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와 망서 사이
- 사랑은 살피는 일이다 -
노곡 홍순도
해마다 여름이 더 뜨거워지고 있다. 예전에는 삼복더위라 하여 며칠 견디면 지나가는 계절의 한 고비쯤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폭염이 장마처럼 길게 이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폭서(暴暑)의 계절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옛사람들은 두 가지 지혜를 말하였다. 하나는 피서(避暑)요, 다른 하나는 망서(忘暑)이다.
피서는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옮기는 방법이다. 나무 그늘을 찾고, 계곡을 찾고, 잠시 일을 멈추어 몸을 쉬게 하는 것이다. 반면 망서는 어떤 일에 깊이 몰입하여 더위를 잊는 방법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연구에 열중하거나 즐거운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더위도 잊게 된다.
오늘날 스포츠 현장에서도 이러한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는 한낮의 뜨거운 햇볕 아래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하이드레이션(Hydration) 또는 쿨링 브레이크(Cooling Break) 제도를 운영한다. 경기 도중 잠시 쉬면서 물을 마시고 체온을 낮추어 탈진과 열사병을 예방하는 장치이다. 아무리 승부가 중요해도 생명보다 앞설 수는 없다.
생각해 보면 "소나기는 피하라"는 우리 속담이야말로 폭서를 견디는 명처방전이 아닐까. 비를 피하듯 폭염을 피하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지혜이다. 더위와 맞서는 용기보다 더위를 비켜 가는 지혜가 사람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름철 농촌에서는 안타까운 소식도 종종 들려온다. 폭염 아래 콩밭을 매다가 쓰러져 끝내 생명을 잃었다는 기사들이다. 더위를 잊고 일에 몰두한 결과이니, 어찌 보면 지나친 망서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옛말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였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폭서를 대하는 자세에만 국한된 일이겠는가.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어지면 정이 식는다. 다가설 때와 물러설 때를 분별하고, 상대의 형편과 한계를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사랑이란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피할 것은 피하고, 품을 것은 품으며,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에서 서로를 살리는 길을 찾는 일이다. 폭서를 건너는 지혜가 삶을 건너는 지혜가 되듯, 사람을 살피는 마음이 사랑이고, 사랑은 곧 서로를 살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