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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들어가며
Ⅱ. 본론 ⅰ. 불국사 ⅱ. 석굴암 ⅲ. 장항리사지 오층석탑 ⅳ. 기림사 ⅴ. 감은사지
Ⅲ. 나가며
Ⅳ.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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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대학교 1학년 때인 2012년도 추계답사, 올해 2016년 춘계답사까지 경주를 총 3차례 다녀왔다. 경주를 3번이나 갔다 왔지만 갈 때마다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보여 진부하지 않고 신선했다. 초등학생 때는 불국사, 석굴암이 중점이 아니라 친구들과 사진 찍고 노는 것에 더 집중 되어있었기 때문에 수학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기억에 남은 것은 많지 않았다. 이렇게 아쉬움이 많았던 첫 번째 경주 답사를 보완해준 것은 2012년 추계답사였다. 이 답사의 중점은 경주 남산이었는데, 서울 남산만 알았지 경주에도 남산이 있다는 사실은 그 당시 처음 알았고 답사를 갔다 온 후 경주 남산은 그 자체가 역사유적의 박물관일 정도로 굉장히 많은 불교 예술이 남겨져있어서 놀랬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2016년도 춘계답사지도 경주였지만, 이번 답사 테마는 “금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로 신라의 왕들을 주제로 그들의 흔적이 담긴 유적지를 중심으로 답사 일정이 진행되었고, 그 외에도 조선시대 유적지들인 옥산서원, 양동마을, 경주 교동 최씨 고택 등도 답사 일정에 잡혀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아쉽게도 아르바이트와 실습수업으로 인해 후발로 참여하게 되어 첫째 날 경주 옥산서원과 양동마을, 둘째 날 최씨 고택, 경주향교, 대릉원, 분황사지, 황룡사지,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보지 못해 아쉬웠고, 특히, <조선시대생활사> 수업과도 관련이 있는 조선시대의 유적지에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이 가장 크게 남았다. 때문에 필자는 답사리포트 테마를 ‘통일신라시대 불교 예술의 절정을 따라서’로 잡게 되었다.
Ⅱ. 본론
개인적인 사정상 후발로 가게 되어 본격적인 답사를 시작한 날은 셋째 날부터였다. 답사 3, 4일차의 일정에서 통일신라시대 불교와 관련된 유적지는 불국사, 석굴암, 장항리사지 오층석탑, 기림사, 감은사지였다. 본론의 내용은 이 유적지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어질 것이다.
신라의 불교수용은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1세기 반 정도 늦었는데, 결국 이차돈(異次頓)의 순교사건을 계기로 비로소 법흥왕 15년(527)에 불교를 공식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신라에 불교가 국가적으로 공인된 것은 이때이지만, 그 전부터 사실 민간 차원에서는 이미 불교가 신라에 들어 와있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법흥왕 15년에 불교를 공인한 후, 법흥왕 때부터 진덕여왕까지 신라 왕 들은 호국신앙(護國信仰)으로부터 왕권의 신성함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불교식 왕명을 사용하였다. 이렇듯 신라시대의 불교는 호국신앙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나라를 대표하는 왕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왕권을 강화시키는 작용을 하였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라시대 불교는 민간에서부터 왕실까지 불교를 받아들이고, 호국신앙으로 왕권 중심의 지배체제를 강화시키는 동시에 백성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상호작용을 하여 신라가 비록 고구려, 백제에 비해 중앙집권화는 늦었으나 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원동력을 주었다. 이렇듯 신라는 불교문화가 번성한 나라로써, 특히 통일신라시대 때 불교 예술이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그럼 지금부터 통일신라의 불교의 절정, 경주지역 불교 유적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ⅰ. 불국사(佛國寺)
부처의 나라라는 뜻의 통일신라시대의 사찰 불국사는 국보 20호 불국사 다보탑, 국보 21호 불국사 삼층석탑, 국보 22호 연화교 및 칠보교, 국보 23호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국보 26호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국보 27호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등 경내의 건축물 대부분이 국보로 지정되어있을 만큼 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어 과연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곳이구나를 느낄 수 있는 볼거리가 참 많았던 사찰이었다. 진성규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불국사는 경덕왕 때 재상인 김대성에 의해 대대적으로 확장되었는데, 이에 대한 사료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고 한다. 불국사를 둘러보면서 불국사의 가람배치가 다른 절과는 달리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찾아보니 불국사에는 부처님을 모신 공간이 극락전, 비로전, 대웅전으로 나뉘는데, 이렇게 나뉜 것에는 신라인의 불국을 향한 3가지 염원인 『아미타경』에 근거한 아미타여래의 극락세계, 『화염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가 담겨있다고 한다.
