도취에 빠지면서 스스로 수준이 높아진 그런 만족감을 얻게 된다.
저자와의 만남이 가능하였던 행운이 앞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고 가진 독서토론 모임에 저자가 초대되어 참 즐거웠던 2004년 4월의 기억이 새롭다. 저자 고미숙의 고전해석으로 내가 다시 열하일기와 친숙해진 것은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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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은 정말 박식 하십니다 늘 글을 대할때 마다 감탄 하징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