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신부님]
+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어제 저는 부산 피정을 시키고 밤늦게 도착했습니다.
너무 많이 오셔서 한 1,300명 정도 오시어 성당 안에서는 할 수가 없고 광장에서 했는데,
비가 와서 우비 입고, 그래도 끝까지 자리 이탈하지 않으셨죠.
오후 강의는 1, 2편으로 나눠서 올렸기 때문에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천막 안에서 하고 교우들은 밖에서 비를 맞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를 않아서
30분 정도 강의하고 바로 치유 기도를 하고 저는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미사는 아주 귀한 분이 오셨습니다.
제 막냇동생이면서 이번에 은퇴하고 고국에 와서 마음 편하게 살 것으로 생각하는데,
소나무 신부님,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죠.
또 많은 분이 궁금해하고 있을 겁니다. 잘 오셨나, 안 오셨나?
신부님께 간단하게 인사 겸 한 말씀 제가 부탁드리겠습니다.
[소나무 신부님]
+찬미 예수님,
여러 가지 감회가 있는데 형하고 이렇게 오래간만에 함께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돼서 너무 감사합니다.
지난 17일 한국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한 열흘 정도 지났는데 너무 편하고 행복하고, 그 무엇보다도 엄마하고 함께 생활하고 있으니까 마음이 너무 좋아요.
어머니도 건강하신 거 같고, 그래서 지금까지 못 했던 아들 노릇 좀 하자 하는 마음으로 엄마와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년간 일본 선교 생활, 그러니까 많이 복잡했어요.
그러니까 앞날이 보인다는 거죠.
내가 이 공동체를 떠나면 이 공동체가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 해놨던 것들이 제대로 지속이 될까?
답답한데 일본에서 떠나기 한 4일 전인가 큰 형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때 ‘심경이 복잡하지?’ 하고 물으시어, 아주 굉장히 복잡하다, 좋아해야 할지 좀 힘들어해야 할지도 잘 구별이 안 된다고,
예수님이 양 떼들 놔두고 십자가의 길 선택하셨을 때, 제자들을 놔두고 떠나실 때 기분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
그런 느낌이라고 했어요.
지금 있었던 성당에서 한 6년 생활이고, 그 전 성당은 10년인데 양쪽 다 아시는 바와 같이 국제 성당이었어요.
다 문화, 다 민족, 다 언어.
오따 성당은 많은 경우는 한 32개국이었고, 지금 이 성당은 남미 사람들까지 다 포함하면 한 20여 개국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을 다 관리하고. 또 코로나 안에서도 성사 생활을 할 수 있게 결국 제가 맨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죠.
첫 번째 성당, 오따에서 10년 보내면서 한 지붕 밑에 한 가족이라는,
그러니까 하느님을 아버지로 하는 한 가족이라는 모토를 갖고 열심히 뛰었고, 금세 결과가 나왔죠.
열매를 맺었고, 신부 입장에서도 너무 보기 좋았어요.
그리고 그때 떠났죠. 1년 안식년을 받기 위해서.
한국으로 온 사이에 한 달도 안 돼서 제가 만들어 놨던 여러 가지 모습들이 일순간 무너지는 걸 봤어요.
두 번째 곳도 일본 주교님한테 부탁을 받고, ‘국제 공동체인데 신부님이 가주셨으면 합니다.’
해서 가봤더니 역시 많은 나라 사람들이 있었죠.
‘열심히 하면 다음 신부가 힘들다.’이건 상식적으로 우리 신부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이야기인데,
신자들을 보니까 또 안 뛸 수가 없었어요.
여기서 열심히 하는데 코로나가 왔죠. 본격적으로 사목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에 코로나,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여, 드라이브 스루도 하고,
주일 미사를 네 번으로 나눠서 나라별로 하고, 이런 식으로 해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참 마음에 드는 공동체가 됐어요.
그러면서 먼저 본당에 있었던 경험 때문에 ‘떠나면 어떻게 되나, 한 달 안에 또 이상한 연락들이 올 텐데’ 하는 걱정을 하며
열심한 신자들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어요.
그때 형이 연락을 주셨기 때문에 ‘아, 참 복잡하다.’ 그랬더니, 형님이 지혜의 말씀을 주셨죠.
‘야, 너도 알고 있다시피 나도 여러 가지 일을 이루고, 그냥 주교님 말씀에 따라 다른 곳에 이동하고,
이동하고 난 다음에 얼마 되지 않아서 이런저런 얘기 들리고, 그래서 정말 배신감 같은 것도 많이 느끼고 그랬는데,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네가 거기서 최선을 다했으면 거기서 만족해라. 그 이후는 하느님께 맡겨드리면 되지 않겠니.
거기까지 걱정을 한다면 아마 예수님도 제자들 못 떠나셨을 거다.’
사실 예수님도 다 아셨단 말이에요.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 제자들이 어떻게 도망을 다니고 숨고 불안한 모습을 할지.
