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돌아본 ‘그때 그곳’] 대전역 플랫폼과 가락국수
1980년대 대전역 가락국수 판매소에서 열차 승객들이 가락국수를 먹고 있다. 재빠르게 국수를 먹는 모습 속에 늘 바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이 담겼다. 코레일 제공
윤광준 사진작가
축~축 처지는 가락, 구슬픈 가사의 노래 ‘대전블루스’를 오랜만에 들었다. 맨 정신에 이 곡을 듣는 경우란 없다. 술 한잔 취기로 얼큰해진 차 속이거나 비가 내려 우중충해진 창문 바깥을 볼 때다. 노래가 불릴 당시의 기억은 없다. 원곡보다 80년대 초 조용필이 리바이벌한 노래가 더 친숙하다. 지지리 궁상의 쥐어짜는 사랑노래는 딱 질색이다. 하지만 국민 오빠의 절절한 창법과 짙은 호소력으로 부르는 ‘대전블루스’는 예외다.
나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대전블루스’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불린다. 세상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청승맞은 빌리 할러데이의 ‘l’m a fool to want you’가 지닌 생명력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꽃보다 청춘들마저 노래방에서 ‘꼰대’들의 십팔번 격인 ‘대전블루스’를 꺼이꺼이 불러대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세대를 넘은 이별의 아픔을 담은 노랫말의 공감인지 대전역의 상징성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 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기적소리 슬피 우는 눈물의 플랫폼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영시 오십 분
영원히 변치 말자 맹세했건만
눈물로 헤어지는 쓰라린 심정
아~ 보슬비에 젖어가는 목포행 완행열차
(대전블루스, 1959년 최치수 작사, 김부해 작곡, 안정해 노래 )
‘대전발 영시 오십 분 목포행 완행열차’는 열차편성 시간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그 시간에 떠나야 한다. 당시를 살았던 모두의 기억에 영시 오십 분은 불변의 시간으로 굳었다. 대개 지명과 시간이 들어간 음악과 영화가 히트하면 후광효과는 대단해진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아야 할 것 같고, 시애틀에 가면 잠들면 안 될 것 같다. ‘나인 하프 위크’는 또 어떤가.
대전을 떠올리면 우선 가락국수가 생각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먹거리는 필요 없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먹었던 가락우동의 맛과 냄새, 조바심 같은 것들이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복원되기 때문이다. 40대 이상의 연령층 대부분이 ‘대전발 영시 오십 분 목포행 완행열차’와 가락국수의 추억을 갖고 있다.
그들이 모두 대전역에서 사랑하고 헤어졌을 리 없다. 대전에 특별한 연고가 있지도 않다. ‘대전블루스’가 흘러나오는 순간이어야만 가락국수의 추억은 강렬해진다. 대전역과 가락국수의 자동연상은 종만 치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과 같은 조건반사로 자연스럽다. 동일한 기억으로 묶인 동년배들의 유대의식은 세월이 흐를수록 단단해진다.
교통의 요지인 대전역은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리는 중요역이다. 열차 편성을 바꾸기 위해 혹은 중간 점검을 위해 정차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새마을호 같은 특급열차를 빼면 몇 분에서 몇 십분 동안 모든 열차가 머물렀던 대전역이다.
가락국수는 몇 분의 짧은 시간 동안 기차에서 내려 플랫폼 몇 곳에 있던 간이 건물에서 쫓기듯 허겁지겁 먹는다. 별 다른 먹을거리도, 돈도 없었던 보통사람의 가락국수 한 그릇은 궁핍한 시절의 아름다움으로 평생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여유가 넘칠수록 빈약해지고 모자랄수록 강렬해지는 선택의 기억은 모두의 습성 아니던가.
상술은 추억보다 언제나 발 빠르다. 지금도 대전역 플랫폼 내엔 깔끔한 인테리어의 우동집이 여전히 영업을 한다. 역 주변에는 ‘대전역가락국수’란 상호를 내건 점포들도 많다. 원조를 자처하건 짝퉁이건 모두 사람들의 추억 속에 있는 대전역 가락국수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 천안에 호두과자가 있다면 대전엔 가락국수다.
대전역 가락국수가 아무리 유명해도 이젠 새로 생긴 국수집엔 들어가고 싶지 않다. 가락국수의 기억은 춥고 배고프며 주머니가 얇아야만 이어지는 회로인 탓이다. 돈은 없어도 지갑은 온갖 신용카드로 불룩하다. 아저씨가 된 지금 채신머리없이 쫓기듯 뛰며 허겁지겁 먹을 순 없다.
