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메일
  • |
 
미주현대불교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 불교 게 시 판 스크랩 <의식(意識) - 의행(意行) - 의생신(意生身)>
다람쥐 추천 0 조회 758 18.05.07 07:1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의식(意識) - 의행(意行) - 의생신(意生身)>

                                

              

   불교에서는 우리 인간의 육체가 육근(6根, 6官)이라 해서 안(眼-눈) ․ 이(耳-귀) ․ 비(鼻-코) ․ 설(舌-혀) ․ 신(身-몸) ․ 의(意-뜻/뇌)의 여섯 기관으로 구성돼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육근이 각각의 감각대상인 육경(6境)을 만날 때(대할 때, 볼 때), 각각의 감각장소[육근]를 통해서 각각의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일어나는 인식을 육식(6識)이라 한다. 즉,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이라는 다섯과, 의식(意識)이 6식이다.

   여기서 의식(意識, 산스크리트어 mano-vijnana)이 등장한다. 즉, 제6식을 의식이라 한다. 6식 중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은 바깥에 나타난 거친 식이고, 앞에 나와 있다고 해서 전5식(前五識)이라 한다. 그리고 전5식(前五識)은 거울과 같아서 단순히 사물을 비출 뿐 인식은 하지 못한다. 인식은 모두 제6식인 의식이 한다. 즉, 제6식이 전5식을 통할해서 인식을 일으킨다.

   예컨대, 와인을 음미하는데, 입과 코가 안다. 즉, 맛과 향은 설식과 비식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이게 좋다 나쁘다, 어떤 향이다, 어떤 맛이다, 어디서 생산 것이다, 하고 판단하는 것은 뇌가 한다. 즉, 의식(제6식)이 한다는 말이다.

   또한 의식은 여러 가지 사상(思想)이라든지, 과거 ‧ 현재 ‧ 미래에 걸쳐 일어나는 여러 사고(思考), 기억(記憶), 추리(推理), 예상(豫想) 따위의 복잡하고 다양한 작용을 한다. 즉, 제6식인 의식은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생각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인식의 마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우리 대뇌의 언어활동은 대강 제6식인 의식(mano-vijnana)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의식(意識)이라는 말이 바로 불교용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전5식’은 단순히 ‘무엇이다’라고 인식하는 것뿐이니까 오히려 집착이나 번뇌가 없다. 그런데 제6식에 오면 좀 복잡해진다. 이미 자아의식(自我意識)이 자리 잡게 되기 때문이다.

   제7식인 말나식(末那識)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놈은 제6식의 개념적 사유의 근저에서 활동하는 아주 근원적인 강력한 이기적인 자기 동일 의식이다. ‘나’라고 하는 강력한 아집(我執)의 본원인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바로 말나식이다. 그리고 제7식부터는 이미 표층심리를 벗어나 심층심리로 들어간다. 6식까지는 표층심리이다.

   우리 인간의 근본의식(根本意識)이라고 하는 것은 태어나서 6세까지 입력된 정보에 의해 형성된다. 즉, 유년기 의식이 평생에 걸친 사고와 생각의 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거의 의식과 현재의 일반적 경험이 통합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유년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유년기, 즉 태어나서 6세까지 외부에서 입력된 정보에 의해서 의식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평생 우리의 의식활동을 지배하게 된다. 우리가 성년이 돼도, 이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시기에 형성된 자의식(自意識)에 의해서 80세가 된 사람도 무엇을 판단하고, 결정할 때 어릴 때 형성된 의식이 작용한다. 어릴 때 길들여진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하는 말도, 이 이야기의 일환이다.

   그런데 그 유년기에 형성되는 의식이 대개 편향성을 띤다. 자기 나름의 고집, 편견을 가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근본의식을 극복하고 벗어나서 중도(中道)를 지키기 위해 하는 행위가 곧 수행이다. 어릴 때 형성된 편향적인 자의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행위가 곧 수행이라는 말이다.

   부파불교 설일체유부에서 생산된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阿毘達磨品類足論)>에 따르면,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이라는 6식(六識) 가운데 제6식이 의식인데, 이는 의근(意根)과 법경(法境)을 연(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해서 생겨나는 의근의 인식으로서 보통 마음이라 하며, 사물을 분별 의식한다. 이 때 의근이 증상(增上), 즉 소의(所依)가 되고 법경이 소연(所緣)이 된다고 했다.