오죽했으면 겟세마니 동산에서 ‘가능하다면 이 잔은 거둬주십시오. 하지만 당신 뜻에 따르겠습니다.’ 하신 기도와
요한복음 17장에 ‘이들이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라는 말씀, 그리고 형님 말씀 듣고 정리했어요.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조선의 상남자처럼 당당하게 웃는 얼굴로 떠나라.’ 하시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송별 미사를 했죠.
송별 미사 할 때 많은 사람이 와줬고, 또 일부러 웃는 얼굴 보여주려 하고 격려하는 말만 하고 떠났는데,
예상대로 ‘평일 미사가 없어졌다. 외국어 미사는 한 달에 한 번 하고 그 나라 사람 신부가 와서 한다.’
이런 얘기들이 들리니까 또 답답해지는 거죠,
하지만 ‘뭐 그래. 하느님께 맡기자.’
그리고 이제 그쪽에서 연락이 오면은 열심히 하라고 말씀드리고 있어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 중의 하나는 신부가 정말 행복하기 위해서는 신자들이 행복해지는 수밖에 없어요.
신자들이 행복하면 자연스럽게, 양 떼들이 행복하면 목동은 행복해지는, 이것이 아마 복음의 순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교회의 모습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죠.
하여튼 여러분들 기도해 주십시오.
여기 감곡에 와서 형 사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까 하는 어떤 생각들이
구체적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정말 그분 뜻에 맞게,
그리고 그분의 도우심에 의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 중에 가끔 저를 기억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행복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느티나무 신부님]
자금까지 소나무 신부님이 은퇴하기까지의 소회를 얘기해 주셨어요.
그렇죠. 사제가 사는 목적은 물론 첫 번째는 자기 영혼 구령이죠.
그렇지만 사제가 사는 목적은, 저도 이제 올해 40년 사제 생활이 다가오지만, 늘 어디를 가든지 간에 신자들의 행복입니다.
그래서 은퇴하고 나서도 지금 여러 가지 조경 공사도 하고 하지만, 사람을 안 만나고 저 혼자 산다면 저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죠.
그렇지만 ‘그래도 감곡에 가면 치유 받을 수 있다.’ 하는 그런 장소,
교우들이 이곳에 머무르며 미사 드리고, 또 머물며 치유되고 다시 힘을 얻어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장소.
요즘은 은퇴 신부라고 부르지 않고 원로 사목자라고 부릅니다.
사제는 은퇴해도 죽을 때까지 사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원로 사목자라는 말답게 교회가 주신 사명, 사제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사목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대로 양을 쳐야 한다. 좋은 목동이 돼야 한다.
여러분들, 대열 신부님 소회를 들어보셨듯이 기도해 주시고,
또 떠나온 성당이 더 많은 상처 받지 않고 잘 유지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아까 소나무 신부님이 얘기했지만, 정말 성지고 뭐고 아름답게 잘 가꿔 놓고 떠나면 편치 않은 소리를 많이 듣죠.
현상 유지만 해도 이쁠 텐데.
그래서 그런 서운한 마음도 있다가 내린 결론은 그거죠.
내가 그 자리에 머물 때 최선을 다하면 그게 다다. 떠나와서까지 떠나온 데를 걱정하면은 신부 병든다. 스트레스받아 못 산다.
떠나와서 은퇴했으면 은퇴한 그 자리에서 또 최선을 다하고, 그게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떠나온 자리는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뭔가 만들어 가실 거다.
착한 목자도 있고, 뭐 또 게으른 목자도 있을 수 있죠.
지상의 교회는 밀과 가라지가 섞여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한 교회는 천상 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가슴에 두지 말고 하느님을 가슴에 두고 살 때,
그런 마음의 위기가 올 때마다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소나무 신부님이 지금은 어머니 모시고, 밥해드리고 살고 있어 제가 한결 마음이 편합니다.
원래 은퇴 후 어머니를 여기에 모시고 싶어서 엄마 방 이름까지 써서 만들었는데 여기서 사실 수가 없는 이유가 좀 있더라고요.
내가 어머니 목욕시켜 드릴 수가 없어요. 여동생만이 할 수가 있고, 또 어머니가 아직은 그런 것을 원치 않으시고,
또 병원 문제, 여기는 병원이 워낙 멀어요.
저는 어머니가 안 계셔도 밤에 방을 열어봐요.
그냥 그런 느낌이죠. 어머니가 여기 누워 계다.
그래서 어떨 때는 잠자러 가기 전에 ‘주무십시오.’ 하고 문을 닫고 나올 때도 있습니다.
사제로 살아도 큰아들은 또 큰아들의 책임감이 있고, 모든 아들들은 다 책임감이 있습니다.
하여튼 우리 대열 신부가 엄마 옆에서 같이 있는 것을 보면 제가 훨씬 부담감이 줄어들었고,
또 계속 이제 엄마 옆에서 살 수 없겠죠. 언젠가는 엄마도 천당 가실 거고,
또 그전에라도 대열 신부도 은퇴 사제로서 자기 삶을 찾아야 하겠죠.
그런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튜브 듣는 우리 신자분들,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영원에 영원을 더해서 사랑합니다. 아멘.
♣2023년 부활 제4주일 (4/30)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