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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의 나날 원문보기 글쓴이: 람미
***간증: 1546. [역경의 열매] 서정희 (1-40) 아버지 없이 살다 하나님 아버지 만났을 때가 제일 행복
가난 벗어나려다 우연히 접어든 연예계
광고모델로 일하다 유명 방송인과 결혼
이혼 후 홀로서기 하며 새로운 일 도전
방송인 서정희씨는 힘들 때마다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며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저서 ‘정희’ 프로필 사진을 권영호 작가가 촬영했다.
세상에서 나를 소개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저 “예수님의 자녀입니다”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내 이름 앞에, 그 어떤 것을 요구했다. 나는 방송인이었다가, 방송인 아내가 됐다가, CF모델로 불리기도 하고, 가끔 교수나 작가, 공간 디자이너로도 불린다. 돌이켜보니 역경의 문턱을 수시로 넘나들었던 같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5세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가난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린 나의 소원은 친척이 있는 미국에 가는 것이었다.
꿈을 이뤄준다는 나라로 떠나기 위해 영어학원에 다녔다. 그러다 길거리 캐스팅이 됐고, 그것은 운명을 바꿔 놨다. 화장품을 비롯해 여러 회사 광고모델로 일했다. 당시 유명 방송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세상이 다 아는 떠들썩한(?) 이혼을 했다.
다시 원점, 혼자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TV홈쇼핑에서 물건을 팔고,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대학 강의를 하며 발레도 배웠다.
요즘은 건축회사를 운영 중이다. 서정희만의 건축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없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 좋은 날도 많았다. 가장 좋았던 건 아버지 없이 살던 내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났을 때다. 마음껏 응석부릴 아버지가 계시다는 생각에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하나님은 역경의 순간 순간 나를 일으켜 주셨다.
덕분에 지금도 살아있다. 얼마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한쪽 가슴을 절제한 암환자가 됐다. 하지만 고통의 순간에도 아버지는 위로해주셨다. 살아갈 용기를 주시고, 역경 너머의 빛을 보게 해 주셨다.
홀로서기 후,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글을 썼다. 글쓰기는 하나님과, 때론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다. ‘정희’ ‘혼자 사니 좋다’ 책을 잇달아 출간했다. 오롯이 감정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꾸밈없이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놔서일까. 결혼생활을 하면서 라이프스타일과 신앙 관련 책을 5권 냈는데, 그 시절 느낌과 달랐다.
간혹 방송에 나가 성경의 아가서 말씀대로 나를 소개하곤 했다.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아가 6장 10절)
요즘은 ‘작가’라고 불리길 좋아한다. 왜냐하면 ‘짓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글을 짓고, 집을 짓고, 병으로 무너진 내 몸을 다시 짓고, 신앙으로 마음의 평화와 사랑을 짓고, 그렇게 하나님의 응원을 받으며 내 삶을 짓는다.
앞으로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코너에 작가 서정희, 그러니까 짓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려한다. 그저 누구라도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 용기를 얻어 자신만의 멋진 생을 지어나가길 바란다.
약력=방송인. 디자이너. 해태제과 LG전자 등 TV광고 모델. 국제대 산업디자인과 초빙교수 역임. 티비디(tBD) 건축사무소 공동대표. 유튜브 ‘서정희와 함께하는 성경낭독’과 인스타그램 ‘junghee_suh’ 운영. 저서 ‘혼자 사니 좋다’ ‘정희’ 등 다수.
* [역경의 열매] 서정희 (1) 아버지 없이 살다 하나님 아버지 만났을 때가 제일 행복
* [역경의 열매] 서정희 (2) 넘어지고 깨져도 새로운 모험과 도전은 신나는 일
* [역경의 열매] 서정희 (3) 가슴에 멍울 만져져… "건강한 내가 암이라니" 기가 막혀
* [역경의 열매] 서정희 (4) 죽음의 고비 넘긴 4차례 항암치료 "주님, 감사합니다"
* [역경의 열매] 서정희 (5) 해피엔딩 꿈꾸던 인생… 시나리오대로 흐르지 않음 깨달아
* [역경의 열매] 서정희 (6) SNS 통한 팬들과 진실한 소통… 즐겁고 살맛 나게 해
* [역경의 열매] 서정희 (7) 내 몸은 오래된 건축물… 지금은 닦고 조이며 보수 중
* [역경의 열매] 서정희 (8) 매일 성경 읽고 녹음… 주님과 둘만의 행복한 시간 가져
* [역경의 열매] 서정희 (9) 딸 동주와 싱가포르 여행…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며
* [역경의 열매] 서정희 (10) 든든한 기둥 되어 날 일으켜준 하나님과 딸 동주
* [역경의 열매] 서정희 (11) 일상이 된 글쓰기 습관… 세상과 소통하며 힘든 일 극복
* [역경의 열매] 서정희 (12) 철저히 혼자된 결혼생활, 주님과 교제하며 외로움 달래
* [역경의 열매] 서정희 (13) 폭우에 천장에서 물 '뚝뚝'…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도
* [역경의 열매] 서정희 (14) 빈혈에 시달리면서 잘 먹지도 않자 '별난 아이' 별칭
* [역경의 열매] 서정희 (15) 말수 없던 어린 시절, 집에서 인형 옷 만드는 재미에 쏙
* [역경의 열매] 서정희 (16) 상처로 남은 유년시절 아버지의 죽음… 신앙으로 극복
* [역경의 열매] 서정희 (17) 엄마 대신 살림하느라 힘든 할머니께 더럽다며 잔소리
* [역경의 열매] 서정희 (18) 웅변학원 한번 안 다니고 '반공 웅변대회'서 입상
* [역경의 열매] 서정희 (19) 가난 벗어나려 아메리칸 드림 꿈꾸다 길거리 캐스팅
* [역경의 열매] 서정희 (20) 아이들은 하나님 선물… 출산의 고통은 기쁨 되는 과정
* [역경의 열매] 서정희 (21) 설정해 놓은 삶 쉼 없이 달려… 일방통행 자녀 교육 후회
* [역경의 열매] 서정희 (22) 주님 안에 완벽한 가정 꿈꾸다 32년 결혼 생활 마침표
* [역경의 열매] 서정희 (23) 자전적 수필집 '정희' 발간… 불편했던 세상과 소통 시작
* [역경의 열매] 서정희 (24) 엄마와 같이 산 지 7년… 상처 난 아픈 마음에 행복 충전
* [역경의 열매] 서정희 (25) 집은 커다란 도화지… 열심히 가꾸다 보니 어느새 전문가
* [역경의 열매] 서정희 (26) 57세 여름, 발레 도전…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는 시간
* [역경의 열매] 서정희 (27) "주님, 아버지 없이 자란 제게 아버지 돼 줘 고맙습니다"
* [역경의 열매] 서정희 (28) 꽃가게는 나만의 놀이터… 힘들고 속상할 때 늘 위로해줘
* [역경의 열매] 서정희 (29) "연습 통해 '내 것' 된 운전처럼 믿음도 '노력' 필요해요"
* [역경의 열매] 서정희 (30) 언제든 준비된 '살림의 여왕'… 행복한 주방을 꿈꾸다
* [역경의 열매] 서정희 (31) 기도원 첫날부터 몸살감기… 약으로 버티며 밤새 기도
* [역경의 열매] 서정희 (32) "100대 명산 찍어보리라" 가파른 산 오르며 건강관리
* [역경의 열매] 서정희 (33) 나만의 '에코 시크 스타일'로 건강과 멋 모두 살려
* [역경의 열매] 서정희 (34) "그리스도의 향기 나는 믿음의 가정되게 해 주소서"
* [역경의 열매] 서정희 (35) 먼지 속 땀 흘리는 현장에서 또 다른 삶의 색을 배운다
* [역경의 열매] 서정희 (36) 대상포진 3번이나 걸려… 통증 올 때마다 눈물로 기도
* [역경의 열매] 서정희 (37) 엄마 품 같은 침대 안… 주님과 대화하며 행복 꿈꿔
* [역경의 열매] 서정희 (38) 기도하며 기다린 끝에 친정 식구 모두 주님께 돌아와
* [역경의 열매] 서정희 (39) 기도와 묵상으로 아침 열며 "아버지 사랑해요, 감사해요"
* [역경의 열매] 서정희 (40·끝) 내 삶은 아름다운 도전… '반복과 인내'의 증거 나타나길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
***[역경의 열매] 서정희 (2) 넘어지고 깨져도 새로운 모험과 도전은 신나는 일
결혼생활 정리 후 몸·마음 위축됐지만
해보지 못했던 일들 도전하면서 극복
좌절과 시련 이겨내며 믿음 더 깊어져
방송인 서정희씨가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넘어지고 깨지기 일쑤지만 좌절과 도전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결혼생활, 온실의 화초처럼 지냈다. 홀로 남아 많이 위축됐다. 두렵고 떨리고 나아갈 용기가 없었다. 나답지 않게 청소도 정리도 미뤄둔 채 멍하게 앉아 지내는 날이 많았다. 며칠 새벽 기도 중에 벼락처럼 깨달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어게인(Again). 다시 일어서자. 움직이자. 나아가자”고 결심하고 조금씩 원래의 나를 되찾았다.
주변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부터 시작했다. 늘 하던 일이다. 다음엔 하지 않던, 아니 해보지 못했던 것에 도전했다. 다시 운전대를 잡고 연습을 시작했고, 혼자 밥을 먹고 영화를 보며 여행을 갔다. 엄두가 나지 않던, 그런 것을 하나씩 극복하면서 용기가 생겼다.
대학에서 공간 디자인을 가르쳤다. 관련 분야에 오랜 시간을 쏟으며 공부한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건 즐거웠다. 익숙한 길만 겨우 다녔는데, 학교에 나가면서 먼 거리까지 운전할 수 있었다. 혼자 여행 떠나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 점점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두렵지 않았다.
처음 TV홈쇼핑에서 물건을 소개할 때 많은 지적을 받았다. 내가 봐도 하기 싫은 티가 났다. 멘트도 어색했다. 예전이라면 하기 싫다고 포기했겠지만, 다시 도전했다. 부족한 점을 분석하고 연구했다. 그 덕분인지 TV홈쇼핑을 꽤 오래 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발레와 라인 댄스, 타악기 카혼, 로드 사이클, 성악, 수영 등. 요즘은 골프를 시작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용기 내지 못했던 것에 하나씩 도전 중이다. 물론 매번 한계에 부딪힌다. 발레는 근력 부족으로, 라인 댄스는 손발이 따로 놀았다.
‘로드 여신’이 돼볼까 해서 시작한 로드 사이클은 몇 번 도전 끝에 달리는 기쁨을 알게 됐다. 이즈음 다리 부상과 암 투병으로 결국 자전거를 팔고 말았다. 모든 게 어렵다. 그러나 곧 멋진 고글(보안용 안경)과 안전모를 다시 쓸 것이다. 잠깐의 휴식 뒤에 말이다.
수영은 물에 잘 뜨지도, 호흡도 못 한다. 연거푸 물을 먹기 십상이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 물 장난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기쁨을 느끼고 있다.
뭐하나 잘 해내지 못해 좌절한다. 하지만 절망하진 않는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새로운 걸 경험하는 건 정말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넘어지고 깨지면서 다시 일어나는 좌절과 도전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잃는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비로소 다시 채울 수 있는 소중한 것이다. 바닥을 쳤다면 그때부터다. 신앙인의 믿음도 그럴 때 더 성장한다. 극한에 부딪혔을 때 방해하던 것이 사라지면서 하나님 말씀이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체험이 나를 흥분케 한다. 도전 모험 호기심은 20대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60대 이 나이에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앞으로도 도전과 모험, 호기심을 품고 살아갈 생각이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3) 가슴에 멍울 만져져… “건강한 내가 암이라니” 기가 막혀
목과 어깨 통증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유방암 진단받고 절제 수술과 항암치료
사소하지만 위대한 일상의 소중함 느껴
서정희 작 ‘천로역정’(天路歷程). 서씨는 천로역정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아이 키울 때 천로역정을 그림으로 그려 쉽게 설명하곤 했다.
“엄마, 여기 좀 만져봐. 좀 이상하지?”
지난 3월 엄마와 함께 아침을 먹고 집 근처 사우나에 갔던 날이다. 사우나에 가길 좋아해 급한 일이 아니면 늘 빼먹지 않는다. 평소같이 비누칠을 하는데, 오른쪽 가슴 위에 돌덩이 같은 것이 만져졌다. 엄마 손을 잡아끌어 내 가슴 위에 댔다. 엄마는 깜짝 놀라며 당장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병원 종합검진 비용이 아까워 3년 동안 검사를 받지 않은 터였다. 평소 목 주변이 쑤시고 어깨는 뻐근했고 등에 통증까지 있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열심히 글 쓰고 책 읽는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설마 큰 병이 내 몸에서 자라고 있으리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대학병원 조직검사 결과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의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당황스럽고 기가 막혔다. “주여, 건강한 내가 암이라니….”
암 초기 진단이었지만 의사는 가슴을 모두 절제하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후 모든 일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새로 계획한 일도 전부 멈춰 세웠다. 오직 병 치료에 집중해야 했다.
종양이 있던 오른쪽 가슴 절제 수술을 하면서 피 주머니를 차고 누우니, 차라리 죽으면 좋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기구할까….’
하나님께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투정 부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수없이 경고가 있었다. 몸 구석구석 통증을 무시했던 건 나였다. 그걸 그냥 지나친 게 잘못이었다.
아프기 전과 후, 딴사람이 됐다. 예민한 감수성은 빛을 잃었고, 피부와 손톱은 검어지고 머리카락도 숭덩숭덩 빠졌다. 건강을 잃고 초라해진 나 자신이 서글펐다.
걷는 것쯤은 당연한 일인 줄 알고 살았는데, 잘 걷지 못하니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었다.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드려야 하는데…. 제대로 앉을 수 없으니 기도하는 것도 버거웠다. 피 주머니를 차고앉아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원하는 건 큰 게 아니었다. 작지만 빛나고 아름다운, 사소해서 편안하고 다정한 것, 혼자 일어나 새벽기도를 하고, 두 다리로 걸어 주일에 교회 가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가족과 식사와 산책을 하고, 별일 아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함께 웃고 우는 것, 바로 그런 것들이 하고 싶었다.
일상을 채웠던 작고 아름다운 시간이 그리웠다. 고열과 씨름하고 수많은 부작용과 싸웠다.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는 내내, 다시 갖게 될 작은 것들을 생각하며 견디고 또 견디고 있다.
영국의 작가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에 “이 세상의 광야를 걷다가 나는 우연히 동굴이 있는 곳을 만났다. 나는 거기 누워 잠을 잤는데 자면서 꿈을 꾸었다”라는 글이 있다. 힘들 때 생각하는 문장이다. 이 소설 이야기처럼 꿈을 꾸고 깨어나면, 사소하지만 위대한 나의 일상을 꼭 끌어안고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4) 죽음의 고비 넘긴 4차례 항암치료 “주님, 감사합니다”
항암 치료하며 몸 붓고 통증·고열과 씨름
“왜 이런 시련을…” 하나님 원망하며 기도
환우들 만나 평안 찾으며 주님 뜻 깨달아
방송인 서정희씨가 지난 4월 초 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집도 의사는 수술 전날 가슴 절제 예상 부위를 표시했다.
지난 6월 29일 4차 항암치료를 마쳤다. 이로써 항암치료 1막은 끝이 났다. 2막은 가벼운 표적 치료 18회와 확장기 교체 보형물 재건 수술이 남아있다. 만만치 않은 일정이다. 하지만 이제 무섭지 않다. 하면 될 일이다. 1막도 잘 끝냈으니 2막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냐”며 하나님께 따지는 기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귀한 깨달음을 주시려는 뜻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감사 기도를 드린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랄 것이고, 피부는 다시 하얗게 돌아올 것이며 검게 변한 손톱도 원래대로 핑크빛을 띨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사실 항암치료는 죽을 만큼 아팠다. 죽음의 문턱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고약했다. 살아보겠다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2차 항암 때 온몸에 피부가 도넛처럼 부어올랐다.
부위는 매번 달랐지만, 부항을 뜬 것처럼 여기저기 울퉁불퉁 불거졌다. 팔과 다리가 엄청나게 부었다. 부작용으로 빵빵하게 부어오른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아프다더니 다 나았나 보다. 얼굴이 보기 좋다”고 말할 때마다 더 우울해졌다.
몸이 붓고 어색해 속상했다. 수도 없이 열이 오르내렸다. 불면증에도 시달렸다. 열을 내리려 젖은 수건을 이불처럼 덮고 덜덜 떨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숨쉬기도 쉽지 않았다. 3차 항암치료 때는 참고 버티려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길 반복했다.
계속 속이 울렁거렸다. 바늘로 찌르는 듯 통증이 계속됐다. 4차 항암 치료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몸이 붓고 열이 끓어올랐다. 고열이 사나흘씩 계속되고 ‘이러다 죽겠구나’ 싶을 즈음, 기적처럼 열이 떨어졌다.