▲ 연화교와 칠보교, 안양문 | ▲ 청운교와 백운교, 자하문 |
불국사에 딱 들어가면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는 데, 갈 때마다 굳이 왜 계단을 앞에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러한 석단(石壇)은 부처님의 세계와 일반의 속세를 구분 짓는 경계로써, 석단 위의 세계는 불국토를 의미하며 그 아래는 속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석단에 마련된 연화교와 칠보교를 통해 안양문(安養門)을 지나야 하고,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청운교와 백운교를 통해 자하문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진성규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자하문 아래엔 백운교 16계단과 청운교 17계단 총 33계단이 있는데, 33이란 단어는 불교의 도리천을 뜻하고, 도리천 위에 불국토가 있듯이 청윤교와 백운교의 33계단을 오르면 부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10원짜리 동전에서 많이 보던 다보탑은 법화경에 등장하는 과거불인 다보여래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온 석가탑은 석가모니 부처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탑이다. 다보탑을 보면 정교하면서도 수련한 자태가 멋졌다. 또한 기단 위 사자가 1개 밖에 안 보였는데 원래는 기단 위 4면에 사자상이 4개가 있었으나 모두 도난당하고 지금은 하나만이 남아 있다고 하여 4마리의 사자를 다 보지 못한 점과 석가탑이 아직 복원 작업 중이라 잘 보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쉬웠다.
불국사 다보탑 ▶
▲ 불국사 당간지주 | ▲ 복원 중인 석가탑 |
ⅱ. 석굴암(石窟庵)
통일신라시대의 석굴암은 팔부신중, 예배공간인 네모난 전실에서 본전불을 모실 원형인 주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금강역사, 석굴암 본존불, 제석천, 범천, 감실 등 굉장히 볼거리가 많지만 문화재 보존 문제로 앞이 유리로 막혀있고, 사진 촬영 또한 금지되어있으며, 관람할 수 있는 공간도 좁아 오랜 시간 보지 못해 아쉬웠다. 때문에 석굴암에서 그나마 유심하게 본 것은 금강역사와 석굴암 본존불이었다. 금강역사는 좌우로 하나씩 대칭으로 있었고, 석굴암 본존불은 머리에 육계가 있었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 항마촉지인을 수인으로 취하고 있었다. 석굴암 본전불의 온화한 표정과 매끄러운 면과 부드러운 곡선미는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이러한 석굴암 본전불의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보니 저절로 정숙하게 되었다. 또한 그 안에 있는 모든 악귀가 정말 부처님 손에 다 눌릴 것 같은 강력한 힘을 느꼈다. 유리로 막혀있지 않았었다면 얼마나 더 위대한 힘을 느꼈을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석굴암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 옛날에 어떻게 저렇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큰 불상을 만들 수 있었는지 선조들의 지혜와 노고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ⅲ. 장항리사지 오층석탑(慶州獐項里 五層石塔)
장항리사지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유일의 오층석탑 가람이란 점과 오층의 탑신을 유지한 유일의 쌍탑(雙塔)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큰 석탑이다. 장항리사지 오층석탑은 위아래 이중기단 위에 몸돌을 올리고 있어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고, 1층 탑신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 또한 조각되어있었다.
장항리사지 오층석탑은 서탑이 동탑에 비해 덜 훼손되었고, 두 탑의 모양은 비슷했으나 문조각에 조각된 금강역사의 모습은 상이하였다. 서탑은 금강역사가 연꽃 위에 서 있고 정교하게 조각되었으나 동탑의 금강역사는 서탑의 금강역사보다 정교함이 조금 떨어지고, 연꽃이 아닌 암석에 서있는 차이점이 있었다. 또한, 서탑 1층 탑신 양쪽에 있는 금강역사 사이에 용머리 문고리가 두 개 있었는데, 이러한 형태는 장항리사지 석탑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장항리사지 오층석탑에서 금강역사를 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기단과 덮개돌 일부를 시멘트로 땜질하여 위와 아래 부분의 질감과 색깔이 달라서 국보임에도 불구하고 보수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 장항리사지 오층석탑 - 서탑 | ▲ 장항리사지 오층석탑 - 동탑 |
ⅳ. 기림사(祇林寺)
기림사는 삼세여래를 모신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약사불과 사천왕, 사리왕탱을 모신 약사전과 서쪽에는 관음전, 정광불의 사리각인 삼층전이 있고 남쪽으로 오백나한전, 산신각, 무량수전, 진남루가 있으며 정면에 삼층석탑이 있는 1탑 1금당형의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었다. 기림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천왕문을 먼저 통과했는데,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外護), 신장(神將)을 모신 전각으로, 동방 지국천왕은 오른손에 검을 들었고, 서방 광목천왕은 오른손에 삼지창, 왼손에 보탑을 들었으며, 남방 증장천왕은 왼손에 여의주를, 북방 다문천왕은 비파를 연주하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금강역사와 사천왕을 구분하는 법을 잘 몰랐었는데, 이번에는 둘의 차이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강역사는 앞서 석굴암과 장항리사지 오층석탑에서도 보았듯이, 2명이 상체를 벌거벗고 있으며 근육질의 형태를 가지고 발 밑에 악귀를 누르고 있지 않으나, 사천왕은 4명이 갑옷과 투구를 쓰고 있으며, 각각 손에 고유의 무기를 들고 있고 발 밑에 악귀가 있는 차이점이 있었다.
