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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인론 총서 [☆정진규 시읽기 本色☆]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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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하 외 [정진규 시읽기 '本色']
한국현대시인론 총서 01 / 동학사(2013.07.10) / 값 4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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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鄭鎭圭
정효구 교수가 나와 동행한 그의 논저『정진규의 시와 시론 연구(푸른사상사, 2005.5.20)』「책을 출간하면서」첫머리에서 <自生의, 自發의, 自律의, 自遊의, 自然의, 삶을 살고 싶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와 같은 그의 지표와도 나는 그와 동반자였다. <이 세속 사회에서 이와 같은 소망을 품는다는 것이 무모한 일이자 사치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내 시업의 역장이었다 하겠다. 나 스스로를 그의 지적을 빌어 수습하면서 또한 이번의 책, 나를 짚어 준 많은 분들의 귀한 글들을 통해 다시 확인 정리한다. 내 本色을 탄로 시키는 아픈 기회를 마련, 남은 내 삶과 시의 歷程을 그나마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런 책을 갖는다는 것이 일면 면구스럽기도 하고 부족한 나로서는 일면 이런 기회를 통해 自醒의 시간을 갖는 것이어서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때로 我慢에 빠질 수도 있고 때로는 좌절과 소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나를 냉정하게 짚을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내 시와 생을 운영하는 시간들을 진중한 하루하루로 아껴 써야 할 때이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또한 가끔씩은 나를 읽는 독자와 연구자를 위해서도 이런 집약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없지도 않다.
이 책의 표제『本色』은 내 시집『本色(천년의 시작,2004.6.15)』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본색True Beinge』의 해제가 될까하여 이 책의 머리에 실린 허만하 시시인의「정진규의 시적 사유 - 정진규의 시론집」『질문과 과녁』을 중심으로」의 한 대목을 그대로 여기 옮긴다.
<상투적 표현을 벗어나려는 그의 치열한 연마의 흔적은 활자 뒤에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는다. 그의 산문은 흐르면서 調息을 하고 있다. 그것은 禪의 숨고르기가 아니라, 대상의 숨결에 자신의 숨결을 포개는 정진규 득의의 호흡법이다. 그 순간 그는 우주의 機微를 잡는 <몸>이 된 것이다. 그의 전진이 남기는 물결무늬를 그는 그의 글에서 말끔히 지운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의 은폐를 감지한다. 그때 저자와 독자는 인격의 숨바꼭질이 된다.>
이 대목을 읽고 나는 나의 시를 운용하는 용기와 발견을 크게 얻엇다.
끝으로 이 책을 엮는 동안 많은 분들께 큰 신세를 입었다. 무엇보다 첫 산문집『질문과 과녁(동학사, 2003.10.30)』을 엮어주신 畏友 柳在榮 雅兄께 이번에도 크게 기대었었음을 염치없어하고 있다. 지난 해 겨울 내내 아내 茶史에게도 짐을 지웠다. 원고의 전량을 컴퓨터에 입력은 물론 교정까지 그의 손을 거쳤다. 은근히 나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기화가 되기를 바란 바 있으니 또한 염치 없다. 이해존 시인이 또한 편집 송고 등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모두 감사를 드린다. 남은 시간 동안 탄력과 긴장을 잃지 않고 시업에 충실할 것을 약속한다.