가족들은 “주님,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딸 동주와 병실에서 껴안고 엉엉 울었다. 동주는 “잘 이겨낸 엄마가 자랑스러워”라고 위로의 말을 해 주었다. 그렇게 4차 항암치료를 마쳤다.
암 환자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 항암치료 부작용이다. 고스란히 다 겪어야만 끝이 난다. 아무리 좋은 약을 쓴다고 해도 항암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도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를 계속했다. 깨끗이 고쳐 달라고 간구했다. 하나님께 왜 하필 내가 암에 걸려 아픈지, 억울하다며 원망하는 기도를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실 암 투병을 시작하면서 세상을 경멸하고 증오했다. 그런데 병원에 다니고 많은 환우를 만나며 조금 평안해졌다. 저마다의 고통 속에서 괴로운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병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지냈다.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눈빛으로, 진심 어린 마음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기를 바랐다. 여러 환우를 보며 세상에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하나님은 내게 이걸 알려주시려 시련을 주셨나 보다. 아픔을 겪지 않았다면 평생 아픈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인생에 공짜로 얻는 건 없나 보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5) 해피엔딩 꿈꾸던 인생… 시나리오대로 흐르지 않음 깨달아
“믿음 좋은데 왜…” 비아냥, 가짜뉴스에 상처
하나님 향한 간절한 기도·찬양으로 이겨내
나 같이 힘든 이들에 위로와 힘 되고 싶어
방송인 서정희 씨가 지난 4월 초 서울 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위해 각종 검사를 받고 있다. 딸 서동주 제공
올여름 비가 자주 내렸다. 습기가 많은 축축한 날씨는 암환자인 내게 좋지 않다. 비가 올 때마다 통증이 심했다. 겨드랑이부터 허벅지까지 송곳으로 콕콕 찌르는 고통이 밀려왔다. 지독한 아픔에 몸서리쳤다. 외롭고 서러웠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고통의 시간을 견뎠다.
유방암 초기임에도 한 쪽 가슴 모두를 절제해야 했다. 암세포가 퍼질 수 있는 문제 부위를 도려낸다고 의사가 설명해 주니 오히려 안심이 됐다. 그러나 지금도 난 없어진 가슴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색하고 낯설기만 하다. 수 십년 간 있었던 가슴이 갑자기 사라지니 적응이 안 되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다행히 방사선 치료까지는 안 해도 된다. 그 점을 빼고 나면 온통 단점 투성이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새삼 깨닫는다.
유방암에 걸린 뒤, 괜찮은 척 씩씩하게 생활했다. 하지만 한동안 풀이 죽어 있었다. 암 걸린 사실을 알게 된 일부 지인이 “너는 믿음도 좋은데 왜 그렇게 안 좋은 일만 생기냐”고 대놓고 비야냥거렸다. 그걸 왜 내게 묻는지 울컥 눈물이 났다. 툭툭 내뱉는 타인의 말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와 찬양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현재 기도제목은 ‘주님, 살게 해 주세요’다. 살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은 분명 들어주실 거라고 믿는다.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 서정희니까. 출애굽기 33장 13절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이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살려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수시로 의지를 꺾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아등바등 살고 있는데, 황당한 가짜 뉴스가 발생했다. 유튜브에 ‘서정희 병원에서 공식 사망’이라는 영상이 뜬 것이다. 내 영전 사진까지 만들어 유포되고 있었다. 지인들이 깜짝 놀라 전화가 잇따랐다.
살려고 하는 사람을 왜 죽이려는 걸까. 돈 버는 수단치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 마음이 상했다. 누구라도 아프고 병이 생기고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닌가. 왜 그렇게 독하게 말을 하는 걸까.
예전 같으면 분노했겠지만 지금은 ‘오래 살 모양이다’하고 그냥 넘어간다. 그저 주님께 “저는 은총을 입은 사람이지요”라고 하소연하면 그만이다.
해피엔딩을 꿈꿨다. 당연히 내 인생은 해피엔딩일 거라 믿었다. 그 시나리오는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결혼도 이혼도 건강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괜찮다. 이제라도 인생이 정해 놓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한 가지 꿈이 생겼다.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사람, 망가진 사람, 헛된 꿈을 가진 바보 등 나 같이 힘든 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친구가 되고 싶다. 상처 받아본 사람이 상처 입은 이들을 더 잘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그 용기로 삶의 고통을 뛰어넘기를 바란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6) SNS 통한 팬들과 진실한 소통… 즐겁고 살맛 나게 해
언제나 우아한 백조이길 꿈꾸던 인생
소통의 부재로 대중들과 점점 멀어져
SNS서 만난 찐 팬들과 글과 그림으로
꾸밈없는 소통하며 격려와 응원받아
방송인 서정희씨는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사진은 서씨의 인스타그램 첫 화면.
백조이길 꿈꿨다. 아니 백조라고 생각했다. 발 아래는 쉼 없이 물질을 하지만 남에게 예쁜 모습만 보여주는, 고고하고 우아한 백조. 그 백조의 삶이 좋아 보였다. 보이는 것이 중요했고 인정받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인정받으면 인정받을수록 사람들과의 관계는 멀어졌다. 내 백조의 우아함에 사람들은 한편 부러워하면서도 거리감을 느끼며 불편해 했다. 대중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던 것이다. 백조라는 자리를 지키느라 제대로 날아오르지 못한 불쌍한(?) 백조였다.
그런 내가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열심히 하고 있다. 팔로워가 현재 7만 2000명쯤 된다. 나의 ‘찐 팬(fan)’들이다. 인플루언서, 셀럽 등 연예나 스포츠 분야에서 인지도가 높은 유명인에 비해 많지 않은 숫자이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보통 광고나 홍보를 싣고 수익을 내기 위해 SNS를 하기도 한다. 내 SNS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따뜻한 관계를 맺고 싶은 찐 팬과 소통의 장이다. 나는 일기 형식, 짧은 시,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올린다. 워낙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에 감동하면 그림이나 글로 표현한다. 내 SNS의 특징은 댓글이 엄청 달리곤 한다. ‘좋아요’만 누르는 게 아니고 공감한 내용을 남겨주신다.
요즘은 SNS에 새로운 분들이 찾아주신다. 바로 나 같은 유방암을 겪는 환우와 그 가족이다. 내 증상에 대해 조언해주고, 다음에 어떤 증상이 올 테니 대비하라고 알려주신다. 그분들의 조언과 정보가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덕분에 미리 준비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겪으면 지나간다는 것도 알게 됐다. 혹시 다른 증상이 나타나면 물어보기도 한다. 병을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답답한 마음에 아주 작은 정보라도 갈구하기 마련이다. 댓글 환우들 덕분에 모두 불안한 시간을 잘 견디고 있다.
최근 부은 얼굴과 통증을 안고 가발을 쓴 채 아침 생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화면에 퉁퉁 부은 얼굴이 나와 속이 상했는데 SNS에 격려와 응원의 글이 쏟아졌다.
로션만 바르고 메이크업 안 해도 예쁘고 아름답다는 칭찬, 내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 밝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는 칭찬이 있었다. 환우와 그 가족은 저마다 경험담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했다. 우리 모두 씩씩하게 헤쳐 나가 보자고 함께 파이팅을 외쳤다. 누군가 내게 서정희가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사랑스럽다는 말을 해줬는데, 그 댓글에 눈물이 났다.
SNS는 나만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요즘 인기 추세도 잘 모른다. 예전엔 사진작가가 찍어주던 완벽한 사진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내가 직접 찍어 올린 것이 더 반응이 좋은 것 같다. 이런 꾸밈없는 소통이 정말 즐겁고 살맛나게 한다. 이제 백조를 꿈꾸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날아가는 작은 새로 살고 싶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7) 내 몸은 오래된 건축물… 지금은 닦고 조이며 보수 중
딸과 여행하며 짐 톰슨의 집에 매료
작가의 취향으로 가꾼 공간 동경하며
건물도 세월 지나 상하면 새로 고치듯
몸 바로 세우고 기도하며 신앙 쌓아야
딸 동주와 함께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 항암치료 중이라 머리를 밀고 모자를 눌러 쓴 모습이 어린 소년 같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열이 올라 생사를 오갈 때 딸 동주가 내 귀에 속삭였다.
“엄마, 병 치료하고 얼른 일어나 여행 가자.” 그 말에 힘이 났다. “그래 우리 딸하고 여행 가야지….”
아픈 중에도 하나님께 어서 병이 나아 여행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여러 번 기도했다. 내게 여행은 영감을 주고 활기를 준다. 특히 글이 안 써질 땐 여행이 최고다. 여행을 가면 새벽에 샛별처럼 떠오르는 글을 한없이 쓰기도 한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벧후 1:19)
여행을 다녀오면 피곤하고 많이 아팠다. 이제 여행을 못 가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매번 고통을 이겨냈고, 함께 여행하자는 딸과의 약속을 조금씩 지키고 있다.
코로나19가 조금 잠잠해져 여행 규제가 완화됐을 때 2박 3일 짧게 태국을 다녀왔다. 동남아시아 여행은 처음이었다. 수도 방콕은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친근했고 따뜻한 기후가 마냥 좋았다. 화려한 네온사인, 싱그러운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라고 느꼈다. 기억에 남는 곳은 조용한 골목에 있는 짐 톰슨의 집이었다. 그는 태국의 실크를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집 건축 양식과 실내 디자인에 반해 두 번이나 그곳을 방문했다. 열대 나무가 포옹하듯 감싸고 있는 붉은 집. 그 안엔 짐 톰슨이 동남아 각지를 돌며 수집한 귀한 예술품들이 놓여 있었다. 화려함과 소박함을 동시에 갖춘 매력에 푹 빠졌다. 얼마나 신나게 둘러봤는지 잠시 아픈 것도 잊었다. 그 집을 보면서 자신의 취향으로 가꾼 공간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나도 이런 집에 살고 싶었다.
아프기 몇 달 전, 집을 짓기 위해 땅을 다지고 있었다. 친한 친구와 ‘집 짓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집을 포함해 스틸 집과 우드 집, 그린 집, 글라스 집 등 콘셉트가 있는 멋진 집, 적어도 10채 짓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보기만 해도 치유와 힐링이 되는 집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건축 이야기는 조금 더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병원에 다니고 몸을 고치느라 잠시 지체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건축에서 손을 놓은 건 아니다.
나는 지금 내 몸을 건축하고 있다. 몸도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튼튼하게 지은 건축물이라고 해도 비바람을 맞고 세월이 지나면 상하기 마련이다. 오래된 건물을 보수하듯 나 또한 보수해야 할 시기가 온 것뿐이리라. 새롭게 칠하고 닦고 조이면서 다시 쓸 만하게 만들며 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건축은 세우고 쌓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건축이다. 건강과 신뢰, 사랑, 믿음, 신앙 등. 어느 것 하나 세우고 쌓지 않는 일이 없다.
오늘도 건축으로 하루를 보낸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몸을 세우고, 기도하며 신앙을 쌓는다. 몸이 나으면 내가 살 집을 지을 예정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쉬고 싶은 ‘풀밭 같은’ 집, 그런 집을 지어야겠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8) 매일 성경 읽고 녹음… 주님과 둘만의 행복한 시간 가져
암 발병 1년 전부터 목소리로 십일조
유튜브 올려 몸·마음 아픈 이들 도와
녹음하는 동안엔 암 환자 고통도 잊고
몰입하며 성령으로 몸 뜨거워지기도
방송인 서정희씨는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성경을 녹음해 매일 오전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사진은 그가 평소 갖고 다니는 성경과 성경 노트, 돋보기, 색연필 등.
오늘도 서울 마포구 녹음실에 다녀왔다. 내 목소리로 성경을 읽고 녹음해 매일 오전 유튜브에 올린다. 암이 발병하기 1년 전부터 해오던 일이다. 성경의 십일조 개념은 물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님이 창조하신 나의 목소리로도 십일조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녹음을 시작한 이유는 자녀에게 읽어 주고 싶어서였다. 시중에 나온 성경 읽기는 대부분 배경 음악이 깔려 있었다. 들어보니 감동이 덜했다. 마음을 터치해야 하는데, 좀처럼 그것이 어려웠다. 주님이 나의 목소리를 사용해 녹음하라고 말씀하시는 걸까? 고민하던 어느 날, 기도하는데 직접 읽어 은혜 받고 복음을 전하라는 성령의 감동이 있었다.
처음엔 집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해 녹음했다. 한 시간여 녹음했는데 소음이 문제였다. 인근 지하철 소리가 들어갔다. 요즘엔 인공지능(AI)으로도 녹음한다. 일부분만 녹음하면 AI가 그걸 조합해 성경 말씀을 모두 읽어주는 방식이다. 조금 낯설었지만 좀 더 정돈된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작은 스튜디오를 빌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여 녹음한다. 풍족하지 않은 형편에 스튜디오를 빌리는 돈이 조금은 부담이다. 하지만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 평 남짓한 스튜디오는 소음을 차단해야 하기 때문에 에어컨도 온풍기도 사용할 수 없다. 더운 날엔 땀을 흠뻑 흘린다. 아무리 덥고 추워도 그 시간은 내게 힐링의 시간이다.
이어폰과 마이크, 돋보기와 성경책. 이것들만 챙겨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오로지 나와 하나님 둘만의 시간이다. 나는 때로는 예수님이 됐다가, 다윗을 대신해 기도 드리기도 하고, 바울처럼 가르치기도 한다. 교사였다가 상담자였다가 죄인이 된다.
몰입하다 보면 성령으로 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주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같은 구절을 읽을 땐 통곡이 터지기도 한다. 그럴 땐 그냥 운다. 한참 울고 다시 녹음한다. 녹음하는 동안은 암 환자의 통증도 잊은 채 하나님 말씀을 읽고 또 읽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그 시간이 황홀하고 행복하다. 스튜디오 안이 예루살렘이고 천국이다. 명품 옷도 필요 없고 명품 가구도 부럽지 않다. 말씀을 읽는 순간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쓸데없는 욕심과 욕망을 버리고 나온다. 온 천하가 내 것 같다. 말씀을 녹음해 유튜브에 올리면 아픈 사람들, 고통당한 사람들, 환난을 겪은 사람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가량이었더라”(삼상 22:2)
누구보다 도움받는 건 사실 나 자신이다. 성경 66권을 모두 녹음해 올릴 계획이다. 많은 사람이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 성경 읽기에 집중하면 하나님과 친밀하게 되고 성령 체험을 할 수 있다. 더 많은 분이 세상을 사랑하기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길 바란다. 주님과 교제하고 어색해진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길 기도드린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9) 딸 동주와 싱가포르 여행…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며
계획했던 짐 줄이기에는 실패했지만
여행 떠날 때마다 하나씩 비울 생각
삶의 패턴 변화보단 ‘나답게’ 살기로
방송인 서정희씨가 지난 8월 싱가포르 호텔의 피아노 앞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싱가포르 여행을 2박 3일 계획하면서 이번 만큼은 짐을 줄여야지 다짐했다. 원래 여행을 갈 때마다 트렁크 두 개에 물건을 꽉꽉 채워가곤 했다. 그렇게 다짐하고 짐을 챙겼는데, 또 실패했다. 공항에 도착한 내 손엔 역시나 커다란 트렁크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필요한 물건을 포기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어쩌겠나, 이게 나인 걸.
이혼 후 2017년 출간한 책 ‘정희’에 썼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매일 나를 가꾸고 주변을 단정하게 정리하는 일, 이왕이면 깨끗하고 예쁘게 치장하는 것, 이게 타고난 나의 성정이다. 이걸 바꾼다고 상황이 달라질 리 없고, 사람들이 이해해준다 한들 나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면 불행한 일 아닌가. 50년 넘게 이렇게 살았는데 괜히 의식적으로 털털하고 허술한 척 행동하는 게 오히려 나에게는 가식이고 포장이다. 개인의 차이이고, 각자의 취향일 뿐이다. 누군가는 개량 한복을 입으면 편하다지만 나는 도시적으로 세련되게 꾸며야 편안하다. 앞으로는 ‘나답게’ 살 예정이다. 내 자아가 원하는 대로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가꾸고 주변도 예쁘게 꾸미면서 당당하게 살 것이다. 그게 내가 편안해지는 길이다. 내 인생에 나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없다.”
삶의 패턴을 바꿔보겠다며 청소도 미루고 대충 살아 봤다. 하지만 고작 며칠 안 돼 결국 원래의 나로 돌아왔던 적이 있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 맞아, 나를 인정해야지. 할 수 있는데 안 할 이유는 없지. 아무리 환자라고 해도 기내에서 짐을 올리고 내릴 때는 황소 같은 힘이 생기잖아. 림프관 때문에 아프던 팔이 쭉 펴지고,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트렁크도 번쩍 들어 옮기잖아.
