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을 보며
먼동이 트는 새벽이 되면
금강은 하루에 몸을 푼다.
계룡산도 깨어나 기지개를 피고
공산성은 곱게 화장을 한다.
웅진에서 사비성까지
살아 숨 쉬는 금강은
오늘도 변함없이 흐른다.
아시아를 호령하던 백제의 전설을 싣고서 …<하략>…
-유병학의 <금강을 보며>에서-
송별 만찬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한겨울이라서 오가는 이가 아무도 없고 불빛마저 사라진 적막강산이다. 어두침침한 방에 홀로 뒤척이다가 전등불을 켰다. 새로운 임지에서 보내온 취임사가 책상 위에 놓여있다. 호기심에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 보았으나 마뜩잖다. 조상이 남겨준 훌륭한 유산을 잊은 채 인근 도시의 발전상을 부러워하는 모습이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켜고 검색하다가 공주의 정체성을 잘 그린 유병학 시인의 <금강을 보며>라는 시를 발견했다.
<금강을 보며>라는 시구에서 공주시와 공주인의 기상을 엿볼 수 있었다. 역사 도시, 웅진 백제 시대의 수도였고 충청의 중심인 감영이 있던 곳이다. 자연풍광, 충청에서 제일 수려한 계룡산을 품고, 전북장수에서 발원하여 충북을 거쳐서 군산과 서천 사이로 흐르는 금강의 중심이다. 교육도시, 명함을 건네다 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집 건너 한집이 교장 선생님 댁이다. 공주 교육대학교와 공주 사범대학교가 있어서 훌륭한 교육자를 배출하였기 때문이다.
처음이라 조심스러웠다. 객지에서 온 사람이 주제넘게 이야기한다고 할까 봐 두려워서다. 동료들의 눈치를 살피며 운을 뗐다. 찬란한 백제문화가 살아서 숨 쉬는 고장에서 함께 일하게 되어 영광이라며 시구를 인용하여 선열의 기상을 되살려서 일하자고 당부했다. 내심 자긍심을 가지고 일해주기를 은근히 바랐다. 하나 혹자는 인근 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공주는 고도 보존 구역으로 묶여서 쇠락해 가고 있다고 하소연이다.
우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로망을 챙겼다. 도시의 힘은 접근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공주는 금강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서 도로가 사통팔달로 뻗어있다. 기존 도로에 접속도로를 편리하게 연결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호남 고속철도를 내면서 난데없이 산속에 공주역사를 만들어 놓았다. 누구를 위하여 만들었는지 따졌다. 백제권역을 아우르는 역이라고 애써 변명이나 공주인으로서는 수긍할 수 없다. 산속의 공주역사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어서 접근하는 도로망을 새로 정리하고 세종시와 연계하는 광역도로망 계획에 어렵사리 끼워 넣었다.
아울러 조상의 숨결이 묻어 있는 발자취를 샅샅이 보듬었다. 고도 원도심을 걷노라면 조상이 남긴 유적이나 유물이 부지기수다. 누구나 알고 있는 공산성, 송산리 고분 유적뿐만 아니라 제민천 골목마다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구두를 깨끗하게 닦으면 보기 좋듯 조상이 남겨놓은 흔적에 먼지를 털고 가지런히 정리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공산성과 마곡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받았다. 웬 젊은이가 투덜댄다. 박물관에 갔다가 송산리 고분에서 오르자, 건너편 공산성이 오라고 유혹하여 그곳에 가다가 황새바위에 붙잡혔단다. 해는 저물고 어둠이 내려앉아서 공산성을 둘러보지 못했다고 푸념이다. 석장리 구석기 유적 등 돌아볼 곳이 무수하다.
뭐니 뭐니 해도 시민이 행복해야 한다. 시민의 즐거움을 평생교육에서 길을 찾았다. 교육도시라 훌륭한 이들이 많다.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어지간히 애썼다. 평생교육은 학교 교육의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어서 삶의 질 높이는 유일한 길이다. 문해 교육은 물론, 지역의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으로 풀꽃 문학관에서 운영하는 시인학교, 임립 교수가 지도하는 임립미술관의 미술 강좌,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의 판소리 강좌 등 무궁무진하다. 금강 철교 변의 <금강을 보며>, 풀꽃 문학관의 <풀꽃> 시비도 세워져서 많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시아를 호령하던 백제인의 모습을 되찾고 싶었다. 백제는 한·중·일 문화교류의 매개자로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유일한 왕국이다. 삼국 간 얽혀있는 갈등을 실타래처럼 풀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교류 왕국 백제를 재현하고자 했다. 제63회 백제 문화제를 계기로 국무총리와 중·일대사를 참여케 하여 우호 교류 증진의 장을 마련했다. 한중간 사드 문제로 외교적 어려운 시기에 한중 지방정부 교류와 관광 협력 방안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하여 중국 정부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또한, 저명한 외신기자 방문, 이름있는 중·일 예술공연단을 초청하여 축제의 품격을 국제 수준으로 끌어 올려놓았다는 높은 평가에 고단함을 잊는다.
금강을 보며 소망해 본다. 아시아를 호령하던 유구한 역사 도시에 한 줄기의 희망이 내리쬐길 간구한다. 오늘따라 박동진 명창이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늘 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공주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인근 도시에서 가질 수 없는 소중한 역사 문화유산을 물려받았다. 지난 세기 산업 시대 한강의 기적을 서울 시민이 만들어 냈다면, 21세기 한류 문화의 시대, 금강의 기적을 공주시민이 만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