2013년 5월 13일
癸巳年 초여름
夕佳軒에서 䌹山 鄭鎭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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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규 시읽기 本色] 한국현대시인론총서 01
■ 목 차
제1부 潑墨思考
•정진규의 시적 사유 - 정진규 시론집《질문과 과녁》을 중심으로 / 허만하
•일색一色의 상상력 혹은 무행위無行爲의 꿈 - 생가生家에서 석가헌夕佳軒에 이르기까지 / 정효규
•신체의 신비 / 김인환
•romanticism+realism=R - 정진규론 / 이혜원
•발묵潑墨과 설채設彩의 향기, 혹은 회사후소繪事後素의 시학 / 오태환
•밀고 당기는 몸과 산문시의 리듬 - 정진류론 / 이경호
•육체와 현대성 - 정진규의《몸詩》에 대하여 / 김상환
•우주의 가락을 관하는 초끈 상상력 / 엄경희
•우주만물과 교접하는 화음에 이른 사업詩業 반세기 / 이경철
•정진규의 몸詩 : 고백체와 실체시와 우주율의 리듬 / 변의수
•발견과 깨달음의 시학 - 정진규의 시세계 / 이재복
•정갈한 영혼을 찾아서 / 최동호
제2부 肉體. 生態
•생활과 시 - 정진규의「일상」과 김수영의 「구슬픈 육체」/ 허만하
•정진규의 시세계 - 비워내기 시론, 그 삶의 인식에 대하여 / 성기옥
•산문시의 정신 / 맹문재
•시인은 왜 발 아래 허공을 두는가 - 정진규의 시 / 함돈균
•생태학적 존재론 / 엄경희
•몸의 신비 상처의꽃 / 남진우
•둥근 생명의 원형, 환한 등불 - 정진규 시집,『알詩』에 관한 독후감 / 이장욱
•목숨과 몸과 밥, 시의 본색 / 이경수
•신성함과 소통하는 몸 - 정진규 시집,『알詩』 / 김정란
•실존의 기표로서의 몸 - 정진규 시집『껍질』 / 엄경희
•실물實物을 눈으로 만지는 공감각共感覺- 정진규『공기는 내 사랑』/ 김영희
•따뜻한 상징 - 정진규론 / 고봉준
•나는 내가 없는 곳에서 내통한다 - 정진규『본색本色』/ 박진
• ‘몸’만들기 도전기 - 정진규『몸詩』이후 - 김종훈
•절대경험의 현상형상을 위한 마음 다스리기 - 정진규論 / 송기한
•신성한 해체 - 정진규『몸詩』/ 진정구
•해인불을 위하여 - 정진규 시집,『알詩』의 시세계 / 반경환
제3부 談論
∥정진규 자술 시론∥
•『몸詩』에 대하여 - 주제는 내가 아니라 몸이다
•몸의 말
•알다/좋아하다/즐기다
•만들 것인가, 발견할 것인가
•시의 緣起本性에 대하여
•律呂의 세계로 떠나며
•시마詩魔에 대하여
•律呂
•일상 속에서
•耳順의 가을
∥담론∥
•느렸지만 시인의 눈길은 따뜻하고 팽팽했다 / 김광일
•자술 시론 / 산문체. 몸詩, 알詩, 律呂 / 정진규
•몸詩, 알詩 그리고 律呂로
•우주의 목소리를 몸으로 듣다 - 律呂 / 손현숙
•은유의 실체와 우주의 소리 律呂 / 서안나
•자술담론 / 화살과 과녁이 순간을 통과했다 / 정진규
제3부 律呂
•모슬포 바람 / 김춘수
•시의 깊이란 무엇인가 / 엄경희
•신화시대 이후의 은유 - 정진규의 『알詩』/ 박현수
•尋劍堂에서 / 정진규
•보이든지 보일듯하면 시가 된다 / 최휘웅
•정진규의「율여집56. 노인헌화가」/ 정진규
•늙은 역사의 간섭들 / 김백겸
•律呂, 충만의 속도를 화알짝 하늘 햇살로 열어젖히는 / 임동확
•언어와 우주의 그늘에 덴 듯한 내통 -「새는 게 상책上策이다」/ 오태환
시조시인이 읽은 정진규의 시 작품론
•묘살이와 나의 시 / 정진규
•먹춤과 4음보 그리고 율려의 시학詩學 / 유재영
•정진규 시집 律呂集 - 사물들의 큰 언니 / 김일연
•고금고금의 종획 혹은 미적 통섭 / 정수자
*정진규 문학연보
*필자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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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규 시 읽기 '본색本色' ■
정진규의 시적 사유
― 정진규 시론집 『질문과 과녁』을 중심으로
허만하(시인)
1
재란 과거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역사의 끝이다. 그러면서도 현재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된다. 시작과 끝을 하나로 맺어주는 연결고리로서의 현재는 살아 있는 시간이다. 이런 현재는
영원을 머금고 있다. 불가에서 삼세일제三世一際라 하는 것도 이런 현재의 한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현재를 주체적으로 인식한 정진규는 그것을 <몸>이라 이름 지었다. (제9시집『몸詩』,1995) 그것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발견한 ‘특권적 순간(mo-ment privilegie)’에 비길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와 미래, 삶과 죽음, 현실과 상상이 벌써 모순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정신의 한 순간을 프루스트는 그렇게 이름 지었다.
