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림. 나는 네가 지난 여름 한 일을 알고 있다. 식스 센스. 유주얼 서스펙트. 매트릭스. 블레어 위치.
23일 개봉하는 ‘무서운 영화’ 관람료가 아깝지 않으려면 이 다섯편 정도는 봐뒀어야 한다. 못 본게 절반 넘는다고? 빨리 비디오 가게로 달려가길!
무서운 영화(Scary Movie)는 코믹과 엽기라는 21세기 벽두 젊은이 문화 코드로 가득 찬 영화다. 거기 한술 더 떠, 여태까지 나온 모든 패러디 영화를 뛰어넘는 패러디 영화다. 지난 여름 미국 개봉에서 이 영화는 R등급(17세 이하 부모 동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주 흥행 수익 최고 기록을 세웠다.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슬래셔(마구잡이 살인) 영화 스크림과 나는 네가 지난 여름 한 일을 알고 있다를 기본 뼈대 삼아 수십편 영화의 장면과 대사, 인물을 모사하고 조롱하며 변주하는 이 영화의 대 히트에 미국 뿐 아니라 세계가 놀랐다. 과도한, 그리고 지저분한 농담에 가까운 이 영화가 도대체 어떤 점에서 먹혀든 것일까. 올 여름 공포와 코믹, 엽기를 주무기로 내세운 영화가 휩쓸었던 한국에서도 과연 무서운 영화 바람이 불까.
용감한 형제들이 많은 헐리우드. 새로 등장한 웨이언스 삼형제가 무서운 영화의 창조자들이다. 키넌 아이보리 웨이언스가 감독하고 숀 웨이언스, 말런 웨이언스가 함께 시나리오를 쓰고 주인공으로 출연까지 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수많은 영화 체험이 DNA에 각인된 영상 세대 그 자신이다. 흑인인 이들은 주요 등장 인물을 흑인으로 바꿔 인종 차별적 고정 관념을 한번 더 뒤집어 비튼다.
영화는 스크림과 똑같은 상황에서 출발한다. 줄거리와 인물도 스크림에 흡사하다. 첫 장면에서 살인마의 전화를 받는 여자는 유명한 흑인 여배우 카르멘 일렉트라. 극중 이름은 드류 베커로, 스크림에서 이 역을 맡은 드류 배리모어에서 이름을 땄다. 영화 주인공인 10대 커플은 신디 캠벨. 물론 스크림 여주인공 니브 캡벨의 실제 이름을 빌려온 것이다. 신디를 보호하는 동네 경찰 더피는 스크림의 경찰 듀이와 외양까지 흡사하다.
그러다 영화는 갑자기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로 돌변한다. 할로윈(슬래셔의 고전 ‘할로윈’을 기억하라!) 밤, 요란하게 놀러다니던 3 커플 6명은 정신없이 차를 몰다 한 남자를 치고, 그를 바다에 던져버린다.
드류의 죽음, 그 뒤로 살인 공포에 시달리는 이들과 살인마의 등장은 좌충우돌, 종횡무진, 공포 영화와 신비주의 영화 목록을 누빈다. 스크림의 유령 가면을 쓴 살인마와 신디는 매트릭스를 연출하고, 식스 센스의 “난 죽은 사람이 보여요”가 재현되며 아메리칸 파이의 “내 이름을 말해봐”가 줄지어 나온다.
이러니 정통 영화 평론가들에겐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헐리우드의 이름난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개그의 연속이라고 할 정도로 플롯도 없고 대사는 골 빈 말들로 가득 차 있다”고 지적한다. 오리지널리티의 진지함을 마음껏 비웃어버리는 이 영화는 넌센스 삼행시가 유행하고 어이없는 코믹 대사가 난무했던 지난 여름 한국 공포 영화들과 동시대 동일 언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