싱가포르 여행을 떠나면서 다시 한 번 나에 대해 생각했다. 트렁크 개수를 줄이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나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를 추구한다. 머니멀리스트는 예술가의 경우 가능한 단순하고 최소한의 요소를 통해 최대의 효과를 이루려는 사고방식을 갖는다. 앞으로도 조금씩 천천히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억지로 비우지 않고 과정을 존중하면서 도달해볼 생각이다. 나의 속도로, 서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앞으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하나씩 비울 작정이다. 어느 여행에선 작은 배낭만을 들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짐을 줄여가다 보면 언젠가 짐 보따리가 분명 많이 가벼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딸 동주와 싱가포르 여행은 즐겁고 행복했다. 옷이며 구두며 꼼꼼하게 챙겨간 것이 헛되지 않게 예쁜 사진도 많이 찍었다. 날씨가 더운 거 빼고는, 깨끗한 도시 풍경도 좋았다.
버리고 비워내는 쪽으로 나아가고 싶다. 나는 지금 충분히 많은 걸 가지고 있다. 예전엔 물건을 사도 사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 지금은 사지 않아도 영적 배부름으로 충분하다. 내 안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사랑의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다. 새로운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야겠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10) 든든한 기둥 되어 날 일으켜준 하나님과 딸 동주
영적으론 주님 세상적으론 딸 동주
힘겨울 때 추락하지 않게 잡아주고
아픈 중에 함께하며 고통 위로해줘
딸 동주(왼쪽)와 같은 옷을 사 입고 셀카 촬영을 했다. 쇼핑하는 모녀의 모습이 친구처럼 다정스럽다.
항암치료를 하며 머리가 무섭게 빠졌다.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면 ‘스르르’하고 손가락 사이에 머리카락이 가득 끼여 딸려 나왔다. 결국 머리를 밀기로 했다. 머리를 밀기 전날 딸 동주가 예쁘게(?) 사진을 찍어줬다. 딸은 “머리를 잘라도 엄마는 예뻐”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사랑하는 나의 딸, 고마운 나의 딸, 동주는 나와 많이 다르다. 쿨하고 무심한 성격이 가끔은 답답하고 조바심 나게 했지만 잘 자라주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동주도 인생의 어려움을 같이 겪었는데, 그래서인지 우리는 어느 모녀보다 서로를 잘 이해했다. 이혼 직후 동주가 많은 도움을 줬다. 동주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용기를 줬다. 어릴 때부터 혼자 미국 유학 생활을 한 동주는 처음 혼자가 된 내게 큰 힘이 됐다. 그동안 너무 작은 세계에 머물렀으니 이제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라고 했다. 딸이 한국에 돌아와 나의 홀로서기를 도와주니 인생의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는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다.
좋은 소식이 들리면 나쁜 소식도 어느새 슬그머니 들이닥친다. 인생의 굴곡이 있을 때마다 힘들고 버거웠다. 하지만 그 덕에 내 옆에 동주가 있다는 것에 더 감사하다. 별일 없이 평탄한 시간이었다면 동주의 존재도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감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가끔 내 눈물을 닦아주는 동주에게 늘 미안하다.
“엄마, 내가 잘 할게. 건강하기만 해.” 따뜻한 딸의 말에 내려놨던 희망을 다시 등에 업고 거친 인생을 걷는다. 아픈 중에 함께 하고, 고통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딸 동주와 아들 종우 이야기도 더 할 생각이다.
어쨌든 나는 하나님과 딸 동주를 의지해 꿋꿋하게 세상에 버티고 서 있다. 두 존재가 든든한 기둥이 돼 준 덕에 흔들리지 않는다.
가끔 궁금하다. 세상 사람은 무슨 배짱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일까. 만약 주님을 믿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렸을 것이다. 세상적으로는 동주가, 영적으로는 하나님이 더이상 추락하지 않도록 나를 꽉 잡아주고 있다. 누구에게나 믿을 수 있는 기둥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하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차피 죽기까지,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모두 맡아 주시니까.
수술대에 오르는 날 온몸에 마취가 퍼지기 전, 눈을 감고 찬송 ‘저 장미꽃 위의 이슬’을 불렀다. 속으로 부르고 있었지만 내 귀엔 청아한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수술하는 동안 육신은 잠들 것이다. 하지만 정신 만큼은 찬송가 가사처럼 주님을 만나 동산을 걷기로 했다. 오직 주님과 나 둘만의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싶었다.
“주님 제 손을 잡아 주세요. 잠이 와요. 저와 함께 동산을 거닐어 주세요.”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동주가 앞에 와 있었다. 내 든든한 기둥 동주. 나도 동주에게 그런 기둥일까.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다면 앞으로라도 주님과 함께 나도 동주에게 기둥이 되고 싶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11) 일상이 된 글쓰기 습관… 세상과 소통하며 힘든 일 극복
글 쓰면 생각과 감정 차분하게 정리돼
독후감이나 감상평·기도·묵상 내용 등
언제 어디서든 글 쓰고 싶을 땐 메모
방송인 서정희씨는 글쓰기를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사진은 평소 말씀을 듣고 쓴 새벽기도 묵상일기와 노트, 성경연구 소책자들.
책을 쓰고 SNS 등에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해 묻는 사람이 많다. 궁금한가 보다. 사실 글을 쓰면 집중할 수 있다. 생각을 정화하고 혼란스런 감정을 차분하게 정리한다.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의 깊숙한 소리를 듣곤 한다.
요즘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생각하지 못한 어려움을 많이 겪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경험을 나누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 40:2)
글쓰기가 취미인 셈이다. 주로 휴대전화와 공책에 글을 쓴다. 유방암 수술 직후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 돋보기 없이 글을 쓰다 전체 삭제를 누르는 바람에 수 년간 모은 파일이 다 날라가 버렸다. 휴대전화 휴지통을 뒤지고 난리를 쳤다.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파일을 찾느라 수술 후 24시간 달고 있는 피주머니의 고통도 잊어버렸다.
공책과 펜이 든 작은 가방, 휴대전화를 갖고 다닌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언제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으면 메모하거나, 줄로 표시한다. 메모지 포스트잇을 붙이고 나중에 다시 보기도 한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영화감상평, 음악을 듣고도 글을 쓴다. 이 방법으로 묵상일기 ‘서정희의 주님’(두란노)을 출간했다. 새벽기도와 주일예배 때 개인기도와 묵상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이런 방법은 비록 형식적이지만, 난 적용했고 성공적이었다.
매일 새벽기도를 다녀와 하나님 말씀을 되새긴다. 날짜와 요일, 날씨까지 꼼꼼하게 기록한다. 정직하게 쓰고 있다. 하나님은 참모습을 보기 원하실 것이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 내면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계속했고, 자전적 에세이 ‘정희’(21세기북스) ‘혼자 사니 좋다’(뭉스북)에서 잇달아 펴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글쓰기로 이겨냈다. 스타일 북을 포함, 7권의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 습관 덕분이다. 글쓰기를 통해 작가가 됐고 인테리어 전문가, 초빙교수 일도 가능했다. 그리고 건축 일까지.
짧고 간결한 성경연구 작은 소책자도 여러 권 만들었다. 아가서와 빌레몬서, 묵상하는 법, 리더십에 대하여, 시간관리, 재정관리, 성령에 관하여, 창세기, 성경연구, 성경해석 귀납적방법 등이다. 소책자를 만든 이유는 잊어 버릴까봐 정리한 것들이다. 스프링 제본을 해 필요할 때 찾아보곤 한다.
보물 같은 열매이고 소득이다. 이렇게 쓴 글들이 박스로 보관돼 있다. 언젠가 이 소책자들도 세상에 나올 것이다. 글쓰기는 이렇게 잃어버린 서정희를 생각나게 해준다. 머뭇거리지 말고, 별거 아닌 하찮은 것까지도 쓰고 메모하자. 이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나는 기쁘다. 정말 기쁘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12) 철저히 혼자된 결혼생활, 주님과 교제하며 외로움 달래
결혼 후 가족 친구 멀어져 외롭게 지내다
지인 전도로 교회 찾으며 하나님과 만나
고민 있거나 회개할 일 있을 땐 주님 찾아
제주도 유채꽃밭에서 기도하는 서정희 모습을 딸 동주가 찍었다.
주님을 만난 것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결혼 후 철저하게 혼자였다. 친정 가족은 미국에 이민을 갔고 너무 일찍 결혼한 탓에 친구 관계도 다 끊어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주변에 대화를 나눌 사람이나 친구가 없었다. 지인의 전도로 집 근처 교회를 찾았고, 그때 내 앞에 주님이 계셨다.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새벽기도, 금요 철야 예배에도 참석했다. 그러던 중 주님을 영접했고 마냥 행복했다. 곧 주님과 사랑에 빠졌다. 이후 주님 곁을 떠난 적이 없다. 기쁘나 슬프나 고민이 있거나 회개할 일이 있으면 주님을 찾는다. 주님을 의지한다. 주님은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다.
사람들은 고통이 생길 때 자기 자신을 무너뜨림으로 고통을 잊는 것 같다. 술을 마시고, 신세 한탄을 하고, 나쁜 길로 빠지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 신’으로 기억되는 내 결혼 생활의 마지막 장면을 본 이들은 모두 나를 걱정했다. 결혼생활 내내 집에 있던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염려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내 뒤엔 하나님이 계시고 분명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따라서 절대 흐트러지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죽지도 않을 것이고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를 위한 기도를 시작한 건 최근 일이다. 평생 전 남편과 아이들 기도, 나라와 교회 식구들 중보기도만 했다.
요즘엔 회개 기도를 드린다. 내가 전 남편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이해하기보다 ‘내게 맞는’ 남편으로 만들려 애썼던 건 아닌지 회개한다. 아이들도 내 만족을 위해 강요한 것은 없는지, 자식을 위해 물에라도 뛰어들겠다고 했는데 과연 그 결심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회개한다. 결국 내 욕심이었다고 고백한다.
“말하기를 나(서정희)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서정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서정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에스라 9장 6절) 이런 한심한(?) 나를 기억해주시고 사랑하시는 주님께 감사할 뿐이다.
여전히 사랑이 두렵다. 삶이 두렵다. 부끄러워 할 말이 없다. 살기 위해 떠밀려 부득이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지키려 했던 부부라는 성 바벨탑도 무너졌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지 않는가. 혼자이지만 더 성숙해졌다. 유방암에 걸린 뒤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도한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나를 보내면서 ‘엄마는 아름답게 살다 갔다’고 생각하며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천국에서 해처럼 빛나게 살 거니까. 이것은 남겨진 아이들을 위한 내 기도이기도 하다. 죽는 순간까지 본향을 그리며 지속할 간절한 기도다.
여생 멋지게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힘들고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겠다. 시도하지 않으면 기회도 없다. 독자들도 무엇이든 시도하시길 바란다. 인생 사는 거 별거 없다. 복잡하게 살 거 없다. 감사하며 성실하게 살면 된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13) 폭우에 천장에서 물 ‘뚝뚝’…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도
밤새 태풍에 시달리다 새벽엔 혈뇨까지
통증과 함께 식은땀 나 응급실서 진료
재촉하던 습관 인정, 늘 배우려고 노력
방송인 서정희씨는 늘 긍정적으로 기도한다. 저서 ‘혼자 사니 좋다’를 출판하고 미소 짓는 서씨 모습.
태풍 ‘힌남노’ 뉴스로 마음이 아프다. 순조롭게 지나가길 기도했다. 폭우가 오피스텔 천장을 뚫고 뚝뚝 떨어졌다. 손잡이가 달린 양동이를 받쳐 놓고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건물 방제실에도 전화하지 않았다. 벽에서 곰팡내가 올라왔다. 새삼스럽지 않다. 이런 생활이 익숙하다.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오는 비를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기도밖에는. 통을 비우고 다시 놓고, 떨어지는 빗방울의 리듬을 느낄 뿐이다. 눈을 감고 다시 설친 잠을 청한다.
아침까지는 양동이가 넘치지 않을 것이다. 새벽이 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변이 5분 간격으로 나왔는데, 피가 섞인 소변이다. 배가 애 나을 때처럼 뒤틀리고 통증이 심각했다. 식은땀이 났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다. 겨우 나온 소변이 시뻘건 피라니….
10번 정도 혈뇨를 눴다. 마음이 착잡했다.
‘병원에 씻고라도 가야지. 집에 못 오면 병실에서 쓸 물건도 챙겨야지’
꾸역꾸역 보따리를 챙겨 병원 응급실로 갔다.
항암 치료의 연속이다. 몸이 무기력해질 때가 많다. 절제한 가슴은 가끔 꼬집어 보지만 별반 느낌이 없다. 그래도 놀라지 않는다. 마음이 편하다. 어지간한 일엔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 많이 달라졌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만약 변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면 내심 마음에 들어서일 수도 있다. 진실로 변하고 싶다면 자신이 부족한 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부족을 진즉에 인정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누구에게든 배우려 했다. 믿음과 신앙은 믿음의 선배에게 배우고, 유방암 치료 과정은 이를 겪은 환우와 그 가족들에게 배운다. 배운 걸 따라 해 본다. 예전에 살림할 때 장난처럼 읊조린 “나는 따라쟁이야”라고 말하던 것이 긍정적으로 발휘되고 있다.
“오늘 오줌에 피가 나왔지만, 면역이 약해 어딘가 조금 염증이 생긴 걸 거야.”
가족을 또 놀라게 할 순 없었다. 미리 말할 것을 혼자 중얼거렸다. 매일 재촉하던 나만의 시스템은 없어진 지 오래다.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몸이 반응하는 대로 오늘도 그렇게 할 참이다. 응급실이 낯설지 않다. 들어오면 맘대로 나갈 수도 없다. 또 검사가 시작됐다.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 적어도 두세 번은 주삿바늘을 찔러야 한다. 주삿바늘을 여러 번 찌르며 미안해하는 간호사를 위로하곤 한다.
“제가 원래 혈관이 잘 안 보여요. 괜찮아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금식 선포다. 예정된 순서다. 휴대전화에 글이나 써야겠다. 가발 안 쓴 머리카락 없는 사진을 보면서 기다리는 응급실이 내 집 같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 9:29)
***[역경의 열매] 서정희 (14) 빈혈에 시달리면서 잘 먹지도 않자 ‘별난 아이’ 별칭
생계 책임진 어머니, 미군 부대서 식당일
퇴근할 때면 미제 물건·시리얼 등 가져와
먹을 때만큼은 부잣집 된 듯 행복한 시간
중학교 1학년 소풍 때 미인대회에 뽑혀 왕관을 쓴 서정희(오른쪽)와 어머니 장복숙씨. 동네 미용실의 도움으로 고전적인 머리를 하고 한복을 입고 있다.
새벽 4시. 어김없이 눈을 떴다. 하나님께 기도부터 드렸다. 살아있음에, 깨어남에 감사했다. 오랜 습관은 잘 변하지 않는다. 아직은 어두운 새벽 미명에 따뜻한 물 한 잔을 식탁에 놓고 앉으니 어린 시절이 문득 생각났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꽤 지대가 높은 곳에 살았다. 촘촘하게 이어진 허름한 집들 전봇대 사이에 우리 집이 있었다. 엄마와 외할머니, 언니와 나, 남동생, 여동생까지 네 남매, 모두 6명이 살았다. 남자라고는 어린 남동생 하나 뿐이었다.
가끔 입안에 ‘국민 영양제’였던 원기소를 넣어주시던 아버지는 다섯 살 때 돌아가셨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네 살 밑 막내 여동생은 아버지의 얼굴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때문에 엄마는 일찍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엄마의 자리는 외할머니가 대신했다. 엄마는 용산 미8군 부대에서 일했다. 식당에서 종일 일하고 퇴근할 때면 우리 가족이 먹을 탄산음료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오셨다. 엄마는 우리를 먹이고, 때론 팔려고 미제 물건을 집에 가져오셨던 것 같다. 또 남아도는 식당 냅킨이나 고양이가 그려진 시리얼을 들고 왔다. 당시 주변에 시리얼을 먹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가난 덕에 얻게 된 혜택이라고 할까.
시리얼 상자에는 점선이 새겨 있었다. 점선을 꾹꾹 눌러 ‘탁’하고 뚜껑을 열면 이중 기름종이로 만든 봉지가 보였다. 시리얼은 봉지 안에 있었다. 얼른 질긴 봉지를 반으로 잘라 우유를 부었다. 졸졸졸. 우유를 따를 때면 침을 꿀꺽 삼키곤 했다.
그릇에 담아 먹을 수도 있었지만, 꼭 그렇게 봉지째 시리얼을 먹곤 했다. 배가 고파 먹어서 그런지 정말 꿀맛이었다. 우리 남매 모두 그 순간만큼은 웃음꽃이 피어났다. 깔깔 웃다 시리얼이 입에서 튀어나오기도 했다. 부잣집이 된 듯했다.
매일 저녁 엄마의 퇴근을 기다렸다. 실제는 맛있는 먹을 것을 기다렸다. 엄마는 쉼 없이 일했지만, 아버지가 안 계신 우리 집은 늘 가난했다. 작은 체구인 나는 빈혈에 시달렸다. 잘 먹지도 않고 입을 꽉 다물고 구석에 앉아 있으면 외할머니는 “별난 아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정희야. 제발 밥 좀 먹어라.”
“먹기 싫어요.”
