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방아 도는 내력』(작사 손로원, 작곡 이재호)은 6, 25 피난 때
부산에서 녹음, 1953년 '도미도 레코드'에서 발매한 음반에
「박재홍」의 노래로 수록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곡입니다.
노래의 발표 시기는 6.25 전쟁 이후 인데, 노래의 Motive는 1952년
전쟁이 한창이던 부산 임시 수도에서 "발췌 개헌"과 관련한 "부산
정치 파동"의 격변 상황(1952년 5월 25일)을 노랫말로 엮은 것입니다.
때는 1952년, 밀고 밀리는 전쟁의 어수선한 세월 속, 국난(國難)은
어디 갔던지, 혼란을 거듭하는 정국과 파쟁(派爭), 국회의원을 태운
버스가 '기중기'에 매달려 끌려가던 정치 파동, "해골단" 등의 폭력
조직이 난무 (亂舞)하는 판국이고 보니, 당시 선량한 국민은 고개를
돌리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때 가장 먼저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정든 땅, 내 고향, 전원에
몸을 묻고 논, 밭갈이 나 하면서 부질없는 시비(是非)를 등지겠다는
소망 (所望)은 어쩌면 인간 본연의 생리라 하겠습니다.
「박재홍」의 『물 방아 도는 내력』은 '물 방아'라는 단어가 맞춤법
개정을 거치면서 '물레방아'로 바뀌게 되고 이후에 발매되는 앨범
에는 제목이 바뀌어 표기됩니다. 지금도 두 가지 제목을 모두 사용
하고 있죠. 원래 노래란 가사 좋고 곡이 좋고, 가수가 좋으면 히트
하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시대 조류"를 타고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며,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할 때, 더욱 나아가서 그들의 풀지 못한 갈증을 풀어줄
때야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물 방아 도는 내력』은 삽시간에 삼천리 방방 곡곡을 누볐습니다.
여기에 놀란 것은 당시의 집권당인 '자유당(自由黨'), 그들은
이 가사가 집권당을 비방(誹謗)하는 저의(底意)를 내포(內包)한 것
이라고 하여 작사자인 '손로원(1911~1973)'을 "오너라 가거라" 하며
치근거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수지(收支)를 단단히
맞춘 것은 '도미도 레코드사'였습니다. 아무리 만들어도 주문이 밀려
오는 음반 때문에 혼이 났다는 즐거운 기억을 남기고 있으며,
「박재홍」(1924~1989)'은 이 노래로 드디어 가요계의 '톱 싱어'가
되었습니다.
----------------------------
벼슬도 싫다 만은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길삼(김)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 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 야 싫어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봄이면 버들 피리 꺾어 불면서
물 방아 도는 역사 알아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