         ※증상(增上, 산스크리트어 aupacayika, adhipati)---‘증상(增上)’이란 어떤 일에 영향을 주는 힘을 뜻한다. 뿌리는 나무를 증상시킨다. 그래서 근(根)은 증상(增上)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  

   이를 유추해서 본다면, 눈(眼根)이 그 대상인 색(色境)을 만나서 그 인연으로 해서 안식(眼識)이 생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귀(耳根)가 성경(聲境-소리)을 만나서 그 인연으로 해서 이식(耳識)이 생긴다.… 이와 같이 근(根), 경(境), 식(識)이 만나는 것을 삼사화합(三事和合)이라 한다. 그리하여 ‘안(眼)과 색(色)을 인연으로 안식(眼識)이 생긴다.’는 것은, 무엇을 볼 때 사물을 분별하는 의식이 생긴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6근과 6경이라는 12처를 인연으로 해서 육식이 생긴다는 것은 인지활동을 통해 사물을 분별하는 의식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렇게 사물을 분별하는 의식이 생기면. 이 분별심에 의해 주관계[主觀界(眼界-意界)], 대상계[對象界(色界-法界)], 의식계[意識界(眼識界-意識界)]가 분별되며, 이렇게 분별돼 있는 의식상태가 십팔계(十八界)이다.

   그리고 의식의 문제를 다룰 때, 심의식(心意識)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 심의식을 오온(五蘊)에 견주어 보면, 색(色)을 제외한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곧 심의식이다. 따라서 심의식과 수ㆍ상ㆍ행ㆍ식을 견주면,

   「심(心) = 수(受)ㆍ상(想)이며,

     의(意) = 행(行)이고,

     식(識) = 식(識)이다.」이렇게 된다.

   그리하여 무심(無心)이라 할 때, 무(無)는 곧 수(受)ㆍ상(想)이 없다는 말이다. 이는 곧 사량분별하는 망상이 없는 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무심에도 의(意)와 식(識)은 여전히 있다. 즉, 심(心)은 없지만 의식(意識)은 있다는 말이다. 이러할 때의 의식은 순수의식으로서 망상에 속하지 않는 뜻(意)과 알음알이(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한 의식을 말한다.

   그런데 위에서 「의(意) = 행(行)」이 나왔듯이 의행(意行)은 의도적인 지적작용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신행(身行)ㆍ어행(語行-口行)ㆍ의행(意行)의 삼행(三行)에 나오는 말로서, 삼행은 신(身)ㆍ구(口)ㆍ의(意) 삼업(三業)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의행(意行)은 의업(意業)과 같은 말이다.

   의행(意行, 빠알리어 mano-sa?kh?ra)은 자기 자신이 깨어 있는 만큼, 수행한 만큼, 생각과 의식이 변하고, 변한 것이 의식과 생각을 통해, 의식하고 인식하며 행을 하고, 이렇게 행하는 것을 의행(意行)이라 한다. 의행이 육체와의 인연이 다한 연후 죽어서는 평소 행한 의행에 따라 의행(意業)대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지은 업대로 태어난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수행에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즉,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세 가지 수행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바로 의(意)의 수행이다. 바로 생각으로 하는 수행이다. 몸으로 행하는 신행(身行)과 염불이나 독경으로 하는 구행(口行)으로는 결코 정각에 이를 수 없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행은 의행(意行)뿐이다.

   의식에 의한 수행이란 명상이요 참선인데, 이런 의행은 모두 비우는 작업이다. 비운다는 것은 바로 의식을 최고의 상태에 두기 위한 작업이다. 그때 우리의 의식은 최고조로 명료해진다. 우주의 가장 심오하고 난해한 법칙마저도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 고요한 의식은 바로 우주의 원초적인 기운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대단히 복잡하고 난해해서 풀리지 않던 문제가 깊은 사색의 끝에서 어느 순간 탁! 깨쳐지는 때가 있다.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 목욕탕을 뛰쳐나가면서 유레카(Eureka)를 외쳤던 그런 체험,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얻으신 그런 체험이 바로 의행을 완수한 사례라 하겠다.

   그리고 의행(意行)과 관련해 의생신(意生身)이 있다.

   부처님께서 천 백억 화신(化身)으로 자유로이 나툰다고 했는데, 이와 같이 생각으로 자유로이 나투는 몸이 바로 의생신(意生身)의 경지를 말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의식이 만들었다고 해서 의생신(意生身)이라고 한다. 생각대로 생기는 몸이다. 식(識)의 의(意)로 인해 의지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상(相)으로 생기는 몸을 말한다.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신체가 아닌 또 다른 몸으로 의업(意業)의 작용인 생각에서 생기는 몸을 의생신이라 한다. 이러한 의생신의 주체가 의행이다.

   의생신(意生身, 빠알리어 mano-maya-kaaya)은 의성신(意成身), 여의신(如意身), 의신(意身)이라고도 하며, 음사해 마노말야(摩奴末耶)라 쓰기도 한다. 빠알리어 mano(意)-maya(生)-kaaya(身)로 직역한 것이다. 의생신에 대해서는 초기경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대승경전 <화엄경>이나 <능가경> 등의 여러 대승경전들에서 언급하고, <종경록> 등 조사어록에도 적지 않게 언급하고 있으며, 특히 <승만경>에서 많이 언급하고 있다.

