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산 기슭
걸출한 선승들이머문 곳"
"양주 회암사(터)(檜巖寺址) 탐방...,"
"연이은 방위봉과 울창한 소나무숲이 수려한 경관을 이루며
빈 절터를 감싸고 있는 천보산 자락, 역사의 거친 회오리를 겪고 폐허 속에
침몰해 버린 회암사터(檜巖寺址)가 있습니다. 향로가 꺼진 오랜 세월, 만여 평의 절터에는
땅에 박힌 채 거친 세파를 말없이 견뎌온 석재들만 고스란이 남아 그 옛날 식어버린 온기를
전하고 있을 다름입니다. 이렇게 대사찰이 사라진 터를 보살펴 줄 사찰이 회남사터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도 *회암사(檜巖寺)* 입니다."
(회암사지 가는 길~~일출)
"의정부를 지나 경원가도를 달리다보면 양주와 포천땅을 가로질러
우뚝 서 있는 천보산(天寶山)이 멀리 보이며, 그 천보산을 바라보고 가면
자그만한 산 능선으로 둘라싸인 회남사터가 나타납니다.
(천보산 회암사 일주문)
"회암사 가는 길 오른쪽으로 주위를 압도하는 어마어마한 넓은 터가 나타납니다.
그 옛날 영화를 누렸던 대찰(大刹) 회암사는 없으지고 빈터만 남아 있습니다."
(회암사 가는 숲길)
"회암사지(터)에서 왼쪽으로 800m 쯤 올라가면 회암사가 있으며,
본래 회암사의 부속암자라면 잘 어울릴 아담한 절입니다."
(회암사 경내 들어가는 길~~고목 한 그루)
"저 아래(회암사터) 회암사가 번창할 당시에는 이곳에 절이 있지 않았으며,
이곳에 옛날 회암사를 기리는 절(회암사)을 지어 불심(佛心)으로
회암사터를 모시고 있는 절입니다."
(회암사 건립 공덕비)
(회암사 전경)
(양주 회암사 : 楊州 檜巖寺)
"지금 회암사(檜巖寺)는 순조 28년 (1828)에 창건한 것이며,
1922년에 조사전(祖師殿)을 짓고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鶴)* 대사의
진영(眞影)을 봉안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사전 : 祖師殿)
(조사들의 진영 : 祖師들의 眞影)
"조사전(祖師殿)에는 회암사와 직접 인연이 깊은 선사들의 진영(眞影)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지공선사(指空禪師), 나옹선사(懶翁禪師), 무학대사(無學大師)* 진영입니다."
(회암사 대웅전 : 檜巖寺 大雄殿)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大雄殿)은 중앙에 불단을 설치하고 그 위에 불상을 모시는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 봉안하고 있습니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전경)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 선사)
(관음전 : 觀音殿)~원통전
"관음전(觀音殿)은 관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전각이며,
관음보살의 공덕이 주원융통하다는 의미에서 원통전이라고 합니다."
"이 전각 안에는 관음보살을 홀로 모시거나,
양류관음이나 해수관음 또는 천수관음 등을 모시기도 합니다.
관음보살은 대개 왼손에 연꽃이나 감로병을 들고 있습니다."
(삼성각 : 三聖閣)
"삼성각(三聖閣)은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사찰 당우 중 하나이며, 내용은 삼성(三聖)은 각각 *재물과 수명과 복* 을
관장하는 전각입니다."
(경내에서 부도원으로 가는 길)
"회암사(檜巖寺) 동편 언덕으로 계단 길을 오르면 솔바람 소리 나긋한 산등선이에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 대사의 자취를 찾을 수 있는 *부도(浮屠)와 부도비(浮屠碑)* 가
남북 4~5m 간격을 두고 나란히 열지어 있습니다."
