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옥엽 시집 『거실에 사는 고래』 출간
조옥엽 시인은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고, 순천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2010년 계간『애지』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지하의 문사』와『불멸의 그 여자』가 있다.
조옥엽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인『거실에 사는 고래』는 비극의 삼일치에 기초해 있고, 그것은 시간의 일치와 장소의 일치와 연기의 일치라고 할 수가 있다. 시간은 밤이고, 장소는 시인의 거실이고, 연기의 주체는 선장이고, 그 이야기의 진행자는 시인이다. 너무나도 정직하고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삶의 태도와 시인 정신이 고귀하고 위대한 고래의 꿈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조옥엽 시인의 [고래]는 ‘시인 정신의 승리’가 ‘리얼리즘의 승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 거실에서 자고 있다/ 오늘은 어느 바다를 헤엄치다가/ 귀향했는지 탈탈거리는 엔진소리가/ 한밤의 멱살을 잡고 흔든다/ 몸 누일 둥지를 틀고/ 식구를 먹여 살린다는 건/ 거친 바다에 몸을 던지는 일/ 어둠을 뚫고 용케/ 어리바리한 물고기 몇 마리/ 건져 올려 하루를 접고 짠물에/ 절은 삭신 막걸리 몇 잔으로/ 달래 바닥에 눕히고 잠든 남편/ 잠결에도 압박감에 짓눌려/ 바다와 교신 중인지 간간이/ 미간을 찌푸린다/ 하루 치의 엔진오일을/ 보충하고 소진하는 과정으로/ 수수 년 이어져 온 생/ 숱한 고비들을 넘기고 다시/ 이어지는 날들이 기적 같은데/ 충전을 다 마쳤는가/ 뱃고동 소리 내뿜던 거실은 고요해지고/ 나는 주유기를 빼 제자리에/ 돌려놓고 정적이 주는 평화를/ 양손에 꼭 쥐고 돌아눕는다
----[고래] 전문
희극이나 비극이나 그 작품의 구성원리상, 필요 이상의 미화나 과장은 필수적인 요소일 수도 있다. 희극의 주인공은 실제보다 더 바보스럽거나 우스꽝스럽게 표현할 수도 있고, 비극의 주인공은 실제보다 더 고귀하고 뛰어난 인물로 묘사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노릴 수도 있다. 조옥엽 시인의 [고래]는 비극의 주인공이고, 그는 일상생활에서 피곤하고 지친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그러나 생사를 넘어선 혈투에서 수많은 기적을 연출해낸 개선장군과도 같다고 할 수가 있다. 남편이 조업을 마치고 돌아와 술 몇 잔 마시고 쓰러진 모습에서 “오늘은 어느 바다를 헤엄치다가/ 귀향했는지 탈탈거리는 엔진소리가/ 한밤의 멱살을 잡고 흔든다”는 시구도 탁월하고, “식구를 먹여 살린다는 건/ 거친 바다에 몸을 던지는 일/ 어둠을 뚫고 용케/ 어리바리한 물고기 몇 마리/ 건져 올려 하루를 접고 짠물에/ 절은 삭신 막걸리 몇 잔으로/ 달래 바닥에 눕히고 잠든 남편”의 모습도 탁월하다. “잠결에도 압박감에 짓눌려/ 바다와 교신 중인지 간간이/ 미간을 찌푸린다”라는 직업의식도 탁월하고, “하루 치의 엔진오일을/ 보충하고 소진하는 과정으로/ 수수 년 이어져 온 생/숱한 고비들을 넘기고 다시/ 이어지는 날들”의 “기적”도 탁월하고, “나는 주유기를 빼 제자리에/ 돌려놓고 정적이 주는 평화를/ 양손에 꼭 쥐고 돌아눕는다”라는 아내의 소명의식도 탁월하다.
시는 기교가 아니고, 기교는 시를 질식시킨다. 자기 자신의 꿈, 즉, 고래의 꿈을 위하여 그 직업의식에 투철하고 그 어떤 위험과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 바로 이 삶의 태도와 시인 정신이 기교를 낳고 그 아름다운 삶의 극치를 이룬다. 앞으로도, 뒤로도 물러 설 수가 없고, 한 걸음만 삐끗하고 균형을 잃으면 그의 삶이 끝나는 줄타기의 인생과도 같다.
