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오랫동안 피워오면서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별로 없었다. 단지, 히말라야 등반을 위해 세 차례 정도 끊은 적은 있었지만 그건 일시적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이유가 이십대에는 친구들과 동질감을 이루기 위해서였던 것 같고, 군대에서는 싫건 좋건 단체로 행동해야 하는 구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제대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술도 담배도 늘었다.
선배와 후배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것이야 보통 직장인들의 애환이겠지만, 특히 내가 속한 386세대는 직장 상사가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단련된 선배들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일까지 해야 하냐고 버티는 신세대 후배들 사이에서 샌드위치 입장으로 술과 담배는 더 늘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산을 전문적으로 다니는 부류들은 술과 담배에 매우 관대한 편이다. 술은 몸에 안 좋은 기호품이라기보다는 강인한 체력에 대한 측정치이며 낭만이다. 술과 담배를 잘 못하면 선배들은 체력에 대한 의심은 물론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상한 인간으로 취급을 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었다.
1986년 봄에 히말라야 등반을 갔을 때, 산악계의 거장이신 고려대 OB의 김종호 선배님이 동계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면서 정상을 불과 300여 미터 남겨두고 두 차례나 정상 오르기를 실패하였다. 그 분이 카트만두에서 등반을 떠나는 나를 조용히 불러서 등반에 대한 비밀스러운 기술을 알려 주셨다.
“채언아! 오르려고 하는 산 높이와 마신 술의 술병 높이는 정비례한다. 내가 에베레스트를 못 올라간 원인이 술을 덜 먹어서야. 너는 그런 실수 하지마라 ”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선배님의 비밀스러운 조언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7.550m 산을 등반하기 전에 모자란 높이를 채우기 위해 무지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 그리고 무리 없이 정상에 올라갔고 비밀을 알려준 그 선배에게 감사했다.
여행사에 근무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원래 계획하였던 여행이 생각과 다르거나, 날씨 및 현지 상황의 변화로 손님의 요구와 맞지 않았을 때 그 엄청난 원망과 질책.... 누구를 탓하겠는가, 애꿎은 담배만 피우는 것이 남은 방법일 뿐. 이래저래 술과 담배는 몇 십년동안 함께 했다.
술과 담배로 혹사당하는 육체는 면역력이 약해져서 계절이 바뀌면 감기도 걸리곤 한다. 남의 일로만 알던 몸살도 걸려 보고, 며칠씩 병 치례도 했다. 영하 몇 십도의 히말라야에서 침낭하나로 두 달 이상을 견디던 체력은 끝났다. 어느 친구의 얘기처럼 ‘봄날은 갔다.’
화두를 ‘체력 기르기’가 아니고 ‘더 망가지지 않기’로 정하고 입정(入靜)에 들어갔다. 오랜 상념 끝에 술과 담배를 끊는 것이 최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술과 담배를 끊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얼마나 많은 선배님들이 이룰 수 없는 목표라고 했고, 아예 생각조차 말라고 가르침을 주셨던가. 다시 깊은 입정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를 여러 차례...
반야는 아니지만 좋은 방편이 떠올랐다. 술과 담배 중에 담배만 끊는 방법이었다. 담배의 유해함은 이루 말할 것이 없고, 술은 그래도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좋은 음식도 함께 하는 등 술의 양만 조절한다면 담배보다는 훨씬 낫다는 판단을 했다. 담배를 끊기로 다짐을 하고 즉시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는 ‘술을 더 마시기 위해서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 라고 위안을 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술을 오랫동안 하기 위해서는 담배는 포기해야 한다는 자기최면을 걸었다. 이렇게 해서 담배를 끊은 지 7년이 훨씬 지났다. 혹시 담배 피우고 싶은 생각이 나더라도 집에 있는 21년생 발렌타인을 생각하면 담배의 유혹은 금새 사라진다.
<담배 끊는 방법 중에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석채언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