   의생신의 원어는 여의수생신(如意隨生身)로서, 어머니의 태를 거치지 않고 뜻에 따라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색계, 인간계의 중생이 업(識) 작용으로 육도 윤회의 몸을 받아 태어나는 것을 두고 말하기도 하고, 깨달은 이가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대로 몸을 받아 태어나는 것을 말하기도 하며, 깊은 원력으로 불ㆍ보살을 친견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무착(無着) 선사가 팥죽 졌던 주걱으로 문수보살 뺨을 갈겼다고 하는 것도 의생신을 두고 한 말이다. 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뜻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과 같이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나타나는 것, 이루어지는 몸을 말한다.

   따라서 불ㆍ보살의 의생신도 있으며, 화생신(化生身) 변화신이 모두 의생신이다. 부모를 의지해 태어나는 것을 태장(胎藏)이라 하는데, 어머니 뱃속에 입태해 몸을 받는 방식이 아니고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변화해서 임시로 나타내 보인 신체를 말한다. 이와 같이 불교 수행자가 명상수행 중에 원력을 통해 보게 되는 몸, 혹은 관상(觀想)수행에 의해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도 의생신(意生身)이다.

   부처님께서 천 백억 화신(化身)으로 자유로이 나툰다고 했는데, 이와 같이 생각으로 자유로이 나투는 몸이 바로 의생신의 경지를 말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의식이 만들었다고 해서 의생신(意生身)이라고 한다. 생각대로 생기는 몸이다.

   그리고 불ㆍ보살의 의생신도 있으며, 화생신ㆍ변화신이 모두 의생신이다. 즉, 부모를 의지해 태어나는 육신이 아니고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변화해서 임시로 나타내 보인 신체를 말한다. 이와 같이 불교 수행자가 명상수행 중에 얻은 미세한 몸을 가리키며, 사람이 죽어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잠정적인 신체인 중음신(中陰身)도 일종의 의생신(意生身)이다.

   빠알리어 문헌에는 의생신이 단지 명상수행의 영적 부산물일 뿐만 아니라 삼계 내의 특수한 존재 양상을 가리킨다고 했다. 즉,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신체가 아닌 또 다른 몸으로 의업(意業)의 작용인 생각에서 생기는 몸을 의생신이라 한다는 것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마음으로 만든 몸이나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옮기고 있으며, 초기경전에 삼매를 토대로 나툴 수 있는 신통의 하나로 언급되고 있고, 의생신은 죽어서 색계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욕계의 신들은 음식을 먹고 산다고 하며, 색계의 신들은 삼매의 힘으로 색계천상에 태어난 자들이기 때문에 색계천상의 신들의 몸은 의생신이 된다고 했다. 무색계는 물질로 된 몸이 없기 때문에 의생신이 적용되지 않는다.

   특히 주석서는 불환과(不還果)를 얻은 불교의 성자들이 태어나는 천상이 정거천(淨居天)인데, 이 정거천 천인(天人)의 몸을 의생신으로 말하고 있다. 이처럼 색계천상에 태어나는 경우 모두 의생신이고, 이 가운데 가장 수승한 것이 정거천에 태어나는 것이며, 이것은 불환자에 해당한다.

   다음은 <능가경>에서 부처님 말씀이다.

   “이른바 의생신이란 비유하자면 사람들의 심의식(心意識) 작용과도 같아, 환상이 일어날 때 즉각 생기고, 아무 걸림이 없어서 의생이라 한다. 이렇게 변화하면 자유롭게 오가며 돌이나 벽이 장애가 되지 않고 지역에 구애받지도 않는다. 그런데 사람의 의식이 어떻게 이처럼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전의 경험이 기억으로 변해 이 기억이 마음속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져 환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의식은 본래 형질이 없어 신체의 형상에 갇히지 않으니, 이 때문에 일신을 주재하는 원천이 된다.

   보살이 의생신을 얻는 경계 역시 이와 같아서 손가락 한 번 퉁기는 사이 일체의 신통과 묘용을 갖출 수 있다. 소위 여환삼매(如幻三昧 : 요술사가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작용이 자재한 삼매)의 힘과 자재신통이요, 마치 사람들의 의식작용과도 같아 외계의 일체가 장애가 될 수 없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 육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심의식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우리 중생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수행의 힘이 큰 것이다.

   그리고 티베트 밀교에서는, “제8지에 오른 보살은 부처의 몸과 비슷한 상호를 가진 의생신(意生身)을 얻게 된다.”고 했으며, “이 의생신이 생긴 인연으로 자신의 무명 습기가 자취를 감추고, 이 의생신을 이용해 미묘한 무루의 원력을 성취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의생신이 차츰 향상돼 마침내 불과의 색신으로 전환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서양에서도 마리아상을 봤다느니, 예수님이 나타나셨다느니 하는 것이 모두 의생신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느니, 원효대사의 초막에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시험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다고 하며, 오대산에서 문수동자가 나타나 세조(世祖)의 등을 밀어줬다든지 하는 말들이 모두 의생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 게 신앙의 힘이고, 원력이 현현해서 그런 것이다. 수승한 과보의 몸으로 태어나는 의생신도 있을 수 있고, 여의불(如意佛)도 역시 의생신이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