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천주교 ■
[마 16:13-20] (13)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우리나라에서는 가톨릭을 천주교라고 하고, 개신교는 기독교라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개신교를 기독교라고 불러야 한다는 분들은 천주교, 즉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가 이질적인 종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톨릭과 개신교가 각기 시대를 달리하여 따로 전래되었고, 신앙의 내용에서도 많은 부분 다릅니다.
이런 이유로, 개신교는 100년 먼저 들어온 로마 가톨릭이 사용하는 명칭들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번역하여 사용해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배하는 집을 두고 개신교에서는 “예배당”이라고 하는 데, 천주교에서는 “성당”이라고 하며, 목사는 신부, 성례는 성사, 세례는 영세라고 합니다. 이러한 명칭들은 유럽말로는 같은 말입니다.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달라진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가톨릭과 개신교는 16세기 종교개혁 이전에는 한 교회였습니다. 그리스도 교회는 초기부터 약간의 분파가 있었으나,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이 중심이 되고 있는 두 대교구가 발칸반도를 경계로하여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는 완전히 분립하였습니다. 서방교회는 초대 교회때부터 일컬어오는 대로 스스로를 ‘보편적’혹은 ‘범세계적’이라는 뜻의 ‘가톨릭’(Catholic)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리고 동방에서는 자신이 정통교회라는 뜻으로 ‘오토독스’(Orthodox)라고 칭했습니다.
그런데 서방 교회는 다시금 분열을 겪게 되었습니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크게는 로마 가톨릭과 소위 항의자라는 뜻을 가진 ‘프로테스탄트’교회로 양분되었습니다.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교회, 즉 ‘새롭게 개혁하는 교회’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그 정체성을 잘드러내는 명칭입니다.
1.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근본적 차이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근본적 차이는 마리아 숭배나 연옥설 등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교리에도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차이를 낳게 만드는 근본 원인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차이의 근본 원인은 권위(authority)의 근원이 어디에 있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종교든 진리 체계를 주장하기 때문에 그 진리 체계가 어디에 근거하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권위의 근거 문제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권좌에 앉은 교황에게서 그것을 찾았습니다. 소위 교황무오설은 여기에서 비롯된 교리입니다. 반면 (보수주의적) 개신교는 성경 자체에 권위를 두었고 성경무오설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가톨릭도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이지만 최종 권위로 인정은 하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면 성경보다 교황을 높이 두어 성경 해석의 최종 권위자로 만듭니다. 궁극적 권위의 근거가 성경이 아니기 때문에 이로부터 개신교도들이 이해하거나 납득하기 힘든 각종 교리가 만들어집니다.
로마 가톨릭은, 성경에 외경과 위경을 포함시키는 데 반하여 개신교는 초대 교회의 전통을 따라 신약 27권, 구약 39권만을 옳은 성경으로 인정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성경 말씀을 중심하기 보다는 목회적인 배려에서 백성들의 민속신앙을 용인하고, 조장하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2. 로마 가톨릭은 이단인가?
먼저 여러분께 질문합니다. 이단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우리와 같지 않으면 이단입니까? 우리와 다르면 틀린 것입니까? 우리나라 기독교는 걸핏하면 이단을 너무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벧후 2: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유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이단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적어도 사도신경의 신앙 조항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보자면 로마 가톨릭은 결코 이단이 아닙니다. 로마 가톨릭은 개신교와 같이 삼위일체 교리,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그리스도의 동정녀 잉태, 속죄, 부활, 재림 등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 성령께서 하나님이심을 개신교와 똑같이 인정합니다. 따라서 이런 신앙고백을 하는 가톨릭을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종교적인 집단으로 정죄할 수 없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보면, 대개 예수를 부인하는 이단들은 거의 다 부도덕한 비사회적인 삶을 살았고, 추종자들은 그런 집단으로 추락하였습니다. 그런데 가톨릭은 비도덕적이며 비사회적인 집단도 아닙니다.
혹자는 속죄론에 있어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많지 않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은 그리스도의 구속이 끝나지 않은 것으로 말하고, 특히 미사가 피 없는 제사의 연속으로 드려지는 것이 아니냐고 힐문합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로마 가톨릭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영단번적 성질(히 7:27; 9:12; 10:12)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의 문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 또 로마 가톨릭의 설명에 의거하면 - 그들 역시 그리스도 속죄의 최종성(finality)을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그러한 영단번의 사역을 적용한다는 면에서 - 이것이 화체설에 입각한 미사 교리입니다 - 개신교와 차이가 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아직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결코 이단 운운할 정도의 차이는 아닙니다.
3. 로마 가톨릭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로마 가톨릭은 워낙 방대한 체계이므로 그 안에서 해방 신학이 나왔는가 하면 성령의 은사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습니다. Hans Küng처럼 교황무오설에 반기를 들었다가 정직당하는 케이스가 있었는가 하면, 로마 가톨릭 내에는 Catholic evangelicals라고 해서 오늘날 개신교의 복음주의자와 거의 같은 이들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어떤 면, 어떤 교리, 어떤 사항을 거론하는지 정확히 해야 하고, 또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 논점을 명확히 밝혀야만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객관적일 수 있고, 또 개신교와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된 연고를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가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하는 한 양자의 차이점은 구원 문제에 있기 보다는 어떻게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느냐 하는 데 대한 견해, 즉 “교회론”의 차이“에 있습니다.
유럽의 루터교나 개혁주의 교회가 가톨릭의 다른 점과 잘못을 여전히 지적하지만, 이단이라고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용적인 자세를 가지기 까지에는 여러 가지 많은 우여곡절을 경험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양측은 서로를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피차 힘으로 대결하였습니다. 권력을 가진 왕들과 제후들이 양측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면서 양측은 여러차례 전쟁을 치렀습니다. 17세기 초반에는 30년전쟁(1618-1648)을 치렀습니다.그 이후에 강화조약을 맺고 서로 관용하기에 이르렀고, 그 후 몇 차례 재 연합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서로의 교리적인 차이를 재확인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4. 로마 가톨릭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과 조심할 점
로마 가톨릭은 하나님과의 교제, 말씀 묵상, 기도 등 영성 신학의 면에서 오래된 전통과 심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사회 정의 실현과 사회 봉사의 면에서 좀 더 적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특히 1961-2년의 Vatican II 라는 종교 회의 이후에는 타종교 (및 다른 교단)에 대해 매우 긍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제사 제도의 토착화, 술, 담배 문제에 대한 자유, (개신교 목회자에 비해) 신부들의 검소한 삶 등이 매력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교황주의와 함께 사제주의와 교권주의를 반대하여 종교개혁자들은 신약시대의 제사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이시라고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목사님들이 자신들이 제사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로마 가톨릭과 같은 사상이고, 종교개혁자들이 극구 반대한 사상입니다. 게다가 축복권과 저주권을 가졌다고 말함으로써 스스로를 평신도와 구별하는 이들이 있는 데, 그것은 중세적인 로마 가톨릭의 사상을 능가하는 구약적인 사상입니다.
또한 중세 수도원의 구원을 얻는 데는 믿음만이 아니고 선행도 따라야 한다는 공로주의 사상을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영성 운동- 묵상과기도와 수련을 통해서 또는 자신을 비워 하나님을 깊이 경험한다는 사상-은, 종교개혁자들이 배격한 공로주의 사상입니다.
-황대현(목사) http://hwang.god3927.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