오늘날 예술의 당위는 무의미해 보이는 것의 의미를 포착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작가는 평범한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에 미적 의미를 덧붙여 작품화한다. ‘사건’을 통해 작품을 전개하는 방식보다 ‘사건’이 없는 세계를 통해 작품 속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책상 위에 놓인 펜이나 해변의 작은 돌멩이와 같은 것들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와 같이 등장하는 작품 속 이야기는 때로 쓸모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거대 담론조차 일상의 사소함을 통해 말하는 것이 시를 포함한 오늘날 예술의 발화 방법이다. 조옥엽의 시 역시 그렇다.
조옥엽 시의 매혹은 아무 것도 아닌 삶의 순간을 포착하는 데 있다. 그것은 어쩌면 매혹의 반대 지점에 놓인 것들이라 할 수 있지만, 시인은 그것으로부터 미적 감각을 길어 올린다. 그리하여 무심한 듯 던지는 시인의 시선은 가장 치열한 삶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나아간다. 거실에서 자고 있는 남편으로부터 시작한 세계는 바다로 이어지며 원형과 맞닿은 세계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잠이라는 사소한 일상과 바다라는 원형적 삶이 이어지며 시적 세계관은 보다 넓은 지평을 갖게 된다. 언뜻 보기에 “절은 삭신 막걸리 몇 잔으로” 달랜 남편이 바닥에 잠든, 아무 것도 아닌 모습을 제시하고 있지만 「고래」에 등장한 잠의 깊이와 너비는 남다르다. 잠을 통해 우리 앞에 당도하는 것은 바다와 같은 확장된 사유의 지점이다. 시인은 사소함을 말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초저녁 잠을 형상화한 다음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초저녁에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불빛이 환한 방에/ 음악만이 구름처럼 떠다니고 있다/ 앞으로 내게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도 쭉 이렇게/ 책을 보다 잠깐 잠이 들었다/ 다시 깨 책을 읽거나/ 혹은 생각의 꼬리를 따라/근심을 키워나가거나 그걸/ 덜어갈 묘수를 생각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잠들고 깨는 일을 거듭하다/ 언젠가는 발끝을 드러낼 생/ 음지에 드문드문 남은/ 잔설 같은 슬픔이/ 하얀 비말을 일으키며 차오르는데/ 건조한 방에 미니 가습기는/ 여전히 제 역할에 충실/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다/
-「습」 전문
시인은 삶이 사소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초저녁에 책을 읽다가” 잠이 든 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삶의 순간이다. 잠이 들었다 깨다를 반복하며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는 것에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텅 빈 방에는 그저 “수증기를 뿜어”내는 가습기만 있을 뿐이다. 아무런 사건이 없지만 「습」을 읽는 이들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진짜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더구나 조옥엽의 시는 ‘사건’ 없는 일상을 제시하고 그것으로부터 의미를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시인은 평범한 삶의 끝에 죽음이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말함으로써 삶을 완성하려고 한다.
삶의 끝에는 죽음이 놓이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조옥엽 시인 역시 죽음으로서의 삶의 모습을 시집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시집 전체 분량 중에 죽음을 다룬 작품은 많지 않지만 죽음이 시집 전반을 장악하는 주요한 정서임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 시집에서 죽음은 다양한 양상으로 재현된다. 개인적 죽음은 물론이고 사회적 죽음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마지막에 맞닥뜨리는 죽음과 함께 오래전의 죽음을 담담하게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죽음은 다양한 양상으로 다가오며 삶 이후의 문제를 탐문한다.
공적인 죽음을 끌어안은 조옥엽 시인의 시선은 이제 “지구 저쪽” 지진으로 “수천 명이 죽어 나간다는” 곳으로까지 이어진다. 시인의 주된 관심사는 일상의 영역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개인적인 관점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여기에서 세계에 대한 조옥엽 시의 지향 의지와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나로부터 시작하여 “남들의 불행”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이며, 내부에서 외부로 나아감으로써 보다 큰 세계에 닿고자 하는 시인의 확고한 신념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르러 놀라운 것은 시 전반에 걸쳐 나타난 사소한 삶의 국면을 바탕으로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는, ‘사건’으로서의 죽음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조옥엽 시의 죽음은 점층적인 양상으로 전개된다. 삶의 사소한 지점으로부터 전개된 죽음은 일상 속 장면에서 시작되지만 이내 확장되어 사회적 죽음으로까지 나아간다.
----조동범 시인, 문학평론가
----조옥엽 시집 『거실에 사는 고래』,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