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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스크랩 생명을 만든 위대한 분자 가족...RNA 패밀리!
임광자 추천 0 조회 14 06.12.12 23: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금으로부터 38억 년 전.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곤 없던 황량한 대지 한 구석, 걸쭉한 갈색 액체가 고인 작은 웅덩이에서 의미심장한 사건이 일어났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인산 분자와 우연히 만들어진 염기분자가 만났다. 여기에 당(糖) 분자 하나가 더 결합해 새로운 분자 RNA(리보핵산)가 탄생했다. 그러나 당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

3억년이 지난 뒤 지구 반대편 곳곳에서 비슷하게 생긴 분자를 무수히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분자는 특이하게도 여럿이 모였을 때 자신과 똑같은 분자를 만드는 복제능력을 갖고 있었다. 원시 생명이 지구를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최초의 생체분자

최초의 생명은 어디에서 시작했을까. 한때 많은 과학자들은 ‘유전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DNA야말로 최초의 생체분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RNA에서 생명이 시작됐다는 가설이 더 큰 지지를 받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예가 1983년 테트라히네마(Tetrahynema)란 작은 벌레에서 발견된 ‘리보자임’(ribozyme)이다. 리보오스(ribose)에 효소를 뜻하는 ‘엔자임’(enzyme)을 합성한 단어다.

오늘날 모든 RNA는 자신을 복제할 때 효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리보자임만은 다른 도움 없이도 스스로를 자르고 붙일 수 있다. 만약 여기에 자신을 복제하는 능력이 갖춰지면, 이론적으로는 다양한 형태로 끝없이 퍼져나갈 수 있다.

리보자임은 복제 능력이 있을까. 지난 2001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화이트헤드연구소 존스턴 박사팀은 인공 합성한 리보자임을 이용해 어떤 RNA든 염기서열 14개 길이까지 정확히 복제하는데 성공했다. 성공률도 98.5%로 매우 높았다. 이 사실은 단백질이 존재하지 않았던 먼 옛날, RNA가 효소의 기능도 수행했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외가닥인 RNA는 쉽게 잘려 분해되기 때문에 더 안정한 분자가 필요했다. 같은 핵산 가족인 DNA는 두 가닥이 서로 단단히 결합하고 있어 화학적 안정성이 훨씬 뛰어났다. RNA는 DNA와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효소의 도움을 받으면 자신의 정보를 DNA로 옮길 수 있다. 실제로 에이즈(AIDS) 바이러스는 RNA를 이용해 DNA를 합성할 수 있다.


돌연변이가 만든 RNA 패밀리

시간이 흘러 유전정보 저장 기능을 DNA에게 넘겨준 RNA는 새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RNA는 DNA보다 불안정해 돌연변이가 자주 일어났지만, 그만큼 진화 속도가 더 빨라서 많은 변종이 태어날 수 있었다. 새롭고 유익한 기능을 가진 RNA는 곧 세포에서 안정된 자리를 차지했다.
먼저 단백질을 합성하는 rRNA(ribosomal RNA)가 나타났다. 세포 내의 리보솜(ribosome)이란 소기관에서 발견되는 rRNA는 아미노산 분자를 사슬처럼 엮어서 효소를 비롯한 여러 유용한 단백질을 만들어 바쳤다. 이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뒤를 이어 여러 RNA 가족이 세포 기능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아미노산을 하나씩 끌고 와 단백질 공장인 리보솜에 바치는 운반자 노릇을 자청한 tRNA(transfer RNA)도 덩달아 크게 번창했다. tRNA는 독특한 3개의 고리와 함께 아미노산과 결합하는 부분을 갖고 있다.

그러나 RNA의 대부분(95%)은 주인공의 지위를 잃고 DNA에 저장된 유전정보를 운반하는 전령(messenger RNA, mRNA)으로 전락했다. mRNA가 유전정보를 핵 밖으로 싣고 나오면, 이를 rRNA와 효소가 읽어 들인다. 이 정보에 따라 tRNA의 도움을 받아서 아미노산을 한 줄로 길게 엮으면 세포가 원하는 여러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

병상에서 신음하고 있는 남아프리카 에이즈(AIDS) 환자. 에이즈는 RNA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대표적인 질병이다.
RNA 가족들 중 가장 긴 것은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mRNA다. 세포 안에는 염기서열이 수천 개에 이르는 큰 mRNA도 많다. mRNA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지만(coding), 나머지 RNA는 유전정보를 저장하지 않으며(non-coding) 각자 고유한 기능을 수행한다.

단국대 분자생물학과 정선주 교수는 “mRNA는 진화 초기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mRNA는 DNA의 유전정보를 단백질로 옮겨주는 역할만 하므로 핵산만으로 구성된 원시 생명에서는 필요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포의 핵심 기능을 맡다가 손자뻘 RNA들에게 할 일을 뺏긴 원시 리보자임은 조금씩 설 자리를 잃고 오늘날 일부 종에서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RNA 가족은 ‘대표 3인방’이라 할 mRNA, rRNA, tRNA 외에도 여러 식구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은 mRNA, rRNA, tRNA 3인방이 유전정보를 단백질로 만드는 일에 묵묵히 종사하는 동안 이 과정을 돕거나 외부의 적과 싸우는데 앞장선다.


