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공부를 한 이래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를 해 보았는데,
이 과정 중에,
각자의 방어기제가 "인간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발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저에게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인간관계에서의 방어기제는
크게 분류하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겠는데,
저는 이걸 "허들"로 비유합니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
통상적으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른바, "적당한 높이의 허들"로써,
이 허들을 넘어야지만 내 사람이 되는 구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근데, 딱 봤을 때,
'와 이 사람 쉽지 않겠는데???'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입장벽이 엄청 높아보이는 사람들
엄청 쎄 보이는 사람들
뭔가 도도하고 차가워 보이는 사람들
즉, "매우 높은 허들"을 지닌 이들로서,
이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방어기제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본 방어기제인들의 인간관계는 심플합니다.
이걸 넘으면!
베프가 되는 구조입니다.
이를테면,
상처가 두려워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자기 아픈 걸 아랑곳않고 나를 감싸안아준 겁니다.
인간관계를 주로 연구하는 시카고 대학의 Emma levine은
내가 좀 손해보더라도 상대를 위하는 태도인
자애로움(benevolence)이
인간관계를 가깝게 하는 핵심적 요소라고 설명합니다.
높은 허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한 자기방어기제이자 동시에,
일종의 테스트 관문인 거죠.
이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성문을 일단 열기만 하면,
바로 이 나라의 영의정, 우의정 되는 시스템인 겁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인관계에서
바로 이 기본 방어기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이건 비교적 심플하죠.
정말 흥미로운 방어기제는 바로 이제부터 설명할
"심화 방어기제 시스템"입니다.
허들이 매우 낮죠.
보통의 경우들보다도 훨씬 낮습니다.
그래서 타인들이 볼 때,
굉장히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나이스해 보여요.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문을 열었다고 생각하고,
이제부터 내가 좌의정, 우의정 됐다는 생각에
베프모드로 돌입하게 되면,
어.. 이거 뭐지?!?!
왜 이렇게 내가 별 거 아닌 사람처럼 느껴지지????
문을 열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느껴지는 감정은 우의정, 좌의정이 아닌,
내가 마치 이 나라에서 일반 병사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겁니다.
기본 방어기제는 허들은 높지만,
그 허들만 넘으면 베프가 되는 구조에요. 근데,
심화 방어기제는 허들이 낮아서,
쉽게 이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높이는 낮은데, 허들의 길이 자체가 너무나도 길어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가도 넘을 수 없는 허들이었던 겁니다.
심화 방어기제의 메카니즘은,
기본 방어기제와는 정반대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허들을 낮춘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하니,
사람들에게 나이스하게 다가감으로써,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겁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인간관계를 맺으며,
인간관계 시장에서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으면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상처 받을 일을 아싸리 없도록 만드는 거죠.
누구나 인정하는 괜찮은 사람
저 사람이 이상한 짓을 할 리가 있겠어?
뭔가 문제가 있다면 그 상대방이 잘못했겠지..
쉬워 보였는데,
결국 그 허들을 넘을 수 없더라,
그 사람에게 다가가려 할 수록 멀어지더라,
날 밀어내더라.
허들이 길어진 이유를 설명하자면,
케바케일 테고, 너무나도 복잡한 원인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강도 높은 자기방어기제를 택했다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라는 것이고,
살아온 과정 중에서 그만큼 본인을 힘들게 했던
절망적인 스토리들이 각자에게 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누군가는,
성벽을 높게 세운 대신,
성벽 안에서는 여린 모습으로
누군가가 저 성벽을 넘어 나에게 닿기만을 기다리는 것이고,
(기본 방어기제)
어떤 누군가는,
모두가 성벽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허용하는 대신,
아무도 내 방 깊숙한 곳까지는 절대로 들이지 않는 겁니다.
(심화 방어기제)
기본은 오히려 심플합니다.
지독하게 외로운 길이지만,
살다보면 한두명쯤은 그 높은 성벽을 넘어 나에게 닿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과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해나가면서
점진적으로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요.
심화는 복잡합니다.
겉으로 봤을 때는 화려해 보이고 좋아 보이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알아갈수록 점점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입니다.
관계 초반과 달리,
관계를 맺을 수록 멀어짐을 느끼며
결국 사람들이 실망한 채 떠나게 되면,
그래 떠나가 떠나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아
라고 자조하며,
성 안으로 들어오는 또다른 사람들을 반기러 나가는 한편,
더욱더 굳세게 안 쪽 깊숙한 방문 빗장을 걸어 잠급니다.
결국 사람인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자기방어기제를 발동시키는 것도 사람이고,
마음의 문을 열고 자기방어기제를 해제시키는 것도 사람이에요.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이렇게 결국 사람인데,
내 인생에 어떤 사람들이 찾아올 지는 랜덤이라는 것. (福不福)
동도들의 인간관계에는 복만이 흥하기를 기원합니다.
※ 무명자 블로그
첫댓글 오늘도 감사해요. 나이 먹어서 친구 사귀기기 힘들다고 요즘 느끼는게 저런 과정이 살아오면서 더 높아지고 더 넓어지고
반대로 그 높이나 넓이에 대한 인내심은 줄어들어서 그런것 같아요
좋은 하루 되세요
매번 좋은글 감사합니다. 조금씩 살면서 저도 심화방어기제로 가는거 같네요. 이제는 만나서 일할때, 놀때 그때만 잘 맞으면 됐지. 저도 그게 뒤탈없이 깔끔해서 좋구요. 뭐 깊고 친밀한 인간관계를 찾게 되진 않는거 같아요
나이 따라서도 변하는 거 같습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심화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거 같아요.
믿고보는 무명자님 글!!항상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성격,성향?? 이 바뀌어 지는거 같아요...
점점 새로운 사람들, 혹은 그냥 지인?? 이런사람들 만나는게 좀 겁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그냥 자리를 안만들게 되네요...
주위사람들이 제가 이렇다고 하면 웃기시네~! 할 정도로 안그랬거든요~~ 집사람만 알고 있더라구요~ 제 성격을....
기본도 높고
심화도 깊은
허들도 있나요?
끝판왕 급인데, 일단 저는 살면서 한 명도 못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