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막2장
무한한 생의 빈터에서 어떻게 무엇을 채워 가느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생로병사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오지만 말이다.
하루를 살아도 자연과 더불어 사람과 더불어 참다운 목소리로 훼방꾼이 아닌 자연의 소리를 닮았으면 좋겠다.
두 번도 아닌 잘났건 못났건 일생을 살다가는 존재이므로 그 누구도 돌팔매를
견줄 수 없고 좋고 나쁨을 가늠할 수 없기에 더더욱 인생은 1막2장의 끝맺음을
아름답게 채색할 수 있어야 하겠다.
하지만 어디 그리 싶지 않은 게 인생행로겠는가?
젊음이 순간 순간 빠르게 사라지듯 잔바람에 춘설도 녹아 지듯
끝없는 곡예를 거듭거듭 풀어가는 게 주워진 삶의 무게이며 삶의 과제이다.
언덕너머 해님은 항상 방긋 웃어도 내 마음이 그늘이면 그 해님도 그늘 속에 있다.
어느 시인의 글처럼 그날에 마음이 쾌청하면 온세상이 내것인냥 아름답기만 하다고 했다.
또 슬픔이 옥죄이면 그날의 풍경은 온통 잿빛 물결이라 했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다들 힘들게 어렵게 살아가야만 하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행복은 내가 만들고 내가 허물고 내가 쓰고 지우면서 온갖 잡다함을 물리쳐야 그때서야 비로소
미소짓는 마음속에 가만히 조용히 다가온다.
어린아이가 엄마한테 때스면 돈주고 사주는 물건이 아닌 것이다.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명예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게 행복인 듯 하다.
덕망 있어 보이는 사람도 한 번의 실수로 나락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아마 짐작한데 욕심과 탐욕의 눈이 멀어서 판단의 오류를 범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덕망이 없어도 얼굴엔 온통 미소로써 답례하고 매사 긍정적인 사고로 살아가는 이들도 참 많다.
어떻게 판단하여 오류를 최소화 시키며 마음다잡기를 습관적으로 몸밖으로 끌어올리느냐에 따라서
1막2장인 인생행로란 너울성 파도를 슬기롭게 지혜롭게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선현은 말한다. 불혹을 넘기면 자기 얼굴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추수로 말을 빌리면 반타작을 하였으니 남은 여생 반타작은 그 누구의 힘을 빌리지 말고
자신 스스로 책임지고 자신 스스로 남은 여정을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지금 불혹을 넘겼다면 1장은 막을 내리고 제2장의 막이 열렸으니
타인을 의존하고 세상탓으로 눈을 돌리면 아니 될 것이다.
시쳇말로 나잇값을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나이값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는 철딱서니 없는 즉, 말만 어른인 사람들도 있고,
나이가 어려도 먼저 철이 들어 어른처럼 의젓한 행동거지로 뭇 어른들의 본보기를 사기도 한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그래도 편안함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누군들 안락함을 꿈꾸지 않을 것인가.
인생 2장의 빈터에선 쉽게 얻어지기보단 무엇을 어떻게 아름답게 어른답게 추하지 않은 참다운 모습으로
짙어가는 신록의 숲에 풍경처럼 수채화 물감으로 가슴 깊이 생각해 보면서
혼탁한 세상을 향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남은 여정 길을 하나 둘 정리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좀 더 윤택한 생은 아닐지라도 연극 속에 주인공이 되어 나 스스로 고민해 볼 나이가 되었다.
글: 필통
첫댓글 저도 어연 2막에 들은지 한참 지났건만 아직도 하늘우러러 부끄럼없이 살지 못하고 있음을 반성해보게 된다~~()
얼마전 교통사전 처리에 있어서 매끄럽지 못한점을 지금도 아쉬워 하고 있네요. 하루하루를 참회하면서 살아가야자 하는 마음만 앞서는 것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것 같아 또 후회하면서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누구에게나 알려진 이공간에서 지금의 삶에 만족한 삶이라고 느낌면서 살어 갈수 있도록 노력 해 볼랍니다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남은생..부처님법 의지하여 적은것에 만족하고 만물에게 하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이값 다 할 수 있을때 진정한 부처가 아닐런지요, 항상 부끄럽습니다. 열심히 정진 하겠습니다.
정말 나잇값이란 값어치를 하는 이 존재 할 것인가. 저부터 부끄럽습니다.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