"풍수지리상 회암사를 중심으로 좌청룡의 탄탄한 등허리에 해당하는
맨 위 북쪽 언덕에 나옹선사의 부도와 석등, 언덕의 가운데에 지공화상 부도와 석등,
맨 아래 남쪽에 무학대사 부도와 석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단 여기 있는 석물들은 그 규모가 하도 우람해 주위를 압도하면서도
소박한 게 여기 있는 석물들의 특징입니다.***
(나옹선사 부도가 있는 곳으로 가는 숲길)
"좌청룡의 등허리 명당에 자리하고 있는 부도원에는 맨 위에는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이,
그 아래에 *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 이, 그리고 또다시 아래에 *무학대사 부도 및 석등* 이
산 능선을 따라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스님들의 *혼(魂)* 이 자리하고 있는 곳입니다."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 懶翁禪師 浮屠 및 石燈)~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
"지공선사 부도 위편 북쪽으로 20m 떨어진 언덕에 나옹선사 부도와 석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지공선사가 여주 신륵사에서 열반에 드는 바람에
부도와 부도비는 현재 회암사와 신륵사 두 곳에 있습니다."
"1376년 조성된 회암사터의 나옹선사 부도와 석등은 스승인 지공화상의
부도 . 석등과 별 차이 없이 단순하고 소박합니다."
(나옹선사 부도 : 懶翁禪師 浮屠)
"부도(浮屠)는 불교에서 승려의 사리를 안치한 탑(塔)이며,
일명 승탑(僧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나옹선사 부도에서 바라본 전경)
"나온선사 부도와 석등이 자리하고 있는 산등선 아래쪽에 지공선사, 무학대사의
부도와 석등 그리고 부도비가 차례로 이어져 있습니다."
(지공선사 부도와 석등~부도비)
"석물은 맨 앞단에 부도비를 세우고,
한 단 위에 석등과 부도가 한 줄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공선사 부도와 석등 : 指空禪師 浮屠와石燈)~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
"지공선사의 사리를 제자 나옹선사는 회암사에 봉안하였다고 하며,
따라서 지공선사 부도와 석등에서 나옹선사의 체취와 안목까지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지공선사 탑비 : 指空禪師 塔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석등 앞에 서 있는 탑비(塔碑)는 일명 부도비(浮屠碑)라고도 부르며,
부도비는 부도가 조성된 지 2년이 지난 1374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크고 우람하며 높이는 365cm이고 비문(碑文)은 고려 목은 이색이 썼다고 합니다."
(탑비의 귀부 : 塔碑의 龜趺)
(무학대사 부도와 석등 : 無學大師 浮屠와 石燈)
"고려 공민왕과 조선 태조의 스승이었던 무학대사 부도는
지공선사 부도 앞 5~6m 거리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학대사 부도 : 無學大師 浮屠)~보물 제388호
"조선시대 부도(浮屠) 가운데 기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걸작으로 꼽히는 부도이며,
부도 주변으로는 8각의 돌난간을 둘러쳐 부도를 보호하면서 더욱 장엄하게 보이게 합니다
(쌍사자석등 : 雙獅子石燈)~보물 제389호
"무학대사 부도 앞에서 촛불 공양을 올리는 쌍사자석등이 있습니다.
*석등(石燈)*은 어둠을 밝혀준다는 조명의 역활 이외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여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의미를 지닌 불가(佛家)의 중요한 상징물입니다."
"두마리의 사자(獅子)가 가슴과 배를 맞댄채 상대석을 받치고 있으며,
복실복실한 머리털과 통통한 몸매가 볼수록 귀엽고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무학대사 탑비 : 無學大師 塔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
"무학대사 탑비(부도비)는 쌍사자석등 아래에 있으며,
부도와 석등이 매우 화려하고 공력을 드린데 반해 탑비(부도비)는
특별한 문양이나 조식이 없어 단조롭고 소박합니다."
(탑비 받침돌 귀부 : 龜趺)
(탑비에서 바라본 전경)
(부도원에서 바라본 회암사)
"회암사(檜巖寺)는 고려시대 불교를 크게 일으켰던 3대 사찰 중 하나이었으며,
*지공선사(指空禪師), 나옹선사(懶翁禪寺), 무학대사(無學大師)* 로 이어지는
걸출한 선승(禪僧)들이 머물면서 명성을 드날리고 번창했던 절이 회암사였습니다."
