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KBS다큐프로그램인 '산(山)' 에서 마칼루를 등정한 그녀를 처음 알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고 미영' 이었습니다.
남자 산악인의 이름에만 익숙해 있던 저에게는 무척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TV속에서 그녀는 예의 당당하고 자신에 넘치면서도 활기 넘치는 정말 대단한 포스를 뿜어대던 멋진 여자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낭가파르밧 등반에 성공하고 결국은 그곳에서 불귀의 객이 된 소식에 정말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더군요.
혹시 이런 기분에 공감하시나요?...
오늘내일하면서 날 받아 놓은 사람의 사망소식과, 바로 며칠전까지 함께 웃고 떠들며 멀쩡하게 살아있는 이의
급작스런 사망소식은 천지차이라는걸...
그리고 그런 뜻밖의 비보는 누구나 정신을 공황상태로 몰아넣는다는것을 말입니다.
가뜩이나 정치계의 쓸데없는 공방으로 요즘 나라가 시끌시끌하던차에, 젊은 여인의 패기 넘치는 순수한 열정이 설원의
땅에서 찬란한 꽃으로 피어나 위정자들 좀 회개하고 참회하시오~~ 하고 민초들이 큰 소리 한 번 칠 기회를 가지려 짐짓
그녀의 낭보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히말라야의 신은 그녀를 혼탁한 사바의 진흙탕 속으로 되돌려 보내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그저께 그녀의 시신이 낭가파르밧 가파른 빙벽 아래 설원에 누워있는 사진을 보니 참혹하다는 생각보다는, 그녀가 마치 '시바신
(神)' 으로 히말라야에 환생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파괴의 신인 동시에 창조의 신인 시바...
브리하디스와라사원에서 바라타나티암의 춤사위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더군요.
그녀의 시신이 설원에 누워있는 동안, 그 애절하고 안타까운 모습이 조금씩 머릿속에서 지워지기전까지 많은 이들이 그녀를 추모
할 것이며, 진흙탕과도 같은 이 세상에서 청정무구한 삶을 추구하고 싶은 대리만족의 신열을 앓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녀는 연민이
깃든 추앙을 받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을 정말 안타까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습니다.
산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오묘하고, 특히 히말라야의 14좌 봉은 인도나, 네팔, 파키스탄 등에서는 신격화 되어 있는 아주 신령스런
존재입니다.
그런 신령스러운 성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곳 원주민들도 해외원정대의 짐꾼 때로는 선두에서 총대가 되어주는 셀파 역시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등반이 시작되는 날까지 어떠한 삿된 마음을 갖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물며 셀파인 그들도 그렇게 하는데, 성역의 더이상 오를 곳 없는 정상에 오르는 산악인의 마음이야 어떠해야 하는지는 자명한
이치이건만, 4시간 차이로 등반을 하고 내려온 오은선대장과는 물론 세상엔 가장 절친한 선후배라고 피력하지만, 산을 정복하는
메이트 입장에서는 분명 라이벌 관계라는 것을 내심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먼저 등반에 성공한 오은선 대장에 밀릴 수 없고, 꼭 본인 스스로도 등반에 성공해야한다고 신념과 투지를
불태웠겠지요...
그런 마음 조차 그건 사심(私心) 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인이 생전에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리고 이런 나의 생각이 그녀를 모욕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야
할 수 없지만, 그동안의 그녀와 오은선대장과의 기사들, 그리고 등반하기 전까지의 빠듯한 일정과 행보가 그녀의 죽음을
보이지않게 재촉했다고 유추해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튼 우린 정말 아까운 인재를, 그리고 여자 '엄홍길' 일 뻔 했던 멋진 여인을 잃은건 분명합니다....
이글을 써내려가면서 나는 1979년 미국 맥킨리 봉에서 실족사 한 고상돈 대장의 기사를 써핑해 보았습니다.
그의 죽음 또한 천재(天災) 라기 보다는 인재(人災) 였다는걸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를 죽음으로 내 몬 사회 어느 조직의 이기적인 이익이 목적이 된 산행이었다는걸 보고 정말 치를 떨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그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할 땐, 먼저 1차 원정대인 베테랑 산악인이 중간에 포기하고 하산했는데, 그들을
스폰한 한국일보의 입장에서는 피가 말랐겠지요...
그리고 원정대의 소식을 단독으로 보도하는 우선권이 주어졌는데 아무런 낭보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2차 원정대로 지목한 당시 막내산악인이었던 고상돈씨를 지목했고, 그는 아주 담담히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고
내려왔습니다..
그의 명성만큼이나 한국일보의 줏가가 치솟았습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하여 정복한 일이
처음이었으니까요...
