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M4-P 생산.
. 1984 더 진보되고 신뢰성있는 노출계를 내장한 Leica M6 생산시작.
. 1986 라이츠가문이 회사의 운영에서 완전히 물러남. Leica GmbH 설립.
. 1987 Ernst Leitz Wetzlar GmbH와 Wild Heerbrugg AG가 합병하여 Wild Leitz 그룹이 됨.
. 1990년 Wild Leitz Holding AG와 Cambridge Instrument Company의 합병으로 새로운 Leica Holding B.V. group이 탄생하였다. 오늘날 라이카사는 현미경, 측량기, 사진측량기의 제조 등 각종 과학용 광학기기들을 제작하고 있다. Zett-Geräte-Werk(전 Zeiss-Ikon)이 Leica Camera 그룹에 흡수되었고 Leica Projektion GmbH가 설립되었다.
. 1990년 캐나다회사는 매각되었고 생산설비는 Wetzlar에서 5마일 정도 떨어진 Solm으로 이전되었다.
. 1996년 라이카사는 Minox GmbH의 카메라 분야를 인수받았다. 라이카카메라 G.m.b.H의 주식은 일반에 공개되었고 지금의 공식명칭은 Leica Camera AG이다.
. 1997년 Leica M6 .85 생산시작
. 1998. M6 TTL .72와 .85 생산시작
. 2000 안경착용자를 위한 M6 TTL .58 출시. 28mm Summicron F2 출시.
. 2003. M7 출시
* 그동안 많은 라이카 특별모델들이 군사적인 목적과 과학적 목적을 위해 생산되었다. 특별생산은 특별한 사건이나 인물, 장소 또는 어떤 관계를 위해 한정된 수로 생산되었다.
레인지화인더 카메라와 SLR 카메라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우수한 기종인가하는 오랜 논쟁은 이제는 불필요할 지도 모른다. 양 기종은 현대사진에 있어 제각기 장점을 가지고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일례로 레인지화인더 기종인 라이카 M형은 견고하면서 휴대성이 뛰어나고 21mm에서 135mm에 이르는 초점거리의 범위에서 뛰어난 렌즈군을 이용할 수 있으며, 특히 빛이 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속사와 정확한 포커싱이 용이한 장점이 있다. 또한 조용한 셔터소리는 보도사진이나 캔디드사진에 아주 이상적이다. 이에 비해 사용범위가 광범위한 SLR 카메라는 아마추어들의 일반사진에서부터 정밀을 요하는 과학사진에 이르기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종이다. SLR의 반사스크린 구조는 피사체를 쉽고 정확하게 포착하도록하여, 접사 또는 망원시 별도의 뷰화인더나 비조플렉스 같은 불편한 기구를 사용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6. '라이카 M의 역사'를 마치면서
라이카가 35mm필름을 사용한 최초의 35mm 카메라는 분명 아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최고의 성공작으로 인정받은 몇 안되는 카메라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라이카는 라이카가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 60년 동안 사진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라이카는 35mm 카메라의 시대를 연 새로운 형태의 카메라였을 뿐만아니라 일종의 첫 번째 사진시스템이었다. 라이카는 사진촬영에서 시작하여 확대나 영사기등을 망라한 다양한 사진기자재들도 생산하였는데, 무엇보다 일관성 있게 높은 수준의 제품들을 디자인하고 제작하였다.
수십년간에 걸쳐 라이츠에서 발명되고 생산된 카메라 바디, 렌즈와 방대한 양의 액세서리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단지 목록을 열람함으로써만 현대의 35mm카메라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액세서리들이 오래전에 라이카를 위하여 라이츠사에서 제작되고 라이츠사에 의해 실험단계를 거쳤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현대식 SLR 카메라가 출현하기 오래 전에 사람들은 라이카의 렌즈를 교환할 수 있었고 카메라에 내장된 레인지화인더로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오늘날 카메라 시장에는 성능이 매우 뛰어나고 용도가 다양한 첨단의 카메라 장비들이 넘치고 있지만 사실 이같은 첨단장비들의 아이디어나 기계적, 기술적인 기본바탕은 30년 또는 40년 전에 라이카를 통하여 전부 이루어졌었다.
라이카는
몇 사람의 천재성과 지혜가 만들어낸 걸작이다
. 오스카 바르낙은 뛰어난 카메라를 막스 베렉은 거기에 어울릴 뛰어난 렌즈를 완벽하게 만들어 내었고 언스트 라이츠 2세는 경영상의 위험을 감수하고 이를 생산하였다.
이들은 모두 다 라이카 카메라의 성공에 있어 비슷한 무게로 공헌하였다. 그리고 Stein은 이전까지 라이카가 쌓아놓은 바탕위에서 역사상 최고의 카메라로 평가받는 M3를 설계해 내었고 Uhl은 라이카의 철저한 생산과 품질관리를 총지휘하였으며, 맨들러박사와 그의 연구팀들이 미들랜드에서 불멸의 라이카렌즈들을 설계해 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뛰어난 창의력과 지식을 라이카의 바디, 렌즈의 금속과 유리로 변환시켜 넣었다. 그리고 미들랜드의 책임자였던 월터 크룩의 혜안 그리고 그의 믿음과 인내가 라이카 레인지화인더를 단종의 위기에서 구해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잊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기여자들이 있다. 바로 라이카를 사용해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 냈던 까르띠에 브레송을 비롯한 사진가들과 과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전세계에 존재해 있었고 지금도 있는 바로 당신과 나를 포함한 라이카의 애용자들이다. 라이카의 전설은 무엇보다도 바로 이들로부터 시작되었고 이들에 의해 꽃 피워졌으며,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현재 라이카의 지분은 상당부분 스위스의 회사에 있고, 엄격하게 말해 독일회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라이카의 3세대에 이르러 언스트 라이츠 가문은 이제 라이카의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 버렸고, 애석하게도 우리는 더 이상 라이카 카메라의 몸체에서 "Ernst Leitz"라는 글자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가문의, 그리고 장인으로서의 명예를 걸고 'Leitz'란 이름을 위해 최고의 제품 생산을 경영상의 이익보다 우선시했던 그들에 대한 추억은 오스카 바르낙, 베렉과 더불어 우리들의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이며, 라이카의 전설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다.
- The history of
첫댓글 역 사 유 구 한
잘 만 하 믄
1800년 대 쉽지 도 않으나 그 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 을 것이오 !
1894 1863 1891 1876 보 았 을 일 이다 ㆍ
명예를 걸고 'Leitz'란 이름을 위해 최고의 제품 생산을 경영상의 이익보다 우선시했던 그들에 대한 추억은 오스카 바르낙, 베렉과 더불어 우리들의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이며, 라이카의 전설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다.
아 ......이 런 정 신 과 마 음 이 면 뭐든 뭔 들 못 헐 까 ! 아니될 까 안되겠는 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