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브람의 십일조 14:17~20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람의 신앙 고백 14:21~24
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승전한 아브람이 돌아올 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축복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이에 아브람은 얻은 것에서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줍니다. 아브람은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동행자들의 분깃만 제하고, 소돔 왕의 물품을 하나도 갖지 않겠다 합니다.
-------------------------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7-20a절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람을 맞이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기원하고, 아브람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촉구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란 칭호에 걸맞은 모습입니다. 훗날 그리스도는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으로 오셔서(히 5:10; 7:17), 자신의 살과 피를 생명의 양식으로 공급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요 6:35). 주님을 뜻을 행하는 사람과 단체, 선을 위해 싸우는 모든 이를 격려하고 축복하는 ‘제사장 역할’은 이제 교회가 수행할 사명입니다.
20b,22-24절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칩니다. 멜기세덱의 말대로 그의 승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전리품을 하나도 챙기지 않습니다. 찬사를 오롯이 하나님께 돌리려고 모든 오해의 가능성을 차단한 것입니다.
21-24절 살렘 왕은 ‘복’을 빌고 소돔 왕은 ‘셈’을 합니다. 멜기세덱은 빵과 포도주를 들고 맞이하지만, 소돔 왕은 빈손으로 와서 주고받을 것만 계산합니다. 아브람과 살렘 왕 사이에는 ‘은혜’와 ‘선물’의 관계가 성립하지만, 소돔 왕과는 ‘이익’과 ‘거래’의 논리만 작동할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주고받는 거래가 아닌, 은혜를 베풀고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섬김과 헌신으로 ‘복’을 사려는 태도는 바르지 않습니다. 제 이익을 ‘셈’하는 곳에는 ‘복’이 없습니다.
----------------------------
14:17-24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물리치고 돌아오다
소돔왕이 아브람을 영접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 아브람을 영접하고 축복합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라고 합니다
절대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아브람이 적들을 이긴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임을 알기에,
전쟁의 승리가 나의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앞장 서주셨기에 이겼다는 고백으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립니다
아브람의 모든 것이 주님의 공로임을 알기에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아브람의 신앙 고백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는 것 아니라, 이미 복을 받았기에 그 복의 근원이 어디서 오는지를 보여주십니다.
나는 이미 십일조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사는 자,예수님은 제사장의 역할을 하시면서
동시에 주님께서 희생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정신은 버리고 십일조만 철저하게 지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있을진저~라며
저주하시기도 하고,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고 하신 것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 하시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십일조가 완성 된 것입니다
그 첫것의 희생이 어린양의 대신 희생으로, 레위지파의 장자를 대신 함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로 오신
완전한 분의 희생이 되셨기에 십일조의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멘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는 단 한번이라도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성령을 받은 나는 이제 나의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알았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 아니라 전부를 드려야 하는 진리를 알게됩니다
나의 모든 것이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나의 전부가 주님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니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함으로 하나님께 하는 나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 십일조의 완성의 의미를 알기에 감사함으로 드리는 자가 됩니다
이미 완전한 희생 제물이신 예수님이 십일조를 완성하셨습니다.
아멘
복은 십일조를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통해 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완성 되었습니다
십의 일조를 하든지 십의 구조를 하든지 또는 상황이 어려워서 못하든지....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 것 아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관심이 집중 됩니다
이제 나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임을 알고 사는 자로 지어져 갑니다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사람을 보내고 모든 물품은 다 가지라 하니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너의 것은 실 오라기 하나도 안 가진다 말합니다
이 신앙 고백이 나의 신앙 고백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면 ,하나님만으로 자족하게 됩니다
아멘!
-----------------------------
1. 십일조를 드리다 (17-20절)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해 일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영적인 사람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세상에서 승리한 후 '영적 분별력을 유지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아브람은 승리한 후 자신을 추켜세우고 영접해주는 소돔 왕보다 하나님께 주권이 있음을 알려주는 '살렘 왕 멜기세덱'을 알아보고 그를 따른다. 그래서 그는 멜기세덱의 영적인 가르침을 두말없이 받아들여 승리의 영광을 전적으로 주께 돌리며, 최고의 영적 고백으로 '십일조'를 드린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그 사람의 헌금 생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온전한 십일조 생활은 내 모든 것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이다.