그 이후에 한국일보는 그 흥분의 도가니를 계속 이끌 제2의 등반을 준비했고, 그 타겟은 미국의 맥킨리 봉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에베레스트 같은 경우엔 3년을 준비하고 올랐지만, 맥켄리봉은 그리 철저히 준비를 하지 못한 빠듯한 일정에서 시작
되었고, 결국은 등반에 성공했지만, 하산길에 세명이 로우프를 함께 묶었는데 대원 한 명이 실족하면서 함께 낭떠러지로
추락했고, 먼저 실족한 대원만 살아 돌아와 1년여의 투병끝에 회복되었습니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밝혀진건 시간이 흐른 후였고..
아니 밝혀졌어도 죽은이는 말이 없었으며, 모두 비탄에 빠져있을때 예의 우리가 항상 겪는 분위기 쇄신 혹은 환기시키는
의미로 그 비극은 서서히 잊혀져가게 만들었습니다.
비탄스러웠던 사회적 이슈를 다른 포커스에 맞춰 결국 그들을 죽음에 빠뜨린 그런 퍼포먼스 역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게
되버렸던 겁니다.
그저 살아 남은 자들과 유족들이 겪는 고통과 비탄이 유품처럼 영원히 멈춰버린 시간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고, 언제 그런 비보가
있었냐는듯 세상은 또다른 희희낙락할 가십거리를 내세워 공공의 살인이 무마된 냉정한 사회의 논리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두 사건을 비교해 볼때, 이건 분명히 죽을수 밖에 없는 자명한 사실이라는걸 우리가 알았으면 합니다...
어짜피 시간차이겠지만, 낭가파르밧부터 남은 3좌 등정에 성공할 수 있는 확신이 있었다면 왜 조금더 느긋한 마음을 갖고,
선배인 오은선 대장이 먼저 14좌를 등반하면 어땠을까 하는겁니다.
왜 1년에 3개좌를 미친듯이 올랐어야 하는건지...
그렇게 신기록을 세우면 물론 명예만큼 좋은건 없겠지만, 그런 명예 또한 내 자신이 살아서 오랫동안 남아 있어야 명예 또한
함께 죽을때까지 동행하는 것인데, 어리석은 패기와 집념 그리고 욕심..... 이런것들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그런 부담감을 안고 자신이 겨우 해내었다는 희열이 인생에 얼마나 많이 일조를 할 수 있다는것인지 이 또한 산 자의 야속한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겠지요.
그러나 분명히 그건 욕심이었습니다..
어느 사적인 조직이 종용한 욕심이었고, 스스로가 자초한 욕심이었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든 레져활동을 하든, 나라와 개인의 명예를 걸고 온 인생을 올인할 수 밖에 없는 어떤 화두앞에서
승부욕에 초연할 수 있다면, 그 누군가는 비록 남들보다 조금 늦게 목적지에 도착한다 해도, 그의 노력 자체의 가치를 인정
받는거지, 먼저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갔다는 것에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인정받고자 하는 것에 제대로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는걸 그녀의 뒤를 잇는 또다른 도전자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에게 고무되고 열광하는건, 죽은자의 세상이 아닌 산자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우리들을 끊임없이 테스트합니다..
좀 더 빨리, 좀 더 많이, 좀 더 정확하게 할 수 없는거야? 하고....
그 댓가가 무엇일까요?...
경쟁했던 동료와 얼마 차이 나지 않는 댓가에, 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있어 하는 개런티에 우리가 안주하는게
아닐까요...
매몰차고 냉정한 사회의 논리에 톱니처럼 정확히 맞출 수 없다고 우리가 존재 할 수밖에 없는 정체성이 사라지는건 아닙니다.
다만 잠시 늦게 완성될 뿐이겠지요.
난 그런 온화함을 가장한 냉정한 사회가 요구하는 무리한 욕심에 우리 스스로 상처 받지 않길 바랍니다...
그녀가 생전에 인터뷰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내가 산에 가냐면 산이 좋으니까 내가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갑니다. 그리고 산에 오르면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푸근하고
좋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그 생각은 내가 내 마음을 던져 놓고, 아무런 마음을 담지 않고 오로지 경외의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다가갈 때에 가능했습니다.
설원에 핀 그녀의 고혹적인 죽음과 오늘 하루종일 퍼붓는 폭우가 만가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그런 날이 될줄 정말 몰랐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음 생에서는 조금은 고되지 않은 삶을 받고 태어나길 간절히 바라면서....
첫댓글 경쟁심이 때론 나쁜 결과를? 아무튼 이승에서 못다한 한을 저승에서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삼가 애도 합니다.
여기 글에 사용한 사진 중에 몇컷은 이곳 까페에 올린 히말라야에 있는 사진이랍니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
대단하시네요'''''정효님'''기사도잘올려주시구요;;;아까운사람또잃었네요'''사진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