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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역사]
1994.09.15 매일신문 초광력 첫 언론보도 기사
월별빛역사 09월의 빛VIIT역사
1994.09.15 매일신문 초광력 첫 언론보도 기사
1996.09.08 백지로 사라진 불꽃사진
1998.09. 창원성당에서의 공개 강연회
2009.09.03~09.07 코타키나발루 빛VIIT여행
2009.09.14 <행복순환의 법칙> 발간일
2011.09.18~09.28 유럽 빛여행(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성당의 오르간 소리
2011.09.26 향기와 빛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출간일
2013.09.26 박우현 교수의 빛만남
2015.09.28~10.09 라파엘 성모상
1994년 9월 15일 매일신문 첫 언론 보도
[빛역사 이야기] 빛VIIT에 대한 최초의 언론 보도
2025.09.02 빛터회합
바로가기 : https://cafe.daum.net/webucs/DVD4/361
[25] 매일신문 첫 신문보도
빛만남 30주년, 본 회 설립 22주년 특선 - 매일신문 첫 보도와 금호호텔 취임 동기
1. 매일신문 첫 보도가 나오기까지
2. 신문기자의 검증
3. 금호호텔에 취임하게 된 동기와 본회 설립
4. 고려예식장 대공개 강연회(1994.10.15)와 본회 설립선포
1,2,3,4 바로가기 : https://cafe.daum.net/webucs/DFL7
빛역사 만평 제53화
빛VIIT에 대한 최초의 언론보도
바로가기 : https://cafe.daum.net/webucs/9JVO/62
빛VIIT의 선택이 왜 나였을까
<초광력超光力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모든 차원, 모든 만물을 존재케 하고 주관하며 관장하시는 우주의 마음이요, 근원이며 우주 자체이신 이 힘, 우주의 절대적인 힘, 초월한 빛VIIT의 힘 ‘초광력超光力’
모든 것을 넉넉하고 따뜻하게 포용하는 이 빛VIIT은 우주의 원리,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오는 전지전능한 힘이다.
그렇다면 이런 우주의 힘은 왜 나에게 온 것일까?
세상에는 높은 정신세계와 깊은 인품을 갖춘 훌륭한 인사들이 숱하게 많이 있음에도 하필이면 왜 나일까? 그토록 많은 성직자와 종교지도자, 돠사와 초능력자, 기공사, 유명인, 무속인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인물들을 제쳐두고 우주의 마음은 왜 나를 선택한 것일까?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그 정확한 해답을 알지 못한다. 한 번도 우주의 마음이 당신의 그 뜻을 내게 명시적으로 알려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유를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삶에는 크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그저 보통의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왔을 뿐이다. 그러나 하늘을 우러러 결코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 적어도 항상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는 꺽지 않고 살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열망을 항상 품에 담으며 살아왔노라고 얘기할 수 있다. 자기 그림 자기가 칭찬하는 격인지 모르지만 언제나 순수 하고자 했고, 언제나 나누고자 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런 삶을 살아왔다고 감히 고백할 수 있다.
아마 이런 나의 모습을 우주의 마음이 과분하게 보아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특별하게 튀지도 않으면서 특별하게 모나지도 않은 나의 모습을 빛VIIT의 마음이 너그러이 보아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추측은 다만 추측일 뿐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 그러나 우주의 마음에서 내게 내리시니 이유를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빛VIIT의 선택, 왜 나였을까?
해질 무렵이면 대지 위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샛별 하나를 ‘내 별’이라 하여 무척이나 좋아한 적이 있었다. 내 생에 있어서 가장 어렵고 힘겨웠던 한때 어떤 사람의 함정에 빠져 위증으로 숱한 고통을 받았을 때도, 어둠이 땅 위에 낮게 깔리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반짝이는 샛별을 바라보며 ‘나는 누구이기에 인류를, 이 나라를, 나의 이웃을 생각하며 안쓰러워해야 하는가’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 자문하곤 했다.