●나의 헌금 생활은 어떠한가? 모든 것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있는가? (20절)
2. 물품을 거부하다 (21-24절)
'하나님의 사람은 믿지 않는 자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하나님의 주권이 훼손'될 수 있고. 또 믿음의 사람은 세상 사람의 도움으로 결코 '진정한 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생색을 숨기고 있다가 때가 되면 항상 '다 내 덕분에 오늘 네가 있다'고 주장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말'이다. 아브람은 이것을 분별하고 세상을 대표하는 소돔 왕과 타협하지 않았다. 부유한 가족과 친척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고 있기에 말씀을 담대히 전하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의지하던 눈에 보이는 대상들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지름길'이다.
●현실의 어려움을 핑계로 지금 내가 믿지 않는 자와 타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21,23절)
기도하기
여전한 방식으로 삶을 나눌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를 허락하시고 그 속에서 훈련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곳에서 힘든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과 함께 말씀으로 영적 전쟁을 싸울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모든 것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온전한 헌금 생활을 하고, 믿지 않는 자와 타협하지 않게 하옵소서. 아멘.
오늘의 중보기도-
선교지마다 고난을 함께 나누고 기도하며 말씀으로 힘든 싸움을 같이 싸울 공동체가 세워지게 하옵소서.
-------------------------------
★ 묵상도움
네 왕이 요단 평지의 다섯 왕국을 침공했습니다. 이 전쟁의 발단은 엘람 왕 그돌라오멜의 통치를 받아오던 다섯 왕이 조공 바치기를 거부하고 반역한 데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돌라오멜은 동맹국들과 연합하여 이들을 공격합니다. 이들은 인접한 지방들을 황폐케 하고 그들을 노략합니다. 이 다섯 왕들은 침략 국인 네 왕들에 맞서 싯딤 벌판으로 나아와 싸웠으나 패배하고 맙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모든 재물과 식량을 약탈해 갑니다(11절). 그 와중에 소돔에 살고 있던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혀 가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곳에서 부를 누렸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호가 없는 재산과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명예와 권력은 허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잠언 기자는 말합니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잠 23:5) 우리가 의지할 분은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뿐입니다.
☆ 오늘의 기도
1.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늘 기억하게 하소서.
2. 우리 가족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말씀의 길을 걷게 하소서.
믿음의 사람 아브람은 조카 롯이 소돔을 선택했다가 위기에 빠진 것을 보고 진심으로 가슴 아파합니다. 어려움에 빠진 그를 방관하지 않았으며 그의 고난에 무관심하지 않았습니다. 버릇을 고쳐 주려하거나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롯을 용서하고 그저 최선을 다해 도와줍니다. 그리고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은 구경만하고 있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직접 행동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 아버지,
계산을 먼저 하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돕는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아 어려움을 당한 내 주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칭찬과 보상이 없더라도 그저 하나님만 알아주면 된다는 넉넉한 마음과 믿음을 가진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14:17~24 축복을 받을 때와 거절할 때
인류의 최초 전쟁이 있었다.
12년 동안 조공을 바치다가 13년째 조공을 바치지 않은 일 때문에 일어났다.
시날 왕 연합군이 소돔왕 연합군과 싯딤 골짜기에서 큰 전쟁을 했다.
결과적으로 소돔 연합군이 패했고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성읍이 약탈을 당했다.
아브람의 조카 롯도 전쟁의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아브람은 자기 집에서 훈련된 군사 318명을 데리고 갈리리 위쪽 단 까지 쫓아가
조카 롯과 모든 재물을 다시 찾아 가지고 돌아 온다.
오늘 본문에는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을 맞이하는 두 사람이 보인다.
매우 대조적인 행동을 보이는 두 사람이다.
