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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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을 영어로 humilty라고 합니다. 굴욕을 영어로 humiliation이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종종 굴욕을 당합니다. 굴욕을 당하는 사람은 먼지와 티끌처럼 사람들에 짓밟히고 무시됩니다. (참고로, 영어 humily는 라틴어 명사 humilitas, 라틴어 형용사 humilis에서 기인했는데, 이 라틴어는 “겸손한”, “비천한”으로도 번역되지만 “땅에 댄”, “흙에서”로도 번역됩니다. 이유는 라틴어 humilitas(명)와 humilis(형)가 “흙”, “땅”을 의미하는 humus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거나 비천하면 무시당하고 쉽게 짓밟힙니다. 그러니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겸손은 힘든 겁니다. 겸손은 힘들어! ㅎㅎ
사순절의 한 날인 오늘은 “겸손”에 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겸손은 오늘날 그리 높이 평가되는 덕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신 우리 자신을 위해 당당하게 일어서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쉽사리 자신을 과시하고 강력하게 보이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런데 누구도 자신과 자신의 성공을 계속해서 과시하려는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왜 겸손은 표를 얻지 못할까요? 겸손한 사람으로 살기가 왜 어렵고 힘든가요? 아마도 우리가 이룬 성취와 업적을 과시하고 드러내지 않으면 사람들이 우리를 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잊힘은 곧 자기소멸을 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겸손은 무엇인가 자존감이 없거나 결핍된 상태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자기계발서가 독서 시장의 대세 장르인 이 시대에 자존감을 약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겸손을 누가 원하겠습니까? 아무도 그러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겸손을 좀 달리 생각해 보세요. 겸손은 우리 자신을 크게 보이게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작게 보이게 하지도 않습니다. 유대인 속담에 이런 비유가 있다고 합니다. 어느 사람의 양쪽 주머니에는 각각 이런 글귀 쪽지가 있다. 한쪽 주머니에 들어있는 쪽지에는 “이 세상은 나를 위해 창조되었다!” 다른 주머니 쪽지에는 “나는 먼지로 지음을 받았지만 언젠가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얼마나 대조적인 문구입니까! 인간의 위대성과 왜소함, 가치와 무가치, 별남과 하찮음.
우리의 괜찮음과 가치성과 독특함으로 단단하게 무장을 한다면, 반드시 여러분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땅과 먼지로 돌아갈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자존감이 밑바탕을 치거나 심하게 낙심할 때 우리는 이 세상 안에 사는 하나님의 파트너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이런 균형 잡힌 삶을 살려고 노력해 봅시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성취나 노력을 너무 하찮게 보거나 아니면 너무 자랑스럽게 크게 보는 치우침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시 에스 루이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겸손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지혜를 소유할수록, 겸손의 미덕은 커질 것입니다.
루이스(C.S. Lewis)는《순전한 기독교》에서 참으로 겸손한 사람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정말 겸손한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겸손하다”라고 부르는 그런 사람일 것이라고 상상하지 마십시오. 그는 항상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느끼하게 기름때가 흐르고, 솔직하게 말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예의를 차리는 그런 유의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이 진정으로 겸손한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당신이 그에게 했던 말에 진심 어린 관심을 두는 친절하고 명랑하고 지적인 친구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를 싫어한다면 그것은 인생을 그렇게 쉽게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당신이 조금은 부러워하고 질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 그는 겸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