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틈에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한 해가 중반으로 접어드는 시간이다. 풀빛으로 완연히 짙어지는 계절이다. 산 그림자 드리운 둘레길이 이어진다. 물 빠진 저수지가 고즈넉함을 선물한다. 수려한 품에 안겨 아늑하고 포근하다. 신선들이 머무는 정취를 자아낸다. 한낮의 더위마저 저절로 사라진다. 오어지에 비친 오어사 풍경도 푸르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풀빛 미래를 본다.
ⓒ 함우석 주필 [충북일보] 오어지 둘레길의 여름이 싱그럽다. 저수지를 거쳐 온 바람이 시원하다. 더위를 식히기에 그만이다. 복잡한 생각이 홀가분해진다. 풀빛 숲길이 사색의 길이다. 오어지 둘레길엔 푸른 마력이 있다. 사시사철 다르지만 이즈음 색감이 뛰어나다. 우선 풍광이 빼어나다. 원시림으로 덮여 햇볕이 잘 닿지 않는다. 각종 활엽·침엽수림이 우거진다. 뙤약볕이 이글거려도 딴 세상이다.
2019년 6월15일 오전 10시 날씨가 좀 흐리다. 충북일보클린마운틴 회원들이 오어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오어지 둘레길 들머리가 몇 걸음 앞이다. 전체 길이 118.8m의 출렁다리가 보인다. 원효교다. 오어사를 뒤로 하고 다리를 건넌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수목이 우거진 평탄한 길이다. 오어지 물이 반쯤 빠져 있다. 저수지 사면에 흘러내린 흙 주름이 수려하다. 멍석길이 나온다. 폭신한 느낌을 준다. 무엇으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 파인애플이나 대마 껍질 같다.
빽빽이 들어찬 나뭇가지 사이로 저수지가 보인다. 저 아래 시퍼런 물이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오어지가 물속에 길게 드러눕는다. 굴참나무가 짙은 풀빛을 한다. 소나무도 함께 어우러진다. 덕분에 상쾌한 그늘을 드리운다.
길바닥엔 여전히 멍석이 길게 깔려 있다. 걸을 때마다 폭신한 느낌이 좋다. 누군가 공력을 다해 뜨개질한 모양새다. 저수지를 끼고 한참을 돌아간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물빛이 산란한다. 햇볕 머금은 물방울에 생명이 깃든다.
주변 경치가 달라진다. 길도 데크길로 바뀐다. 절벽을 이용해 설치된 데크길이다. 높이만큼이나 오어지를 최상의 조건에서 조망할 수 있다. 조금 걷다 보면 저수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이 나타난다. 전망대다.
전망대 조망은 훌륭하다. 방해하는 나무도 없다. 시원하게 확 트인 공간이다. 물을 곁에 두고 다시 걷는다. '남생이 바위'가 보인다. 바위 꼭대기에 한 그루 작은 소나무가 있다. 그 곁에 남생이 모양의 바위가 앉아 있다.
남생이 바위 너머로 오어지 둑이 보인다. 둑 다듬기 공사가 한창이다. 238m의 직선 아래 오어지 물빛이 짙다. 물 아래에는 마을과 밭들이 잠겨 있다. 항사리(恒沙里)다. 오어사의 창건 당시 이름이 '항사사(恒沙寺)'인 까닭을 알게 된다.
오른쪽으로 꺾여 돌아간다. 활엽수 중심의 주변 수목이 조금씩 소나무로 바뀐다. 몇 발짝 더 올라가니 다시 잡목이 우거진다. 약간의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어렵지 않게 걷는 그늘길이다. 사라졌던 저수지가 다시 나타난다.
얼마 가지 않아 사랑스러운 벤치가 유혹한다. 일부러 다리쉼을 하게 된다. 문명세계에서 실려 온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누군가 상처 받은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준다. 눈은 여전히 저수지로 향한다. 사람들의 소리가 차츰 멀어진다.
메타세쿼이아 숲이 보인다. 쭉쭉 뻗은 나무들이 신전의 기둥 같다. 시간이 멈춰버린 세계 같다. 몽환의 세계에 빠져 한참을 머문다. 가지사이로 한줄기 빛이 비집고 들어온다. 묘한 감흥을 일으킨다. 사이사이 피크닉 테이블과 사각 정자가 정겹다.
침·활엽수림이 우거져 공존한다. 숲 그늘에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햇볕이 쉽게 닿지 않는 공간이다. 초여름 더위가 저만치 달아난다. 주변 풍경이 사색에 잠기게 한다. 오어지 둘레길 풍광이 빼어나다. 길의 중심에서 휴식을 한다.
