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장을 가다 - 터키 그랜드바자르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이 걸쳐있는 세계 유일의 시장[ Grand Bazaar ]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2. 14.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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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장을 가다
터키 그랜드바자르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이 걸쳐있는 세계 유일의 시장
[ Grand Bazaar ]
동 ‧ 서양의 만남의 장터
공공(사회)사업의 자금을 모으기 위한 목적으로 열리는 ‘바자회’라는 말을 종종 들어봤을 것이다. 여기서 ‘바자(Bazaar)’의 어원은 고대 페르시아어로 ‘식량을 파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로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는 ‘시장’이나 ‘상점가’로,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는 ‘자선장터’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한 시장들 가운데 ‘그랜드(grand, 웅대한, 원대한)’라는 형용사가 앞에 붙어있는 터키의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는 규모로 보나 다채로운 품목으로 보나 그야말로 웅대한 시장이다.
그랜드 바자르 전경 ⓒmichael_swan/flickr
그도 그럴 것이 이 시장이 위치한 이스탄불은 육상 실크로드의 종착지이자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제노바로 가는 해상 실크로드의 연결지점이자, 보스포루스 해협(Bosphorus Strait)을 사이로 아시아와 유럽이 맞닿은 곳에 위치한, 두 개의 대륙이 걸쳐있는 세계 유일의 도시다. 또한 터키 최대의 도시이며 경제와 문화의 중심도시로 예전 동로마제국(비잔틴)의 수도였던 곳이다. (원래는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렸으나 오스만제국에 의해 점령된 이후로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었다.) 간혹 이스탄불을 터키의 행정수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나, 1923년에 앙카라(Ankara)가 터키 공화국의 새로운 수도로 제정되었다. 이곳은 옛날에 앙고라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질 좋은 모피를 일컫는 ‘앙고라’는 이 앙카라에서 수출된 염소 털에서 유래한 말이다. 또한 이곳에는 한국전쟁에서 희생한 터키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쌓은 참전 기념탑이 있는 한국공원도 위치해 있다.
흔히들 터키는 NATO, 유럽의회 회원국, EU의 준회원국에 가입되어 있어 아시아가 아닌 유럽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더구나 월드컵 대륙별 경기 시 유럽 국가들과 대결을 하는 관계로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터키는 국토의 97%가 아시아 대륙의 서부에 위치해 있고, 3%정도만이 유럽대륙의 동남부와 연결되어 있는데 불과하다. 그들 자신은 유럽인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터키를 유럽이라고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원래 터키인의 뿌리는 중앙아시아 최초의 유목민들이었다. 우리가 돌궐(突厥)이라고 부르는 이 이름은 튀르크(Türk)의 음을 따서 한자화한 말로 터키인의 대부분이 이들의 후손이다. (돌突은 ‘부딪히다’, ‘갑작스럽다’라는 뜻을, 궐厥은 오랑캐를 뜻하는 것으로 중국인들이 이들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곤혹을 치르게 되자 이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의미 지어졌다.)
터키를 일컬을 때 ‘인류 문명의 박물관’이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이는 히타이트, 프리기아, 리디아, 페르시아, 헬레니즘, 로마, 비잔틴, 셀주크,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와 문명이 명멸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주로 터키족이 살고 있지만, 쿠르드족, 아르메이나인, 유대인, 시리아인, 아랍인, 페르시아인, 루마니아인, 발칸인, 등 다양한 민족들이 있다. 오스만 제국은 넓은 땅을 통치하기 위해 종교적으로 관용을 베푸는데, 이슬람교 뿐 아니라 세금만 잘 낸다면 다른 종교도 인정해 주는 관용정책을 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종교와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다양한 문화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지정학 적으로도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고, 지중해를 통해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해 매우 중요한 요지에 입지해있다. 또한 접경을 이루는 나라가 이라크, 러시아, 루마니아, 시리아 등 무려 8개국에 이른다. 그랜드 바자르가 있는 이곳 이스탄불은 교역중심지의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서양의 문물들이 유통되었고, 이로 인해 다양한 문화와 문물교류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공간에 자리 잡고 있어 태생적으로 ‘웅대한 시장’이 될 운명일 수밖에 없었다.
그랜드 바자르의 탄생
그랜드바자르는 <트레블+레저>에서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방문한 관광명소’에서 매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출처: travelandleisure>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한 후 “이곳에 가면 그랜드 바자르를 꼭 들러 봐야한다. 도시의 심장부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미국 여행전문 매체 <트레블+레저(Travel+Leisure)>에서 조사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방문한 관광명소(World’s Most-Visited Tourist Attractions)’에서 매년 상위권(2014년 1위)을 놓치지 않을 만큼 관광객들 사이에 유명한 시장이다. 매일 25만에서 40만의 방문객들로 넘쳐나고, 2014년엔 총 9,125만 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랜드 바자르는 비잔틴 제국 시대에는 마굿간으로 사용하던 곳이라 전해온다. 그러던 곳이 시장으로 바뀌게 된 것은 오스만제국의 제7대 술탄인 메흐메트 2세의 명령에 의해서였다. 처음 이곳은 실크 무역상들이 물건을 팔면서 낙타와 함께 잠시 쉬어가던 곳으로, 동‧서양의 문물과 문화, 그리고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만나는 장이었다. 동서양의 무역을 중계하면서 대상(隊商, 카라반)들이 많아지게 되자 그들이 묵을 숙소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이 숙소에는 상인들을 위한 사원, 목욕탕, 말과 낙타를 위한 우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