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테슬라도 묵은 ‘뉴욕 상징’…그 뉴요커 호텔, 통일교가 샀다
#궁궁통1
미국 뉴욕의 맨해튼 8번가.
펜실베이니아 역을 빠져나오면
가장 먼저
시선을 압도하는 게 있습니다.
붉은 네온사인으로 쓴
거대한 글자입니다.
‘NEW YORKER’.
1930년에 완공된
뉴요커 호텔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함께
1930년대
뉴욕 스카이 라인의 황금기를 상징하던
건축물입니다.
존 F 케네디가
여기서 묵고,
무함마드 알리 역시
여기서 묵었습니다.
헤비급 무패 복서였던
알리는
1971년
뉴요커 호텔 바로 건너편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당시 챔피언 조 프레이저와
‘세기의 대결’을 벌였습니다.
15라운드까지 가는
혈투 끝에 알리는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했습니다.
알리가
프로 데뷔 후에 겪은
첫 패배였습니다.
15라운드 내내
서로 펀치를 주고받은 터라
알리는 온통 멍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프로 세계에서 경험한
첫 패배는
쓰디쓴 맛이었겠지요.
그날 밤,
알리는 뉴요커 호텔 2549호에
묵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그곳에서
추슬렀습니다.
뉴요커 호텔 2549호.
지금도 이 방은
‘무함마드 알리 룸’으로
명명돼 있습니다.
방 안에는
당시의 경기 사진과
기념품들도 전시돼 있습니다.
알리는 그 뒤에도
조 프레이저와 두 번의 대결을
더 치렀습니다.
결과는
둘 다 알리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뉴요커 호텔 2549호,
무함마드 알리 룸에 서린
첫 패배의 스토리가
더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궁궁통2
뉴요커 호텔, 하면
떠오르는
또 한 사람의 저명인사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입니다.
맞습니다.
테슬라 자동차의 기업명이
바로 이 과학자의
이름을 딴 겁니다.
교류 전기를 발명해
전 세계에 불을 밝힌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는
말년에
연구 자금을 모두 탕진하고
여러 호텔을 전전하다
숙박비 체납으로
쫓겨나는 신세였습니다.
그의 특허 덕분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
웨스팅하우스사가
그의 처지를 알고
뉴요커 호텔의 숙박비와
매달 125달러의 생활비를
죽을 때까지
지급해 주었습니다.
이 덕분에
니콜라 테슬라는
뉴요커 호텔 33층에 있는
3327호와 3328호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는
침실 겸 생활공간,
또 하나는
서재 겸 실험실이었지요.
지금도
뉴요커 호텔 3327호에는
그를 기리는 명패가
붙어 있습니다.
생의 마지막 10년을
뉴요커 호텔에서 보낸
니콜라 테슬라는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죽자
미 연방수사국(FBI) 산하
적성국 자산관리국에서
들이닥쳤습니다.
‘죽음의 광선’ 등
니콜라 테슬라의
머릿속에 있던
혁신적인 군사기술이
적국의 손에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1943년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으니까요.
당시 압수된
니콜라 테슬라의 연구 노트 등을
검토한
MIT의 물리학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삼촌인
존 G 트럼프 교수였습니다.
존 G 트럼프 교수는
테슬라의 노트가
“철학적이고 사색적일 뿐,
실현 가능한 무기 설계도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훗날 숱한 음모론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43층 건물에
2500개의 객실을 갖춘
뉴요커 호텔에는
이 외에도
숱한 할리우드 스타와
정치인들이 묵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뉴요커 호텔의
소유주가 누구일까요.
월 스트리트의
거대 사모펀도 아니고,
글로벌 호텔계의
족보 있는 가문도
아닙니다.
다름 아닌
통일교입니다.
#궁궁통3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의 랜드마크인
뉴요커 호텔이
어떻게
통일교의 소유가 됐을까요.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뉴요커 호텔은
1930년대 미국이 구가하던
물질적 풍요와
무한한 낙관주의의
상징이었습니다.
뉴욕 맨해튼 8번가의 야경을 보면 뉴요커 호텔의 붉은 네온사인이 단연 눈에 띈다. 중앙포토
그런데
40년의 세월이 흐른
1970년대의 뉴욕은
처참했습니다.
뉴욕 경제를 지탱하던
의류, 인쇄, 항만 물류 등의
제조업 공장들이
임대료가 싼 외곽으로 이전하고,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세수가 부족한 뉴욕시는
빚으로 빚을 갚으며
파산 직전까지 갔습니다.
파산을 면하기 위해
뉴욕시는
수만 명의 경찰관, 소방관,
환경 미화원과 교사들을 해고했고,
도시는 쥐가 들끓고
치안이 약한
무법천지가 됐습니다.
이 거대한 불황의 파도를
이기지 못한
뉴요커 호텔은
1972년 문을 닫고서
뉴욕의 흉물로 전락했습니다.
#궁궁통4
통일교 문선명 총재는
1971년 활동 무대를
미국으로 옮겼습니다.
70년대 초중반에는
전미 순회 강연을 통해
교세를 급격히 확장했습니다.
통일교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1976년에
뉴요커 호텔을 사들였습니다.
미국 뉴욕의 심장부에
통일교의 깃발을
꽂은 셈입니다.
당시 통일교는
뉴요커 호텔을
560만 달러에 샀습니다.
요즘 화폐가치로
환산해도
거저 줍다시피 한 셈입니다.
맨해튼 미드타운의
랜드마크 빌딩을 말입니다.
미국은 왜
뉴욕의 랜드마크 빌딩을
한국의 신흥 종교에
팔았느냐고요?
당시에는
그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건물이 무너지는 걸 막고,
체납한 세금을 내고,
막대한 유지비를 감당할 수 있는
현금 흐름이
훨씬 더 중요했으니까요.
한동안
뉴요커 호텔은
미국에 진출한
통일교의 심장부로
사용됐습니다.
수천 명의 신도가 거주하며
선교 활동의 본부가 됐고,
대규모 합동결혼식 참가자들의
숙소로도 썼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통일교는
윈덤 호텔 그룹 등
프랜차이즈와 손잡고
뉴요커 호텔을 재개장했습니다.
지금도
가장 뉴욕적인 정취를
느끼기 위해
뉴요커 호텔을 예약해서
숙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로 그 뉴요커 호텔이
막강한 글로벌 부동산 제국을 일군
통일교의 최상위 자산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출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