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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 국호(國號)의 뜻🤩
1.'대한민국(大韓民國)'
이라는 나라 이름은 무슨 뜻일까?
어디서 유래가 되었을까?
더 나아가, 어떻게
"대한민국"이 국호{國號)가
될 수 있었을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우리나라
역사 교육에서도,
대한민국
국호의 유래에 대해서는
비교적 비중 있고,
깊게 다루지 않기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내용은
어쩌면 우리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우리나라 이름의 뜻에 대해알아보자
2 대한민국 뜻과 유래.
'대한민국'의 유래는
고종시대에 만들어진 국가 이름
'대한제국'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당시,
고종은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새로운 황제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대한제국 이전
우리나라 국호는
조선(朝鮮)이었다.
조선이라는 국호에는
사대주의(事大主義)가 포함되어 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명나라에게 국가 이름을
선택해달라고 했기때문이다.
이때 명나라는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을 선택했고,
이게 결국 우리나라의
이름이 되었다.
조선이라는 이름에는
사대주의(事大主義)가
포함되어 있었기에,
고종은 국가의 이름을
바꾸고자 했다.
'대한(大韓)'에서의
'대(大)'는 대청제국,
대일본제국, 대영제국 등,
제국 앞에 관용적으로
붙이던 접사였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대'라는 접사를
이름 앞에 넣게 되었다.
'민국(民國)'의 뜻은
민주 정치를 시행하는 나라,
즉 국민(國民)이
국가(國家)의 주인인
국가라는 뜻이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한(韓)'에 대해 알아보자.
사실 실질적인 국가 이름은 '한(韓)'이다.
'대(大)'는 접사이고,
'민국(民國)'은
민주주의(民主主義 )
국가라는 뜻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호(國號)는 어떻게
'한(韓)'이 될 수 있었을까?
실질적인 국가의 이름은
한(韓)이다.
1897년 당시 만연했던
상징적 믿음은,
"제국의 이름은 한 글자여야 한다"였다.
이는 중국이
국호를 붙이는 방식에서
비롯되었던 믿음이다.
중국은 대표적인 황제국이었고,
중국의 국호는 지금까지
계속 한 글자였다.
(명나라, 송나라,
원나라, 청나라 등).
반면 중국 주변
국가 이름은 모두 두 글자였다
(조선, 일본, 돌궐, 흉노 등).
따라서,
당시 조선 사람들은
제국의 이름은 한 글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한국의 한(韓)과
조선의 조(朝)의
생김새가 비슷했다.
따라서 '한(韓)'이라는
국호(國號)가 탄생하게 되었다.
조선 사람들은 제국의 이름이
한 글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韓)'의 유래는
'삼한(三韓)'에서부터 온다.
조선(朝鮮)은
고조선(古朝鮮)의
정통을 이어 조선이라는
국호를 가지게 되었다.
이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準王)은,
연나라에서 망명해 온
위만이라는 신하에게
왕위를 빼앗기게 된다.
준왕(準王)은 이후
한반도 남쪽으로 도망쳐오게 된다.
그곳에 그는 한(韓) 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이는 마한(馬韓),
변한(弁韓),
진한(辰韓)이라는
나라로 불렸고,
합쳐서 '삼한(三韓)'이라는
나라로 불렸다.
즉, 고조선(古朝鮮)
본래의 전통을 이은 국가가
바로 삼한(三韓)이다.
그리고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이 삼한(三韓)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탄생했다.
본래 고조선의
전통을 이은 국가가 삼한(三韓)이고,
대한민국은 이 삼한(三韓)을
계승(繼承)했다.
당시 삼한은
비록 세계의 변방에
위치해 있던 국가였지만,
문화적으로는
당대 최고 수준이었던
중국과 동등한 수준이었다.
이런 삼한을
대한민국이 계승했다.
즉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를 만드는 나라,
무력이 아닌
교화로 다스리는 나라가
되기 위한 목표로
'한(韓)'이라는 국호를
가져오게 되었다.
외국인이
대한민국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자.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국가를 지향하는 나라"라고.
대한민국(大한民國)은
세계 (世界) 최고最高)
수준(水準)의
문화국가(文化國家)를
지향(指向)하는 나라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 있었던 일화입니다🤠
«애국가 처음 불려진 때»
비둘기가 날고 성화가 타오른 다음, 애국가가 장엄하게 울려퍼졌을 때 이를 보고있던 서양인 할머니 한 분이 손수건으로 눈에서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연세는 당시 70세, 국적은 스페인,
이름은 롤리타 안.
1936년 8월 1일, 나치 치하의 베를린올림픽 개막식이 끝나고 가슴에 일장기를 단 한국선수 김용식, 이규환, 장이진, 손기정, 남승룡 등이 모여 앉아 잠시 잡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자리에 재독동포 한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억센 평안도 사투리로 자신이 지었다는 "조선응원가"를 불러주겠다면서 구깃구깃한 악보 하나를 꺼내 들고 손짓, 발짓, 고갯짓으로 장단을 맞추어가며 그 응원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조선응원가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런 일이 있은 지 보름 후에,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제1착으로 경기장 안에 뛰어들자 스탠드의 한쪽에서 이 노래가 울려퍼졌습니다.
서너 명의 재독동포 앞에서 미치광이처럼 두 손을 저으며 지휘하던 이는 바로 보름 전에 조선응원가를 부르던 바로 그 젊은이였습니다. 그 젊은이가 바로 작곡가 "안익태"입니다.
그는 베를린올림픽 두 달 전에 지금 우리가 부르는 "조선 애국가"를 작곡하여 곡을 완성하였고, 올림픽에 조선선수들이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응원가로 임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 애국가를 짓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미국 커티스 음악 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었을 때, 샌프란시스코의 한국인 교회를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교회에서 개작하여 부른 애국가는 이별할 때 부르는 슬프디 슬픈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랭 사인"의 멜로디였으며 그 곡에 가사를 붙여 당시 애국가로 불렀습니다.
그래서 슬픔을 이겨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애국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 안익태는 전 세계 40여 개의 국가를 수집하여 비교 검토하였고 5년 만에 완성한 곡이 베를린올림픽 개막식에서 처음 불렀던 바로 그 애국가입니다.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정식 국가로 채택되었을 때 안익태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애국가는 제가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곡입니다. 본인은 다만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을 곡으로 옮겨적은 것 뿐입니다."
77년 전 나라 없이 일본국 명의로 출전했던 베를린올림픽 개막식에서 처음 불렀던 그 노래를 소천하여 이 세상에 없는 안익태씨의 미망인 롤리타 안 여사가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울려퍼진 애국가를 어찌 눈물 없이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당시 역대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에서 참가하여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당당하게 연주된 애국가는 우리 민족 모두가 울먹였어야 했던 베를린올림픽 때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천손민족으로서 근본이 다른 한민족이 새롭게 거듭나서 지구촌 리더로서의 존재감을 만천하에 알리는 자랑스런 애국가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