늘 샛별을 보며 큰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대구의 대신동에 살았다. 지금도 그 옛집에는 아우가 살고 있다. 그때는 우리집 칠형제와 큰집 사촌형제 다섯 명, 그리고 외갓집의 이모까지 합치면 거의 스무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사는 울타리 안은 언제나 장터를 방불케 했다.
사이가 좋다가도 때로는 싸움박질도 하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 집은 우리 모두를 포용했고 비좁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동네 아이들까지 합쳐 한창 많이 모일 때면 어머니께서 강냉이빵을 가마솥째 두서너 판 쪄주시곤 했다. 그러면 우리들은 그것을 들고 달성공원으로 총출동했다. 집의 마당이 아무리 넓기로서니 사내 녀석들이 마음껏 뛰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여 비좁으니 달성공원의 큰 마당으로 이동한 것이다.
달성공원 앞에는 큰 개천이 흘렀고 그 가에는 갖가지 노점상과 벼룩시장들이 열리는데 아이스께끼 파는 아이에서부터 병아리, 토깡이 새끼, 똥강아지 파는 사람, 뺑뺑이판 돌리는 야바위 꾼 등.
그 당시 입장료가 2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수십 명에 이르는 노인들은 돈이 없어서인지 아까워서인지 는 모르겠지만 공원 입구나 다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내가 돈을 벌면 저 노인들 모두에게 달성공원 구경을 시켜드려야지. 그리고 강냉이 빵도 많이 쪄서 나누어 드리고’라고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재벌이되어 어떤 큰일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180도로 전환한 것은, ‘나 안의 나’, 알맹이의 마음이랄까 정신이랄까, 그것을 알게 되고 난 후였다.
샛별은 더욱 가깝게 다가왔으며, 나는 마음의 재벌이 되어 빈곤에 허덕이는 수많은 마음들에게 맑은 ‘님의 소리(자연의 소리)’를 한 아름씩 안겨주어야겠다는 새로운 생각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우연의 일치인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내 곁에서 작용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신기하고 신비로운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엔가 큰 부자가 되어 온 인류에게까지 도움을 줄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곧잘 했던 것이다.
그 유년의 기억들 사이러 날이 갈수록 그리워지는 분이 있다. 바로 ‘도경道卿’이라는 분이다.
당시 나는 아버지를 따라 가끔 고모 댁에 갔다. 고모는 부자였고, 집 뜰엔 기이한 화초와 꽃들이 사람 다니는 길만 빼고 가득히 피어 있었다. 우리집 꽃밭엔 상추와 고추 등 주로 먹는 채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고모집에는 채송화에서부터 각종 선인장, 난초에 천리향 등갖가지 화초들이 있었다. 뒷간이나 마루에도 예쁜 꽃들이 놓여 있었고, 오랜 그림들도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고모 댁에 갈 때는 미국 선교사가 살고 있는 집의 담벼락을 지나는 계단을 또 올라가야 한다.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 담 밑에 있었던 세 노인에 관한 것이다.
한 노인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당사주」 책을 보여주면서 방문객들에게 뭔가를 봐주고 있었다. 그 노인이 있는 곳에서 열 발자국쯤 더 가면 흰 수염이 배꼽까지 내려오는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은 앞을 못 보는지 지날 때마다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림책도 없었고 손금을 볼 때 쓰이는 돋보기도 없었다. 종이도 붓도 없었다. 그냥 눈을 감고 앉아 있기만 했다. 세 번째 노인 앞에는 가끔 손님이 앉아 있었고 먹을 것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가운데 있는 노인은 누가 지나가도, 양쪽의 두 사람처럼 아는 체하는 것은 고사하고 본채만채 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지나가면 신통하게 알아맞혔다.
“정주사님 오셨군요. 여섯째 놈도 함께 왔구나.”
무뚝뚝하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며 자리를 내주었다. 눈을 보면 계속 감고 있는데 내가 온 것까지 정확하게 알아맞혔다.
