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기념 중앙공원에서
송하 전 명 수
2.28기념 중앙공원은 대구시 중구 공평동의 도심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옛 대구중앙초등학교 자리에 세워졌다. 도심지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시 외곽지의 편리한 주택으로 거주이전 현상이 나타나자 도심지 공동현상이 일어나게 되어 학령아동수가 급감함에 따라 당시 졸업생과 학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설득으로 1995.3.1자로 학교를 폐교하게 되었다. 대구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금싸라기 땅이라 이 부지는 매각계획을 세워둔 상태에서 시민단체의 일부인사들은 공원화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학교가 폐교되던 그해에는 대구시 교육청관리국 재무과의 재산업무 담당사무관(팀장)으로 폐교재산 관리와 더불어 매각업무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 후에도 오랜 세월동안 매각이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결국 2001년도에 대구시청소관의 다른 부지와 교환계약을 체결, 동 재산을 대구시로 이관하게 되었고 이 부지에 공원을 조성, 2003년 연말에 완공한 것이다. 당시에는 학교부지와 한일로 사이에 5층 규모의 상업용 빌딩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건물도 시에서 매입하여 학교부지와 함께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이 공원의 면적은 14,279㎡(약4,327평)이다. 폐교된 대구중앙초등학교는 당시에 학부모와 동창회 대표들과의 약속대로 학교의 역사를 승계하도록 2003.3.1 시내 수성구 만촌동에 재 개교하였다.
이곳에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공원의 명칭은 ‘2.28기념 중앙공원’으로 최종 결정하게 되었다. 이는 1960. 2.28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민주운동의 거룩한 뜻을 기리고자 한 것이다. 이 공원에는 2.28민주운동의 거룩한 자취가 서려있는 곳이라 하겠다. 1960년 당시의 자유당 정권은 장기집권의 음모가 진행되었고 정·부통령선거운동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1960.2.28은 일요일이었고 야당의 부통령후보 장면박사의 연설회가 수성 천변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정부는 이를 방해하고자 공립 고등학생들을 등교시키도록 지시하였고 학교에서는 임시시험, 영화관람, 토끼잡이 등의 명분으로 등교를 강행하였고 학교에 등교한 학생들을 울분을 참지 못하여 교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거리로 뛰쳐나가게 되었다. 인구가 밀집한 대구 중구 중앙통을 거쳐 경북도청, 대구시청, 자유당 당사, 경북도지사의 관사 등을 돌며 자유당 정권의 악행을 규탄하였다. 수많은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어 고통을 받게 되었지만 2.28의 불씨가 3.15마산의거, 4.19 대학생 혁명, 4.26 이승만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져 마침내 독재정권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2.28 대구학생민주의거는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불의와 부정에 항거한 대구시민정신의 표출이었고 민주주의를 꽃피운 선구적인 운동이요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2.28기념 중앙공원 부근에 용무가 있어 왔다가 공원에 들려 보았다. 수많은 수목과 화초, 분수에서 뿜어 올라오는 시원한 물줄기, 조명시설, 편안하게 앉아 쉴 수 있는 벤치, 가지런히 정돈된 잔디와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 있고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아름드리 적송을 이식해 놓았는데 줄잡아 쉰 그루는 되어 보인다. 지하에는 두 개 층으로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아마도 승용차 수백 대는 주차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심지의 주차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공용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으니 또 얼마나 편리할 것인가. 그늘에 앉아 옛날 폐교 부지를 관리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상념에 잠겨본다. 저기는 교실건물이 서 있었던 곳이고 또 강당, 그 앞에는 운동장, 여기쯤은 교문이 있었던 곳이다. 대구혈액원에서 운영하는 헌혈의 집이 폐교 부지 내 도로변에서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부지를 대구시와 교환계약을 체결하면서 부지내의 헌혈의집은 교육청(갑)의 책임으로 부지 인도 시까지 철수 조치하도록 명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혈액원에서는 혈액확보의 중요성을 내세우며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바람에 애를 먹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공원을 천천히 돌아보니 학교당시의 나무들도 눈에 들어온다. 모습이 잘생긴 크고 작은 바위를 적절한 곳에 배치하여 더욱 정감이 가는 조경작업이 이루어져 있어 명실공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 듯하다. 많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며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대도시의 도심 한 가운데 이렇게 푸르고 깔끔하게 조성한 시민들의 휴식처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도시를 가꾸는 데는 관료들의 손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시민의 대표는 물론 시회단체인사와 전문가들의 의견도 수렴할 필요성이 있다 하겠다. 학교가 폐교 된 후로 시민단체 인사들이 발 벗고 나서서 공원화 추진운동을 전개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아마도 이곳은 공원이 아니라 상업지역으로 조성하였을 것이다. 수많은 민원제기와 지상 토론은 물론 생방송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공원의 동편 200m거리에는 국채보상기념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곳은 옛날 대구여자중·고등학교가 자리하던 곳이다. 학교는 외곽지로 이전하고난 뒤 조성한 공원이 수많은 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어 대구시민으로서의 자긍심마저 생겨난다. 시내에 볼일이 있을 때마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이곳에 와서 옛 생각을 하면서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첫댓글 2.28기념공원에 대한 역사를 잘 알 수 있는 글이군요. 2.28기념 공원에도 우리의 역사가 숨어 있었네요. 잘 읽고 갑니다. 송하님, 행복하세요
2.28기념 공원애 다녀 오셨내요.대구 도심 한가운데의 휴식처인 2.28기념 공원애 숨겨진 애환을 하나하나 필력 해주시어 고맙습니다.
올려주신글 잘읽고 지나 갑니다.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2,28기념공원이 조성된 경위를 상세히 아르켜 주셨네요 감회가 새롭게 느껴지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