역사적 의식이란 근원적으로 현재에 의해서 규정된다. 역사의 시작은 흔히 과거에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역사의 시작은 오히려 현재에 있다. 정진규는 유일한 시간 속의 현재와 영원 속의 현재가 이질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이 두 현재가 겹치는 순간을 주체적으로 깨닫고 그것을 <몸> 이라 이름 지은 것으로 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몸은 시간 속의 우리 존재와 영원 속의 우리 존재를 함께 지니고 있는 실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 독창적인 시적 개념은 그 내용 면에서도 관심을 끌었으나 우리 시사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시를 매개로 한 자아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접근 방법으로도 비상한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문학적 사건으로 기억한다. 정진규의 몸은 메를로 퐁티가 관심을 두었던 신체와 비교되기도 했으나. 전자가 시간 개념(인간의 유한성)과 밀접히 관련된 절대적 인식인 데 반해서 후자는 로고스에 바탕을 둔 유럽의 이분법적 세계인식에 바탕을 둔 개념을 벗어나려는 새로운 현상학적 입장에서 “신체는 세계내 존재(ere au monde)”(『세계의 산문』)라 인식한 점에서 양자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그 무렵의 내 소감이었다. 정진규의 몸은 자연적 세계를 초월해 있는 총체로서 육체이면서 동시에 정신인 통일체로서의 목숨을 말하는 것으로 나는 이해하고 그의 작품을 읽었다. 시와 철학의 이러한 사귐은 한국 시의 역사에서는 생소한 것이었지만 정진규는 자기의 시 세계를 외로움 속에서 집요하게 전개해 나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과묵했다. 시로써만 말할 뿐 사변적인 논의를 삼가는 자기 절제를 보이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내가 기댈 곳은 몸 밖에 없다/몸은 나의 결핍이며 충만이다” 그는 다짐처럼 그렇게 말했었다.
우리 시단에서 그의 몸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뒤따르려는 기운이 감도는 무렵 그는 시간적 차원에서 파악한 몸을 다시 윤리적 공간으로 확장시킨 <알>(몸이 추구하는 우주적 완결성)을 제시했다. 그의 사유가 지향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정진규의 시적 자유로서는 자연스러운 길이었다. 주체적 실존에 있어서는 가능한 자기와 현실적인 자기 사이에는 단절이 있다. 이 단절을 키에르케고르는 순간이라 했다. 정진규의 단절은 심각한 표정이 없는 그의 일상 속에서도 여상스럽게 있다. “그때의 아득했던 소외와 단절을 잊지 못한다”고(「4.몸의 말」「질문과 과녁」)했던 상황의 하나를 그의 시작품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글씨를 모르는 대낮이 마당까지 기어나온 칡덩굴과 칡순들과 한 그루 목백일홍木百日紅의 붉은 꽃잎들과 그들의 혀들과 맨살로 몸 부비고 있다가 글씨를 아는 내가 모자까지 쓰고 거기에 이르자 화들짝 놀라 한 줄금 소나기로 몸을 가리고 여름숲 속으로 숨어들었다 매우 빨랐으나 뺑소니라는 말은 가당치 않았다 상스러웠다 그런 말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없었다 들칸 건 나였다 이르지 못했다 미수未遂에 그쳤다
-「미수未遂 - 알詩 6」『알詩』, 세계사, 1997
실존으로서의 자기 현전의 ‘지금’에 영원이 들어섬으로 현재가 확립될 때 비로소 과거와 미래가 이어지고 새로움이 태동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영원과 동질적인 이러한 순간을 <눈의 번득임>이라 표현했다. 줄곧 외로움 속에서 시적 사유를 전개해 왔던 시인 정진규가 ‘짧은 시론’들을 간추려 시론집『질문과 과녁』(동학사)를 펴냈다. 이 시론집은 체계의 허구를 미리 터득한 시인의 저서답게 61장의 단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단장부터 먼저 읽어도 제대로의 완결성을 만져 볼 수 있는 구슬들이다. 저마다 독립된 제목을 가진 소이다. 굳이 꿰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될 위험이 있는 체계는 이 저서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격조 높은 산문집『질문과 과녁』을 읽으면서 그의 질문은 과녁에 꽃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시위를 떠나지 않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근거는 그의 작품은 질문이 없는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답이 먼저 있고 질문이 이를 뒤따르는 아름다운 함정이 이 산문집은 가지고 있다. 