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으로 걷는 길이 꽃길 입니다!(살전5:16-18)
2022.7.3 맥추감사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사람들은 누구나 꽃길을 걷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어떤 길이 꽃길일까? 언제든지 부담 없이 명품을 살 수 있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빛나는 위치에 오른 것일까? 아니면 내가 바라는 것들이 다 이루어진 길일까? 그렇지 않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걷는 길이 진짜 꽃길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고 높은 위치에 올랐어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길은 꽃길이 아니다. 반대로 아직은 내가 기대하는 것에 미치지 못했고, 삶의 거친 파도와 싸우고 있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고 있다 해도, 여전히 나와 동행하고 계신 주님과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길은 꽃길이다.
오늘은 감사라는 말의 의미가 더 새롭게 다가오는 맥추감사주일이다. 구약에서 맥추절은 밀과 보리 등의 첫 열매 거둔 것을 감사하는 의미가 있다(출23:16). 하지만 지금은 첫 열매 수확에 대한 감사의 의미뿐만 아니라, 지난 전반기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중간결산의 의미도 함께 갖는다.
“백미러를 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우리들이 더 힘 있고 안전하게 달려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감사의 눈으로 시간의 백미러를 봐야 한다. 물론 단지 상황만 보면 감사가 나오기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진정한 감사의 의미는 상황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성품을 믿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경적인 감사는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의지적인 결정이며, 주님을 향한 믿음과 직결되어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강조했다(살전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하라”고 말하면서 우리들에게 의지와 인격적인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이 말씀에서 보듯이 항상 기뻐하는 것과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마치 견고한 정삼각형 도형처럼 서로에게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감사와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상황과 환경을 초월한 기쁨(행복)의 삶을 살게 한다.
그 실례로 소년 목동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때, 그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자(삼상16: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He was ruddy, with a fine appearance and handsome features.)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삼상16:12)
이 말씀을 보면, 다윗은 소년시절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당시에 혈색이 좋고, 눈빛도 총명했고, 풍채와 얼굴이 아름다웠다. 그가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 그것은 그의 내면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근심이나 불만이 가득한 사람은 결코 혈색 좋거나 눈이 총명해 질 수 없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다윗이 평소에 늘 감사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그가 지은 수많은 시편의 말씀들을 보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묵상과 기도(찬송도 곡조 있는 기도)와 감사의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다윗의 얼굴은 은혜 받은 얼굴이었고, 광야에서도 행복한 꽃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여기서 우리들의 외모가 더 예뻐지고 아름다워지는 성경적인 비결도 함께 깨달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주님의 성품을 신뢰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대구 원화여고 교사로 오랫동안 재직하다가 은퇴한 박우현 시인의 작품들 중에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2014)”는 시(詩)가 있다. 이런 내용이다.
“이십 대에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 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삼십 대에는 마흔이 무서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 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거리라.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죽음 앞에서 모든 그 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 때는 그 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박우현 시인이 깨달았던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 때는 그 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전3;11)고 고백했던 솔로몬의 깨달음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 평생 동안 긴 삶의 여정을 살아온 사람들의 눈에는 천방지축 뛰어다는 아이들은 존재 그 자체로만도 아름답게 보인다. 젊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이 그 나이였을 때에는 대부분 자신의 존재가 그토록 아름다웠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서 살았다. 다만 몇 년 전 또는 지난 시절의 사진들을 보면서 “이때만 해도 참 아름다웠구나”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문득 내가 어렸을 때, 예배의 자리를 간절히 사모하며 몸부림칠 때, 그 모습이 하나님의 눈에는 기특하게 보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보실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앞으로 먼 훗날 지금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그때가 아름다웠다고 느낄 때가 올 것이다. 그렇기에 알고 보면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때이다. 지금 우리들이 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은 앞으로 살아가야할 모든 시간들 중에 가장 젊을 때이고, 내 인생의 황금기이다. 그렇기에 알고 보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매순간 최고의 것을 주신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주님 앞에 늘 감사할 수밖에 없고, 이런 사람이 다윗처럼 늘 행복한 꽃길을 걷는다.
몇 년 전에 우리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인도에 선교여행을 갔었다. 그때 루삐나갈교회 교육관 봉헌예배를 기다리면서 핸드북을 보면서 여러 찬송들을 불렀다(사진).
그때 감격하면서 목 놓아 불렀던 찬송 중에 하나가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라는 찬송이었다. 이 찬송의 2절에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이 세상의 권세자들 날 부러워해”라는 가사가 있다. 그런데 “이 세상의 권세자들”이라는 가사는 원래 “영국황제 루이스”였다고 한다(“영국황제 제임스”라고 기록된 자료도 있음).
영국의 황제였던 루이스가 어느 날 민심을 살피기 위해 일반복장으로 순시하고 있을 때였다. 황제는 런던근교 어느 마을의 물레방앗간 옆을 지나가다가 어느 노부부가 조그만 텃밭에서 호미질을 하면서 즐겁게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들었다(“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크신 은혜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황제는 그 찬양소리에 감동되어 한참 동안 듣다가 "여보시오. 노인! 가진 것도 별로 없어 보이는데, 정말 세상 사람들이 부럽지 않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노인은 "그럼요. 다음에 천국에 가서 예수님의 신부가 될 테인데 무엇이 부럽겠소? 늘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기쁜 줄 아시오? 그러지 말고 젊은이도 예수님을 믿으시요!”라고 말했다.
이 말에 감동을 받은 황제는 자신이 2절을 지어 드리겠다고 하면서 즉석에서 2절 가사를 지어 불렀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 황제 루이스가 날 부러워해
성령충만 받은 것을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이 가사에 깜짝 놀라는 노인에게 황제는 신분을 밝히면서 노부부에게 큰 상을 내렸다. 감사의 고백이 그들의 남은 생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하는 축복의 문이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걷는 길이 꽃길 이다. 감사와 기도가 두려움과 걱정으로 딱딱해진 내 마음을 기경해 낸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주일인 오늘,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앞으로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자. 감사의 백미러를 보자. 만약 지금 아슬아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다면, 지금이야 말로 믿음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흠 없고 순결한 최고의 감사와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을 깨닫자. 주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