단결해서 침입자 막는다

최근 연구가 활발한 마이크로(micro)RNA가 좋은 예다. 20~25개 염기서열로 이뤄진 작은 RNA 조각으로, 수백 종에 이르며 세포 곳곳에서 유전정보 발현을 조절하는 작은 난쟁이 같은 존재다.
마이크로RNA는 바이러스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프랑스 식물분자생물학연구소 샤를-앙리 르셀리에 박사팀은 마이크로RNA가 사람 세포에서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지난해 4월 ‘사이언스’에 발표했고, 반대로 지난해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립대 도널드 가넴 교수팀은 인체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게 도와주는 바이러스의 마이크로RNA를 발견했다.

정선주 교수는 “침입자인 바이러스와 이를 막는 마이크로RNA는 서로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공진화(co-evolution)를 거듭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RNA와 닮은 si(small interfering)RNA도 비슷한 역할을 담당한다.

tRNA의 3차원 구조(왼쪽)와 이를 세계 최초로 밝혀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김성호 교수(오른쪽).
어떤 RNA는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 핵 안에서 발견되는 작은 RNA 조각인 sn(small nuclear)RNA는 RNA 집안의 가장인 mRNA가 본업인 유전정보 전달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출근 전에 옷매무새를 바로잡아 주는’ 스플라이싱(splicing) 과정을 돕는다. mRNA의 유전정보가 단백질로 번역되기 전에 꼭 필요한 단계다.

sno(small nucleolar)RNA도 다른 RNA를 도와주는 조연급 RNA다. 인(nucleolus)에서 발견되며 rRNA와 snRNA가 제 모습을 갖추는데 한몫을 담당한다.

RNA 가족의 말썽꾼, 바이로이드(viroid)는 얌전한 다른 RNA들과 달리 병을 일으키는 침입자 RNA다. 바이러스가 RNA 또는 DNA와 이를 둘러싼 단백질 껍질로 이뤄졌다면, 바이로이드는 껍질 없이 RNA만으로 이뤄졌으며 바이러스처럼 숙주 세포를 이용해 자신을 복제한다. 주로 식물에서만 병을 일으키며, 생명 활동을 영위하는 것들 중 가장 작은 존재다. 모든 RNA가 세포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바이로이드는 독립적인 병원체로 행동하는 특이종이다.


RNA 패밀리 호구조사

RNA 가족의 총 호구 수는 얼마나 될까? 정답은 ‘며느리도 모른다’. 바이러스의 일종인 박테리오파지에만 있는 pRNA, 세균에서만 발견되는 tmRNA 등 새로운 RNA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에도 새로운 RNA가 발견됐다. 미국 뉴욕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의 그렉 하논 박사팀이 쥐의 정소에서 마이크로RNA와 siRNA보다 약간 긴 새로운 RNA를 발견했다. 이 RNA는 쥐 정소에서 만들어지는 ‘피위’(Piwi) 단백질과 결합하기 때문에 piRNA(Piwi-interacting RNA)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RNA의 기능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망가질 경우 정자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일부 마이크로RNA를 비롯한 RNA 가족의 상당수는 정체가 베일에 싸여있다. 이들 중 일부는 세포 속에서 하는 일 없이 그저 놀고먹는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고(어쩌면 우리가 그 기능을 모를 수도 있다), 마이크로RNA처럼 암 예방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과학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유망주도 있다.

뇌가 스펀지처럼 퇴화해 운동능력을 상실하는 유전질환인 ‘카나반(Canavan)병’에 걸린 어린이. RNA 치료는 많은 유전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엔 RNA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앨나일램, 앰비온, 바이오니아 등 많은 국내외 제약회사들이 세포에 해를 끼치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siRNA를 이용해 유전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콜레스테롤 증가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siRNA를 처리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식이다. RNA를 이용해 치료할 수 있는 범위는 암에서 간염, 신경질환, 비만까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차세대 치료제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앱타머(aptamer)도 RNA를 이용했다. RNA를 무작위로 합성해서 1015개 정도의 RNA 집단을 만든 다음 핵산, 당, 단백질 등과 서로 잘 결합하는 것만 골라내 복제한 핵산이다.

외부 침입자(항원)의 특징을 기억했다가 다시 침입했을 때 공격하는 항체와 비슷하다. 암세포를 인지하는 앱타머에 항암제를 실은 나노입자를 붙이면 원하는 암세포를 정확히 찾아가 공격하는 ‘나노쉘(nanoshell) 폭탄’을 만들 수 있다.

최근 미국 제약회사 알케믹스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로버트 랭거 박사팀, 그리고 단국대 정선주 교수팀 등이 노인성 황반, 암 등 여러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앱타머를 연구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RNA 치료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RNA 치료는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아 안전하며 바이러스성, 유전성 질병처럼 치료법이 제한된 분야에서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 진화의 역사를 간직한 RNA를 들여다보면 의학의 미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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