그것을 사람들은 흔히 마법이라 부른다. 그의 독창적인 문체는 벼랑의 그것처럼 그렇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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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의 시론『잘문과 과녁』에서 시를 떠받치고 있는 형이상학적 논의, 또는 일관성을 보이는 체제를 기대하는 사람은 가볍게 놀랄 것이다. 그이 글은 그런 담론의 피안에, 그의 몸처럼 그의 알처럼, 시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11권의 시집을 가진, 시력 43년에 이른 그가 최초로 펴낸 시론『질문과 과녁』은 시적 산문에 대한 시론이다. 딜타이가 그이 생철학에서 말하는 ‘생을 생 자체에서 이해하는’ 이라는 말처럼 생을 시와 동의어로 아는 정진규는 철두철미 시를 시 자체에서 이해하고 있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는 시를 위한 정신적 자양을 끊임없이 시의 영역 안으로 걷어 들이기는 하지만 바깥으로 발을 내밀지는 않는다. 그에게 외도는 없다. 그의 <몸>도 건조한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 집요하게 펼친 시적 상상력의 적분이 낳은 성취란 사실을 이번 저서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 이 저서는 오직 경험(읽기)+사색+쓰기의 소산이다. 다른 협잡의 개입이 있을 수 없는 맑은 윗물의 순정만으로 있기 위하여 그는 오래 기다렸다. 기다렸다기보다 자각적으로 시간을 먹인 것 같다. 한국 현대시가 생기를 얻어 꿈틀거리던 50년대 후반부터 작금에 이르는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시간을 먹인 것이다. 그의 산문이 종가집 대청마룻결 같은 은은한 광택을 빚고 있는 것도 끊임없는 연격練格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결을 다지는 연적을 시의 지상의 가치로 쳤던 백낙천白樂天은 참된 시인의 시는 맑고[雅〕바르다[正〕했지만, 그것이 정진규의 시문이 가지는 품성이 아니겠는가. 그의 산문이 일인칭 단수 주격을 보이는 것은 글에 스며 있는 그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이 저서는 국경과 시대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그의 독서 경험을 바탕에 깔고 있다. 무수한 내가 하나의 내가 되는 과정을 얼비쳐 주기도 한다. 그는 “좋은 글들은 유형적인, 혹은 무형적인 <引用>의 형태로 나를 포장하거나 스스로 정신의 감옥을 짓게 한다. 그 한 대목만으로도 나는 벌써 억압되고 있던 거였다”(48『질문과 과녁』). 정진규는 그의 감성적 사유의 전개를 위하여 그의 생리인 독서로부터도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가 그 대목들을 어김없이 적어 두는 이유는 그것들을 “확실하게 흔적도 없이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술회하고 있다. 그는 정직하다. 이 대목은 그의 완벽한 소화력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산문집에 원형질처럼 서려 있는 그의 광활한, 그리고 탐욕스런 읽기의 결과가 자동사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도 된다. 모든 텍스트는 인용의 모자이크로 구축되어 있다. “텍스트는 모두, 또 다른 한 텍스트를 흡수 변형한 것이다.”(기호의 해체학-세메오티케1)라는 크리스테바의 말은 그와는 이미 무관하다. 그는 벌써 크리스케바의 이 말도 확실하게 흔적도 없이 극복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적 풍요豊饒를 바탕으로 그는 쓰기에 들어가는 것이 이 시론집을 우리에게 귀띔해 주고 있다. 그의 몸은 시를 살고 있다. 우리가 그의 산문의 행간에서 읽은 것은 발레리적 엄격성을 위하여 모든 불순한 것을 떨쳐버린 한 장의 타블라 라사로 있는 그가 백지 위에 무엇을 쓰고 있는 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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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형식을 편애했던 바르트는 카뮈의『이방인』에 감탄하면서 “문체의 이상적인 부재라 할 수 있는 부재의 문체”라는 적극적인 평을 하였다. 현대에 접어들어 문체(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희박해지고 있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글씨(개성적인 인격)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과 부합해 있는 것 같다. 문체라는 관념은 역사적으로 인격에 대한 인식과 함께 소장消長을 거듭해온 것 같다. 