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마지막 일지라니!!!
너무 슬프다. 생각해보니 다음주 이맘때쯤이면 마지막으로 일지를 쓰게 될텐데...어색했던 첫 모임이 벌써 2달 전이라니 믿을 수 없다. 공연이 끝나간다는 사실이 점점 실감이 난다. 진짜 왜 좋은 시간은 빠르게 슝 하고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연극 끝나도 한달만 더 모입시다 우리 ㅠ
1. 오전 배우훈련
: 아침부터 연출님과 윤재를 오가며 괴롭혀대는 경빈이의 소란과 함께 오전 훈련이 시작됐다. 가끔 그 괴롭힘의 대상이 내가 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보는 것 만으로도 기가 빨린다. 경대(경빈이 대단해)
다들 스트레칭을 할 때 여전히 곡소리를 내긴 하지만(서현 제외), 다들 고관절도 그렇고 여러모로 유연성이 많이 좋아졌다. 하긴 누구 한명 할 때마다 여러명이 악착같이 들러붙어 팔다리를 당기고 등을 누르고 하는데 유연성이 좋아지지 않을 수가 없는 환경이긴 하다. 그리고 대부분은 역시나 경빈이가 범인이다. 경범.
오늘은 특별히 평소와 달리 상체 위주로 풀어줬다. 먼저 벽에 손을 짚고 대흉근을 이완시키고 날개뼈를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했다. 엄마, 변호사는 놀랍게도 대흉근이 존재하지 않아 고통을 못 느꼈다. 다음으론 견갑을 뽑아주었다. 마찬가지로 근육이 존재하지 않는 둘은 이 스트레칭의 의미를 도저히 실감치 못하는 모습이였다. 마지막으로 어깨 뒷면 스트레칭을 해줬다. 보통은 쉽게 꺾이지 않는 스트레칭인데, 팔이 그냥 꺾여버리는 서현이의 유연성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명 무척추동물임이 확실하다.
2. 런, 런, 런!
: 밥을 먹고 강의실에 왔는데, 오늘 당연히 배달장 게임을 하겠거니 싶었었다. 하지만...이제 뽑을 필요가 없어졌다...ㅠㅠ 넘 슬프다.
다들 점심을 얼마나 맛있는걸 먹었는지 혈당 스파이크에 묻혀 졸음을 못 이기고 있었다. 그래서 잠깐 연습이 지체되는 동안 윤재를 베개삼아 배우끼리 다같이 누워있었다. 조명 불빛이 햇빛처럼 따스하게 비춰주니 몸도 나른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아니면, 마음 따뜻한 네명이 뭉쳐서였을까. 어찌됐든 그 잠깐 동안의 정적이 되게 평온하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순간 아련하고 울컥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다들 서로 부데끼고 장난도 치면서 많이 친해졌는데, 이 조합이 만날 날이 일주일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정말 아쉬워서이다.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런을 돌렸다. 전체적으로 연출님의 피드백도 빠르게 수용해 나갔고, 대사도 잘 숙지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극의 깊이가 점점 생겨나는 것 같았다. 누군가 웃참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7막에 들어선 이후 난데없이 시작된 웃참 배틀 아니, 광란의 웃참 파티가 이어졌다. 대사 틀렸다고 입을 쩌억 벌리고 있던 서현이를 필두로, 그걸 보고 경빈이가 잠깐 위기를 맞이했고, 마찬가지로 서현이를 보고 웃참을 하고 있었던 윤재를 바라본 경빈이부터 시작해서 다같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경빈이는 데굴데굴, 서현이도 계속 혼자 빵빵 터지면서 주저앉아 버렸고, 감정 컨트롤 잘 하는 윤재도 계속해서 실소를 자아냈다. 양준이와 나는 같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진정좀 시키고 다시 진행하려 해봤지만 서현이가 계속해서 어깨를 들썩이고 웃참을 실패한 탓에 결국 런이 잠깐 중단됐다. 그렇게 약 1시간 가량을 웃고 또 웃으며 보냈다. 그동안 동방에 가서 무대팀한테 경빈, 서현이 웃참하느라 열심히 만들어준 소품을 못 썼다며 무대팀에게 사과하는 시간도 가졌다. 나랑 윤재는 신나게 둘을 놀려댔다. 바보들, 바보 둘.
강의실로 돌아와 처음부터 다시 런을 돌렸다. 오늘 런은 약간의 웃참 이슈와 액트&리액트를 제외하면 꽤 만족스러웠다. 대본을 열심히들 숙지해온 결과였을까. 맨 처음 런을 돌렸을 때보다 피드백 시간이 많이 줄었다. 특히 놀라웠던 건 서현 어무니의 장족의 발전. 대본을 외운 엄마의 연기력은 굉장히 출중했다. 6막 장면 구상 때부터 그토록 공들여 만들고 도와준 효과가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이제 틀리거나 웃참할 때 서현이로 돌아오지만 않으면 큰 걱정은 없을듯. 내일 연습때도 웃참하면 칭찬 취소
윤재를 일찍 보내고, 피드백을 받은 뒤 천천히 강의실 정리를 시작했다. 하...슬프다는 말밖에 나오질 않는다. 마스킹 테이프를 떼고, 빼놨던 책걸상을 원위치 시키고, 구석구석 남아있던 연습의 흔적들도 점차 지워져갔다. 소품과 물품들을 동방에 갔다놓고 왔을 때쯤, 삼두 회의가 끝나고 무대팀이 강의실로 왔다. 그동안의 추억과 사랑이 담긴 칠판을 한껏 촬영하고, 강의실 이별 영상도 찍었다.
그러곤 다같이 칠판의 그림과 글자들을 하나둘씩 지웠다. 내 최고의 역작인 경나경진이 사라지는 건 도저히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이때의 강의실의 광경들은 인문대 10층을 들릴 때마다 두고두고 떠오르지 않을까. 웃고, 떠들고,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장난도 치고, 운동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도 치고, 사람들의 온기와 정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그런 공간이였는데...어느샌가 다시 차가운 일반적인 강의실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눈물겨운 강의실 송별회가 끝난 뒤 남은 인원들끼리 밥먹고 한껏 놀다가 집에 갔다. 그동안의 연습 과정들이 방울방울 떠오르며 추억에 잠긴 날이였다.
첫댓글 칭찬취소절대안돼
오늘도 웃기만 해보쇼... :[
아니 근데 진짜 윤재 오빠가 입을 오물오물했다고요ㅠㅠㅠㅠ억울
그럴땐 연출님이 객석 맨 앞에 앉힌다던 그분을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