“쓰러지면서 왜 먹지 않지? 언니 동생처럼 아무거나 잘 먹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니까 그렇게 키가 안 크지….”
외할머니의 잔소리는 늘 같은 레퍼토리였다. 지금은 안 계신 외할머니가 그립기만 하다. 외할머니가 가끔 마당 한가운데 있는 우물의 펌프질을 시키곤 했다. 나는 온몸을 던져 펌프에 매달렸다. 힘이 모자랐다. 마중물을 넣고 펌프를 누르면서 우리 집도 부잣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가난했지만 밝게 자랐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 다음에 부자가 될 거야. 공주 옷을 입고 도우미 아줌마가 주는 음식을 먹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부자를 향한 꿈은 결혼을 하고 교회에 다닌 후에도 계속됐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15) 말수 없던 어린 시절, 집에서 인형 옷 만드는 재미에 쏙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 혼자가 더 좋아
방에서 동생들과 고무줄·공기 놀이하다
혼자 남으면 종이 인형 옷 만들고 색칠
방송인 서정희 씨가 새벽기도 후 집 식탁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린 시절,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말수가 적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천성인지 깨끗하고 예쁜 게 좋았다. 밖에 나가 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 있는 게 좋았다. 여자아이들이 많이 하는, 그 흔한 고무줄놀이도 방에서 했다.
두 동생이 고무줄을 양쪽에서 잡으면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을 힘차게 밟곤 했다. 공기놀이도 집에서 했고 뭐든 방에서 했다. 다들 나가고 나면 집에 혼자 앉아 인형 옷을 그렸다.
인형 옷 그리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놀이였다. 엄마에게 용돈을 받으면 문방구로 달려가 예쁜 인형 놀이를 샀다. 그 안에 있는 옷으로도 부족해 도화지에 옷을 그렸다. 물방울 무늬 드레스가 생각난다. 나비나 별, 스마일 등도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정성스레 색칠했다.
차곡차곡 종이 드레스를 담아 상자 안에 모아 놨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갔다. 가끔 동네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멋진 공주님 종이 드레스를 보여주면 “와~ 대단해. 나도 드레스 하나만 줘.” 좋아하는 친구에겐 큰맘 먹고 하나 주기도 했다. 우쭐해지는 순간이다.
손으로 무언가를 쓰고 그리는 버릇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그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가만히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글쓰기를 하면 마음이 평안하다. 어릴 때 예쁘다는 말을 참 많이 들은 것 같다. 자라면서 귀여움도 많이 받았다. 체구는 얼마나 작던지 버스 요금을 내지 않을 때도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살 때, 비가 엄청나게 내리며 물난리가 났다. 동물들이 떠다니고, 바가지 등 집안 물건들이 둥둥 물 위로 올라왔다. 부러워하던 아랫동네 부잣집들이 물에 잠겼다. 하지만 지대 높은 곳에 살던 가난한 우리 집은 멀쩡했다.
물난리가 난 동네를 배경으로 엄마가 흑백사진을 찍어 주었다. 며칠 전, 그 사진이 담긴 사진첩을 찾으려 했지만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찾지 못했다. 그 사진이 아른거린다.
월세와 전세, 수도 없이 살림을 옮기다 보니 앨범을 분실했다. 여하튼 초등학교 2학년 짜리가 퇴근길에 엄마 등에 업혀 집으로 가곤 했으니, 아마 그때 엄마도 나도 내가 작은 걸 행복하다고 느낀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오늘 난, 서울 한남동 지대 높은 옛날 우리 집을 생각한다. 물난리가 나도 무너지지 않았던 지대 높은 그 집이 그립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7)
내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부르던 노래가 기억난다.
“모래 위에 집을 짓지 말아요/해변 가까운 곳에도/비록 보긴 좋지만/이내 무너지고 말아/또다시 지어야만 돼/반석 위에 우리 집 지어요/주님 영원한 반석이 되시네/비바람 불어와도 주님 지켜주셔요”라는 내용의 복음성가이다.
성경 말씀처럼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게 높고 높은 곳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겠다. 무너질 모래 위 내 인생을 짓지 않겠다. 영원히 살 나의 본향 거룩한 집, 반석 위에 내 집을 지을 것이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16) 상처로 남은 유년시절 아버지의 죽음… 신앙으로 극복
음악 틀어주면 아버지 앞에서 춤추고
팔뚝에 매달려 빙빙 돌던 기억 생생
충분한 아버지 사랑받지는 못했지만
주님 사랑과 은혜로 외로움 이겨내
방송인 서정희는 아버지를 무척 따랐다. 사진은 해수욕장에서 찍은 ‘몸짱’ 아버지 서영배씨와 머리를 두갈래로 귀엽게 묶은 어린 시절의 서정희(왼쪽).
고모는 동네에서 영화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라고 불렸다. 친척들이 내가 고모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작은 체형으로 얼굴도 작고, 예민한 성격까지 고모를 닮았다.
반면 외가 쪽은 키가 장대 같이 컸다. 털털하고 통 큰 외가와 비슷한 점이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아버지 친가 쪽을 많이 닮은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서서히 엄마와 외가 쪽을 닮아 가는 듯하다. 아픈 중에도 먹성이 좋고 털털해지는 것, 그다지 예민하지 않는 것 등. 외가 친척들처럼 넉넉한 아줌마가 되고 있다.
사실 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진한 눈썹과 쌍꺼풀, 두툼한 입술, 외국인 같았던 아버지. 레코드사에 다니던 친척 덕에 우리 집에는 없는 살림에도 음악과 관련된 것들이 제법 많았다. 축음기며 릴 테이프, 도넛판 같은 것들. 지금은 골동품 가게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미닫이 찬장처럼 생긴 전축문을 열고 음악을 틀던 아버지와 그 앞에서 춤을 추던 내가 어렴풋이 기억 난다.
레코드판에서 흘러 나오는 일본 노래나 가수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 노래를 종알종알 따라 불렀다. 그러면 아버지는 귀엽다고 흐뭇하게 쳐다보셨다. 달려가 안기면 아버지의 가슴 근육이 날 밀어냈다. 반동으로 튀어 나올 것 같은, 지금 표현으로 아버지는 ‘몸짱’이셨다.
팔뚝에 매달려 빙빙 돌려 줄 때면 어지러웠다. 깔깔대며 웃다 이불바닥에 던져지고. 어지럽다고 손가락으로 빙빙 도는 흉내를 내는 나를 쳐다보던 아버지. 그게 아버지에 대한 내 기억의 전부다.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31세 젊은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버지와 나는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 아버지의 부재는 정신적 결핍으로 다가왔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유년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내 삶을 지배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땐 참 어색한 하나님 아버지였다.
그래서일까. 어떻게든 내 아이들에게는 그런 불안감이나 두려움, 외로움을 물려주기 싫었다.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고 버텼던 나의 결혼생활. 지금은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알기 때문이다.
육신의 아버지는 늘 그리움의 대상이다. 짧은 기억이지만, 좋은 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이제는 안다. 지나온 상처가 지금의 나를 견고하게 지켜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상처가 남긴 흉터가 오히려 훈장이 돼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지금까지 나를 돌보셨다.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른, 작은 꼬마를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출 2:25)
“사랑한다 정희야. 사랑한다 정희야.” 오늘도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17) 엄마 대신 살림하느라 힘든 할머니께 더럽다며 잔소리
바쁘게 차려놓은 밥상과 간을 보느라
입으로 쭉 빤 숟가락 찌개에 다시 넣자
보기 좋고 정갈하게 요리하라며 투정
방송인 서정희는 밥상과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많다. 사진은 서씨가 차린 아침 밥상.
“애들아~. 얼른 밥상 들고 들어가. 밥 다 됐어.”
중학생 언니와 초등학생 남동생이 부엌에서 외할머니가 차린 밥상을 들고 오면 나는 반찬 그릇과 찌개 냄비를 이리저리 바꿔 놓곤 했다. 노란 양은 냄비에 보글보글 김치찌개가 끓고 작은 그릇에 소박한 반찬이 담겨 있는 밥상. 할머니는 그것들을 그냥 손 담는 대로 무심히 ‘툭툭’ 올려놨다.
나는 그게 거슬렸다. 찌개를 가운데 놓고 그 주변으로 동그랗게 반찬을 놓으면 보기 좋을 텐데….
‘냄비 받침은 왜 이렇게 밉지? 큰 걸 쓰지 말고 좀 작은 걸로 안 보이게 하지. 개인 그릇으로 하나씩 주면 좋을 텐데. 찌개를 덜지 않고 같이 퍼먹는 건 정말 싫어….’
이런 생각을 말하면, 할머니는 소리를 ‘꽥’ 질렀다.
“염~병하네. 잘 먹지도 않는 게 반찬 투정은 무슨…. 얼른 밥이나 먹어.”
할머니가 나를 별로 예뻐하지 않은 것은 밥을 안 먹어서가 아니었다. 노쇠한 몸으로 엄마를 대신해 손주들 돌보기도 힘든데 “예쁘게 해라” “깨끗하게 하라”고 잔소리하는 내가 할머니 입장에서는 화가 날 만도 했다.
할머니가 만든 김치찌개 맛은 정말 환상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할머니가 간을 보느라 입으로 쭉 빤 숟가락을 찌개에 넣었다 뺐다 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 싫었다. 그게 싫어 밥 먹기가 싫었다.
“할머니, 그러지 마. 더러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끼니때 마다 밥 차리기도 힘드셨을 텐데 끙끙거리며 부엌을 오가시던 할머니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가끔 할머니의 깡 마른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아이고 시원해라.”
야무진 고사리손이 이리저리 꾹꾹 누르며 “할머니 시원해”라고 물으면 “그럼~그럼”이라고 말씀하셨다. 유일하게 귀염받는 시간이었다.
어젯밤,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베갯잇과 시트를 다 적셨다. 다시 자다 너무 더워 일어났다. 항암치료 중 수시로 일어나는 증세이다. 네댓 번 화장실을 가려 일어났다. 반복해 일어나니 피곤이 누적됐다. 천근만근한 몸 상태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천성대로 방을 깨끗이 청소하며 몸을 추스르는 중이다.
온몸이 쑤시니 할머니처럼 ‘끙끙’ 소리가 절로 나온다. 허벅지부터 엉덩이까지 주먹으로 ‘퉁퉁’ 두드린다. 어릴 적 내가 할머니를 주물러 드린 것 같이 누가 나를 시원하게 주물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주를 부를까. 아냐 지금 곤히 잘 텐데….” 진통제를 먹고 참기로 했다. 세월을 어찌 이길 수 있을까. 나도 만만치 않은 나이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머리카락 없는 날 보시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이런저런 할머니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할머니를 생각하듯 주님이 날 생각해주길 기대한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창 19:29) 라헬을 생각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창 30:22) 나도 하나님을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벧전 2:19)
***[역경의 열매] 서정희 (18) 웅변학원 한번 안 다니고 ‘반공 웅변대회’서 입상
어릴 때부터 뭐든 흉내 내는 걸 잘해
웅변하는 다른 친구들 모습 보고 배워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골프도 TV로…
방송인 서정희씨는 유튜브 ‘서정희와 함께하는 성경낭독’을 매일 아침 올리고 있다. 사진은 유튜브 화면.
특별한 이력이 하나 있는데, 바로 교내 웅변대회 입상이다. 중학교 때는 ‘반공 포스터’ ‘반공 글짓기’ ‘반공 웅변대회’ 등 반공(反共) 관련 행사가 유행이었다. 웅변대회 원고가 뽑혔지만,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내가 앞자리에 앉아 걸핏하면 빈혈로 쓰러지고 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을 들어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웅변대회가 열리고 최고 대상은 아니지만, 입상을 하고 나니 반 친구들이 신기하다며 기뻐해 주었다.
화장실에서 ‘벌벌’ 떨며 준비한 시간이 떠오른다. 웅변학원을 한번도 안 다닌 내가 상을 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의 웅변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둔 덕분이다.
웅변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꼼꼼하게 살폈다. 어느 시점에서 팔을 올리고 어필하는지, 어떻게 호소력 있게 소리치는지, 머릿속에 입력해 그대로 연습했다. 집안 형편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반대로 무엇이든 배우고 잘하고 싶은 열정이 강했다.
지금도 뭘 하든 그대로 흉내 내는 걸 잘한다. 골프 치러 필드에 나갔을 때 일행들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처음치고는 스윙 자세가 너무 정확하다는 이유였다.
“모르고 하는 거라 겁이 없어 그래”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TV 골프 채널을 한동안 관찰했다. 그립 잡는 방법, 어드레스, 드라이버 치는 법, 체중 이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골프 용어와 매너 등 요샛말로 스캔을 끝낸 상태였다.
며칠 전 다시 필드 라운딩을 했다. 유방암 절제 수술을 해 겨드랑이도 잘 올려지지 않고, 손가락이 ‘퉁퉁’ 부어 팔꿈치까지 부기가 올라왔다. 근육통약을 계속 바르고 있다. 그런데도 친구를 비롯해 유튜브, TV 골프 채널 등을 통해 열심히 레슨 받고 있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 크다. 주부생활만 하던 나는 열심히 뒤따르고 달려야 한다. 건강을 주님께 맡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시 22:10)
아픈 몸만 묵상하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왜 이렇게 몸이 부었지. 머리카락은 왜 빨리 안 나지. 멍든 손톱은 왜 안 자라지. 두통이 왜 안 가라앉지. 뼈가 약해 부러지면 어쩌지.’ 걱정으로 의기소침해 게을러진 마음을 재정비 중이다.
다음 달 가슴 복원 수술로 또 입원해야 한다. 입원을 앞두고 있고 표적치료와 약물치료를 한다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아픔만 묵상하지 않을 것이다.
‘딱’하고 골프공을 멀리 날려 버릴 것을 상상하며 이번 달을 즐길 것이다. 생각만 해도 신나지 않는가. 그렇다. 불타는 청춘이 있었던 것을 잊지 말자. 쓸데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주님은 때를 따라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신다. 이것저것 따라 하다 나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생긴 것처럼 어린 시절 웅변을 통해 유튜브 ‘서정희와 함께 읽는 성경낭독’을 또박또박 낭독한다. 또 독서를 통해 이렇게 글을 열심히 쓰고 있으니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19) 가난 벗어나려 아메리칸 드림 꿈꾸다 길거리 캐스팅
미국 이민 준비로 영어학원 다니던 중
유명 사진작가로부터 모델 제안받고
하루아침에 광고 찍으며 스타덤 올라
가수 혜은이 언니랑 연락하고 신앙생활을 함께한다. 사진은 ‘혜은이 콘서트’때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혜은이와 서정희(오른쪽).
나는 연예인을 꿈꾸지 않았다. 아니 꿈꾸지 못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꿈꾸는 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건만…. 가난한 우리 집 살림에 사치라고 생각했다. 대학 진학은 포기했다. 마음 한구석에 대학생활에 대한 동경이 컸다.
가능성이 없는 일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엄마가 혼자 벌어 살림 꾸리기도 벅찼다. 가족의 정이나 사랑을 나눌 시간도 부족했다.
그래서일까. 하루 빨리 집을 떠나 독립하고 싶었다. 희망은 미국에 사는 이모였다. 아메리칸 드림을 계획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기다리던 이모에게 초청장이 왔다. 겨울방학 동안 우리 가족은 이민을 떠날 준비를 했다. 학교를 자퇴하고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타임지’ ‘리더스 다이제스트’ 등 영어 잡지 정기구독 신청을 했다. 학원비를 벌기 위해 백화점 아르바이트도 했다.
힘든 줄을 몰랐다. 그저 미국 이민으로 들뜬 소녀였다. 가을 즈음, 영어학원을 가는 데 누가 다가왔다. 유명 사진작가였다. 그는 “모델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고, 소위 ‘길거리 캐스팅’이 됐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사진작가 덕분에 모델의 길로 들어섰다. 하루아침에 광고를 찍게 됐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사진찍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거울 앞에서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연예인 흉내를 내는 걸 가족에게 들키기도 했다.
특히 가수 혜은이를 좋아해 돈을 모아 친구와 리사이틀 구경을 간 일도 있다. “세상에 저렇게 예쁜 언니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모르실꺼야’ ‘당신만을 사랑해’ ‘감수광’ ‘후회’ 등 노래를 부르는 흑백 텔레비전 속 혜은이 언니의 손짓 표정을 거울을 보며 따라했다.
연예인이 됐을 때 혜은이 언니를 직접 만났다. 너무 떨려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언니와 안부전화를 한곤 한다. 언니도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우린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서로의 아픔을 느낀다. 믿음 안에서 서로 중보기도를 해 준다.
얼마 전 서울 대학로에서 ‘혜은이 콘서트’를 했다. 나는 언니에게 찬조 출연을 하겠다고 했다. 언니는 아무 때나 무대에 서라고 했다. 혼자 열심히 노래 연습을 했다.
