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벗어나서
나와 같은 아파트단지 사는 지기는 내년 이월이 정년이라 올해도 주중이면 옥포 원룸에서 지내다가 금요일 오후 창원으로 돌아온다. 유월 둘째 월요일은 지난 이월 퇴직까지 주말이면 함께 다녔던 카풀 지기와 거가대교를 건너갈 생각이었다. 나는 거제 국사봉으로 올라 곰취를 채집해 올 예정이었는데 차질이 생겼다. 주말에 휴대폰을 물에 빠트려 서비스센터로 가는 일이 먼저였다.
국사봉 등정은 후일로 미루고 이른 아침 집에서부터 걸어 사파동 여산농장으로 향했다. 가전제품 서비스센터 업무가 개시되기 전에 텃밭에서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어 틈을 내서 나갔다. 도청 광장을 지나 검찰청과 법원을 거쳐 창원축구센터 체육관 곁 텃밭으로 올라갔다. 엊그제 물을 퍼 날라 애써 심어둔 고구마 순은 약간 시든 모습이라도 뿌리를 순조로이 내려 살지 싶었다.
내가 텃밭에 올라가 할 일은 집에서 마련해 간 진딧물 방제약을 뿌리는 일이다. 싹이 터 자라는 쥐눈이콩에 진딧물이 꾀어 그냥 둘 수 없었다. 열흘 전 한 차례 약을 뿌려주었는데 그새 다시 진딧물이 올라붙어 있었다. 진딧물 약이 시중에 파는 살충제가 아니고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친환경 약제라 완전 박멸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식초와 소주에 세제를 물에 섞어 뿌려주었더랬다.
이번에는 마요네즈를 세제와 물에 섞어 준비해 간 약제를 진딧물이 붙은 쥐눈이콩에 뿌렸다. 콩밭 이랑에 사이짓기로 심어둔 열무는 싹이 터 떡잎을 펼쳐 자랐다. 쥐눈이콩 잎줄기가 그늘을 드리워주고 장마가 시작되면 열무는 보드랍게 자랄 기대감이 있다. 한 달 남짓 지나면 식탁에 물김치로 오를 찬거리가 되지 싶다. 열무를 뽑으면 주변의 지기들과 나눌 거라는 설레임이 앞섰다.
진딧물 약을 뿌리고도 텃밭 일이 남아 있었다. 고추와 토마토 곁에 세워둔 지주를 끈으로 묶는 일이다. 한 포기 한 포기 지주와 묶으면서 곁순을 따주었다. 오이를 비롯한 모든 열매채소는 둥치에 가까운 곁순을 따야 차세대 마디에서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지주에다 끈을 묶어준 뒤 참깨 이랑의 잡초를 뽑았다. 두 번이나 씨앗을 심었는데도 발아율이 저조해서 깨 농사는 시원찮다.
이른 아침 텃밭에서 두어 시간 보내다가 시내 중심가 가전제품 서비스센터로 나갔더니 업무가 개시되어 방문객이 많았다. 나는 창구 안내 직원의 도움으로 고장 휴대폰을 수리하는 기사 앞으로 가서 전후 사정을 얘기했더니 이십여 분이면 수리가 된다고 해 마음이 놓였다. 예상 시간이 되자 접수대를 잠시 떠났던 기사가 나를 불러 수리비를 카드로 결제하니 경비가 들어도 홀가분했다.
침수 휴대폰을 수리한 뒤 인근 상가에서 김밥을 마련해 불모산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종점에 내려 저수지를 지나 불모산 숲속 나들이 길로 올랐다. 인적은 드물고 녹음이 짙어가는 숲속으로 드니, 여기가 내가 머물러야 할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암산 약수터에서 성주사를 거쳐 안민고개로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도중에 이정표가 세워진 쉼터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갈림길 쉼터에서 일어나 성주사 바깥 주차장이 아닌 불모산 정상으로 가는 길로 들었더니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덩치 큰 짐승 한 마리가 사라졌다. 아마도 숲속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멧돼지지 싶었다. 숲속은 송전탑 관리와 자손이 성묫길로 다닌 실핏줄 같은 희미한 등산로가 더러 있었다. 원시림처럼 활엽수와 송림이 우거진 숲에서 서너 시간 삼림욕을 하듯 보냈다.
성주사가 가까워진 길섶에서 빨갛게 익은 산딸기 군락지를 만나 가던 길을 멈추고 입안 가득 따 먹었다. 산딸기는 초여름 산자락에서 맛볼 수 있는 천연 간식이었다. 즉석에서 산딸기를 원 없이 따 먹고 성주사로 가니 지장전에서는 망자의 혼을 위로하는 재가 올려지고 있었다. 법당 뜰에서 두 손을 모으고 산문을 나서니 최근 세운 일주문에 편액은 걸었으나 단청은 후일에 할 듯했다. 22.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