▲ 기림사 천왕문의 사천왕
▲ <비교> 불국사 천왕문의 사천왕
천왕문에는 사천왕뿐만 아니라 앞에 주련도 적혀있었는데 그 주련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 기림사 천왕문의 주련 | ▲ 기림사 천왕문 |
擁護聖衆滿虛空 옹호성중만허공 허공중에 가득한 옹호신의 무리여
都在毫光一道中 도재호광일도중 모두가 호광의 한길 속에 있도다.
信受佛語常擁護 신수불어상옹호 부처님 말씀을 받아 믿고 늘 지키며
奉行經典永流通 봉행경전영유통 경전이 늘 유통토록 받들어 모시네.
이외에 기림사에는 연산군 시대에 조성된 관세음보살반가상인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半跏像)도 있었는데, 이 유물은 보물 제 415호로 지정될 만큼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건칠불을 처음 봐서 신선하기도 했고 종이로 만든 후 옻칠을 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또한, 기림사 대적광전의 공포와 창살 모두 모양이 특이했는데 공포는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창살은 꽃창살을 사용하여 둘 다 화려하고 고운 자태가 압권이었다.
▲ 기림사 건칠보살좌상 | ▲ 기림사 대적광전의 다포계 공포와 꽃창살 |
ⅴ. 감은사지(感恩寺址)
감은사지는 통일신라 신문왕이 신문왕 2년(682)에 불력으로 왜구의 침략을 막으려 했던 부왕 문무왕의 뜻을 이어나가기 위해 건립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사찰 터이다. 신문왕은 죽어서도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는 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감은사지에는 두 개의 흡사한 모양의 탑이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감은사지는 평지가 아닌 약간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가 의미하는 바는 신광섭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감은사지가 사찰이 평지에서 산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인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Ⅲ. 나가며
신라 정치의 쇠퇴와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포석정지를 끝으로 춘계답사 일정이 모두 마무리 되었다.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룬 주역으로, 불교를 호국신앙으로 삼고 발전해나갔다. 통일신라의 삼국을 통일한 자신감은 거대한 사찰 불국사와 섬세하고 웅장한 석굴암 등의 불교 예술에도 잘 나타나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답사였음에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초등학교 6학년, 대학교 1학년 때보다는 보이는 것이 조금은 늘었으나 아직까지는 교수님의 설명과 답사지 없이 스스로 유적을 보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이번 답사를 통해서도 답사지, 교수님의 설명 등의 도움을 받아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 의미 있고 보람 있었다. 학부 마지막 답사였으나 백문이불여일견처럼 졸업 한 후에도 가끔 답사 관련 책을 읽으면서 가까운 곳이라도 답사를 종종 다녀보고 싶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전참을 하지 못해 조선시대와 관련된 경주 옥산서원, 양동마을, 최씨 고택, 경주 향교 등의 유적들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학기가 끝나고 여유가 생기면 내일로 등을 통해 이 유적지들의 답사를 다녀와 보고 싶다. 답사를 기획하고 준비한 답사부, 홍편부와 유익한 설명을 해주신 역사학과 교수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Ⅳ. 참고문헌
단행본
김광근, 『관광학원론』, 백산출판사, 2001
김영미, 『신라불교사상사연구』, 민족사, 1994
이이화, 『역사속의 한국불교』, 역사비평사, 2002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 여행의 길잡이2 경주』, 돌베개, 1994
논문
조현걸, 「불교의 정법치국의 이념과 신라정치체제에서의 수용」, 『대한정치학협회』 16권, 2009
사이트
http://premium.chosun.com/ 조훈철의 문화재 이야기(11)-① 불국사 가람배치에 담긴 비밀
사진
석굴암 :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
기림사 건칠보살좌상 :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www.aks.ac.kr/
감은사지 : 한국관광공사 http://www.visitkorea.or.kr/
p.s 생소한 용어, 추가적인 내용들, 참고문헌에 관한 각주들은 첨부한 원본파일(한글파일)에 나와있습니다.
경주 답사 리포트 - 인문대학 역사학과 20123760 한호연.hwp
첫댓글 많은 양의 정보를 보기쉽게 정리해주셔서 도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