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리 산책길
내가 교류의 폭이 좁게 살지만 세상과 소통하는 나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다. 그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생활 속 글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일기처럼 남기는 글을 메일로 넘기고 문학 동인 카페에도 올리고 유튜브에 오디오북 형식으로도 알린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야외 현장에서 자연과 교감한 내용을 폰 카메라로 담은 사진을 지기들에게 카카오톡으로 전송하고 있다.
유월 둘째 주말 여산농장으로 나가 고구마 순을 심으면서 웅덩이에 물을 퍼 주다가 휴대폰을 빠트렸다. 방수가 되지 않아 휴대폰 장애가 와 월요일이 되어 서비스센터로 나가 해결책을 찾을 생각이다. 휴대폰이 불통이니 폰 카메라도 작동되지 않아 탐방기를 남기면서 현장에서 찍는 사진을 첨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아침에는 어제 고구마 순 심은 얘기를 글로 써서 넘겼다.
유월 둘째 일요일은 동선을 멀게 잡아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집에서부터 걷기로 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에서 퇴촌삼거리로 향하니 교회로 예배를 보러 가는 신도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나는 그들과 달리 반송공원 북사면 체육 시설을 지나 창원천 천변 산책로로 내려섰다. 당국에서는 초여름 천변 무성했을 풀을 깔끔하게 잘라 놓아 정비가 잘 된 느낌이 들었다.
물이 흐르는 냇바닥에 자라는 습지식물은 예초기가 지나가지 않아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창원천이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세월이 제법 지나 냇바닥에는 여러 종류 습지식물로 안정된 생태계를 유지했다. 창원천 상류에서부터 냇바닥에는 갈대와 물억새가 시퍼런 잎줄기로 왕성한 세력으로 자랐다. 그와 같은 습지식물로 달뿌리풀도 섞여 있고 귀화식물인 노랑꽃창포도 한 몫 거들었다.
천변에는 나처럼 산책을 나온 이들이 간간이 지나갔다. 옅은 구름이 낀 하늘에 미세먼지가 없어 대기는 깨끗했다. 수변 산책로 벚나무와 창이대로 은행나무 가로수는 녹음을 드리워 싱그러워 보였다. 가까운 냇바닥 가장자리에는 초본 고마리가 잎줄기를 불려가고 목본으로 갯버들이 자랐다. 냇바닥 수면에는 노랑어리연 이름에 걸맞게 노란 꽃잎을 앙증맞게 펼쳐 눈길을 끌게 했다.
냇바닥에는 얼마간 간격을 두고 왜가리와 중대백로를 한 마리씩 만났는데 둘은 먹이 사냥 방식이 달랐다. 왜가리는 큰 덩치에 자세를 낮추고 목을 길게 빼고 물속의 먹잇감을 뚫어지게 겨냥했다. 중대백로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면서 산책로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놓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녀석들이 긴 발을 딛고 선 물속에는 송사리와 새끼 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쳐 다였다.
반지동 대동아파트단지를 지나다 고구마꽃을 닮은 분홍색 메꽃 몇 송이를 만났다. 당국에서는 명곡교차로가 가까운 지점부터 산책로 길섶에 코스모스를 심어 길렀다. 그 코스모스는 개량종이라 낮은 키로 자라 초여름부터 꽃을 피워 계절감을 잊은 듯해 왠지 어색해 보였다. 반송 소하천이 창원천으로 흘러드는 창원천3호교 부근 냇바닥에는 어른 팔뚝보다 큰 잉어들이 헤엄쳐 다녔다.
홈플러스 맞은편 용원지하차도에 이르자 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산책객들은 모두 되돌아갔다. 나는 창원공단 배후 도로를 따라 창원천 하류로 더 내려가니 휴일을 맞아 가동을 멈춘 현대로탬 공장 담장 너머는 완성된 열차 객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갈대숲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봉암 갯벌은 음력 열나흘이라 사리를 맞은 썰물 때라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물이 빠져 있었다.
창원천보다 강폭이 넓고 수량이 많은 남천 하류는 썰물로 모래톱이 드러났다. 남천 천변 산책로를 따라 삼동교에 이르러 삼동교차로로 향하니 보도에는 까맣게 익어 떨어진 버찌들이 신발 바닥에 밟히기도 했다. 교육단지와 가까운 올림픽공원 숲에는 빨간 티를 입은 중년 사내가 색소폰을 불어 멋져 보였다. 일요일 아침나절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나선 발걸음은 사십 리가 족히 되었다. 22.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