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건한 저녁 무렵
~~~~고모령 언덕에 영남제일관 거닐다~~~~
언 제 ; 2014년 7월 16일 저녁무렵
어디를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만촌동 산90)
저녁 식사후 운동하는 습관이 되어 오늘은 고모령을 찾아 이곳
저곳을 살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강바람과 나무들의 향기며 특히나 솔향기가
좋아 구석구석 나무와 돌 그리고 웅장한 영남제일관이며 숨어져 있는 정자를 살펴 보면서
마음의 휴식을 취해 보았다.
****영남 제일관은****
○ 개요
대구읍성은 1590년(선조23년)에 축성된 토성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파괴되어
그 후 140년간 성이 없었다가 영조 12년(1736) 4월 8일에 채석을 시작하고, 4월 25일에
본성채를 이룩하고 6월 6일까지는 여첩을 완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서남북으로 4개의 정문이 있었는데,
그 중 남문을 영남제1관이라 칭하였다. 그후 1870년 중수하여
성벽 위에 누각 4개를 세웠지만, 1906년 헐어버렸으며, 1980년 지금의
영남제1관을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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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습도 한 컷~트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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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래
• 우리민족은 고래(古來)로 구릉과 산성을 방수(防守)의 요충으로 중시하여
각종 성(城)을 쌓았으나 평지에 성을 축조하는 것은 드물었다. 지방행정관서가
있는 곳의 평지에 축성된 대구 읍성(邑城)은 1590년(선조23년)에 처음 만들 때는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이었으 나,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뒤 1736년(영조 12)에
돌로 다시 쌓아 석성(石城)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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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에는 동서남북에 4개의 정문을 두었는데, 동문은 진동문(鎭東門),
서문은 달서문(達西門), 남문은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 북문은 공북문(拱北門)이라
하였다. 1906년 읍성이 철거될 때 성문들도 함께 철거되었다. 현재의 영남제일관은
1980년에 그 자리를 옮겨 새로 세웠으나 성루(城樓)의 위치·규모·품격 면에서
원형과 동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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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 대구제일의 향토상징 관문으로서 금호강과 함께
대구시민들이 대자연의 운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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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제일관의 설명판도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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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고모령의 역사***
대구광역시의 수성구 만촌동에 위치한 고개이다. 만촌동 인터불고호텔에서
팔현(八峴)마을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고개이다. '비 내리는 고모령'이란 노래의
배경지로 이름 나 있다. 주변에 있는 대구선 철도의 고모역은 대구선 이설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모령 지명유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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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장사인 남매와 어머니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어머니가 집을 돌아보았다는
의미인 '고모(顧母)'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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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이야기로는 옛날 고모령에 어린 남매를 홀로 키우는 어머니가 있었다.
어느 날 승려가 와서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을 면치 못한다고 했다.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게 되었다. 고모령 근처의
모봉(母峰, 151m), 형제봉(兄弟峰, 193m)이 이렇게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동생과
오라버니가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을 해 어머니는 실망하여 집을 나와 버렸고 그 이후
과정은 앞 이야기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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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길이 지금의 고모령.
그래서 정상에 와서 집을 향해 뒤돌아 봤는데 그 이름이 뒤돌아 볼 고(顧),
어미모(母 )를 합쳐 고모라는 마을이름도 이곳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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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고모령의 내역”
광복 직후 경남 밀양이 고향인 가요 작곡가 박시춘이 작곡하고,
유호가 노랫말을 붙인 이 노래는 다소 혀짧은 목소리로 턱을 떨며 구성지게
곡을 소화한 ‘현인’의 목소리로 취입돼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노래로
지금도 노래방에서는 중장년층의 애창곡 가운데 하나이다. 이 노래의 무대는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파크호텔 남쪽길에서 팔현마을 로 넘어가는 고개인 고모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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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파크호텔의 초입에 서 있는 ‘비내리는 고모령’의 노래비를 찾았다.
키작은 조릿대와 소나무, 벚나무 등을 배경으로 한 채 도로 귀퉁이에 서있는
이 노래비는 지난 1991년 초대 수성구 의회의 개원을 기념하는 사 업으로 제막된
것이다. 이 노래의 무대가 이곳 고모령임을 고증하고, 향수 와 어머니를 그리는 절절한
사연의 이 노래가 길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기 원이 노래비의 뒷면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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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비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한켠에 는 고모령을 취재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전 한국일보 사진부 김문호 기자 의 불망비가
자리잡아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는 노래가사를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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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호텔과 만촌자전거경기장 사잇길을 지나면 동쪽으로 나즈막히 보이는 고개가
바로 고모령이다. 얼른 보기에는 고개라기 보다는 그냥 언덕길이라는게 옳을 듯 싶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이 곳이 고향을 떠나는 아들이 어머니의 손을 놓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던 그 고모령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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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호텔과 경부선 철길 사이로 좁다랗게 난 포장도로를 따라 고모령을 넘는다.