어머니는 철저한 천주교 신자이시기 때문에 이런 곳하고는 거리가 먼데 아버지께서는 가끔 이런 곳에 들를 때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중에서도 제일 신기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그 노인이었다. 수염도 신기했지만 그가 뭔가 이야기를 하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그 노인은 아무나 봐주지 않고 하루종일 앉아 있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지나가면 불러 앉혀서 봐주곤 했으며, 돈에는 관심조차 없는 것 같았다. 그 노인은 간혹 사목(山木 : 오죽으로 만든 것)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그 노인은 그 자리에 있었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그 노인도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여하튼 아버지는 그 자리에 앉아 때로는 고모집 가는 것도 잊어버린 채, 가져온 음식들을 내놓고 소주 두세 병을 마시며 얘기꽃을 피웠는데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호탕하게 웃음을 나누기도 하고 언성을 높여 다투기도 하셨다.
처음 아버지를 따라 그곳에 갔을 때 그 노인은 나의 생년월일 시각까지 알아맞혔다. 그리고 지나간 일, 앞으로 닥칠 힘든 일, 그리고 먼 미래까지 단숨에 얘기하고는 벌떡 일어서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큰절을 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황망해서 어쩔 줄 몰라 하셨고 양쪽의 노인들도 이상하다는 눈길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린 시절이라 그 노인이 아버지를 향해 절하는 줄만 알았다.
“예야, 어려운 한 시절, 억울한 시절이 와 견디기 힘든 일을 당하겠으니, 어찌하든 참고 견디고 이겨내야만 한다.”
노인은 산목 한 개를 뽑아보고 또 세 번 절을 올렸다. 이번에는 하늘을 보고 절을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 시절 그 노인은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싶어했고 또 주고 싶어했던 것같다. 나를 볼 때마다 ‘어렵고 억울한 일 두 번 당할 테니 참고 지내거라’고 말씀하셨고, 나에게 한 번, 하늘에 세 번 절을 올리시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그분을 도를 깨친 장님을 예우한 호칭으로 ‘도경’이라 부르셨다.
“오색 찬란한 옷자락을 휘날리며 뭇사람들의 아픔을 쓰다듬고 있는 아드님의 후일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주 밝은 빛VIIT에 싸여 있구려, 머지않아 큰 빛VIIT, 하늘의 문이 열릴 것이외다. 그러나 그 밝은 세상을 열어가는 아드님의 모습을 정주사와 나는 볼 수가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토록 빛나는 형상이거늘…….”
아버지께서 노인에게 돈을 주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가끔씩 쌀과 찬거리 등을 갖다 주시곤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3년 전쯤일까, 그 노인은 나에게 성묘 갈 때 아버지께서 하사는 말씀을 잘 들어 마음에 새겨두라고 하시며 무척 서운해 울기도 하셨다. ‘큰 세상 큰 하늘의 문이 열리는데 우린 못 보겠구려’ 넋두리를 자주 하셨다. 그 이후 기가 막히게도 3년 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물론 아버지께서는 3년 전 묏자리도 잡아놓았고 당신이 돌아가신 후의 일도 명백히 하셨다. 그리고 ‘도경’이라 불리셨던 그분도 홀연히 그 자리를 떠나셨다.
그분께서는 붓으로 아무렇게나 써서 책 제목도 없는 케케묵은 조그마한 책 한 권과 호작도(까치와 호랑이를 그린 그림) 한 폭, 신선도 한 폭, 평소 늘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산목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도경에 대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결혼 후 분가하면서 작고 낡은 가방 속에 그분에게 받은 것들을 발견하고는 새삼 그때를 떠올렸다.
운명일까. 도경의 예언대로 83, 86년 두 차례에 걸쳐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이해 힘들게 보냈다. 어린 시절 도경이 나에게 했던 얘기를 나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괴상한 노인이 어린 나에게 했던 얘기에는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후 가끔 그 작은 책자를 펴 보면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그 뜻이 이해가 되었고 꿈에서 그 원리와 이치가 풀려지곤 했다. 도경의 말씀대로 되어가고 있는 현 시대를 생각하면서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분의 높은 학문과 예지력에 깊은 침묵으로 일관하곤 한다.