고대에 있어서는 글씨는 비인간적인 것이었지만 근대에 이르러 개성적인 성격의 가치가 발견되고 평가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다시 글씨에 대한 이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활자가 의사 전달의 민첩한 도구로 정착했기 때문이다.(이번『질문과 과녁』의「19. 컴맹의 아름다움」에도 비슷한 저자의 견해가 얼비치고 있다) 우리들 둘레의 시(글)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주로 의미(시니피에)만이 다루어지고 표현(시니피앙)의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가 자취를 감추고 있는 사실도 조급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정진규의 첫 시론집『질문과 과녁』의 산문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의 단장을 읽으면서 그의 문체가 가지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해맑은 삼투압으로 우리들 가슴에 스며드는 희열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단장 형식이 억지로 다듬고 간추린 현학적 체계보다 정직하고 선명한 표현기법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중후한 톤 속에, 비가 내리는 날 먹을 거는(먹빛이 개인 날보다 맑아진다 했다) 섬세한 정신을 머금고 있는 정진규의 문체는 시적이다. 그것은 파스칼의 심정적 변증법, 니체의 역동적이고 고양된 톤, 바르트의 번득이는 재기, 치오랑의 주관적 서정성과는 또 다른 자리에서 아포리즘 문학의 새로운 결을 보여주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산문은 지금 열거한 사색가 또는 문인들과는 달리 주제를 전적으로 시에 집중시키고 있는 시인의 글이다. 백년에 이르는 우리 시의 역사가 이런 수렴收斂을 가진 단장 문학을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의 글은 비를 맞고 있는 돌이 머금고 있는 은은한 빛을 뿜고 있다. 그것은 그의 동양적 교양(가문의 바탕이기도 하려니와 조지훈 시인의 훈도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이 밖으로 배어난 것인지, 그의 몸이 가지는 성질의 발현인지 또 이런 것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우러난 것인지는 따질 일이 못된다. 그의 문장이 풍기는 향기를 멀리서 맡으면 될 일이다. 따지지 말라. 그의 글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의 시론은 오래도록 우리들 사유를 유폐해 온 이성중심주의(logocentrism)와는 아득히 떨어져 있는 좌표에 독자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것이 포스트모던에 뿌리가 닿아 있는 것인지 또는 그의 몸에 배에 있는 감성적 직관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는 보편적 가치보다 개별적인 가치에 더 따뜻한 눈길을 주는 것을 이번 저서에서 역력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산문집이 수록하고 있는 61편의 글은 육십 하나의 서로 다른 주제와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그가 다루는 주제의 스펙트럼은 넓다. 인용된 시의 범위만 하더라도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다양한 분포를 보이는 범례들이다. 그가 편한 산시刪詩의 수준이라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인용된 시를 읽으며 정진규의 정체를 잡아 볼 수 있었다. 그는 이 산문집의 저자이기 이전에 시를 참되게 사랑하는 가장 알뜰하고도 자상한 독자라는 사실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독자라는 사실은 그가 밟고 있는 다음과 같은 내밀한 수순으로 명백해진다. 그는 이런 절차를 명문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저서는 그것을 문장 이상으로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먼저 그는 그가 접하는 시작품에 순종한다. 다음에 숙련된 조련사처럼 작품을 그에게 순종시킨다. 그리고는 다시 그는 작품에 공손하게 순종한다. 이런 그를 시의 독자라 부르는 것은 불손不遜도 아니고 반어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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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가 우리 앞에 제시한 것은 감성적 사유의 길이다. 그는 관념을 수사적으로 사유할 줄 아는 드문 시인이다. 그는 시에 대한 이념을 자기의 몸으로 확인하고 성격화하고 내적으로 필연화하고 있다. 그는 단순한 언어의 장인이 아니라 자각적이고 방법적인 장인이다.