그늘에 마련된 정자가 눈에 띈다. 담소를 나누며 경치를 만끽하기에 그만이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휴식을 취한다. 한 무리가 삼림욕을 즐긴다. 저수지 아래 버드나무 한 그루가 오아시스 풍경이다. 물이 빠져 드러난 백사장 때문이다.
길이 점점 깊어진다. 낮은 언덕을 넘어선다. 완만하게 경사진 길을 700m가량 오르내린다. 한적한 시골길처럼 평탄하다. 원터골이다. 대곡 또는 대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옛 사람들이 오고 가던 두멧길이다,
원터골은 오천에서 경주로 가는 큰 골짜기다. 사람이 살지 않는 심산유곡이다. 행인들이 묵어갈 수 있도록 고을 원님이 집을 지어줬다. 그 집이 원(院)이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안내판 뒤로 원터로 짐작되는 터가 있다.
클마 회원들은 여기서 멈춘다. 안항사 입구까지 가도 되지만 제방공사로 불편하다. 아쉽지만 파란 하늘에 감사하고 하루를 마친다. 골짜기를 거스르는 구름 광경이 신비롭다. 대자연의 생동이 느껴진다.
/ 함우석 주필
천년 고찰 오어사와 자장암 - 원효와 혜공의 숨결 느껴져
오어지 둘레길에서 빠질 수 없는 명소가 오어사다.
오어지 제방 아래 대형주차장에 버스를 세운다. 일주문을 지난다. 얼마 가지 않아 오어사 주차장에 닿는다. 천년고찰이 눈에 들어온다. 바위 절벽 위로 암자 하나가가 눈에 띈다. 제비둥지처럼 살포시 내려앉는다.
선경을 그린 산수화가 버틴다. 자장암이다. 삼면이 절벽인 암봉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다. 길은 가파르지만 짧다. 오어사 주차장에서 150m 거리다. 산자락을 따라 부담 없이 오른다. 나무 데크와 자연석을 다듬어 만든 계단길이다.
초입의 부도탑이 세월을 웅변한다. 잘 정비된 계단, 푹신한 흙, 나무뿌리, 돌계단이 번갈아 나온다. 발바닥의 감각이 살아난다. 걷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절벽 끝 자장암에 오른다. 족히 100m는 넘을 듯한 벼랑 위에 오롯이 앉아 있다.
자장암이 공중부양 하듯 앉아 있다. 그 옛날을 굽어보는 듯하다. 누가 뭐라 해도 절경이다. 산신각에서 조망이 뛰어나다. 관음전과 나한전 앞에서 합장을 한다. 뒤편으로 가니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세존진보탑이 있다.
자장암에서 오어지를 내려다본다. 깊게 푸른 오어지가 하늘과 잘 어울린다. 반달형 땅 위에 오어사가 둥지를 튼 모양이다. 초승달 모양의 호수가 절을 에워싼다. 깊은 계곡이 산속으로 굽이굽이 뻗어나간다. 아득하다.
다시 합장을 하고 암자를 내려온다. 일상에 찌든 마음을 씻기 위해 오어사로 든다. 오어지가 천년 고찰을 고즈넉이 품는다.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세워졌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절 중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절집이다.
자장암 주소는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다. 자세한 창건 내력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신라의 원효와 자장, 의상, 혜공의 수도 장소로 알려져 있다. 원효가 유일하게 한 수 가르침을 청한 이가 혜공이란 말도 전해진다.
삼국유사는 이렇게 전한다. "원효가 여러 가지 불경의 소(疏)를 찬술하고 있었는데, 언제나 혜공에게 가서 물었다." 혜공이 말년에 오어사에 머물 때의 일이었다. 책에는 두 스님이 노닐던 기록도 있다.
"어느 날 혜공과 원효가 시내를 따라가면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다가 돌 위에 똥을 누었다. 혜공은 원효의 똥을 가리키면서 희롱하는 말을 했다. '그대가 눈 똥은 내(吾)가 잡은 물고기(魚)일 게요'." '내 물고기'를 뜻하는 오어는 이렇게 태어났다.
절 이름이 항사사(恒沙寺)에서 '오어사(吾漁寺) 바뀐 유래다. '항사'란 '갠지스 강의 모래알'이라는 뜻이다. '무한한 수'란 의미로 쓰인다. 일연(一然·1206~1289) 스님은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이 세속을 벗어났기 때문에 항사동이라 부른다"라고 풀이했다.
여름풍경이 한창이다. 1천300년 전 네 분 스님들의 자취가 흐른다. 자장과 의상. 원효와 혜공이 웃는다. 네 분 고승 이야기만 들어도 풍성하다. 그들이 불법 나누며 거닐던 '선(仙)의 길'을 마친다. '갠지스의 모래'들이 깊은 물속에 잠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