정미조의 ‘개여울’,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두 곡을 준비했다. 어설프게 타악기 카혼을 배웠다. 퍼커션(percussion)이다. 퍼커션은 드럼, 심벌즈, 캐스터네츠, 쉐이크, 카혼 같은 타악기를 두드리는 것을 말한다. 노래 중간에 쉐이크 연주를 했다.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를 앉아 부를 때는 다리 사이에 카혼 대신 작은 드럼을 두들겼다. 마치 내가 가수가 된 듯 기분이 좋았다.
요즘도 가끔 딸 동주가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면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는지 또 거울 앞에 서있다.
“무엇을 입고 찍지?” 예쁜 드레스를 또 꺼내본다. “아유~. 우리 엄마는 못 말려.” 동주에게 한소리를 듣겠지만 말이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20) 아이들은 하나님 선물… 출산의 고통은 기쁨 되는 과정
자연분만으로 축복 속에 딸과 아들 출산
산고 뒤에 오는 해산의 기쁨 아는 것처럼
고난 역시 주님 사랑의 일부임을 깨달아
방송인 서정희씨는 산고를 통해 하나님의 선물인 두 자녀를 낳고 키우는 기쁨을 느꼈다고 간증했다. 사진은 엄마 앞에서 잠옷을 입고 재롱을 떨고 있는 딸 동주(왼쪽)와 아들 종우.
딸 동주와 아들 종우가 태어났을 때를 생각해본다. 자식 둘을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진통이 너무 심했다. 병원에 갔을 때 간호사를 붙들고 아프다고 소리쳤다. 너무 아프다고 어떻게 좀 해달라고 울며 매달렸다. 안간힘을 다해 소리를 질러댔다. 드디어 3.2㎏의 동주가 태어났다. 둘째 종우는 2.8㎏이었다. 해산의 고통도 잠시, 세상이 온통 나를 축복하는 것 같았다.
기쁨의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너무 행복했다.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또 있었을까. 없었던 것 같다.
출산의 고통이 있을 때마다 힘들다고, 죽겠다고 몸부림쳤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유방암 치료를 받고 있는 지금의 나의 모습은 마치 그때 해산을 앞두고 진통을 느끼던 때 같다. 그러나 고통은 지나갈 것이다. 금세 잊혀질 것이고 해산의 기쁨만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때문에 인내할 이유가 있다. 해산의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진통은 고통이다.
“어떻게 좀 해주세요. 힘들어요.” 애원하는 내 손을 잡아주던 간호사의 미소가 생각난다. 간호사는 여러 산모를 통해 이미 진통과 해산의 기쁨을 알고 있는 듯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더는 못 참아요. 살려 주세요.”
진통할 때 그 순간은 애를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안다. 고통은 기쁨이 되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이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 원망하지 않는다. 고난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축복을 누릴 준비가 돼 있다. 해산의 기쁨을 누리려면 고통이 필수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말이다. 지금의 고통스런 삶도 인내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근심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느꼈던 행복을 잊지 않으려 한다. 8남매를 낳은 우리 외할머니도, 4남매를 낳은 엄마도, 나 역시도 언제 진통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그래서 여자들은 애를 계속 낳을 수 있는가 보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 하느니라”(요 16:21)
결혼 후 처음엔 임신을 원치 않았다. 나이가 어렸고 결혼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임신을 원치 않았던 일을 회개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해주세요. 너무 어려 임신이 두려웠어요. 아이 낳는 것을 거부했던 마음을 회개합니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큰 선물입니다. 이 마음이 이이들에게 전달되게 해주세요.”
자녀들이 힘들 때마다 주님을 찾길 기도하고 있다. 주님은 해산의 기쁨을 주신다. 산고 뒤에 오는 해산의 기쁨을 아는 것처럼, 고난은 하나님 사랑의 일부인 것을 깨달았다. 오늘도 아이들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역경의 열매] 서정희 (21) 설정해 놓은 삶 쉼 없이 달려… 일방통행 자녀 교육 후회
힘든 육아와 살림, 클래식 통해 위로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악기 가르치며
즐기라고 하기보다 최고돼라 다그쳐
방송인 서정희씨가 유치원생이던 딸 동주, 아들 종우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거리 나들이를 하고 있다.
“잘 자라 우리 아가/앞뜰과 뒷동산에…♬♪”
자장가를 불러주면 딸과 아들은 내 품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양팔에 베고 잠든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다. 모차르트 자장가가 끝나면 브람스 자장가로 넘어갔다. 또 슈베르트 자장가로 이어졌다가 “우리 아기 착한 아기 소록소록 잠든다. 하늘나라 아기별도 엄마 품에 잠든다” 김대현 작곡의 자장가까지.
자장가를 열심히 부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들을 통해 나도 위로받았다. 교회에 다니고 자장가가 자연스레 찬송가로 바뀌었다.
음악은 전진만 하는 내게 위로가 됐다.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었다. 피아노와 첼로 연주곡, 무반주 바이올린, 무반주 쳄발로 곡을 좋아했다.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그래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나’를 계속 들었다. 아이가 악기를 잘 다루려면 엄마가 음악과 악기를 좋아하고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안일을 할 때도 무의식적으로 클래식을 틀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무척 행복했다. 아이들을 교육하면서 차근차근 여러 가지를 배웠다.
후회되는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면서도 즐기라고 하기보다 최고로 잘해야 한다고 채근한 점이다. 콩쿠르에 나가 입상하기 위해 끊임없이 내 의견을 관철했다.
“이번 대회가 어떤 대회인지 알지? 기회를 놓치면 절대 안 돼”라는 외침이 마음속에 울렸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했던 말에 책임지며 살아야 했기에 더 치열하게 나를 채찍질했다. 설정해놓은 삶에 생각과 행동을 하나하나 맞췄다. 새벽기도를 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먹이고 입히고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다.
나중에 아이들에게 “엄마 그동안 뭐했어. 결과가 이게 뭐야”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하루하루를 살았다.
하지만 그건 착오였다. 잘못된 교육이었다. 만약 다시 아이들을 키운다면 절대 그렇게 교육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조급했다. 아이들이 쉬고 싶어 할 때 쉬게 하지 않았다. 진짜 사랑은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걸 미리 알았어야 하는데, 후회하고 있다.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힘들구나. 그래 오늘은 좀 쉬자”라고 말했어야 했다. 지나치게 챙기는 바람에 틈을 주지 못했다. 일방통행 사랑이었던 셈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후회하고 있다. 아이코. 내 삶은 후회의 연속이다. 많은 분이 자녀교육에 관해 묻는다. 나는 답한다.
“저처럼 안 하시면 돼요.”
지난 삶이 부끄럽다. 모든 것에서 내 잘못을 인정하고 정직하게 주님 앞에 용서를 구한다. 지금부터의 삶은 주님이 인도하실 수 있도록 비워 놓을 것이다. 꽉꽉 채워 터질 부대에 무엇을 담겠는가.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막 2:22)
***[역경의 열매] 서정희 (22) 주님 안에 완벽한 가정 꿈꾸다 32년 결혼 생활 마침표
결혼 후 부러울 것 없는 최고의 삶 누리다
성격 차이 등 원만치 않은 생활이었지만
세상 이목 두려워 긍정적 모습만 보여줘
방송인 서정희씨가 파란 드레스를 입고 밝게 미소 지으며 잡지 촬영을 하고 있다.
궁금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TV에 나온 엘리베이터 사건이 대중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역경의 열매를 연재하면서 아픈 이야기를 쓸까 말까 생각하니 힘들고 신중해지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별별 일을 다 겪었다. 하지만 독자가 궁금해 하니 이야기하고 넘어갈까 한다. 이혼 전 결혼생활에 대해 줄곧 긍정적으로 이야기해왔다. TV에 출연해 인터뷰하고, 교회에서 간증할 때, 책을 쓸 때도 한결 같았다.
그 이유는 세상의 이목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주님 안에서 완벽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꿈꿨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롬 4:18)
결혼 후 나는 최고의 삶을 누렸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승승장구하는 남편을 뒀고, 책을 쓰고, 인테리어 분야의 경력도 꾸준히 쌓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열심히 해 행복했다. 많이 못 배운 나의 한을 풀어주었다.
결혼생활 32년.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흉내만 내며 살았다. 그러다 허무맹랑한 꿈을 꿨다. 남편을 목회자로 만들어 올곧은 사람으로 변화시키겠다고 생각했다. 그 심지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바뀔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사실 이혼의 원인은 내 책임도 없지 않다. 대중에게 내조 잘하고 아이 잘 키우는 모습을 보였지만 숨겨진 반항 기질이 있었다. 잘 참다 한 번씩 올라올 때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대성통곡을 해서 그를 힘들게 했다. 고분고분 순종하다가도 갑자기 싸늘하게 돌변해 말을 하지 않고 얼음장같이 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다. 울다가 사탕을 주면 울음을 ‘뚝’ 그치는 어린 아이를 떠올리면 된다. 사소한 것이라도 좋아하는 것을 하면 껑충껑충 뛰며 기뻐하는 게 나란 사람이다.
그때는 성경 잠언서의 ‘현숙한 여인’에 꽂혀 있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 31:30)
성경 속 여인처럼 칭찬 받으려 했다. 모든 것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덮었고, 견딜 수 있었다.
글을 쓰다 보니 행복한 순간도 떠오른다. 40일 작정 새벽기도를 할 때다. 집으로 돌아와 따끈한 커피와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함께 발라 먹었다. 팬 케익을 함께 먹는 행복도 있었다. 어쩌다 드물게 남편이 손을 잡고 기도해 주기도 했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생각하며 1년을, 또 1년을 버텼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계속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가면을 벗어 던진다. 이혼녀. 엘리베이터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꼬리표를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침빛까지 뚜렷하고 달처럼 아름답고 해처럼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아 6:10)
당시 주님이 주신 말씀이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다. 비난도 감사하다. 더 이상 궁색한 변명 따위는 하지 않겠다. 앞으로 진짜 서정희로 살겠다. 부디 새 가정을 꾸린 그 분도 주님과 함께 멋진 삶을 살길 기도한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23) 자전적 수필집 ‘정희’ 발간… 불편했던 세상과 소통 시작
이혼 후 사람들 시선·관심 피해 다니다
진심 어린 격려 받고 홀로서기에 자신
용기 얻어 그동안 써온 글 추려서 출간
이혼 후 홀로서기를 하고 싶었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자전적 에세이 ‘정희’를 발간했다. 사진은 ‘정희’ 책 속 서정희 모습.
이혼 후 엄마와 동네 목욕탕에 함께 다녔다. 아침 일찍 목욕탕 문이 열자마자 첫 손님이다. 목욕탕에 갈 때면 모자를 ‘푹’ 눌러 썼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싫었다. 이혼한 내가 왜 그렇게 한심하고 싫었는지….
몸을 거의 숨기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헛일이었다. 엄마 옆에 꼭 붙어 조용히 씻는데, 쳐다보는 사람이 하나둘 늘었다.
“서정희씨 맞죠?”
“네.”
시선을 피했다. 집으로 얼른 돌아왔다. 목욕탕 일이 자꾸 떠올랐다. ‘이러지 말자. 세상에 나가자. 나는 죄인이 아니다. 이혼은 죄가 아니다.’고 다짐하고 다음 날부터 인사를 하기로 했다. 거리를 걷다가, 물건을 사다가, 목욕탕에서도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서정희예요.” 이렇게 말이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아주머니들이 냉커피와 요구르트를 사주시고 사과와 귤을 주셨다.
아주머니들은 누룽지를 갖고 와 “집에 가서 끓여 먹고 살 좀 쪄요”라며 걱정과 격려를 많이 해주고 안아주었다. 가슴이 찡했다. 그렇게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떨었다. 많이 편안해졌다는 증거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다시 찾아내 나 자신을 칭찬해주기로 했다.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일기를 포함해 오래전부터 써왔던 글들이다.
‘그래 책을 내자.’
글을 써 놓은 공책은 이삿짐 보관소에 있었다. 새벽기도에 다녀오면 은혜받은 성경 말씀과 기도를 교회 식구와 지인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낸 것들이다. 글을 수집하고 또 글을 추리고 다듬었다. 반년 넘게 작업했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을 때 용기를 냈다.
여러 출판사에 전화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미국 작가 마가렛 미첼의 용기를 떠올렸다. 미첼은 여러 번 출판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나도 용기를 냈다. 만약 원고를 받아주지 않는다 해도 나만의 기록을 하나씩 더해 가자고 생각했다. 준비된 자만이 주님이 쓰시겠다 하실 때 쓸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마 21:3)
그것만으로도 나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무작정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울리자 심장이 쿵쾅대고 식은땀이 흘렀다. 용기를 내야 했다. 내 안에 성령이 위로했고, 단단한 믿음이 버틸 수 있게 해줬다.
“주님, 도와주세요.” 기도하며 전화를 계속했다.
담당자와 통화를 하는데 땀이 ‘뚝뚝’ 떨어졌다. 원고를 보내고 답변이 올 때까지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일주일이 지나니 피가 말랐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가슴이 타들어 가는 날들이었다.
21세기북스 출판사에서 책을 내주겠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거처 자전적 에세이 ‘정희’를 출간했다. 이혼 후 희망을 놓지 않고 용기를 낸 나 자신이 대견했다. 출판사가 고마웠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24) 엄마와 같이 산 지 7년… 상처 난 아픈 마음에 행복 충전
이혼 후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지만
달래고 기도해주는 엄마 덕분에 극복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새삼 깨달아
방송인 서정희씨(오른쪽)가 어머니 장복숙씨의 팔순을 맞아 웨딩 드레스를 입혀 드리고 있다.
엄마 이야기를 하려 한다. ‘엘리베이터 사건’ 직후 두 달여 미국 생활을 하고 귀국해 오피스텔로 입주했다.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오피스텔은 작은 공간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누구의 간섭 없이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그저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쉰 살의 여자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혼 후 정신과 트라우마 치료를 1년 6개월 동안 받았다. 치료받을 때 결혼생활을 이야기하면 ‘울컥’ 눈물이 터져 나왔다. 트라우마 치료 교수님은 두세 시간씩 이야기를 들어주며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다. “그렇게 이제 살지 말라”고 안아주고, “혼자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주셨다.
그런데도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아마 그때 엄마가 곁에 없었더라면 나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멀리 떠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다. 교회 다니는 크리스천인데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주님을 부르며 울기만 했다. 하지만 내 곁엔 우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고 기도해 주는 엄마가 있었다.
어린 시절 주한미군 부대에 식당 일을 하러 가신 엄마를 기다렸다. 외할머니의 잔소리가 싫었고, 그나마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엄마였기 때문이다.
서른 살이 안 된 젊은 엄마가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아이 넷을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오피스텔 작은 공간에서 엄마와 둘이 부대끼며 정이 들었다. 자연스레 대화가 많아졌고 서로 몰랐던 것을 알아 갔다.
나와 아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닮은 점이 있었다. 엄마도 청소를 좋아하고, 초저녁 잠이 많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벽형 인간이었다. 자식한테 목숨을 거는 것도 닮은 점 중 하나다. 그렇게 나도 엄마를 닮아 가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
“내 가족만 돌보며 살아가는 동안 엄마는 이렇게 인생을 살았구나. 그리고 지금 이렇게 다시 내 곁에서 버팀목이 돼주고 있구나. 고마운 엄마….”
이혼하고 7년 동안 엄마와 살았다. 엄마를 좋아하게 됐다. 또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다. 요즘 어릴 적 부리지 못한 어리광을 부리는 중이다.
엄마는 수시로 철부지 늙은 딸에게 밥을 짓는다. 영양 많은 건강식을 챙겨주면서 기뻐한다. 아픈 딸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해하는 눈치다. 엄마 덕에 상처 난 마음이 조금씩 아물고 있다.
요즘 엄마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인제 그만 살아야지. 살 만큼 살았어. 너도 보란 듯이 잘 사니 이제 여한이 없다….”
그렇게 말하면서 홍삼과 영양제를 계속 드시고 있다. 매주 나와 수영장도 간다. 어제는 병원에 들러 비타민D 주사도 맞고 오셨다.
“엄마. 그만 산다며?” 그러면 민망한지 웃으신다. 그런 엄마가 나는 좋고 사랑스럽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역경의 열매] 서정희 (25) 집은 커다란 도화지… 열심히 가꾸다 보니 어느새 전문가
어릴 적 과자 상자로 꿈의 공간 만들었듯
작고 사소한 일상부터 창의적으로 재구성
그 믿음·실천 덕분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방송인 서정희 씨는 늘 창의적으로 물건을 정리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꾸민다. 사진은 각종 생활용품을 활용해 만든 서 씨의 침대.
‘그까짓 것’에 열중하는 나를 한심하게 보는 친구가 있었다. 작고 사소한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청소와 정리 따위, 쓸고 닦고 후벼 파고 다시 내일이면 쌓일 먼지를 터는 따위 등.
요즘은 집이나 물건을 정리해주는 TV 프로그램도 있는 것 같다. 정리해주는 전문가들도 인기다. ‘내가 출연해야 하는 프로인데’ 생각하면서 볼 때마다 훈수 중이다.
‘미래적 현실’ 좋아하는 표현이다. 교회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이 성경 말씀은 기독교인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현실이 미래의 나의 모습인 거니까 말이다.