창세기를 보면서 처음 부터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여자의 후손와 뱀의 후손, 가인의 후예와 아벨의 후예
하나님의 아들과 인간의 딸들. 셈의 후손과 함의 후손,
세상의 길과 믿음의 길 계속해서 두가지의 선택의 길이 있음을 보여 주셨다.
오늘도 매우 대조되는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온다.
첫째는 소돔왕이요 둘째는 살렘 왕이다.
두 사람다 아브람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나온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본받아야 할 사람이고 한 사람은 본받지 말아야 할 사람이다.
먼저 살렘 왕 멜리세덱을 보고 싶다.(18)
살렘이란? 예루살렘의 옛 이름이다.
즉 예루살렘의 왕 이라는 말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18)
멜기세덱의 신분은 예루살렘의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라는 말씀이다.
이분의 태도가 참 겸손하다.
1.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아왔다.(18)
사해 남부 지역에서부터 갈릴리 북쪽 지역 단 지역까지 단숨에 달려가서
야간기습공격을 감행하여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의 군대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함이다.
많은 음식 가운데 왜 하필이면 떡과 포도주인가?
술과 고기면 안되나?
떡과 포도주하면 생각나는 분이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되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전11:23~29)
2. 아브람에게 축복을 한다.(19)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19)
제사장이면 당연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아시는 분이지만
천지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요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아시는 분으로
아브람에게 큰 축복을 빌어 주신다.
3. 하나님을 찬양한다.(20)
대적을 너희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20)라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하나님이 승리케 하셨음을 찬양하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이런 영접을 받은 아브람의 태도도 참 멋있다.
아브람이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20)
최초의 십일조의 개념이다.
십일조란? 하나님께 드리는 수입의 10의 1이다.
멜기세덱에게 아브람이 드리는 것과 같이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이다.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 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행위이다.
나머지 10의 9도 하나님의 뜻에 바르게 사용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이것이 십일조이다. 아멘.
두번째 나오는 다른 한 왕이 있다.
소돔왕이다.(17) 사웨 골짜기 왕곡에 나와서 아브람을 영접한다.(17)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 오는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가 영 못 마땅하다.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21)라고 명령한다.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온 멜기세덱과는 너무 대조된다.
빈손으로 나와서 시건방지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고 있다.
감사의 표시도 없고 수고했다는 위로의 말 한마디 없다.
정말 싸가지라고는 찾아 보기 어려운 인간이다.
선심을 쓰듯이 전리품은 당신이 취해도 좋다라고 거만을 떨고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가 전리품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이런 소돔 왕의 태도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이다.
당연한 권리인 전리품을 취하는 것 조차도 완전히 거절을 한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손을 들어 맹세한다.(22)
아브람과 멜기세덱이 하나님에 대해서는 똑 같이 말하고 있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19, 22)
왕에게 속한 것은 실오라기 하나 신발 끈 하나라도 받지 않겠습니다.(23)라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제안한 사람이 머슥해졌을 것 같다.
왜냐하면 소돔왕이 "내가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었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브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남달랐음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축복이 소돔왕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오는 것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젊은 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같이 간 사람들의 그들의 몫은 달라고 요구한다.(26)
자신의 정당한 몫마저도 챙기지 않고 전쟁에 참여한 자들의 몫은 챙겨주고 있다.
참 존경스러운 모습이다. 본받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최근 헌재소장인사 청문회에서 특정업무경비 문제로 말썽이 되는 부분과도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하나님 아버지
대조되는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과 인간적으로 사는 사람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분을 의지하는 사람과
세상의 권력과 물질을 의지하는 사람
그들의 인격과 인품들을 봅니다.
내가 어디에 줄 서야 될지 분명히 알게 하옵시고
전쟁의 승리에서 돌아와 영접받을 때의 태도를 배웁니다.