(회암사터 : 檜巖寺址 전망대)
"회암사(檜巖寺)는 천마산 기슭의 서남쪽에 남향으로 앉아 3면이 숲으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전방이 툭 트여 시원했을 터(址)이나 옛날의 그 거대한 사찰은 사라지고
절터(寺址)를 나타내는 석물들만 옛 흔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회암사지 : 檜巖寺址)~사적 제128호
~~~(지공선사 : 指空禪師)~~~
"회암사(檜巖寺)는 고려 충숙왕 15년(1328) 인도에서 돌아온 지공선사(指空禪師)가
창건한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 땅에 들어와 불법을 펴던 지공선사는당시 인도 최고의
불교대학이 소속돼 있던 나란타샤를 본 떠 회암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나옹선사 : 懶翁禪師)~~~
"고려 우왕 2년(1376) 지공선사의 제자이며 고려 말의 뛰어난 고승 나옹선사(懶翁禪師)가
중건불사를 하게 되었으며, 회암사(檜巖寺)는 드디어 수많은 승려 대중이 머물고
수천의 대중들이 운집할 수 있는 대찰(大刹)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학대사 : 無學大師)~~~
"대찰의 규모를 갖춘 회암사(檜巖寺)는 전국 사찰의 총 본산이었으며, 3천 여명의
승려가 머물었다고 합니다. 그뒤 나옹선사의 제자 무학대사가 중창을 했다고 합니다."
"고려 때만 하더라도 승려 수가 3천여 명에 이르는 전국 최대 사찰(寺刹)의 하나였으며,
조선 명종 때에는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은 허응당 보우대사에 의해 사세(寺勢)가 하늘을 찌를 듯
드높았으나 문정왕후의 죽음과 함께 보우대사가 죽으면서 절도 폐사(廢寺) 되었다고 합니다."
(회암사지 : 檜巖寺전경)
(당간지주 : 幢竿支柱)~향토유적 제13호
(괘불대 : 掛佛臺)
(일주문터 : 一柱門址)
"회암사터(檜巖寺址) 정문이었던 일주문터에 들어서면 먼저 놀라게 되는 것이
거대한 절터에 정연하게 쌓은 석축과 계단 치장 등 품격 높았을 가람 배치 형상입니다."
"반듯하게 다듬어진 드넓은 터에 남아 있는 장려한 석축과
532개나 되는 주춧돌만 보아도 그 규모가 장엄했음을 짐작케 합니다."
(보광전터 : 寶光殿址)
(설법전터 : 說法殿址)
(정청터 : 靜聽址)
(정청지에서 바라본 회암사 부도탑)
"회암사터(檜巖寺址) 끄트머리와 잇닿은 북쪽에 무참했을
회암사(檜巖寺)의 역사를 지켜보았을 조선시대 부도(浮屠)가
쓸쓸히 서 있습니다."
(회암사터 부도탑 : 檜巖寺址 浮屠塔)~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
"조선 초에 조성된 팔각원당형 부도이나 비율을 염두에 두지 않은 듯
위로 올라가면서 키가 훌쩍 커버린 느낌이며, 현재까지도 부도의 주인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472년에 회암사를 크게 중창한 처안대사 부도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경사가 급한 지붕돌과 보주의 키도 길쭉길쭉해 전체적으로 위로만 치솟은,
매우 기다란 느낌을 주는 게 이 부도의 특징입니다."
"이 부도의 장식과 조각을 요모조모 뜯어보면
아주 공력을 많이들인 화려하고 장엄한 아름다운 부도입니다."
(회암사 부도탑에서 바라본 회암사터 전경)
"청 풍 명 월~~양주 회암사~터(사지) 탐방 ........................................................................,끝"
~~~(경기 양주시 : 楊州市) 이야기~~~
***(카페 전체 메뉴판)***(참고)
(가연님들의 이야기~산행과 여행정보)
*양주(1) : 양주나리공원 천일홍축제 (2018, 10, 19~카페 올린날)
*양주(2) : 회암사지(터) 탐방 (회암사 : 2023, 9, 23~카페 올린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