사실 내 현실은 ‘하찮은 것’ 투성이었다. 그러나 그 작고 사소한 것들을 통해 지금 많은 것을 이루고 있다. 춥고 아프고 외로웠던 시간에 글을 썼다. 집안 살림도 전부 ‘하찮은 것’의 힘으로 이뤄낸 것이다. 이제 그 하찮은 현실을 소개해 보려 한다.
나는 집을 커다란 도화지라고 여겼다. 그래서 청소, 요리 등 반복하는 집안일에서도 좀 더 창조적인 방법을 생각했다.
집은 멋진 작품이다. 집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고 꾸미고 디자인하는 일이 흥미로웠다. 꼭 돈이 많아야 멋진 인테리어를 꾸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월세를 살아도 허투루 꾸미지 않았다. 포장지와 끈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일반 주부가 아니라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프로페셔널’한 주부가 되려고 노력했다. 시간을 함부로 쓰는 게 싫었다. 매일 일과를 계획하고 시간을 쪼개 사용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 박사가 만든 ‘프랭클린 플래너’ 다이어리를 사용했다. 요즘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메모하고 기록한다.
어린 시절, 사탕이나 양갱 같은 과자가 가득 든 ‘종합선물세트’가 선물로 들어오곤 했다. 다른 형제들은 과자에 달려들었지만, 나는 상자가 우선이었다. 예쁜 그림이 그려진 종합선물세트 상자는 어린 내게 꿈의 공간이었다. 과자상자를 올리고 접고 색종이를 붙이며 주방이나 방을 만들었다.
그 안에 앙증맞은 테이블이나 작은 침대도 만들었다. 의자를 넣고 옷장도 만들어 옷을 걸었다. 이 작은 공간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비밀스런 나만의 공간이었다.
성인이 돼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집은 종합선물세트였고 일터요, 쉼의 공간이었다. 집을 열심히 가꾸다보니 어느새 인테리어 전문가가 됐다. 조명의 다양한 역할과 가족 구성원들의 움직이는 동선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자재의 특성도 익혔다.
평범한 일상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믿음과 실천이 나를 인테리어 전문가로 만들었던 것이다. 만약 ‘그 까짓 것’을 무시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오늘도 ‘하찮은 것’들과 마주한다.
이혼 후 죽을 것같이 힘들었던 공간, 오피스텔 방. 그 광야 같은 공간을 주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채웠다.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하찮은 것’ ‘그까짓 것’을 찾아보자.
***[역경의 열매] 서정희 (26) 57세 여름, 발레 도전…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는 시간
멋진 발레 공연 관람한 뒤 취미로 시작
동작 배우기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일 아침 스트레칭 발레로 꾸준히 연습
방송인 서정희 씨는 50대 후반에 발레를 처음 접했다. 사진은 서씨가 발레 학원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는 모습.
발레를 잘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에 배워지지 않는다. 고통이 필요하다. 나는 안다. 이미 돌같이 굳은 상태의 몸이라는 것을. 그래도 57세 여름, 멋진 발레 공연을 관람한 뒤 발레를 시작했다. 발레리나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발레가 좋다. 꽃을 바라보면 좋은 것처럼.
이혼 후 고통 속에 있을 때다. 취미로 발레를 하면서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우셨나이다.”(시 30:11)
발레 음악을 듣고 배우고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그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발레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딸 동주와 길을 걷다 우연히 발레 샵이 보였다. 들어가 연습용 토슈즈를 만지작거리다 하나 샀다. 토슈즈는 발레에서 여성 무용수가 춤을 출 때 싣는 신발이다. 가슴이 쿵쾅 거렸다. 기분이 좋아 흥얼거리며 길거리에서 뱅글뱅글 돌며 집까지 왔다.
집에서 토슈즈를 실내화처럼 신고 다녔다. 사뿐히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현대 무용의 창시자 이사도라 던컨이 맨발로 춤추는 것을 흉내 냈다.
수업에 필요한 발레복 레오타드도 샀다. 이 나이에 발레 한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냥 선물용이라고 말하고 구입했다.
발레 학원을 알아볼 때도 “딸이 발레 시작하려고요”라고 말했다. 학원에서는 건강을 위해 ‘스트레칭 발레’를 권했다. 개인 지도를 8번 받았다.
그런데 두 달 만에 그만뒀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레슨비가 비쌌다. 한 동작 한 동작이 어려웠고, 발레 용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발레 배우기가 쉽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하지만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다.
꽃을 잘 그리는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한 말이 있다.
“아무도 꽃을 보지 않는다. 정말이다. 너무 작아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고, 무언가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발레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도 발레 친구가 되기 위해 스트레칭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세도 많이 좋아졌다. 뻣뻣한 어깨가 펴지고 구부정한 허리도 펼 수 있다. 1년을 배우니 다리가 일자로 찢어졌다. 발레를 늦게 시작했지만 ‘발레 신동’이란 말도 들었다.
발레는 ‘춤을 추다’는 거다. 그냥 춤추면 된다. 마음 가는 대로 음악을 들으며 즐거움을 표현하면 된다.
발레는 나를 기쁘게 한다. 음악적 취향이나 분별력은 필요 없다. 좋으면 하고 싫음 안 하면 된다. 발레의 역사와 이야기를 알아 가는 게 좋다. FM 라디오를 틀고 스트레칭 발레로 아침을 깨운다. 피곤한 몸이 풀리고 키도 커지는 느낌이다. 엄청 시원하다. 발레는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 매번 이렇게 발레와 행복한 아침을 맞는다.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오늘도 춤출 것이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삼하 6:14)
***[역경의 열매] 서정희 (27) “주님, 아버지 없이 자란 제게 아버지 돼 줘 고맙습니다”
교회 부흥회 참석해 성령 임재 체험 후
살면서 지은 죄 회개하고 하나님 영접
방송인 서정희씨는 둘째 종우를 낳고 교회 부흥회에 참석해 예수님을 영접했다. 사진은 꿈에 천국을 보고 그린 그림과 글 ‘서정희의 인생 여정’.
2004년 병원에서 자다 천국 꿈을 꾼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새벽기도를 가다 하혈을 심하게 하고 쓰러졌다. 자궁에 종양이 있었다. 대학병원에 입원했고 암은 아니었지만, 자궁적출 수술을 했다.
한 지인은 “너는 하나님 딸로 그렇게 열심히 산다면서 왜 병이 났니”라고 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새벽기도와 철야, 구역예배, 주일 성수, 기도와 묵상을 빼놓지 않던 내가 병에 걸렸다고 하니 주변에서 수군댔다.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이동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병실에서 울다 잠이 들었다. 그때 꿈속에서 천국을 봤다. 금으로 치장한 성들이 보였다. 내 모습이 보였다. 성 아래 아름다운 마을이 펼쳐졌다.
‘저 마을엔 누가 살지?’
성이 내 집이라는 걸 느꼈다. 하늘에서 꽃이 눈처럼 계속 쏟아졌다. 떨어지는 꽃들 사이에 거대한 꽃이 보였다. 꽃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한 순간, 그 꽃이 내 품에 가볍게 안겼다. 한 아름 꽃을 안은 채 꿈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거였네요. 주님, 천국 소망을 버리지 않을게요. 나의 처소를 보여주셨네요. 예루살렘 성처럼 아름다운 나의 본향, 나의 성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려요”라고.
천국에 소망을 두고 예수님을 영접한 건 둘째 종우를 낳고 한달 반 만이었다. 1985년 여름 서울 강동구에 있는 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다.
영 어색했다. 뒷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교인들이 큰 소리로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왠지 낯설었다.
“중·고등학교 때 미션스쿨을 다녔는데 왜 이렇게 낯설지?”
교인들은 중얼중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기도했다. 조금 무서웠다. 지금이야 내가 방언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때는 방언이 무엇인지 몰랐다. 찬양을 따라 하고 목회자의 설교를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성령님이 나를 만지고 계셨다.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살면서 지은 죄가 계속 생각났다. 하나하나 죄를 회개했다. 그러자 마음이 평안해졌다. 누군가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아∼. 이것이 하나님의 손길이구나. 아버지 없이 자란 나에게 아버지가 돼 주시는구나.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됐다. 부흥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는 전혀 딴사람이었다. ‘붕붕’ 날아갈 듯 신이 났다. 거리의 나무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사랑한다, 정희야.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한다.”
“주님. 저도 주님을 사랑해요.”
이후 첫째 딸 동주를 등에 업고, 둘째 종우를 가슴에 안고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젖병과 기저귀, 이유식 방석 등 온갖 걸 싸서 들고 다녔다. 등에 업고 다닌 딸 동주가 이제 40세, 아들이 38세이다. 꿈에서 본 천국 소망을 잃지 않고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살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10)
***[역경의 열매] 서정희 (28) 꽃가게는 나만의 놀이터… 힘들고 속상할 때 늘 위로해줘
꽃꽂이 좋아해 꽃시장 자주 찾았지만
이혼 후 잠깐 꽃 싫어지며 멀리했다가
내 삶 닮은 꽃 보면서 다시 희망 찾아
그릇을 보관하는 찬장 위에 늘 작은 정원을 만든다. 찬장 왼쪽에 기도하는 예수님이 보인다.
꽃이 좋아 꽃꽂이를 하곤 한다. 꽃시장에서 숨을 쉬면 기분이 좋아진다. 한마디로 꽃이 좋다. 꽃시장은 보통 평일 오전에 많이 찾는다. 신선한 꽃이 들어오는 월·수·금요일 중 한두 번이다.
꽃가게가 모여 있는 서울 서초구 고속터미널 꽃시장을 즐겨 찾는다. 놀이터인 셈이다. 꽃과 나무가 많은 곳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꽃상가 3층에서 이파리와 줄기, 나뭇가지를 한 아름 고른다. 그리고 인근 양재동 꽃시장으로 이동한다.
로즈메리 아로마 잎과 화분, 테라스 야자, 아레카야자를 주로 산다. 빨리 시드는 꽃보다 푸름이 오래가는 이파리와 줄기, 싹이 나서 꽃이 피는 나뭇가지를 좋아한다. 유칼립투스와 맥문동, 초록 불로초, 오색 버들, 죽아이비 같은 이파리 종류다.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창 40:10)
힘들거나 속상할 때, 슬플 때, 꽃시장을 찾아 돌고 또 돌았다. 꽃과 풀들이 나를 보는 듯 했다. 나뭇가지와 꽃은 자유롭게 휘어지고, 자라나고, 피어나고,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뻣뻣한 대로 아름답다.
이혼하고 잠깐 꽃이 싫어졌다. 세상이 싫었다. 모든 것이 싫었다. 그때도 꽃시장을 찾았다. 꽃 때문에 이혼한 것도 아닌데…. 그냥 꽃만 봐도 화가 났다. 꽃꽂이를 멈췄다. 예쁜 꽃망울과 예쁜 가지, 유칼립투스 잎들, 화초의 아름다움까지 더럽게 느껴졌다. 꽃이 내 모습을 보고 비웃는 것 같았다.
“내 인생이 풀과 같았고 시드는 꽃과 같았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시 90:6)
요즘 다시 꽃을 꽂기 시작했다. 시든 꽃들은 꺾어 줘야 한다. 이파리 끝이 죽어 가면 잘라야 한다. 물도 줘야 한다. 그래야 자라는 거다. 내 삶도 꽃을 돌보는 것처럼 이래야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동화작가 겸 자연주의자 타샤 튜더 할머니가 말했다.
“하루아침에 정원이 만들어지는 줄 알아요?”
타샤 튜더 할머니처럼 난 꽃들이 행복한지, 안 하는지를 안다. 꽃은 정성을 다해 사랑을 줘야 한다. 꽃을 쳐다보고 느끼고 만지고 입맞춤도 한다. 그러면 꽃이 나를 쳐다보고 “사랑해 줘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제 희망적이다. 내 인생은 늙을수록 더 반짝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 집은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다.(전 12:5) 그 꽃밭은 성경 이사야의 말씀처럼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다.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사 27:6)
이 믿음의 근원이 무엇이든, 멋진 생각을 멈추고 싶지 않다. 인생을 정말 멋지게 살고 싶다.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멋진 식탁 꽃꽂이를 준비할 것이다. 꽃꽂이 재료와 소품을 사러 꽃시장을 찾을 것이다.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 17:8)
***[역경의 열매] 서정희 (29) “연습 통해 ‘내 것’ 된 운전처럼 믿음도 ‘노력’ 필요해요”
둘째 출산 후부터 가지고 있던 ‘장롱 면허’
혼자 살면서 ‘길치’지만 용기 내 주행연습
많은 시행착오 끝 어느새 베스트드라이버
방송인 서정희씨는 운전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 사진은 서씨가 교회 모임에 가기 위해 차를 운전하는 모습.
1985년 5월 둘째를 낳고 바로 그 다음 달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언젠가 운전할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혼자 살면서 대중교통으로 1년을 버티다 차를 샀고 운전을 다시 하게 됐다. 그런데 운전이 무서웠다. ‘길치’인 내겐 고문과 같았다. 겨우겨우 주행연습을 했다. 집에서 가까운 사우나를 다닐 정도로 운전 실력이 조금씩 늘었다. 수도 없이 차를 긁었다. 크고 작은 접촉사고가 잇따랐다. 사고가 날 때마다 겁이 났다. 충격을 받고 ‘운전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다.
남들도 다 하는 운전인데…. 왜 이렇게 힘들게 운전을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주변에서 들었던 말이 있다.
“운전이 뭐가 힘들어. 하면 되지. 내비게이션 잘 보고 그대로 가면 되지.” 그런 식의 말이다.
내 생각엔 내비게이션이 더디게 말하고 길을 인도하는 것 같았다. 좌회전하라는 건지. 우회전하라는 건지 헷갈리네….” 뒤에서 ‘빵빵’ 거리고, 식은땀은 나고.
운전이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살짝 미소 지었다. 하지만 운전 때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서러웠다. 내게 운전은 정말 버거웠다.
엄마는 70세가 넘어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엄마가 대단하신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남들 다하는 운전을 왜 못하느냐며 밀어붙이는 엄마의 말이 서운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구나.”
운전 8년 차. 이제는 내비게이션 지도를 곧잘 본다. 운전 잘한다는 말도 듣는다. 주차도 잘한다. 경주를 해도 될 만큼 속도도 낸다. 차 안에서 음악을 듣고, 목사님 말씀을 듣고, 기도도 소리쳐서 하고, 노래도 부른다. 차 안은 내 인생의 또 하나의 쉼의 공간이다. 후후~. 운전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것 같다.
이렇게 하나씩 앞에 닥친 두려운 것을 이겨내고 당차게 살아갈 생각이다. 인생에 새로운 시동이 걸리고 있다. 어설프지만 어디에 숨겨진 재능이 나타날지 모른다. 하고 싶은 것을 맘껏 배울 계획이다.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실망하지 않겠다. 차곡차곡 나의 저장 창고에 넣어두면 된다. 이 경험들은 분명 보석처럼 주님께서 쓰실 테니까. 재능은 발가벗은 몸과 같다. ‘노력’이라는 옷을 입어야 비로소 세상에 나갈 수 있다.
믿음과 신앙, 기도와 찬양도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에 나가기 위해 작은 재능을 발견하고 열심히 ‘노력’이라는 옷을 지어 입을 것이다.
내 나이 이제 만 60세. 작은 말씀이라도 하루에 한 구절씩 암송하려 한다. 물론 내일 또 잊어버리겠지만 말이다. 연습을 통해 결국은 ‘내 것’이 된다는 걸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성경 말씀처럼 때를 얻든 못 얻든 씨를 뿌릴 것이다. 반드시 기쁨으로 곡식단을 갖고 올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역경의 열매] 서정희 (30) 언제든 준비된 ‘살림의 여왕’… 행복한 주방을 꿈꾸다
결혼생활 위기 때마다 무너지지 않으려 악착같이 노력해 살림 노하우 만들어
투병하며 예전처럼 요리하진 못하지만 살림과 주님 대한 열정 회복 하고 싶어
방송인 서정희씨는 또다시 ‘살림의 여왕’을 꿈꾼다. 살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사진은 서씨가 아침마다 그릇을 정리하는 모습.
주부가 ‘살림’한다는 것, 그 과정을 즐기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중 하나다. 누구나 사고 싶고 누리고 싶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것이 녹록지 않다. 지금 있는 것이 충분할 수도 있고, 끝도 없이 모자랄 수도 있다. 때로는 새 옷이 행복감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또 무기력함에 빠진 사람은 아름답게 꾸며진 공간이 열정을 되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먹기 나름인 것이다.
결혼생활이 위태할 때마다 무너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그 노력이 바로 살림이다. 문제는 마치 경기를 하듯 끝없이 질주만 하는 욕망이었다.
주부 생활 32년. “살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사람들은 내가 처음부터 잘 살고, 많은 살림살이로 시작했다고 짐작한다. 하지만 신혼 초에 세탁기도 없이 손빨래했다. 세탁기 한 대를 장만하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관련 정보를 찾았다.