길을 넓힐 터가 부족하다 보니 인도는 아예 없다. 고갯길 옆에 는 고갯마루를
깎아 턱을 낮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이 보 다는 한결 고갯마루가
높았을 것이다. 그때는 이 고개에다 ‘영(嶺)’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그나마 덜
어색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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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마루에서 곧장 내려다 보이는 마을이 팔현마을. 철새보호지로 지정될 만큼
아직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마을에 속한다. 북쪽으로는 나지막한 산이 길게 뻗은
마을을 감싸고, 경부선 철도 너머 잡목이 무성한 산은 제 법 높아 어쩐지 노래 속의
어머니와 아들이 이별하던 그날처럼 함께 울어 줄 부엉새가 이 산 어디쯤에 아직은
둥지를 틀고 있음직하다. 그러나 부엉새 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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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을 만한 자리를 찾다보니 우리 일행도 어쩔 수 없이 철길을 오르게 된다.
연신 기차는 지나가고, 야트막한 고모령이 한 눈에 들어오 는 자리는 쉽사리 찾을 수 없다.
이래서 한 젊은 사진기자가 이 곳에서 희생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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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팔현마을의 한 농가를 찾아가자 10 여마리의 개가 한꺼번에 짖어댄다.
길손을 맞아준 아낙네는 극성스런 개들의 소란이 미안한 지 “ 이런 곳에서는 개를
키우지 않고는 불안하다”고 말한다. 이 곳에 사는 사 람들의 반응이 궁금해 “저 볼품
없는 고개가 무슨 ‘영’이냐”고 묻자 “지금이야 고개같지도 않지만 옛날엔 달랐다”
고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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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도 사람이 혼 자 자전거를 끌고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고,
고개턱도 지금보다는 훨씬 높 았단다. 한마디로 그땐 고개다웠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비내리는 고모령 ’이 이곳을 무대로 지어졌다고 친절히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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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현마을 일대는 모두 수십년째 그린 벨트로 묶인 지역.
그래서 대구의 변두리지역답지않게 낡은 집들이 유난히 많다.
멀리서 보면 움막 비슷한 집도 눈에 띈다. 노랫 속의 어머니와
아들이 살던 시절과 비교하더라도 크 게 바뀌지않은 마을분위기는
오로지 그린벨트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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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에 주 민들은 수십년동안 참담한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개발의 뒷전에서 소외된 채 변화없는 마을로 머물고
있는 것. 금호강 건너 우뚝한 아파트촌이 그래 서 더욱 대비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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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현마을에서 경부선 고모역은 자동차로는 지척의 거리.
노랫말 속에는 나오지않지만 당시 이 일대 주민들이 갖가지
사연으로 고향과 이별할 때 가장 많이 이용한 역일 것으로 짐작돼
고모역을 찾았다. 하루에 고작 통일 호 다섯대만 정차하는 고모역은
경부선의 역사 답지않게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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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이 용승객도 5 명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역앞 마을 역시 슬레이트를 덕지덕지 이은 낡은 주택들이어서 퇴락한
농촌마을의 전형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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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다시 노래비앞에서 노랫말을 천천히 읽어 본다. 고
향을 떠 나고, 부모와 오랫동안 헤어져야 하는 이별이 별스레 가슴 저미는
감정을 자아내지도 못하는 이 시대에 이 노랫말과 가락이 이처럼 가슴에 와닿는
것을 보면 기자 또한 이미 기성세대가 된 모양이라는 생각에 새삼 쓸쓸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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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넘는 고모령“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 올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 턱을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해 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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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산정도 담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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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산(현풍곽)씨 문중에서
지어놓은 팔각정이이용자가 적어
퇴색해 가는 모습이 안타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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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현판도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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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산정기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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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참나무(꿀밤나무)는 열매만 열만 몸살이 나도록
사람이라는 동물들이 돌로 마구 두들겨서
흉악한 흠집을 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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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들의 애창곡인 '비내리는 고모령'은 누구나 부르면 마음이 찡해지는 노래지요!
나도 한때는 18번으로 즐겨 불렀답니다.
그 사연을 찾아 탐방한 글과 사진! 감명깊게 감상했습니다.
살피니 좋은 이야기 꺼리가 나오네요!
예
군데 군데를
살펴보면 여러가지
이야기의 소재가 나오네요
수성구 범어동에 모명재하며 오골마을
동촌 해맞이 동산이며 우씨 집성촌도 이야기
거리가 된다던데요
감사합니다.
수없이 다녀도 예외로 안 가본곳이 많네요,
못 본 자료 올려주셔서 보고갑니다,,
그렇구려
남들은 중국 장가계니 온가계를 세번
네번 갔다왔다 자랑하고 동남아 여행을
했느니 유럽을 갔다 왔느니 자랑을 수도없이
하지만 진작 내 주위 가까운 곳에도 느낌이 많으곳이
너무 너무 많다는걸 알리고 싶기도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조국이 정말 운치있고 좋은 느낌을 주는곳이 수도 없이 있는걸
스스로가 찾아 알려야겠기에 나는 국내를 무척 좋아하고 국립대구
박물관대학에서며 향교에서 가는 곳이면 모두 살펴서 알리려 한다네
솔밭향기님의꾸준한 열정에 카페가 더욱발전합니다,겁고행복한날 되세요,
더운날씨 늘건강하시고
아재가 관심을 가져주니
더욱 힘이 솟구쳐 열심히 하고
싶구려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