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추억 / 김석수
부엌으로 들어가면 맨 먼저 아궁이가 눈에 띈다. 가마솥을 머리 위에 이고 바닥에 턱을 묻은 채 입을 벌리고 있다. 시뻘건 불을 삼키고 꼬리 쪽 굴뚝으로 연기를 뿜어 올리기도 한다. 할머니는 어린 내게 사내대장부는 ‘정재(부엌)’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하면서 안방 부엌 가까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다. 일꾼이 사랑채 부엌에서 쇠죽을 쑤면 기웃거렸다. 그는 불을 지피기 전에 먼저 지푸라기 같은 것을 태우고 나중에 나뭇가지를 얹고 불꽃이 일어 잘 타들어 가면 굵은 장작개비를 넣었다.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려면 산에 가서 나무를 잘라서 집으로 가져온다. 도끼로 토막을 낸 뒤 장작을 쌓는다. 불은 나무에 깃든 에너지가 발산한 것이다. 잘 마른 장작일수록 불이 잘 붙는다. 불길이 거세질수록 불꽃은 더 강렬하다. 아궁이 앞에서 고래 속으로 활활 타들어 가는 이글거리는 불꽃을 보면 두려우면서 호기심이 일어난다. 가끔 얼굴에 확 끼치는 뜨거운 열기는 야릇한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불꽃은 나무의 생명이 사람에게 옮겨 가면서 보여 주는 ‘상징’ 같다. 불꽃이 구들장을 달구고 방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눈부신 불길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아궁이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같다.
장작이 타고 나면 잿불에 감자나 고구마를 묻어 두었다가 꺼내 먹는 맛을 잊을 수 없다. 잘 익은 고구마는 뜨거워서 손을 번갈아 가면서 껍질을 벗겨야 한다. 입으로 호호 불어 식히면서 조금씩 베어 물고 혀로 굴리면서 먹는다. 달착지근한 그 맛을 생각만 해도 입에서 군침이 돈다. 철따라 밤이나 땅콩, 옥수수도 구워 먹었다. 밤은 껍질을 조금 까서 묻어야 폭발을 막을 수 있다. 옥수수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약한 불에 얹어야 꺼멓게 타지 않는다.
아궁이 잿불에 계란밥을 해 먹던 기억이 새롭다. 달걀 껍데기 한쪽에 구멍을 뚫고 내용물은 쏟아낸다. 실파를 썰어 넣고 소금 간을 해서 불 위에 올려 두면 맛있는 계란찜이 된다. 쌀을 한 숟가락 넣고 물을 붓는다. 굵은 소금 한두 알로 간을 한 뒤 숯불에 올리면 물이 보글보글 끓으면서 쌀이 부풀어 오른다. 껍질 밖으로 밥알이 솟아오르면 꺼내서 먹는다. 껍질을 벗기면서 먹는 고소한 맛은 상하이에서 맛보았던 ‘샤오룽바오’ 맛과 같았다.
한여름이면 어머니는 밀가루 반죽을 밀어서 팥죽을 자주 쑨다. 방석처럼 넓게 민 반죽을 접어서 양쪽 끝자락을 잘라 낸다. 펴면 어른 손바닥만큼이나 넓다. 그 자투리는 내 차지다. 아궁이 잿불을 앞으로 조금 꺼낸다. 그 위에 그것을 얹는다. 조금 기다리면 부풀어 오르다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다. 맛있는 밀가루 빵이 된다. 중국 시안의 ‘회민 거리’에서 파는 화덕에 구운 밀 빵과 비슷하다.
아궁이에 짚을 넣고 불을 지피면 신경을 더 써야 한다. 너무 많이 넣으면 연기만 날 뿐 타지 않는다. 그렇다고 조금 넣으면 불길이 훅하고 타오르다 탁 꺼진다. 짚을 태운 재는 잿물을 받아서 빨래를 담그면 때가 잘 빠진다. 할머니는 장독대 앞 수돗가에 옹기 자배기를 두고 그 위에 나무 삼발이를 얹는다. 바닥에 짚을 깐 시루를 얹고 재를 가득 채운다. 시루에 물을 붓고 아래로 떨어지는 노르스름한 물을 받아서 두루마기 같은 큰 빨래를 했다.
요즘 아침에 수영하고 오면 부엌에서 전기 레인지 위에 그릇을 올려놓고 버튼을 눌러 요리한다. 불을 지피려고 장작을 팰 일이 없다. 잿불에 음식을 조리할 일도 없다. 세상은 갈수록 편리하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내 어릴 적 아궁이 추억이 그립다. 한편으론, 오늘의 경험이 훗날 어떤 추억이 될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