겸손히 축복을 받을 때와 단회히 거절 할 것을
구분 할 수 있는 지혜와 분별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지극히 높으신 에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멜기세덱의 영접(14:17~20)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는 미래뿐 아니라 현재에도 그 성취를 맛볼 수 있습니다. 아브람을 영접하기 위해 가나안의 유력한
두 왕이 나온 것은 높아진 그의 위상을 말해 줍니다. 특히 멜기세덱의 영접이 관심을 끕니다. 첫째,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전쟁에 지친 아브람과 일행들을 위로합니다. 둘째, 아브람을 축복하며 그를 위해 복을 빕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셋째, 창조주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동일시하며 찬양합니다. 아브람의 승리와 명성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가나안의 안정도 아브람으로 인해 열방이 복을 받는다는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 묵상 질문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하는 모습에서 둘 사이에 상하 관계가 어떠함을 알 수 있나요?
● 적용 질문
기억할 만한 축복 기도를 받은 것은 언제였으며, 어떤 내용이었나요?
☞ 소돔 왕의 영접(14:21~24)
소돔 왕은 아브람을 만나러 예루살렘 근처까지 꽤 먼 거리를 왔습니다. 그는 동방 왕들의 원정을 초래한 장본인으로서
많은 피해를 당했습니다. 아브람은 그의 원수를 갚아 준 은인인 셈입니다. 그러나 그는 멜기세덱의 영접에 비해
무성의한 태도를 보입니다. 아무 감사의 표시도 없이 전쟁 포로들을 돌려 달라고 명령조로 말합니다.
또 선심 쓰듯 전리품을 취해도 좋다고 거만을 떱니다. 전쟁의 승리자가 전리품을 취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아브람은 이를 거절합니다.
오히려 행복과 번영은 소돔 왕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고 도전합니다.
그는 전쟁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의 정당한 몫은
나누어 주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취하지 않습니다. 약속의 자녀는 힘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합니다.
● 묵상 질문
아브람이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누군가 부정직한 돈이나 선물을 건네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아쉽고 절실할 때는 열심히 주님을 찾다가 넉넉할 때는 주님과 멀어지는 제 모습을 회개합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물론 승리한 때에도 하나님만을 신뢰한 아브람처럼,
세상의 복이 아닌 영적인 복을 추구하게 하소서.
---------------------------------------
아브라함이 318명을 이끌고 엘람 왕을 포함한 동쪽 연합군을 쳐부수고 롯을 구해서 돌아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왕이 주는 전리품을 하나도 받지 않았지만 살렘 왕 멜기세덱의 떡과 포도주를 감사하게 받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전쟁의 승리로 얻은 것의 십 분의 일을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바칩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십일조가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400년이 훨씬 지난 후에야 십일조 전통이 시작되었는데) 유대인들은 유월절 사건 후에, 유대인의 장자는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기 위하여 십의 일을 가나안 땅을 소유하지 않았던 레위인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이유는 그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고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의 계열을 좇아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이 아론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히브리서 7장은 멜기세덱의 신적 성격을 드러냅니다. 이필찬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멜기세덱은 역사적 인물로서 그의 시작과 끝이 있고, 선임자와 후임자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물론 이때의 제사장은 모세 이후에 제도화된 상태에서의 제사장직은 아니지만, 고대 사회에 일반적으로 제사장 형식이 있는 것을 볼 때 선임자와 후임자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그의 조상이나 자손, 그의 출생이나 죽음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히브리서는 바로 이러한 침묵을 멜기세덱의 신적 성격을 드러내는 데 활용한다. 그는 단지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살렘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히브리서 저자는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라는 말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위대한 조상인 아브라함이 왕적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고 그에게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멜기세덱은 아브라함보다 위대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레위인들은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후손으로서 결코 멜기세덱보다 우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의 근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니라 유다 지파이기 때문에 혈통적으로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 근거를 혈통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왕적 제사장인 하늘의 대제사장 역할을 한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른 것에 둡니다.
예수님께서 불완전한 레위 지파의 계열을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을 계열을 따라 왕적 제사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레위 지파에 의하여 드려지는 제사 의식을 그리워하여 배교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이 그리워하는 제사 의식의 미약함을 무능한 레위 지파를 통해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가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보다 위대한 것은 성도들의 제사장이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늘의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들은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하늘의 유업을 누려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기에 부어주시는 큰 은혜를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