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홍세화 지음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2024년 04월 18일 오전 11시 55분
홍세화선생님이 지병으로 떠나셨다. 향년 77세. 한겨레 만평에 그는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라고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그 주변인은 ‘진보가 가난해야 한다는 것도 편견’, ‘코인, 주식도 해봐야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 ‘아파트 한 채 애한테 주려는데..절세 방법 좀..’, ‘김교수 논문에 우리 애 좀 끼워주라. 내년에 고3이라’. 이런 풍선말이 풍선처럼 떠 있고. 그가 돌아가시기 4일 전에 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자유롭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다. 진정한 자유로움의 댓가는 긴장이었다. 말할 권리를 잃어버린 편에 서서 옹호하는 것은 긴장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 그 긴장이 육체의 병을 갖게 했는지 모르고. 젊었을 때의 기조는 분노였다면 나이들어서는 쓸씀함이었다.’했다. 그는 우리에게 당부도 잊지 않았다. 우리가 민주시민으로 갖춰야할 세가지 성격으로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이 있다. 주체성은 ‘자기가 이 사회의 주체. 사회를 움직여 가는 본체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이에 연유하여 비판성과 연대성은 따라 올 터. 이는 내가 생각하는 ‘개인적으로 성찰과 분투, 그리고 관계적으로 연대와 소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력
선생님은 66년 대학에 들어가 11년 6개월만에 졸업했다. 개인적인 고뇌와 방황, 대학에서의 활동등이 책에 소상히 적혀있다. 졸업 후 그는 무역회사에 입사하고 79년 3월에 파리지사로 발령받았다. 그리고 그 해 10월에 남민전 사건이 터지면서 망명자가 되었다. 그가 왜 남민전에 가입하고 활동했는지도 책에 소상히 나와 있다. 이후 관광가이드와 택시운전사가되었고, 그 과정의 삶과 프랑스 사회가 갖고 있는 ‘똘레랑스’의 가치와 문화를 담은 이 책을 1995년에 창비사에서 출간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당시 우리 사회에 똘레랑스 담론을 퍼뜨리는데 한 몫을 하게 되었다. 그는 2002년에 영구귀국을 했다. 2011년까지 한겨레 기획의원을 지냈고, 진보신당의 대표가 되었다. 그러나 이 당은 총선에서 득표율 2%에도 미치지 못해 법적으로 정당 말소가 되었다.
이후 그는 학습공동체 ‘가장자리’ 활동과, ‘소박한 자유인’의 대표, 장발장은행 은행장(2015.02.25. 출범)을 역임했다. 근로시민모임 ’마중‘ 활동에 참여하면서 외국인 보호소의 장기구금 문제를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오염된 자유‘라 했다. 그런 자유에 휩쓸리면 시민이 고객화되고, 고객에게 중요한 것은 구매력이 된다. 그는 ’우리가 민주시민인가, 고객인가?‘를 묻는다. 나는 여기서 진정한 자유, 그리고 진정한 자유인의 삶이 어떠해야하는지를 반추하게 되었다.
자신을 어떤 주의자로 생각하시냐는 질문에 “정치 사회적 영혼을 담은 아나키스트. 그것에 가장 가깝지 않았을까 생각해요”라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기고 싶은 말에는 “나의 과거 모습을 오늘 보여주고 있는 당신들. 부디 꿋꿋하게 살아내시길”
책을 다시 읽으며
찾으려 했다. 이 분 삶의 모멘텀을. 왜 그렇게 살아야 했을까? 왜 당신의 눈빛에 쓸쓸함이, 입가의 미소에 외로움이 묻어 있는지. 그리고 언어에 타협이 없고 행동에 ’척탄병의 냄새‘가 나는지. 사실 우리 나름 각 자는 열심히 산다. 무연고의 외딴 곳에 뚝 떨어졌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죽으라고 살겠지. 이 분도 졸지에 망명자가 되어 관광가이드 하며, 택시 운전사가 되었다. 그 역경을 극복하는 것에 감동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다.
문제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왜 그러한 삶을 선택했을 수 밖에 없었나?이다. 그 것은 아마 서울대공대를 합격하고 어릴 적 살았던 외가에 방문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한국전쟁을 피해 만 두 살 반인 세화와 돌도 안 된 동생 민화는 황골로 알려진 외가의 작은아버지에게 맡겨진다. 그러나 그 곳에서 인민학살이 일어난다. 인민군 점령시 당숙이 인민위원장이였기에 이와 친한 작은아버지도 죽음의 문턱에 서 있게 되고, 이 와중에 잘 먹지도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다 동생 민화가 죽지 않을 병인데도 죽게 되었다. 여기서 KS(경기고-서울대)마크를 단 청년이 비로소 분단의 현실, 가족의 아픔을 목격하게 되었지 않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가치전도, 그리고 방황. 3년 후 세화는 공대가 아닌 문리대 외교학과로 다시 입학하게 된다. 그 이후의 삶은 그 전과 분명 달라지게 되었고. 여기서 지금의 인생으로 운전되었을 것이다.
책에는 할아버지가 들려준 ’개똥 세 개‘이야기가 나온다. 머리와 가슴이 싸울 때 어디를 따를 것인가? 가슴에서 올라오는 정언명령을 따를 것인가? 머리에서 설득하는 현실의 이익을 따를 것인가? 결국 사람은 결정한다. 그 것에 책임을 지는 것이고. 세화는 가슴으로 살아냈고 인생을 마감했다 싶다.
똘레랑스
선생을 추모하며 이 책을 읽었다. 문장은 가독성과 몰입도가 높다. 다큐지만 소설같은 이야기. 부담 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읽게 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 사람들.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곡절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 죽 읽어 나가게 된다. 이 책은 독자의 관심과 취향대로 각 자 다른 시선과 각도로 읽어낼 수 있어 좋다. 그러니 베스트셀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똘레랑스다. 저자는 서문에서 ‘차이를 차별. 억압. 배제의 근거로 삼지 말라’라는 것이 똘레랑스의 정신이라 했다. 관용과 포용의 정신. 프랑스가 망명자를 받아들이고 그들을 지원하는 것에 그 정신이 녹아 있다. 우리 사회와 비교하면서, 나의 가치관과 삶을 반추하면서 똘레랑스를 머릿 속에 떠올리면서 가슴으로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싶다.
책 익는 마을 원 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