완행열차를 놓쳐도 느긋하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른 열차가 온다. 수틀리면 더 편한 고속버스로 갈아타면 그만이다. 더군다나 부산이나 목포에 가기 위해 대전역에서 내려야 할 일도 없다. 도어 투 도어의 여행이 현실로 바뀐 지금 대전역이란 스치는 통과역일 뿐이다.
이젠 먹지 않아도 별로 배고프지 않다. 가락국수가 아니더라도 더 맛있는 먹을거리가 지천에 널려 있다. 탄수화물 공포를 아는 이상 밀가루 덩어리인 가락국수를 일부러 찾아 먹을 일도 없다. 기차 안에선 어여쁜 아가씨가 뜨거운 원두커피를 내려 판다. 깔끔한 제복을 입은 남자 판매원의 카트엔 온갖 먹거리가 넘친다. 앉아서 손만 내밀면 의자 앞 테이블은 바로 식탁으로 바뀐다.
산전수전 다 겪어보니 ‘대전블루스’를 부른 예전 가수들은 참 좋았겠다. 히트 곡 하나면 몇 십년을 우려먹고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젠 열심히 써 대고 사진 찍어 봐도 우려먹긴커녕 몇 개월도 버티지 못한다. 대부분의 작가 나부랭이의 작업 시효는 이제 시간 단위로 이어나가야 할 처지다. 그 대표격이 바로 나다. 대전역 가락국수의 추억을 우려먹어야 하는 신세는 처량하기만 하다.
아니다. 50~60대 세대들은 분야별 경쟁이 치열하지 않던 시절의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렸다. 힘들었지만 세상을 수월하게 살았을 개연성이 높다. 과거가 좋았다고 떠드는 모습이란 지독한 오만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옛날보단 지금이 훨씬 더 낫다. 추억의 실체란 사실 부풀려진 감상이기 십상이다.
대전역 플랫폼 안에서 팔던 가락국수의 맛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멸치국물에 말아낸 가락국수의 맛이 뭐 그리 대단할까. 세상의 맛있는 음식은 얼추 다 맛보았다. 두루 먹어보니 비로소 객관적 판정의 잣대가 생겼다. 추억 속의 음식들 대부분은 설렁설렁, 얼렁뚱땅 만들어낸 빨리빨리의 맛이었다.
거칠고 투박하며 무성의의 극치인 음식이 대전역 가락국수의 본모습일지 모른다. 면발이 뚝뚝 끊어지는 찰기 없는 가락국수는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담겼다. 주름진 굴곡엔 기름때로 새카맸다. 떨어져 나간 냄비의 귀는 짝짝이이기 십상이었다. 국물이 줄줄 흐르는 냄비를 폭 좁은 스테인리스 난간에 올려놓고 서서 먹는다. 옆 사람과 어깨를 부딪히는 일은 보통이다. 기차가 그대로 있는지 수시로 돌아보아야 한다. 후루룩 소리 요란하게 먹어대는 가락국수는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분간되지 않았다.
유부조각 몇 개와 대충 썬 파가 둥둥 떠다니는 고명이 전부였다. 포장도 안 한 대나무 젓가락이 다발로 꽂힌 젓가락 통은 터져 나올 듯 통통했다. 가락국수는 얼큰해야 직성이 풀린다. 시뻘건 고춧가루는 아예 뚜껑 없는 사각 통에 담겨 있다. 세련된 통에 담긴 고춧가루를 언제 우아하게 뿌려 먹을까. 멸치국물이 시뻘겋게 될 때까지 듬뿍 퍼내 뿌려야 흐뭇하다. 가락국수는 단무지를 곁들여야 제 맛이다. 일일이 집어먹을 시간이 없으니 통째로 국물에 담가 먹은들 누가 뭐랄까.
가락국수를 파는 간이 건물 안엔 면적의 반도 더 차지한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멸치다시를 우리는 가마솥은 연신 흰 김을 뿜어내며 끓었다. 추운 겨울 서리서리 피어나는 뿌연 김은 이내 유리창에 들러붙어 기묘한 형상의 성에로 선명했다. 가락국수집 창문은 한겨울에도 활짝 열어 놓았다.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허기진 승객을 맞아야 하는 탓이다.
한데 대전역 가락국수의 맛과 그림은 세월이 흐를수록 왜 이리 선명할까? 되돌리지 못하는 시간의 미화는 대치의 음식을 완강히 거부한다.
