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병에 10억, 일본산이라고? 오타쿠가 만든 위스키 정체
브랜드로 본 세계
관심
이제는 ‘라떼 무비’가 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2003)’를 기억하시나요? 광고 촬영을 위해 일본 도쿄에 온 할리우드 배우 밥(빌 머리)과 사진작가 남편을 따라 온 샬럿(스칼릿 조핸슨)이 낯선 도시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마음을 나눈다는 감성 촉촉한 영화였죠.
영화에서 밥이 모델로 출연한 광고가 일본 주류·음료 회사인 산토리 위스키 ‘히비키(響)’였습니다. 광고 감독의 촐싹맞은 디렉션에 당황하며 “나만의 여유, 산토리 타임”을 반복하는 빌 머리에 웃다가 ‘일본에도 유명한 위스키가 있었나’ 신기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한 장면. 사진 네이버영화
그리고 20년, 그 술 히비키는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레어템’이 됩니다. 코로나19가 끝난 후 도쿄로 밀려드는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히비키랑 야마자키(山崎)는 어디서 살 수 있어?”죠. 젊은 친구들은 “편의점에서도 ‘가쿠빈(角瓶)’ 파나요?”라고 묻더군요.
히비키와 야마자키는 산토리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위스키입니다. 주로 하이볼의 재료로 쓰이는 가쿠빈은 산토리를 현재의 위치에 올려놓은 효자 상품이자 일본에서는 1만원대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위스키예요.
보리를 발효시킨 위스키 원액은 보통 10년 이상의 숙성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한정된 원액으로 만들 수 있는 양은 제한돼 있는데 찾는 사람은 많으니, 결국 산토리사는 눈물을 머금고 2018년 주력 상품이던 ‘히비키 17년’의 생산·판매를 중지합니다. 산토리가 2020년 100병만 한정 판매한 ‘야마자키 55년’은 정가가 2만7500달러(약 3700만원)였는데, 이후 홍콩의 한 경매에서 79만5000달러(약 10억원)에 낙찰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위스키’ 반열에 올랐죠.
‘듣보잡’이던 일본 위스키는 어떻게 본가 스카치 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레벨이 됐을까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에게 선물했다는 700만원짜리 야마자키 한 병은 누가 마셔버린 걸까요. 무엇보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가야 이 위스키를 구할 수 있는 것인지! 3년 차 도쿄특파원의 정보력을 동원해 탈탈 털어보겠습니다.
산토리 위스키의 대표주자 '히비키'. 사진 산토리 홈페이지
📃목차
◦ 두 남자의 열정, 위스키로 꽃피다
◦ “어디 한번 해봐라” 정신이 낳은 대박
◦ 아직도 풀리지 않은 ‘야마자키 실종사건’
◦ 우주로 간 위스키의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