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꽃을 닮은 그녀 / 홍수연 (2023. 11.)
치자 꽃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는 계절이다. 치자 꽃은 그 자태도 자태지만, 무엇보다 달콤한 향에 이끌려 절로 걸음을 멈추고 흡향하게 하는 꽃이다. 치명적인 향기를 지닌 꽃이다. 사람에게서 나는 향이 저러하다면 그 사람은 분명 단명할 것이다. 무엇이든 과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 그만큼 치자 꽃향기는 위험하다.
내가 치자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향도 향이지만, 꽃의 색깔에 기인한다. 나는 흰색 꽃을 좋아한다. 특히 안개꽃을 좋아했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흰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도란도란 피워내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이 한데 뭉쳤을 때의 아름다운 시너지 효과를 알게 된 것이라고 할까. 안개꽃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다른 꽃의 배경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꽃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킨다. 저마다 자신을 내세우기 바쁜 세상에서 안개꽃은 기꺼이 다른 꽃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키워내는 어머니 같은 꽃이다. 어머니도 흰색이었다. 묵묵히 자식들의 바탕에서 자식들을 빛나게 해주는 꽃이었다.
흰 꽃은 깨끗한 죽음을 연상시킨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색이 있다면 흰색이지 않을까. 그래서일까. 산책길에 피어난 흰 꽃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몰래 걸음을 멈추고 그 순결한 말을 읽는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선 듯 경건해진다.
흰색꽃나무에는 아까시, 때죽나무, 이팝나무, 사과나무, 산사나무, 미영꽃나무 등이 있다. 모두 하얀색 꽃을 매달고 있다. 청량감을 주는 흰 꽃들. 초록 잎사귀와 어우러졌을 때 그 깨끗함은 두드러진다. 흰 꽃은 다른 꽃들보다 유독 할 말이 많아 보인다.
10년 전일이다. 직장동료였던 그녀가 입원한 병원. 나는 안개꽃을 한 아름 안고 그녀의 병실을 찾았다. 3월 초. 다른 학교로 전근한 뒤, 4월에 그녀를 만났을 때 살이 많이 내려있었다. 그녀는 전근한 학교가 집에서 먼 거리에 있어서, 운전 연수를 받고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살이 많이 내린 것은 운전을 하면서 신경을 많이 쓴 탓이라고 했다. 가끔 기침을 심하게 했다. 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녀가 폐암 판정을 받은 것은 5월이었다.
단아하고 조신한 사람이었다. 흰 꽃을 닮은 사람이었다. 함께 근무했던 학교에서의 마지막 해. 그녀는 6학년 담임을 맡았다. 성실하고 야무지게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로 소문난 교사였다. 일처리가 깔끔하고 완벽했다. 차분한 말씨에 걸음걸이도 얌전한, 천생 교사 같은 그녀였다.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아이들에게 흔한 고함 한 번 내지르지 않던 그녀였다. 그런데 그 해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무엇이 아이들과 맞지 않았던 것일까? 초등학교 6학년은 한창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다. 아이들의 눈빛은 순수함을 잃고 반항심은 삐죽삐죽 웃자라 있다. 잘 다독여서 아이들에게 존경받을만한 교사인데, 그 해는 유독 아이들과 합이 좋지 않았다. 아이들이 유독 자신에게 반항을 많이 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고민을 토로해오기 일쑤였다. 교실의 분위기는 몇몇 아동에 의해서 좌우되기도 하는 것인데, 한번은 수업 중에 한 여학생이 자신의 꾸중 섞인 말에 발끈하여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눈물을 훔쳤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가냘픈 몸매의 소유자였다. 결혼 후 한 달 만에 직장을 그만둔 남편을 원망 한번 없이 자신의 운명이고 복이라던 그녀. 백화점 옷 한 번 입지 않고 시장 옷으로도 맵시 있게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감각도 뛰어난 그녀였다. 조용조용 여리고 부드러운 말씨가 뭣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다소 만만하게 보였던 것일까.
그녀는 담담했다. 운명을 받아들인 이의 차분함이었을까. 삼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산책길에서 마주하던 흰 꽃이, 청초한 꽃의 가장자리가 누렇게 타들어가기 시작한 흰 꽃이 병상에 앉아 있다. 그녀의 눈빛은 이따금 창문 너머 먼 곳을 응시하곤 하였는데 망연자실한 눈빛이었다기보다는, 한없이 깊은 상념에 젖은 눈빛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그녀가 졌다. 장례식장에 들렀을 때 검은색 정장을 갖추어 입은 그녀의 남편과 두 아들은 정중하고 의연했다. 온통 하얀색 꽃에 둘러싸인 그녀가 예의 안개꽃처럼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그녀는 무슨 생각에 골몰하였을까.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기까지, 그녀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흰 꽃에 유독 끌리는 것은 흰색이 주는 상징성 때문이다. 하얀색 도화지를 받아든 아이들은 색 색깔의 크레파스로 무엇인가를 그려나간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수 있는 바탕이 되어주는 흰색 도화지, 흰색은 모든 색을 포용하고 수용한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세상으로 나온 이래, 우리들은 줄곧 무엇인가를 색칠하고 그리고 지우며 살고 있다. 어떤 색깔도 범접하지 않아, 고유의 흰색을 유지하고 있는 흰 꽃은 그러므로 삶의 꽃이자, 죽음의 꽃이다.
내일은 그녀를 아는 동료들과 함께 그녀의 장지를 다녀와야겠다. 그토록 좋아하던 흰 꽃이 된 그녀를 만나서, 그녀가 이주한 별은 유순한 흰색인지 물어보아야겠다.
첫댓글 홍수연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카페에서 자주 뵙고 싶습니다.^^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려요. 카페에서 자주 뵐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올려주신 다른 선생님들 작품도 천천히 읽어볼게요.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