지금도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어서면 반드시 우동을 먹게 된다. 별 다른 이유란 없다. 몸의 기억을 그대로 옮기는 조건반사일 뿐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세대들의 고유한 습성임을 이제 알겠다.
급히 먹다 냄비 엎고 국물까지
다 마시다.. 밤열차 놓치기도
지난 5월 30일 ‘대전역 맞이방’에 새롭게 문을 연 가락국수 판매점. 이곳에서는 현대인의 입맛에 맞춘 신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코레일 제공
■ ‘가락국수’에 얽힌 사연들
경부선이나 호남선 밤열차를 탔던 사람들은 대전역의 명물이었던 가락국수 맛을 잊지 못한다. 고속철도 시대가 열리기 전에는 주로 야간 열차를 타야 했다. 오후 9시 30분 서울역을 출발해 밤 12시에 대전역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먹고, 새벽에 지리산에서 아침을 맞는 여행객도 적지 않았다. 한밤에 중간역인 대전역에서 잠시 내려 먹는 가락국수 맛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3분 정도 쉬는 사이 잠깐 내려 후딱 먹어치우는 기분은 다른 곳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쾌감을 줬다. 미리 삶아 놓아 퉁퉁 불었던 굵은 면발이 다른 국수집보다 더 나을 리는 없지만 기차가 떠나는지 곁눈질하며 뚝딱 먹는다는 특별한 설렘과 스릴이 있었다. 엉거주춤 선 채로 급하게 국수를 먹다 냄비를 엎지른 승객도 있고, 국물까지 다 마시다 밤열차를 놓친 사람도 있다.
1985년의 가락국수 가격은 400원. 기차가 멈추기 무섭게 우르르 승강구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 앞에 한 그릇씩 정확히 말아놓는 솜씨는 마치 서부극의 건맨들이 총을 뽑는 것처럼 신속했다. 단골도 국수를 마는 사람도 선수였다. 경험이 없는 승객은 기차를 놓칠까봐 무서워 승강장에 내려 국수를 먹지 못했다.
가락국수는 소설의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박범신의 소설 ‘불의 나라’를 보면 주인공 찬규가 가락국수를 먹다가 지갑이 든 가방을 바바리 입은 사내에게 도둑질당한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도 대전역과 연관이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전 고향인 정읍과 서울의 중간에 위치했던 대전역에서 가락국수를 먹었던 기억과 밤열차 속 엄마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
밤열차 기적소리와 함께 면면이 흘러온 대전역 가락국수는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일제 강점기에 서울(경성)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대전역에서 열차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잠시 정차했다. 그 사이 사람들은 승강장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채웠다.
배우 김갑수 씨는 2011년 6월 3일 낮 12시 40분에 부산행 KTX를 탔다. 점심을 거른 김 씨는 이렇게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KTX를 타고 부산 가요. 갑자기 가락국수 생각이 간절하네요. 대전역 도착시간이 13시 25분이래요. 근데 2분밖에 안 선대요. 혹시 국수 사 주실 분 안 계세요?” KTX가 대전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어떤 사람이 가락국수 대신 간식거리를 잔뜩 전달해줬다는 것.
10시간 넘는 밤 기차여행에서 대전역 승강장의 간이식당에서 먹었던 가락국수는 꿀맛이었다.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가락국수가 사라진 것을 아쉬워했다. 대전역 특화사업을 추진해 온 코레일은 지난 5월 30일부터 대전역 맞이방에서 가락국수를 다시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메뉴는 역전 가락국수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정거장 가락국수’, 두부 두루치기와 국수를 조합해 볶음면으로 탄생한 ‘두루국수’, 인삼과 닭으로 육수를 낸 웰빙 건강국수 ‘쌈닭국수’ 등이다.
쫄깃한 면발을 좋아하는 현대인 입맛에 맞게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삶아낸다. 매장 내부는 원목 테이블과 함께 과거 완행열차 시절의 흑백 사진을 배치했다. 국수를 삶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주방도 오픈형으로 꾸몄다.
l’m a fool to want you - Billy Holiday
첫댓글 다 먹을때 까지 기다려 줬어요.경험담...ㅋ
참 맛나게 먹던 기억에 절로 입맛다십니다
멸치국물 절대 안먹는데 ㅎ
우동국물은 예외죠..
가락국수 하면 대전발 0시 오십분
노래가 흥얼거려지기도.....
지금은 우동이 되었나봐요
가락국수 이름이 없어진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