40년이 흐른 뒤 새삼 정확하게 기억이 되살아나는 ‘도경’이라는 분,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 후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사람. 왜 그 시절 도경이라는 분은 그렇게 구름처럼 왔다가 소리 없이 사라졌을까?
지금도 내가 초광력超光力을 펼칠 때면 오색의 빛VIIT이 눈앞에 머무른다. 이젠 많은 회우너들도 그 빛VIIT을 목격했기에 그 빛VIIT은 이젠 신비의 힘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그때 도경이 말했던 오색 찬란한 옷자락이란 이런 오색 빛VIIT을 말함이 아니었을까?
또한 그분은 큰 빛VIIT의 문이 열릴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도경은 오늘 나의 모습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다만 그때의 일을 기억하면서 이 빛VIIT이 그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작정 찾아든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빛VIIT과의 만남은 내가 느끼기 우래 전부터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다는 믿음을 다시 한번 굳히게 된다.
도경은 내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달려갈 것이라고 했었다. 지금 나의 모습이 과연 그러한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주변을 되돌아보게 되고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이 몸가짐을 낮추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듯 사람들의 축복을 바라서도, 의식해서도 아니다. 그보다는 한 사람에게라도 더 행복을 나눠줄 수 있다면 내게 맡겨진 이 일을 숭고히 여기며 오늘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출처 : 초광력超光力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1999년 3월 8일 1판 1쇄 발행
1999년 4월 15일 1판 2쇄 발행
2014년 5월 28일 한정판 1쇄 P. 12-19
첫댓글 매일신문 첫언론보도 기사 뜻깊은 빛역사의 날 감사합니다. 빛을 검증하고 전해오신 수많은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큰 빛만남과 도경과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귀한 빛역사의 날,
매일 신문 언론 첫보도와 도경과의 만남 이야기로 학회장님의 크신 마음을 다시 느끼며,
깊은 공경과 감사의 마음 올립니다 .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1994년 9월15일 매일신문 초광력 첫 얼론보도 기사,가 난 날
빛VIIT의선택이 왜 나였을까?
다시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귀한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소중한 빛역사의 날 축하드립니다..
유난희 구름이 아름다운 날
소중한빛역사 마음깊이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빛과함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매일신문에 초광력 첫 언론보도가 나간 빛역사의 날... 빛VIIT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감사와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의 학회설립에 기반이 된 *매일신문 초광력 첫 언론보도 기사* 빛역사의 날
축하와 함께 공경과 감사의 마음 담습니다.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소중한 빛역사의 날을 진심으로 축하 또 감사드리며 마음에 잘 담겠습니다.
빛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에 우주마음님과 학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감새합니다.
감사합니다
빛역사의 날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매일신문 초광력 첫 언론보도 기사가 났던 빛역사의 날입니다
축하마음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뜻깊은 빛역사의 글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히 담습니다.
학회장님이 빛VIIT의 선택된 이유...빛책속의 귀한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장님께서 오색빛을 휘날리며 사람들의 축복 속에 달려가실 것을 예견하신
도경님 이야기~ 빛VIIT 안에서 무탈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무한한 감사와 공경의 마음 가득 올립니다~
학회장님의 어린시절
어머니께서 쩌주시던 강냉이빵이
먹고 싶네요...
귀한빛글 마음에 담을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귀한 빛역사이야기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와 도경과의 만남 오늘이 있기까지
빛과함께한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빛글 마음에 담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빛만남 30주년 본회설립 22주년 특선94년 9월15 매일신문첫 언론 보도와 금호호텰 취임 하신 깊으신 뜻하심 축복속의 오색빛 휫날리시며 찬란하시는 천혜의 천상의 초광력 빛안의 영원무궁의 공경의 감사마음올립니다 감사마음드립니다...