구입한 탈수기 ‘짤순이’가 손대신 짜주는 것이 신기했다. 친정과 시댁, 양쪽 집안의 반대로 단칸 셋방에서 살림을 시작했지만, 열심히 살았다.
아이들 이유식은 직접 재료를 구하러 다녔다. 그리고 젖병 구멍을 크게 뚫어 우유와 번갈아 따뜻하게 먹였다. 멸치와 김, 메주콩 등을 볶은 뒤 재래시장 방앗간에서 갈아 보관했다. 완두콩, 강낭콩 등 콩 종류도 삶아 냉동칸에 얼려 뒀다.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사다 만든 밑반찬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나물은 종류별로 삶아 한번 먹을 만큼 지퍼백에 얼려 보관했다. 멸치는 한 상자를 사면 종일 멸치 똥을 따고 정리했다. 나중에 볶거나 다시 국물을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식재료들은 먼저 쓸 것과 나중 쓸 것을 구분하기 위해 날짜를 적었다. 고기도 부위별로 갈무리해뒀다. 불시에 손님이 오더라도 손쉽게 요리할 수 있도록 빈틈없이 정리했다. 오히려 가끔은 불시에 손님이 왔으면 하고 기도한 적도 있다.
암에 걸리고 나서 예전처럼 신나게 요리하지 못한다. 하지만 요리 잘하는 ‘살림의 여왕’ 서정희의 요리 부활을 꿈꾼다.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조급하게 스스로 다그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부족하지 않게 누렸다면 지금처럼 살림 노하우가 생겼을까.
살림살이 하나하나에 사연이 깃들어 있다. 신혼 때 동대문에서 천을 사서 바느질하는 수선집에서 커튼과 침구를 만들었다. 파우치, 에코백 같은 소품과 앞치마를 만들었다. 다 추억이고 기쁨이다. 지금 몸이 많이 아프다. 하지만 시큰둥해진 ‘살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주님과의 첫사랑도 회복하고 싶다. “불시에 손님이 왔으면”이라고 기도한 것처럼 주님이 불시에 방문하셔도 급히 요리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하고”(행 15:36)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창 18:7)
***[역경의 열매] 서정희 (31) 기도원 첫날부터 몸살감기… 약으로 버티며 밤새 기도
이혼 문제로 몸과 마음 힘들고 피폐해져
기도원 찾아 회개하고 오로지 주께 의지
예배 중 생명의 말씀 듣고 마음평안 얻어
방송인 서정희씨가 인근 교회로 새벽기도를 가고 있다. 서씨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고 있다.
믿음이 흔들릴 때, 힘들 때마다 기도제목을 들고 기도원에 갔다. 오산리와 삼각산, 청계산, 한얼산 기도원 등을 자주 다녔다.
2014년 11월 이혼을 앞두고 또 기도원을 찾았다. 3박 4일을 작정했고 핸드폰은 꺼 버렸다. 11월인데도 한겨울처럼 추웠다.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 이불 속에서 바들바들 떨었던 기억이 난다. 수돗물이 차가웠다. 간단히 양치와 세수를 했다.
기도원 밥이 어찌나 맛있던지 ‘뚝딱’ 먹었다.
‘맛있는 반찬도 별로 없는데 맛있는 이유가 뭐지. 국수 한 그릇을 먹어도 왜 그렇게 맛있는지. 성령으로 음식을 만들어 그런가’ 생각했다.
기도원에 온 첫날 감기가 들었다. 온몸이 쑤시는 신경통과 두통, 목감기까지 겹쳤다. 비상약으로 가져온 진통제와 감기약을 먹었다. 할 수 있는 건 오직 주님을 찾는 일 뿐이었다.
한숨도 못자고 날밤을 세웠다. 불면증이 있었다. 밤 12시부터 새벽기도까지 계속되는 예배로 애써 잠을 청할 필요도 없었다. 목청이 떠나갈 듯 기도하고 찬양했다.
이혼 과정이 많이 힘들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 있었다. 오랜만에 기도원에서 혼자 자려니 참 기가 막히고 눈물만 나왔다.
온갖 생각으로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내 생각을 버리고, 또 버리고, 힘이 빠지길 기다렸다. 이튿 날 서서히 죄의 허물이 벗겨졌다. 힘이 나기 시작했다. 기도원 올라올 때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점점 정신이 맑아졌다. 감사 기도가 다시 나온다. 기도가 회복된 것이다. 주님이 기도 가운데 말씀하신다. 사단은 서정희를 괴롭히지 말라, 서정희는 나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마 26:10)
연약하고 추한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피 흘려 주신 것을 체험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당시 나는 영육 간에 병들어 있었다. 진흙탕 부부 싸움으로 이혼 법정에 섰고 망신의 자리에 있었다. 많이 지쳤다.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태어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새로 시작해야 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9:1)
하나님을 의지했다. 평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육신의 병이 들었다고. 조금 아프다고, 환경이 힘들다고, 불행이라 말할 수 없다. 삶이 참혹하다고 말하면 안 된다.’
하루 5번의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은 계속 생명의 말씀을 주셨다. 결국 나를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져주셨다고 믿는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 107:20)
철저히 회개 기도를 드렸고 주님이 보살펴 주셨다. 안전한 길,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을 선택하고 기도원을 내려왔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32) “100대 명산 찍어보리라” 가파른 산 오르며 건강관리
건강 잘 돌보지 못해 병 걸렸단 자책에
암에 좋다는 여러 가지 운동 시도하다
산행에 매료, 차츰 건강에 자신감 생겨
암 투병 중인 방송인 서정희는 등산을 하면서 영육간에 치유함과 자유를 느끼고 있다. 사진은 도봉산 정상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차를 운전하다 막힐 때 울컥하고 답답할 때가 있다. 차에 날개가 있어 훨훨 날아갔으면 하는 환상을 갖는다. 그런데 성경 시편을 보면 다윗도 힘들 때 비둘기를 보면서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 편히 쉬고 싶다고 노래했다.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셀라).”(시 55:6~7)
인생을 살다보면 힘들고 아픈 일이 많다. 그럴 때 크리스천이라면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를 통해 아픔이 사라지고 어둠의 세력이 떠난다. 수시로 간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입으로는 사랑과 용서를 구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미워하고 정죄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치유함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세상은 여자를 부엌이나 침실에 가두어 왔으면서, 그 시야가 좁다고 나무란다. 날개를 잘라버리고 날아가라고 한다. 만일 여자에게 미래를 열어 준다면 그녀는 현재 속에 들어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한 말이다.
이 말이 떠오를 때마다 나의 삶이 떠오른다. 날개가 있는지 아니, 잘린 줄도 모른 채 집안에 스스로 갇혀 살았다. 이혼 후 잘린 날개가 보였다. 그동안 날개 없는 내 몸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거울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데, 왜 나는 보지 못했던 걸까.
무엇보다 건강을 돌보지 않았다. 건강 검진도 잘 받지 않았다. 그 결과, 유방암에 걸렸다. 이제는 정말 운동해야지. 그래 운동해야지. 수도 없이 다그쳤지만, 그 세월을 그냥 보낸 것이다.
이제 암에 좋다는 여러 운동을 시도 중이다. 걷기와 수영, 자전거 타기 등이다. 요즘 산에 오르고 있다. 날개가 없어 비둘기처럼 날아오르지는 못하지만 가까운 도봉산, 청계산, 아차산, 하남시 검단산, 용마산을 다녀왔다. 친구들과 경남 합천군 가야산 정상도 올랐다. ‘100대 명산을 찍어 보리라’ 욕심도 부려본다.
산행은 힘들다. 가파르게 올라가고 숨을 몰아쉬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스틱을 찍으면서 무거운 다리를 옮긴다. 코끝에 살랑대는 맑은 공기가 좋다. 왜들 그리 산에 오르려는지 알 것 같다. 하마터면 모를 뻔한 등산의 맛을 알았다. 정상에 오르면 널찍한 돌을 찾고 작은 방석을 깔고 앉는다. 크게 심호흡하며 숨을 고른다. 추워질 때는 가져온 패딩을 덧입는다.
지퍼 백에 가져온 사과랑, 등산로에서 산 옥수수를 꺼내 먹는다. 그리고 텀블러에 담아온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마신다. 산새나 비둘기에게 부스러기를 나눠준다. 어디서 오는지 새들이 주변에 몰려든다. 행복한 순간이다.
점점 건강해지고 있다. 건강한 모습으로 독자와 만나고 싶다. 유방암, 불현듯 찾아온 이 병을 참고 낫게 하실 주님을 의지한다.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눅 22:51)
***[역경의 열매] 서정희 (33) 나만의 ‘에코 시크 스타일’로 건강과 멋 모두 살려
멋지고 세련됨은 돈보다는 감각의 문제
남들 따라 하기보다 창의력 발휘해 응용
아프고부터는 친환경적 부분까지 더해
방송인 서정희씨는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고 도전하며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사진은 서씨가 지난해 서울의 한 호텔 '한복 웨딩 패션쇼'에서 당당한 표정으로 무대를 걷고 있는 모습.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전 1:9)
새로 나온 상품 일명 ‘신상’(新商)을 모두 살 수는 없다. 날마다 유행을 쫓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가끔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듣곤 한다.
“돈이 없어 스타일 만들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멋지고 세련되고 맵시 있는 옷 입기, 집 꾸밈은 돈보다는 감각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돈이 없을 때는 그만큼 센스를 더 발휘하면 어떨까. 어떻게 꾸밀 것인지 고민하면 된다. 넉넉하지 않을 때는 선택의 폭이 좁지만 그만큼 표현하는 센스와 아이디어가 극대화된다.
외래어 ‘시크’(Chic)는 그런 감각을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다. 시크란 말은 1920년대 프랑스 여성 디자이너 코코 샤넬로부터 비롯한 패션용어다. 샤넬은 당시 여성복에 쓰이지 않던 ‘저지’ 소재를 세련되면서도 멋지게 맵시 있는 옷을 창조했다. 영화 ‘코코 샤넬’에서 잠옷 위에 저지 가운만 걸친 채 걸어 나오던 샤넬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시크하다는 표현은 그렇게 영리하고 세련된 것을 의미한다. 우리도 이렇게 샤넬처럼 창의력을 발휘하면 된다.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보다 응용하는 게 더 낫다.
암을 이겨내는 요즘 나는 부쩍 몸과 환경, 라이프 스타일에 관심이 많다. 음식과 인테리어, 디자인, 건강, 뷰티와 패션의 새로움을 추구한다. 친환경적이면서도 세련된 스타일 말이다.
예를 들어본다. 딸 동주의 방을 꾸미기 위해 고민했던 ‘더스트 백(dust bag) 쿠션’은 가장 좋아하는 ‘에코(친환경) 시크 스타일’이다. 먼지나 긁힘으로부터 신발이나 백 등의 제품을 보호해주는 부드러운 천(패브릭) ‘더스트 백’을 모아 놓았다. 그걸 적당히 말랑하게 항균 솜을 채워 만든 쿠션은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지인에게 쿠션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바늘꽂이도 만들어 선물했다. 엄청 좋아했다. 피부에 닿아도 자극 없는 보드라운 촉감이 좋다고들 했다.
또 한 가지. 더스트 백은 신발 보호 용도로 많이 쓴다. 외출에서 신발을 벗어야 하는 경우 신발주머니로 활용해도 좋다. 여행갈 때 신발이나 물품 등을 나눠 차곡차곡 넣어 가면 좋다. 앙증 맞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서정희 식 ‘에코 시크 스타일’이다.
스타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전문가가 됐다. 유학파도 아니고 관련 학위도 없지만 열심히 관련 분야를 연구했다. 특히 독특하고 창의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성령의 감동이다. 주님은 내게 성경말씀과 기도를 통해 지혜와 총명을 부어주신다. 집에서 쓸 일들을 할 줄 알게 하셨다.
이렇게 기도 드린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처럼 성령으로 감동되게 하시고 지혜로운 마음을 충만하게 하옵소서. 가르쳐 주옵소서.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출 35:34~35)
***[역경의 열매] 서정희 (34) “그리스도의 향기 나는 믿음의 가정되게 해 주소서”
좋은 향기는 기분 좋게 하고 열정 자극
멋진 향유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 노력
우리 집엔 늘 예수님 향기 많이 났으면
TV 예능 프로그램 ‘밥은 먹고 다니냐’에 출연한 서정희씨(왼쪽 세번째). 서씨는 이 방송에서 자신의 삶과 신앙의 향기를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매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향기가 느껴진다. 집에서도 그 집의 향기가 나기 마련이다. 집을 완성하는 마지막 터치는 바로 ‘공간의 향기’다. 엄마가 끓여주는 김치찌개 냄새, 된장찌개 냄새를 행복한 순간의 향기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어린 시절, 집 마당에 평상이 있었는데 그 위에 누워 있곤 했다. 코끝으로 전해오는 바람으로 살짝 졸기도 했다. 그 순간이 생각나면 나는 미소 짓게 된다.
집안으로 들어오면 좁은 마루가 있고 양쪽 미닫이문을 열 수 있었다. 유독 창문이 많아 다 열면 바람 때문에 집안 커튼이 뒤집어졌다. 읽던 만화책 책장이 마구 날리기도 했다.
맞바람이 불 때는 너무 추워 창문과 방문을 꼭꼭 닫았다. 함께 살던 외할머니는 늦가을부터 창문마다 비닐 뽁뽁이를 붙였다. 겨울내 따뜻한 공기가 새어 나갈까봐 창문을 열지 못하게 하셨다. 온돌 방바닥에서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탁한 공기로 답답했다.
결혼 후 새벽기도를 다녀오면 수건과 행주를 자주 삶았다. 성경을 읽으며 집안에 가득 퍼지는 빨래 삶는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았다. 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나님 은혜와 사랑으로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가정을 꿈꿨다.
“이는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 곧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출 29:25)
좋은 향기는 기분을 좋게 만들고 열정을 자극한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몸에 뿌리는 향수를 브랜드화한다. 요즘은 집 안의 향기나 공간의 향기 등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방안에 향기를 퍼지게 하는 인테리어 소품인 ‘디퓨저’가 불티나게 팔린다. 아로마 향이 인기다.
좋은 냄새는 자꾸 맡고 싶은 힘과 끌림을 지니고 있다. 빵집을 지날 때 구수한 빵 냄새가 ‘훅’하고 느껴진다. 과일 집을 지날 때 달콤한 과일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 커피숍을 지날 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커피 향기처럼 말이다.
요즘 어린시절의 우리 집이 그립다. 내가 잠자던 이불냄새가 그립고, 작은 다락방의 꼬리꼬리한 메주 냄새가 그립다. 이런 냄새는 집으로 빨리 달려가게 만든다.
아이들을 키울 때 목욕을 씻기고 베이비 로션과 오일, 베이비 파우더를 바르곤 했다. 보송보송한 얼굴로 ‘쌕쌕’ 거리며 자는 아이 곁에 누워있으면 그 냄새가 너무 좋았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믿음의 가정을 만들려 애썼다. 그래야 행복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앙을 갖고 나서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께 값진 나드향 옥합을 깨고 싶었다.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막 14:3)
멋진 향유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노력했다. 인간은 살아있는 한 어떤 냄새나 향기가 나게 돼 있다. 우리 집에 오면 예수님의 향기가 많이 났으면 좋겠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2:14)
***[역경의 열매] 서정희 (35) 먼지 속 땀 흘리는 현장에서 또 다른 삶의 색을 배운다
뜻대로 안 될 때 많은 인테리어 공사현장
여러 분야 장인들과 호흡하며 기술 터득
의뢰인의 관점에서 해결하려 최대한 노력
방송인 서정희씨가 지난해 겨울 서울 종로구 단독주택 철거현장에서 인테리어 공사 일지를 정리하고 있다.
공사현장이 좋다. 나를 믿고 공사를 맡겨주는 사람들이 참 좋다. 먼지 속에서 땀 흘리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 위해 샘솟는 생각들이 좋다.
공사에 대한 상상과 생각이 계획으로 바뀐다. 공사현장은 다시 사진이나 영화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눈을 감고 실물 그대로를 그린 완성 예상도인 ‘렌더링’(rendering)을 해본다. 그리고 공사현장에서 창의적으로 해보고 싶은 것들을 현실로 풀어낸다.
내 전문분야인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 보면 뜻대로 안 될 때가 있다. 한숨이 나온다. 꼬인 것이 안 풀리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난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조용히 주님께 기도한다.
“주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기도 중에 묻는다. 주님께 기도하면서 나를 믿고 맡긴 의뢰인의 입장을 생각한다. 그리고 공사현장을 자세히 살핀다. 그러면 꼬인 문제가 풀릴 때가 많다.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서….”(신 13:14)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맞아. 독하게 마음먹어야 해.” 작은 것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독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경력이 많고 뛰어난 기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장인(匠人)은 생활 속에서 단지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수년, 수십 년간 노력하고 손과 머리를 써서 하는 일들이다. 장인은 늘 고민하고 또 생각한다.
함께 일하는 공사현장의 각종 장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페인트 장인, 목공 장인, 금속 장인 등. 그들은 한눈에도 공사 견적이 나온다. 견적에 따라 에나멜 유성 페인트를 쓸지, 수성 페인트로 써야 할지, 락커 반광으로 할지 무광으로 할지 잘 안다.
