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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산책] 김법혜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의 표현이요,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또 한편으로는 지적·사회적 수준을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품위 있게 말을 하는 고매한 인격자가 적지 않지만 막말로 됨됨이의 밑천이 드러나는 사람도 많다.
특히 정치인의 ‘막말 사랑’은 유난스럽다. 수많은 한국말 가운데 선호하는 말 3개만 꼽으라면 어떤 어휘를 말할 것인가? 20여 년 전, 대학생들에게 선호하는 말과 싫어하는 말을 묻는 조사가 있었다. 당시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말 10위 안에는 남녀 불문하고 ‘사랑, 우정, 행복, 희망, 꿈, 믿음, 평화, 바다’가 선정되었다.
싫어하는 말로는 ‘죽음, 미움, 욕, 싸움, 거짓, 불행, 슬픔’이 있었다. 주목한 것은 여학생에게 선택받은 말은 ‘하늘, 가을, 별, 순수, 맑다’ 등이다. 이 말들은 흥미롭게도 2000년대 들어서며 전 세계인을 사로잡은 한류 드라마의 제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때 청춘이었던 대학생은 이제는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시간과 삶의 공간이 바뀐 그들에게 만약 같은 질문을 한다면 답이 달라졌을까? 말을 두고 ‘마음 밭에 뿌려지는 씨앗’이라 한다. 말에는 그 말을 쓰는 사람의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다.
아이가 바른말을 쓰게 하려는 부모의 마음도 여기에 있다. 고유어는 한 나라의 문화와 꼭 닮았다. 만약 사랑하면서 표현하지 않는다면 ‘사랑한다.’는 말이 존재할까? 한 예로 일본어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한자어로는 있으나 고유어로는 없다고 한다.
한 일본 문화 전문가의 해석에 따르면, ‘진정한 사랑이란 눈앞에서 하는 고백이 아니라 그 사람 뒤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일본의 전통 정서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랑에 대한 고유어가 그 나라 말에 있을 리가 없다.
그 반례로 에스키모인들의 언어생활을 살펴보자면 눈(雪)이란 말은 무려 스물여덟 가지나 된다고 한다. 사박사박 내리는 눈, 진눈깨비, 함박눈 등등 그들이 눈을 나누는 말은 오직 그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에스키모인들의 언어생활은 스물여덟 가지 눈(雪)을 빼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우리말의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는 어떻게 다를까? 한국인 대부분은 ‘감사합니다.’가 좀 더 공손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감사’가 한자어라서 격식에 잘 맞는다며, 심지어 아는 외국인에게 ‘고맙습니다’를 쓰면 결례라고 가르치는 이도 있다.
과연 근거가 있는 말일까? ‘고맙습니다’는 전 국민이 다 보는 저녁 뉴스를 마치며 아나운서가 공손하게 하는 인사말이다. 그 어원인 ‘고마’는 ‘공경(하다)’의 순우리말로, 억지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공경하는 마음을 담은 말이다.
고유어란 그 말을 쓰는 이들의 마음 밭에서 자란다는 또 하나의 증거다. ‘고맙습니다’라고 답하는 순우리말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말에는 우리의 체온이 있다. 최근 더불어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여러 차례 막말 논란을 빚었다.
2012년 새해의 사자성어로 ‘명박박명’을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미인박명(美人薄命)에 빗대 이명박 대통령에게 빨리 죽으라는 막말을 했다. 또 1998년 5월 김홍신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을 겨냥해 “공업용 미싱을 입에 드륵드륵 박아야 할 것”이라고 공격했다가 모욕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대통령에게 이렇게 저주의 막말을 퍼붓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막말은 정치혐오를 부추긴다. 독설을 들은 이의 내면을 무너뜨린다. 이처럼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는 모로코 속담도 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막말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는 이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흔히 정치인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줄이는 진통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근 더불어 민주당 김모 의원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가 국회에서 연기되자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GSGG’라는 욕설로 추정되는 페이스 북에 글을 썼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결국 그는 GSGG가 다른 뜻이라고 주장했지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궤변이라는 반응이 높았다.
김모 의원은 박 의장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고, 박 의장은 사과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자신의 뜻대로 법안이 처리되지 않았다고 국회의장에게 이런 욕설을 날리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품격과 양식에 반한 행동이며 조심할 필요는 있다.
‘실언’이라면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용인할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과 다름없다. 특히 정치인들의 막말은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징계나 심판이 따르지 않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아무튼 이번 일도 정치판에서 어물쩍 넘긴다면 의사당은 언제고 또다시 막말로 더럽혀질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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