정진규의 표현이 가지는 독특한 스타일은 다듬고 다듬은 문체가 가지는 결의 아름다움에 더하여 이따금 심술처럼 문법을 비틀어 놓은 자유로운 운신이 엮어내는 활달한 문맥과 연관되어 있다. 아울러 그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침묵의 여백(나는 그것을 뜸이라 이름 짓겠다)이 이에 어울려 있다. 앞에서 인용한 그의 시「未遂」에서 보다시피, 정진규의 시는 고유한 리듬을 가지고 있다. 그 가락은 그의 산문에서도 여실하다. 그의 문장에서 소리와 뜸은 반전하고 또 자리를 바꾼다. 소리와 뜸이 엇갈리며 만드는 절묘한 틈새는 서로 호응하며 그의 문체를 안에서 지탱하는 가락이 되어 있다. 나는 그의 산문시가 가지는 미학의 비밀도 이런 음악성에 숨어 있다고 본다. 해묵은 행갈이의 음악성과는 그 차원이 다른 열려 있는 가락이다. 그것이 자연 발생적인 것인지 또는 그의 정신의 치밀성이 만든 것인지는 이 산문집을 읽은 나의 숙제가 된다. 그의 문체가 가지는 직접적인 아름다움의 구조를 깨닫는 데는 경산시실絅山詩室에서 먹을 갈고 있는 그의 시간의 열 배의 시간을 들여야 할 것 같다. 그의 산문에 그가 이따금 삽입하는 한자 또한 절묘하다.(단순히 같은 소리의 다른 단어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한 경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함의도 그렇거니와 문장에 생기를 불어넣은 엑센트 역할을 하는 그 단어에 문장의 맥이 응집해 있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 한자를 만날 때, 나는 그것이 이 시인이 내려치는 죽비 소리인 것을 알고 공연히 즐거워진다. 어떤 이는 그것 하나만 보고도 그가 가지는 육화된 한문 지식의 넓이와 깊이뿐만이 아니라 산문이 가지는 호흡에 대한 창조적 이해를 지적했다. 그의 시도 그렇거니와 그의 산문은 독자의 숨결을 바깥에서 조율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가 글에서 뜸을 들이는 시점은 정밀한 설계도처럼 계산되어 있다. 이 음악성을 읽어내지 못하는 범용한 눈들 가운데서 그의 시와 문장은 의롭게 의젓하다. 이번 산문집 언어 공간에 자욱한 향내는 촛대 바위 위에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의 송진내 같은 것이다. 단단한 바위에서 물을 빨아올리며 우듬지 바늘잎 끝에 이슬을 만들어 예감처럼 비를 마중하고 있는 한 그루 소나무의 몸냄새다.(「9. 만들 것인가 발견할 것인가」). 상투적인 표현을 벗어나려는 그의 치열한 연마의 흔적은 활자 뒤에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는다. 그의 산문은 흐르면서 조식調息을 하고 있다. 그것은 선禪의 숨고르기가 아니라, 대상의 숨결에 자신의 숨결을 포개는 정진규 득의의 호흡법이다. 그 순간 그는 우주의 기미機微를 잡는 <몸>이 되는 것이다. 그의 정진이 남기는 물결무늬를 그는 그의 글에서 말끔히 지운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 은폐를 감지한다. 그때 저자와 독자는 인격의 숨바꼭질이 된다. 그런 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 이번 산문집이 다지고 다진 여백이다. 그의 서법이 경산체絅山體라 일컬어지는 것처럼 그의 산문도 이미 문체의 한 봉우리를 이루고 있음을 이번 산문집에서 우리들은 반갑게 확인하게 된다. 세상에는 이름 없이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되는 것이 있다. 세상에는 이름 없이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되는 것이다. 정진규의 산문 스타일도 그런 것 가운데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책장 눕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마지막 한 장에 이르기 전에 그의 문체가 친숙한 이웃이 되어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 것을 두고 우리는 공감이라 부른다.