안티스타코(벽면 시공) 같은 경우 무늬 하나하나를 손으로 만드는데 장인이 따로 있다. 장인들은 석고 바르는 주걱(헤라)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숙련된 손으로 원하는 무늬를 척척 표현한다.
나도 요즘 장인처럼 페인트칠을 한다. 빨간색과 초록색, 검은색 등 여러 가지 색을 섞어 젖고, 또 젖는다. 그리고 다시 칠하고 마를 때까지 기다리고, 그 색이 마른 뒤 나오는 색을 지켜본다. 다시 섞고 칠하고, 마를 때를 기다려 마침내 원하는 색을 만든다.
원하는 색을 섞어 큰 통을 만들고 ‘휴~’ 안도감으로 감사한다. 칠하다 묻은 페인트를 닦으면서 입가에 웃음이 가득하다.
지금 사는 나의 월셋집은 칠할 벽도 없다. 싼 벽지로 도배가 돼 있다.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새로 집을 지을 것이다. 독한 마음으로 터득했던 기술을 맘껏 펼칠 집,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될 집, 내가 짓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지으시는 하나님이 집을 지어 주실 것이다. 지금은 남의 집을 건축하는 공사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 3:4)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신 8:12)
***[역경의 열매] 서정희 (36) 대상포진 3번이나 걸려… 통증 올 때마다 눈물로 기도
어릴때부터 약골… 예방주사도 헛일
바이러스가 귀·눈·머리까지 퍼져
고통 겪은뒤 아픈 이 위해 기도하게 돼
방송인 서정희씨가 2015년 겨울 MBC 교양 프로그램 ‘사람이 좋다’를 촬영하고 있다. 서씨가 방송에서 대상포진으로 아파 울고 있다. 이혼 후 의사와 트라우마 상담하는 모습. 서씨가 현관문 배터리를 교체하고 있다. 딸 동주와 침대에 누워 대화하는 서씨(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시 90:10)
성경에 강건하면 팔십, 세상에서도 ‘골골 80’이란 말이 있다. 어릴 때부터 약골이었다. 매번 작고 큰 병으로 낫기를 기도하는 내게, 가족들은 ‘골골 100세’라고 놀린다. 오래 살 것이라는 좋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병원을 내 집처럼 다니면서도 건강검진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뤘다.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를 즈음 밀린 이자와 경제적 문제 등으로 그나마 가입했던 건강 관련 보험도 해지했다. 이후 여러 병에 걸리고 나니 보험가입이 쉽지 않다.
“그래, 거부해도 좋다. 나는 하나님 보험만 있으면 된다.” 크리스천이기에 큰소리쳐 본다.
아픈 것이 유난스럽다. 남들은 평생 한번 걸릴까 말까한 대상포진을 세 번이나 앓았다. 예방주사도 맞았건만 소용없었다. 머리 쪽으로 대상포진이 반복됐다. 보이지 않는 머리 속에 수두가 올라와 터질 듯한 물집이 생겼다.
대상포진은 심한 통증이 수반된다. 머리카락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지를 정도로 통증이 밀려온다. 온몸에 땀이 나고 잠을 이룰 수 없다.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살림을 했고 새벽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건강을 회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시 39:13)
눈물로 찬양했다.
“주여 나의 병든 몸을/지금 고쳐주소서/모든 병을 고쳐주마/주 약속하셨네♪♬.”
진통제를 잔뜩 먹고 병원을 찾았을 때 이미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귓속과 눈, 머릿속까지 퍼져 있었다. 급히 치료를 시작했지만 떨어진 면역력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마지막 세번째 대상포진은 2015년 12월 MBC 교양 프로그램 ‘사람이 좋다’ 촬영 막바지에 일어났다. 심하게 머리가 아파 감기인 줄 알았다. 머리 속에 물집이 생겼다. 프로듀서 선생님과 함께 병원에 가서 피검사 등을 받았다. 대상포진이었다. 주사를 맞고 약을 지어 먹었다.
전처럼 기도할 수 없었다. 조금만 소리를 내 기도하면 머리가 울리고 통증이 시작됐다. 앉아 있는 것도 힘들었다. 엉덩이와 허벅지 등에 통증이 왔다. 허리를 굽히고 앉아 있거나 거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후 수시로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서정희는 건강할 지어다”라고 선포한다.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막 5:34)
“주님, 자만하지 않을게요. 바울처럼 육체의 가시를 주신 주님, 감사해요.” 기도 드린다.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자를 긍휼히 여기고 기도할 수 있게 됐다.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12:7)
***[역경의 열매] 서정희 (37) 엄마 품 같은 침대 안… 주님과 대화하며 행복 꿈꿔
불면 시달리다 기도 후 수면제 끊고 단잠
그 후 낮잠 시간이면 주님께 기도와 묵상
고민 털어놓고 나면 주님 품 안에서 안식
방송인 서정희씨는 모든 것이 나름 존재 이유가 있다고 간증했다. 자신의 오피스텔 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서씨.
오피스텔 방으로 이사했다. 침대가 방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옷가지를 벗어 재빨리 세탁 바구니에 넣고 씻을 동안 전기담요를 켠다. 씻고 나와 잠옷을 갈아입고 바로 따뜻하게 데워진 침대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아~ 따뜻해.”
나이가 들면서 생긴 버릇이 하나 있다. 하루 중 잠깐이라도 짬을 내 침대 속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예전엔 낮잠은 그저 게으른 자의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졸리지만 잠을 청하지 않았다. 한동안 두려웠다. 가슴이 두근거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10여 년을 수면제에 의존했다. 그래서 단잠을 달라고 기도했다.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잠 3:24)
2년 전 어느 날 밤 단잠을 잤다. 이게 몇 년 만인가 싶었다. 그 뒤 수면제를 끊었다. 지금은 오히려 암 투병 중에도 그야말로 단잠을 자고 있다.
요즘은 잠시라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낮잠을 청한다. 모든 것을 차단하고 고요한 침묵 속에서 기도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쓸데없이 구했던 것들을 비워낸다. 한가한 오후를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좋다. 휴식이 좋다. 잔잔한 바람이 천사의 손길 같다.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열상 19:5)
모든 것은 나름 존재 이유가 있다. 나 역시 건강을 다시 회복하게 해주신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침대 안에서 깨닫는다. 내게는 침묵 기도의 시간과 공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인내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새로운 말씀이 샘솟는 것도 바로 이 시간이다.
프랑스의 제품 디자이너 필립 스탁은 “책상은 필요치 않다. 다만 꿈을 꿀 수 있는 침대가 필요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말씀을 샘솟게 만든 그 침대 속 비밀의 공간에서 나는 꿈꾸는 자가 된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시 126:1)
침대 속에서 언제 고민이 있었나 싶게 깊이 잠이 들곤 한다. 아이 같은 마음으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괴롭게도 안 하기로 했다. 돌이켜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힘들 때마다 침대 속으로 들어가 쉬곤 한다. 이불을 덮고 소리 내어 운다. 기쁠 때도 ‘야호’하고 소리 지른다. 세상 모든 이에게 침대는 언제든 뛰어들면 포근하게 품어주는 엄마 같은 공간일 것이다.
현재 직장 근처에 엄마와 내가 들어가 살 집을 수리하고 있다.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고 새집으로 이사하게 되면 ‘나의 침실’이라고 방문에 써 붙일 것이다. 침대 옆 테이블 위에는 성경책을 놓겠다. 수시로 하나님 말씀을 펼쳐볼 수 있게 말이다.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는 찻잔을 예쁘게 놓을 것이다.
주님 품 속처럼 따뜻한 침대를 만들고 싶다. 시끄러운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곳, 행복하다고 다시 마음먹게 해주는 곳, 항상 꿈꾸는 곳, 그곳은 바로 주님 품 안이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38) 기도하며 기다린 끝에 친정 식구 모두 주님께 돌아와
크리스천 된 후 가족들 영혼 구원하려
20년 꼬박 주님 영접하길 바라며 기도
이젠 믿음 좋아져 신앙생활·봉사 열심
방송인 서정희씨의 팬들이 자전적 에세이 ‘혼자 사니 좋다’ 출판을 기념해 함께 했다.
늘 기다렸다. 기다림의 끈을 놓지 않았다. 친정 식구를 포함한 가족이 주님을 영접하길 기다렸다. 엄마는 신년이 되면 토정비결을 비롯해 각종 점을 봤다. 가족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친정에서는 내가 첫 크리스천이다.
“주님, 우리 가족을 불쌍히 여기옵소서. 영원한 천국에 함께 가길 원합니다.” 간절히 기도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시 90:13)
주님께 기도 중에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시 89:46)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했다.
기도 응답은 하나님의 시간에 이뤄졌다. 지금은 엄마와 언니, 동생, 조카들까지 친정 식구 모두 교회에 출석한다. 전도하기까지 20년이 꼬박 걸렸다. 친정 식구들은 이제 믿음이 좋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한다.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전도의 열매를 맺은 것이다.
때로는 기도 응답이 오지 않을 때 실망했다.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났다. 그런데 그 눈물은 하나님이 나를 돌보지 않아 서운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을 지키지 않은 내 모습이 보여 회개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기도는 기다림이다. 기도 응답을 받곤 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기도의 응답이 아직이라도 포기하지 말자. 오늘도 나는 기다림의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억울함과 분노의 시간에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울며 하소연했다. 때론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너졌다.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무슨 말이 위로될까. 참담할 뿐이다. 인스타그램에 추모의 글을 올렸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열하 20:5)
이해인 수녀의 시에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시의 구절처럼 우리의 기도의 잎이 보일 것이다. 안 보이던 잎이 보이려면 기다림의 기도뿐이다. 나는 기다림의 기도로 사는 삶을 선택했다.
많은 사람이 내가 기도할 때 몇 시간 동안 집중하며 묵상 또는 기도했는지 질문한다.
나는 답한다. 한 30분쯤? 그러나 벌써 3시간째를 지나고 있다. 기도하다 보면 시간 가는 것도 잊을 때가 있다.
요즘도 기도와 묵상으로 지낸다. 유방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집중해 기도하는 시간 동안은 힘든 것, 모든 고통을 잊는다. 기도해본 자만이 아는 귀하고 소중한 비밀이다.
기도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생명의 신비함으로 가득 찬다. 구체적인 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꿈을 펼친다. 주님과 친밀한 시간을 갖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일이 저절로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 정교하게 정확하게 이뤄지는 것들이 있었다.
가족들이 주님께 돌아와 기쁘다. 좋은 글이 나오고 디자인의 영감이 떠오르고 건강이 살아나고 무너졌던 마음의 꽃들이 기도를 통해 다시 피어난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39) 기도와 묵상으로 아침 열며 “아버지 사랑해요, 감사해요”
주님 만나 교제한 40년, 귀하고 감사
묵상하면 할수록 하나님 계획 깨닫고
삶의 역경·시험 가치 있음을 알게 돼
신뢰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
방송인 서정희씨(왼쪽 세번째)가 SBS플러스 예능 프로그램 ‘언니한텐 말해도 돼’에 출연해 삶과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씨는 기도와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새벽기도회를 다녀온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묵상한다. 주님과 만난 지 40년이다. 주님과 교제하며 보낸 시간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모른다. 지금도 주님을 생각하면 감사해 눈물이 난다.
주님이 ‘오늘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무엇을 가르쳐 주실까’ 내심 기대하며 아침을 기다린다.
주님 품에 안겨 수다 떠는 새벽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어떤 마음으로 기도했고, 어떤 태도로 하나님과 나눴는지 노트에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다. 자식에게 기도의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마음으로 기록한다. 묵상하고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살면서 적잖은 고통을 겪었다. 때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 또 아침을 맞는다. 인생이란 ‘이런 거구나’ 어렴풋이 알아 간다.
암환자인 내게 내일도 특별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한 움큼 약을 먹을 것이고 3주에 한 번 표적 치료를 받을 것이다.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께 또 부작용에 대해 물어 볼 것이다.
하지만 씨를 뿌리면 주님이 거두신다는 진리를 “아멘”으로 화답하며 살 것이다. 매일 주님을 찾고 기도하는 것이 내가 살 길이다.
지금 당장 계획은 없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그날그날 필요한 것을 관찰하고 이해하며 기억한다.
삶에 부족한 것이 발견돼도 이제는 주님께 감사할 수 있다. 유방암이 발견됐을 때 주님을 신뢰했다. 고치시고 위험한 상황에서 건져주시는 전능하신 주님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주님은 세상에서 겪는 모든 역경과 시험이 다 가치가 있음을 알려 주신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주님 영광을 위해 살 것이다. 입으로 “아멘, 믿습니다”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주님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으로 확신한다.
예전엔 주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내 자신이 결정할 때가 적지 않았다. 그렇게 해 달라고 떼를 썼다. 해주실 것을 믿는다고 기도했다. 그리고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했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세상에 버려진 것만 같아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묵상하면서 모순된 것과 다듬어지지 않은 것을 하나하나 교정하고 있다. 묵상은 내게 꼭 필요한 것이다. 성숙한 신앙생활을 만들어 준다. 힘들 때 주님의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침을 고백하게 된다.
고난과 친숙한 사람이 됐다. 고난 때문에 간증할 수 있다. 주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감사 기도를 드린다. 어떤 비난의 소리가 쏟아져도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묵상을 통해 “아버지 사랑해요. 감사해요.” 이렇게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만으로 만족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16:8)
오늘도 이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역경의 열매] 서정희 (40·끝) 내 삶은 아름다운 도전… ‘반복과 인내’의 증거 나타나길
기도하고 기록하고 책 쓰는 삶 속에서
습관 만드는 반복의 중요함 믿고 인내
미룰 일 생기면 하기 싫은 일부터 시작
여성지 퀸(Queen)의 창간호(1990년) 표지모델이었던 서정희씨가 30년 만에 2020년 7월호 퀸 표지모델로 다시 섰다. 그동안 서씨는 주부에서 싱글로 돌아왔지만 자신의 삶과 신앙에 열정을 가진, 도전 인생을 펼치고 있다.
지난 9월 국민일보 연재 ‘역경의 열매’를 시작했다. 아브라함처럼 순종했고 갈 바를 모르고 시작했다. 그런데 이 연재가 벌써 마지막 회를 맞았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거룩한 부담감으로 버겁기도 했다. 두 달여의 여정에 함께 해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을 화수분처럼 쏟아냈다.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은 걸 보니 시즌2를 준비해야겠다. 독자 여러분의 격려와 칭찬, 다독임과 때론 채찍질 모두 큰 위로가 됐다. 눈을 감고 있어도 계속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로 살아온 40년 동안 연 평균 3권 이상 책을 썼다.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간 가까이 글을 쓴다고 한다. 나도 보통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새벽기도하고 아침을 먹고 약 먹고 묵상하고 글을 써왔다.
하루키는 계속되는 반복과 장기간 고독한 작업을 버텨내는 강인한 인내력을 ‘소설가의 자격’이라고 설명했다. 맞는 것 같다. 나의 삶 역시 ‘반복과 인내’였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견디는 것이고, 계속 반복하는 것들이었으니까. 참고 견디는 인내의 증거가 나타나길 기도했다.
내게 ‘나중’은 없는 단어다. 나중에 하기로 한 것치고 제대로 마무리한 일이 없다. 아니 아예 시도를 못하고 지나치기 일쑤다. 그래서 나중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일은 없다. 마음을 먹으면 바로 행동한다.
사실 엄청 게으른 편이다. 미루고 싶은 일투성이다. 그럴 때마다 하기 싫은 일부터 처리한다. 새벽부터 낮 12시까지 일하고, 이후는 안 해도 되는 일을 한다. 집에만 있을 때도 직장인이라 생각하고 퇴근시간까지 일한다. 이 글을 쓰는 것도 근무 중에 하는 일이다.
“천재적인 자질이나 명석한 두뇌가 소설을 쓰게 하지는 않는다.” 하루키의 말이다.
난 천재가 아니고 명석한 두뇌도 없다. 늘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뿐이다. 내가 말하는 반복의 중요성이다. 그 시간에 앉아 글을 쓰는 습관이 소설가가 된 것이라면, 나 역시 반복적으로 기도하고 기록하고 책을 쓰고 있으니 무엇이 되긴 될 듯하다.
TV 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 나가 가수 이선희의 ‘인연’을 부른 적이 있다. 이 때도 가사를 외우려 백번은 반복해 부른 것 같다. 쉽게 되는 일은 역시 없는 것 같다.
내 나이 이제 예순하나. 적지 않은 나이다. 누군가는 이미 다 이룬 나이이고, 누군가는 쉬어가는 나이일 것이다. 나 서정희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오늘도 같은 시간에 일어나 책상머리에 앉아 있다.
오전 7시. 어김없이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출근준비를 하고 나설 것이다. 식탁에서 도면을 꺼내놓고 ‘집짓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오늘은 새 집으로 들어갈 물건의 치수를 재야겠다. 건강한 모습으로 독자들과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많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