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갔다가 무서리가 하얗게 내려 있어서 겉옷 하나를 더 입었다.
급작스러운 추위에 빛바랜 단풍들이 오들오들 떨며 몸을 움츠리는 늦가을,
나뭇잎과 화초들도 일제히 색깔을 바꾸는 그 풍경이 오히려 울긋불긋 묘한 조화다.
화단의 비비추도 서릿바람에 기운이 사라져서 잎이 노랗다. 달력의 절기를 보니 내일이 벌써 입동이다.
가을비가 내린 뒤 숙제 하나를 감행했다. 일찍부터 모란과 비비추의 자리가 옹색해서 그 터를 다시 봐 두었는데 오늘 옮겨 심었다. 뿌리를 흙덩이와 함께 깊게 파 와서 자리를 잡아 주었으니 내년 봄에 오래 묵은 장소처럼 잘 적응할 것이다.
이번처럼 추위가 닥치면 갑자기 겨울이 온 것 같다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변화하는 그 과정 속에 겨울이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일은 연속성의 원리 속에서 변화하고 순환한다. 이러한 자연의 법칙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삶 또한 과정없는 결과가 없다는 것을 거듭 생각하는 계기로 삼았다.
우리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일이 끝없이 일어나고 또 그것을 해결하는 일을 반복한다.
이러한 일은 숨쉬고 있는 동안은 언제나 진행형이기 때문에 세상살이에는 완벽한 마무리란 없다. 어쩌면 우리들 스스로가 마무리의 기준을 정해 놓고 있기 때문에 과정 자체에 만족하기가 더욱 어려운 지도 모를 일이다.
예를 들어,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 다음엔 멋진 돌을 하나 놓고 싶고, 그 다음날엔 연못도 만들고 싶을 것이다. 세상일은 이처럼 끝이 없다. 우리는 그 시점에서 그날의 일을 마무리해야 옳다. 다시 말해 완성의 기준은 현재의 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
내 인생의 멋진 성공이 인생의 목적이 되면 그 일이 이룩될 때까지의 삶은 무의미해지기 쉽다.
그러므로 하루하루가 성공의 날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좋다. 왜냐하면 불완전한 것이 삶의 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삶이 없다는 것은, 완전무결한 성공도 없다는 의미와 같다.
성공의 기준은 끝도 한도 없기 때문에 지금 그 자체가 이미 성공이라는 생각이 중요하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기억할 것이다. 서른한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는 어찌된 일인지 8번 교향곡을 만들면서 2악장밖에 마무리를 짓지 않았다. 이를 두고 건망증이 심해 나머지 악장을 깜빡하고 완성하지 않았다 하기도 하고, 3악장을 구상하고 있다가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서 미루어 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 교향곡은 마무미를 하지 않은 미완성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명곡이 되었다는 사실. 미완성 그 자체가 이미 교향곡이 된 것이다. 미완성 교향곡이 오늘날까지 슈베르트가 남긴 ‘완성되지 못했으나 충분히 완성된’ 작품으로 전해져 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미완성 그 자체가 완성이었다는 결론이다.
우리들 저변에는 성공이다 완성이다 하면서 어떤 기준을 정해 놓기 일쑤다. 그러나 성공이나 완성의 형태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이미 성공일 수 있다.
오늘 하루 나 스스로 만족했다면 그것이 행복이 완성이다.
유명인 어느 여류 시인이 방송에 출연해서 시청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 말은 평소에 내가 생각하고 있던 강의 주제여서 무척 공감이 되었다.
아이를 낳아서 100일이 될 때는 어서 아장아장 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미리 앞서 있는 그 목적 때문에 현재 과정의 즐거움을 모르게 되는 수가 많다. 아이는 매 순간순간 즐거움을 주면서 커 가고 있으니까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게 정답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의 인생에서 성공의 시절이 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실망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크게 없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조급하게 그 결과에 목적을 둔다면 오히려 소심한 인생이 되기 쉽다.
무슨 일이든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데 조바심을 내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일이 우선이다.
몇 차례 말했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다양한 가치들이 존재한다. 성공 또한 인생의 절대 가치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성공하지 못한 오늘의 인생을 너무 자책하지 마시길. 지금 살아가는 이 자체가 이미 자신의 꿈이 완성되는 과정일지 모르니까.
출처 ; 현진 스님 /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