개성적인 아름다움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문법을 반역하는 몸짓으로 정제된 말의 틀을 뛰어넘는 사람이 시인이다. 시인이 글이 봉사라는 것은 분석 이전의 한 덩어리 전체성이다. 그것을 에티몽(정신의 원체)라 이름 지었던 이가 유럽에 있었다. 정진규의 <몸>이 바로 분석 이전의 전체성이란 사실을 시론『질문과 과녁』을 읽고 난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언어 이전의 존재를 만나는 일순의 섬광을 경기도 우이산牛耳山 기슭에 살고 있는 시인은 그렇게 이름 지은 것 같다. 틀림없다. 내가 좋아하는 메를로 퐁티의 야생野生이 그의 <몸> 속에 깨끗하게 살아 있었다. 사람의 눈길을 모르는 광활한 초원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림은 이번 산문집『질문과 과녁』의 시퍼럼 깊이에 몸을 던지는 모든 독자를 위한 것이다.
정진규의 첫 산문집『질문과 과녁』이 우리 시와 시론의 역사에 있어서 희귀한 이정표가 되어 있는 영광스러운 부하負荷를 이 책 자신이 이미 깨닫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한 권의 책이 느끼고 있는 떨림을 지금 나 자신의 전율로 확인하고 있다.
- 정진규 시집『本色』(천년의 시작,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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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규鄭鎭圭 문학연보
•1939년 경기도 안성 출생
•안성농업고등학교 졸업 후(1958) 고려대학교 문리과 대학 국문학과 입학 졸업(1964)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시「나팔抒情」)
•1963년부터 현재까지《현대시現代詩》동인으로활동
•1988년부터 현재까지 시전문 월간지《현대시학現代詩學》주간》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한국시인협회 상, 현대시학작품상, 월탄문학상, 공초문학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 불교문학상 이상시문학상 만해대상, 김삿갓문학상 등 수상
시집
•『마른 수수깡의 평화』(모음사,1965)
•『유한의 빗장』(예술세계사,1971)
•『들판의 비인집이로다』(교학사,1977)
•『매달려있음의 세상』(문학예술사,1979)
•『비어 있음의 충만을 위하여』(민족문학사,1983)
•『연필로 쓰기』(영언문화사,1984)
•『뼈에 대하여』(정음사,1986)
•『따뜻한 상징』(나남,1987. 문학선)
•『옹이에 대하여』(문학사상사,1989.자선시집)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문학세계사, 1990)
•『말씀의 춤을 위하여』(미래사,1991. 선집)
•『몸詩』(세계사,1994)
•『알詩』(세계사,1997)
•『도둑이 다녀가셨다』(세계사,2000)
•『絅山詩書-한국현대시 100인의 시』(현대시학,2002.10.14)
•『本色』(천년의 시작,2004)
•『껍질』(세계사,2007)
•『정진규 시선집』(책만드는집,2007.2.1 출간)
•『우리나라엔 풀밭이 많다』(시월,2008)
•『공기는 내 사랑』(책만든느집,2009)
•『율려집. 사물들의 큰언니』(책만드는집,2011)
• 육필시집『淸洌集』(지식을 만드는 지식,2012)
• 한국대표명시선100『빕을 멕이다,2012』
독일어번역시집
•『말씀의 춤(Tanz der Worte』(독일 프랑크푸르트 아벨라사에서 출간 100편 수록, 2005.12)
시선집
•문학선『따뜻한 상징(1987)』『옹이에 대하여(1989)』『말씀의 춤을 위하여(1991)』
시론집
•『한국현대시산고』(민족문화사,1983), 이상화편전『미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1981), 『질문과 과녁』(동학사,2003)
• 문학평론가 정효구 교수의 연구로『정진규의 시와 시론 연구』(푸른사상사, 2005.5.20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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